668화
자금성의 대전에서 병부 상서의 보고를 듣던 강희제는 점차 인상을 찌푸리다 더는 듣지 못하겠는지 손을 들어 병부 상서의 입을 막은 후 되물었다.
“...강서성? 정말 강서성이 반란군에 넘어갔다는 소린가?”
강희제의 목소리에 섞인 짜증과 분노를 감지한 대신들은 잔뜩 움츠러든 기색으로 강희제의 눈치를 보기 시작했고.
동시에 강희제의 반응이 심상치 않다는 것을 파악한 병부 상서는 즉각 부복하며 잘못을 청했다.
“죽여주시옵소서. 황상 폐하.”
“하아...”
강희제는 마음에도 없는 소리를 지껄이는 병부 상서를 보고 답답함에 한숨을 내쉬자 다른 대신들도 일제히 부복하며 잘못을 청했다.
““죽여주시옵소서. 황상 폐하.””
이런 대신들의 반응에 강희제는 짜증이 가득한 어조로 외쳤다.
“마음에도 없는 소리 집어치워라! 대체 무엇 때문에 강서성이 반란군에 넘어갔다는 소린가! 그동안은 잘 버티지 않았나!”
몽골 지역의 문제를 처리하기 전까지는 꽤 불안했던 것이 사실이다.
허나 몽골 지역의 문제를 처리한 후에는 상황이 달라졌다.
물론 할하부 우익이 준가르와 함께 움직였기에 만약을 대비할 필요가 있었고, 그 때문에 일부 병력이 몽골에 묶여버렸지만, 남은 병력이 남쪽으로 이동하면서 동녕국의 북진으로 인해 흔들리던 절강성과 동녕국과 주나라 사이에서 어떻게든 버티던 강서성의 숨통이 트인 것이다.
헌데 이렇게 숨통이 트인 지 얼마나 되었다고, 강서성에 배치된 병력이 반란군을 상대하지 못하고 얻어맞다 결국 북쪽의 안휘성으로 퇴각했다 하니 강희제가 목소리를 높일 수밖에 없었고.
이에 병부 상서는 슬쩍 강희제의 눈치를 보다 강희제의 분노를 가라앉히기 위해 곧바로 현지 사정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그것이...작년부터 반란군의 병사 가운데 화약 무기로 무장한 병사들의 비율이 점차 늘어나면서 조금씩 밀리고 있었사옵니다. 여기에 최근 반란군들이 작열탄을 입수해 화포로 발사하기 시작하면서 결국...”
“잠깐. 작열탄? 설마 북미왕국이 반란군들에게 화약 무기를 판매한 것인가?!”
한참 분노하던 강희제는 병부 상서가 작열탄을 입에 올리자 순간 움찔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작열탄은 북미왕국의 대표적인 무기였고, 북미왕국이 반란군들과 꽤 우호적으로 지내고 있던 탓에 반란군들이 작열탄을 사용한다는 소리에 북미왕국이 반란군들을 뒤에서 지원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었으니까.
더구나 강희제는 북미왕국의 무기가 얼마나 대단한지를 뼈저리게 경험했었으니 반란군들이 북미왕국의 무기를 사용한다는 사실에 기겁할 수밖에 없었고.
이에 병부 상서가 바로 입을 열었다.
“고정하시옵소서. 황상 폐하. 강서성에서 올라온 장계에 따르면 반란군이 사용하는 작열탄은 조선군이 사용했던 북미왕국의 작열탄과는 비교하기도 어려울 정도로 조악하다고 했사옵니다. 그러니 반란군들이 사용하는 작열탄은 북미왕국에서 만든 작열탄이 아닌, 유럽에서 만든 작열탄을 수입해 사용하는 것이 아닌가 싶사옵니다.”
반란군이 작열탄을 사용한다는 사실에 기겁하던 강희제는 병부 상서의 보고에 최근 유럽에서 북미왕국의 작열탄을 모방해 작열탄을 만들어 사용하고 있다는 서양인 신부들의 보고를 떠올리고 중얼거렸다.
“유럽에서 만든 작열탄이라...”
그러면서 강희제는 무언가가 걸려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곧 인상을 찌푸렸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유럽에서 만든 작열탄이 위력은 떨어진다고 한들 최신 무기나 다름없는데 이런 최신 무기를 반란군이 입수했다는 것은 유럽의 나라들이 반란군과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었던 것이다.
특히 서양인 신부들에게 듣기로 유럽은 한창 전쟁 중이라 하지 않았던가.
해서 강희제가 예부 상서를 보고 물었다.
“설마 반란군들이 유럽의 나라와 무언가 관계를 맺은 것은 아니겠지?”
이에 예부 상서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고개를 저었다.
“그렇기야 하겠나이까. 그저 재물을 밝히는 유럽 상인들이 화약 무기를 판 것일 뿐일 것이옵니다. 황상 폐하.”
“으음...”
강희제로서는 유럽의 상인들이 사사로이 작열탄 같은 무기를 구할 수 있나 싶긴 했지만, 이들은 워낙 재물을 밝히는 만큼, 또 모르는 일이라는 생각에 일단 예부 상서의 말에 수긍하면서도, 서양인 신부들을 이용해 이를 막거나, 혹은 반란군에 판매하는 작열탄을 구해봐야겠다고 생각하며 일단 눈앞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병부 상서를 보고 질문을 던졌다.
“그보다 강서성이 넘어갔으면 광동성과의 연락은 두절되었겠군?”
“...그렇사옵니다. 황상 폐하.”
강서성의 좌우에 있는 호남성과 복건성은 이미 반란군이 장악한 상황에서 강서성마저 반란군의 손에 넘어간 이상, 강서성 남쪽에 있는 광동성과의 연락은 끊길 수밖에 없었다.
애당초 대만 섬에 틀어박혀 있던 명의 잔당들이 복건성을 점령하면서 바닷길은 이미 끊긴 상태였기에.
해서 병부 상서가 면목이 없다는 얼굴로 고개를 숙이며 대답하자 강희제는 답답하다는 얼굴로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 그럼 광동성도 넘어갔다고 봐야 하겠군.”
광동성 북쪽의 강서성을 제외한 인접 지역들이 모두 반란군의 손에 넘어가면서, 그리고 계속된 전쟁으로 광동성이 피폐해지면서 걸핏하면 반란이 일어났었던 것을 생각하면, 반란군들로 둘러싸인 광동성이 계속해서 버틸 수 있으리라고는 생각하지 않는 강희제였고, 그런 강희제의 이야기에 다른 대신들도 동의하는지 그저 침묵할 뿐이었다.
이에 강희제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일단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병부 상서에게 질문을 던졌다.
“그보다 강서성을 차지한 건 오삼계인가?”
“그게...대만의 반란군들이 차지했사옵니다.”
병부 상서의 조심스러운 대답에 강희제는 의아하다는 얼굴로 병부 상서를 바라보았다.
“음? 그게 무슨 소린가. 명의 잔당들이 강서성을 차지했다고? 그들은 한창 절강성을 차지하기 위해 북진하고 있지 않았나?”
“그것이...강서성에 주둔한 대청의 병사들을 격파한 것은 분명 오삼계 휘하의 반란군이 맞사옵니다. 허나 그후 오삼계 휘하의 반란군은 강서성을 장악하기보다는 북쪽의 안휘성으로 퇴각하는 대청의 병사들을 추격하느라 북진했고, 그렇게 비어버린 강서성을 대만의 반란군들이 차지했다 하옵니다.”
병부 상서의 대답에 강희제는 표정을 잔뜩 찌푸리며 말했다.
“그럼 두 반란군이 손을 잡았다는 거군. 그것도 오삼계 휘하의 반란군이 강서성을 점령한 것이나 마찬가진데 그걸 그냥 명나라 잔당들에게 내어줄 정도로 서로가 돈독한 관계라는 거고.”
“...그렇게 추측되옵니다. 황상 폐하.”
청나라의 입장에선 반란군에 불과한 두 세력이 서로 반목하면 좋으련만, 미리 약속이라도 한 건지 피를 흘려가며 점령한 지역조차 곧바로 넘겨주는 상황에 강희제는 혀를 차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입을 열었다.
“두 반란군 사이를 이간질할 수는 없겠나?”
병부 상서는 움찔했지만, 이미 강서성을 잃은 상황에서 뭐라도 해야 했기에 속으로 한숨을 내쉬며 대답했다.
“...성심을 다해 황명을 수행하겠나이다. 황상 폐하.”
그런 병부 상서의 대답이 만족스러웠던 강희제는 고개를 끄덕이며 다른 명령을 내렸다.
“그래. 그리고 만약을 대비해 강소성에 배치한 수군 함대를 남하시키게. 해서 명나라 잔당들의 배를 모조리 침몰시켜서 본토에 진출한 명나라 잔당들의 병사들을 고립시키라는 말일세.”
예전 조청전쟁이 발발하면서 북미왕국의 3함대에 의해 청나라의 수군 함대가 막대한 피해를 보긴 했다.
다만 청나라 수군 함대의 규모는 꽤 큰 편이라 남은 수군 함대만 하더라도 명나라 잔당들의 수군 함대보다는 규모가 조금 큰 편이었고, 그런 만큼 청나라의 수군 함대를 모두 남하시켜 대만 섬과 복건성 사이의 뱃길을 차단할 수 있다고 생각한 강희제였다.
그리고 대만 섬과 복건성 사이의 바다를 완전히 장악하면, 복건성과 강서성은 대만 섬과의 연결이 끊길 테니 자연스레 세력이 위축될 수밖에 없을 테고.
해서 강희제가 예비대로 빼둔 강소성의 수군 함대를 남하시킬 마음을 먹자 병부 상서를 비롯해 다른 대신들이 기겁하며 간언했다.
“황...황상 폐하! 그건 너무 위험하옵니다! 통촉하여 주시옵소서!”
“그렇사옵니다. 황상 폐하. 대만의 반란군들은 물에 익숙한 터라 자칫 문제가 생길 수 있사옵니다. 통촉하여 주시옵소서.”
애당초 청나라 수군 함대의 규모가 조금 더 큰데도 불구하고 섣불리 대만 섬 정벌을 하지 못한 것은 다 대만 섬의 명나라 잔당들이 수전에 익숙하기 때문이었다.
헌데 이제 와서 예비용으로 빼둔 함대마저 투입해 명나라 잔당들의 수군을 모두 격파하자는 이야기에 청나라 대신들은 기겁하며 혹시 모를 패전을 염두에 둘 수밖에 없었고.
해서 대신들이 너도나도 강희제의 의견에 반대하자 강희제는 불만이 가득한 얼굴로 소리쳤다.
“위험? 문제? 우리 대청의 수군 함대는 정가의 수군에 비해 규모가 큰데 어찌 패배를 염두에 둔다는 말인가!”
그런 강희제의 반응에 병부 상서는 내심 긴장했지만, 그래도 든든히 바다를 지켜주는 수군 함대가 잘못되기라도 한다면, 조청 전쟁 당시 북미왕국 함대가 제멋대로 대청의 해안가 곳곳을 누비며 공격했던 것처럼 상대할 방법이 없었기에 어떻게든 막아야 한다는 생각에 어렵게 입을 열었다.
“황상 폐하. 오삼계 휘하의 반란군이 작열탄을 사용했으니, 대만의 반란군들도 작열탄을 사용할 가능성이 있사옵니다. 그리고 유럽의 작열탄이 비록 조악하지만, 제대로만 명중한다면 배 한 척 침몰시키는 것은 거뜬하옵니다. 그러니 대규모 수전을 치러봐야 우리 대청은 좋을 것이 하나 없사옵니다. 하오니 강소성에 배치한 수군 함대는 만약을 대비해 그대로 두어야 한다고 사료되옵니다.”
이에 다른 대신들도 하나둘 병부 상서의 편을 들어 강소성에 배치된 예비용 수군 함대는 그냥 내버려 둬야 한다고 주장하자 강희제는 어쩔 수 없다는 듯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 그렇다면 어쩔 수 없지. 일단 강소성에 배치된 수군 함대는 그대로 내비두어라. 다만 절강성에 배치된 수군 함대는 조금 적극적으로 활동했으면 싶구나”
대만 섬의 명나라 잔당들은 복건성을 차지한 후 그 북쪽에 위치한 절강성마저 차지하기 위해 복건성에 주둔해 있는 병사 일부와 더불어 대만 섬에서 머물던 수군 함대들을 절강성 쪽으로 움직였다.
덕분에 절강성에 배치된 청나라 수군은 이들과 팽팽히 맞섰고.
헌데 이런 대치 상태를 깨라는 강희제의 명령에 병부 상서는 잠시 고민했지만, 강희제의 명령에 따르는 것도 나쁘지는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강희제의 명령에 따라 기습적인 선제공격으로 무언가 이득을 챙긴다면 환영할만하고, 그렇지않더라도 만약을 대비해 강소성에 남겨둔 예비 수군 함대를 이용하면 명나라 잔당들의 배가 북진해 천진 안쪽에서 껄떡이는 꼴은 막을 수 있을 것 같았기에.
해서 병부 상서가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다.
“그리 하겠사옵니다. 황상 폐하.”
병부 상서의 대답에 만족한 강희제는 다시 입을 열었다.
“그리고 우리 대청의 병사들도 반란군들처럼 더 많은 화약 무기로 무장하고, 화포를 사용할 필요가 있네. 그러니 화약 수급에 최선을 다하고, 부족하면 타국에서 사들이도록 하게.”
이에 병부 상서가 비장한 얼굴로 다시 한번 부복하며 답했다.
“성심을 다하겠나이다. 황상 폐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