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67화
“전하.”
커피 향에 취해 있던 정성국은 뒤에서 문이 열리며 군사청장의 목소리가 들려오자 고개를 돌렸다.
“아. 군사청장. 무슨 일인가.”
그러면서 정성국이 군사청장에게 이리 오라는 듯 손짓하며 군사청장이 마실 커피를 내리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났을 때, 군사청장이 다가와 활짝 웃으며 입을 열었다.
“방금 막 보고가 올라왔는데...드디어 미시시피 탐사대가 내륙 탐사를 완전히 끝냈다고 합니다.”
이러한 군사청장의 보고에 정성국은 움직임을 멈추고 황급히 군사청장에게 시선을 돌리며 되물었다.
“뭐?! 완전히? 그게 정말인가?”
“그렇습니다. 전하.”
그동안 미시시피 탐사대는 미시시피 강의 여러 지류를 따라 내륙을 탐사하고 있었는데, 미시시피 강의 여러 지류들이 소위 대평원 지역이라 불리는 북미 대륙 내륙의 곳곳으로 흐르다 보니 그만큼 미시시피 탐사대가 탐사해야 할 영역은 넓었다.
거기에 미시시피 탐사대는 꼭 탐사선 안에서만 처박혀 있는 것이 아니라 탐사선을 거점으로 주변 지역을 탐사하는 터라 탐사 영역은 더욱 늘어났지만, 그만큼 탐사 속도는 느려질 수밖에 없었고.
헌데 이러한 탐사가 모두 끝났다고 하니 정성국은 감회가 새로울 수밖에 없어 중얼거렸다.
“허. 드디어 미시시피 강의 탐사가 끝나다니...”
그리고 군사청장은 그런 정성국의 반응에 맞장구쳤다.
“예. 미시시피 탐사대가 창설된 지 10년 만의 쾌거이지요.”
“아. 벌써 시간이 그렇게 흐른 건가? 휘유. 미시시피 강의 모든 지류를 탐사하는 데 10년이나 걸리다니...대단하긴 하군.”
처음 미시시피 탐사대를 창설한 이후로, 북미왕국에서는 미시시피 탐사대의 규모를 계속 키웠고, 현재는 탐사선 10척에 대원의 숫자만 해도 700명에 달할 정도였다.
헌데도 모든 지류를 탐사하는 데 10년이라는 세월이 흘렀기에 정성국이 미시시피 강과 대평원 지역의 광활함에 새삼 감탄하자 군사청장이 동의했다.
“예. 물론 새로운 지류의 탐사보다는 지류 주변의 지형과 지류를 탐사하다 접촉한 원주민 부족들과의 교류에 집중하긴 했지만...그렇더라도 모든 지류를 탐사하는 데 10년이나 걸릴 줄은 몰랐습니다. 특히 미시시피 탐사대는 꾸준히 확장해오지 않았습니까.”
“그러게 말이네. 아무리 미시시피 강에 수많은 지류가 있고, 이 지류들이 북미 내륙 곳곳으로 흐른다지만...”
정성국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다가 계속해서 감탄해봐야 뭐하겠느냐는 생각에 정신을 차리고 군사청장에게 물었다.
“그보다 미시시피 탐사대가 탐사한 영역을 표시한 지도를 가져왔나?”
이에 군사청장은 즉각 들고 온 보고서 안쪽에 접혀 있는 지도를 펼쳐 티테이블 위에 올리며 말했다.
“물론입니다. 이게 바로 미시시피 탐사대가 탐사한 영역을 그린 지도이지요.”
정성국은 티테이블에 펼쳐진 미시시피 강의 수많은 지류들과 그 주변의 지형이 그려진 지도를 확인하고 만족스러운 듯 고개를 끄덕였다.
최소한 대평원 지역은 전부 그려져 있었으니까.
“흐음...미시시피 강의 지류들을 탐사한 덕분에 자연스레 대평원은 대부분 탐사한 셈이로군.”
“그렇습니다. 전하. 그러니 이제 남은 지역은 이 북방의 거대한 대수림 지역과 로키 산맥 서쪽의 대분지 지역이지요.”
그러면서 군사청장은 북미 대륙이 그려진 지도에서 대평원 북쪽과 로키 산맥 서쪽에 아무것도 그려지지 않은 지역을 가리키자 정성국이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입을 열었다.
“으음...솔직히 이 북방의 거대한 대수림 지역은 탐사한다고 크게 의미가 있을 것 같지는 않은데...”
그러면서 정성국이 대평원 북쪽을 손으로 짚자 군사청장이 정성국의 의견에 동의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예.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수림이 무성해 탐사도 쉽지 않고, 기후 문제로 탐사 기간이 한정되어 있으니까요. 더불어 이 북방의 대수림 지역 인근에 사는 원주민 부족과 접촉한 미시시피 탐사대의 보고에 의하면 이 북방의 대수림 지역에서 사는 원주민들은 거의 없다고 하니...”
정성국이야 이 지역에 막대한 자원이 묻혀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긴 했다.
다만 북미 대륙은 곳곳에 각종 자원이 묻혀 있었고, 이 자원들이 워낙 많고 인구는 부족해 쉽게 채취할 수 있는 자원들조차 그냥 방치하고 있는 판에 굳이 고생해가며 저 대수림 지역의 자원들을 캘 이유는 없었고.
수백 년이 흐른 후 쉽게 캘 수 있는 자원들이 모두 고갈되면 모를까 말이다.
그리고 그때쯤 되면 과학 기술이 발전해 편하게 저 지역들을 탐사할 수 있을 테니 괜히 탐사대원들을 고생시킬 필요는 없겠다는 생각에 정성국은 마음속으로 결정을 내렸다.
“그렇다면 굳이 대수림 탐사에 집착할 필요는 없겠지. 그보다 탐사대에서 흰머리 산맥 동쪽의 대분지 지역을 탐사하고 있지 않았나?”
정성국이 기억하기로 전생에선 시에라네바다 산맥으로 불렸던 흰머리 산맥 동쪽의 대분지 지역을 예전에 탐사대가 진출해 주변 지역을 탐사한 것으로 기억하는데, 이 지역이 전혀 그려져 있지 않기에 정성국이 의외라는 듯 중얼거리자 군사청장이 웃으며 대꾸했다.
“아. 이건 미시시피 탐사대의 지도라서 안 그려져 있을 뿐이고, 탐사대의 지도에는 흰머리 산맥과 로키 산맥 사이의 대분지 지역이 일부 그려져 있긴 합니다.”
“그래?”
“예. 탐사대에서 새한성과 새남포 사이의 영역을 탐사하다 흰머리 산맥 동쪽의 대분지 지역과 연결된 계곡을 발견하고, 계곡 너머 인근에서 살고 있는 카모 족, 키두 족, 쿠파 족과 우호적인 관계를 맺은 이후 각 부족의 도움으로 대분지 지역 일부를 탐험했으니까요. 다만, 당장은 대분지 지역의 탐사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보니 투입된 인원이 적은 편이라 대분지 지역의 탐사는 지지부진한 편이고 그래서 공식 지도엔 대분지 지역이 그려져 있지 않습니다.”
매년 군사청에서는 탐사한 지형을 추가해 지도를 갱신하고 있었지만, 대분지 지역의 경우 초입에 해당하는 일부 지형만을 탐사했을 뿐이라, 아예 공식 지도엔 지형을 넣지 않았다는 군사청장의 설명에 정성국이 상황을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아. 그래서 로키 산맥 서쪽의 대분지 지역이 이렇게 비어 있는 거군.”
“예. 그리고 탐사대의 보고에 따르면 이 대분지 지역은 생각보다 황량하고 척박해 원주민들의 수도 적은 편이라 당장 이 지역을 탐사해봐야...”
군사청장이 말을 흐리자 정성국이 군사청장의 말을 받았다.
“개발하긴 어렵다는 거지?”
“그렇습니다. 더불어 내륙 지역이니만큼, 본격적으로 이 대분지 지역을 개발하려면 철도가 필수인데 당장은 철도를 부설할 상황도 아니고, 대분지 지역은 고원 지대라 철도를 부설하기도 쉽지 않을 것으로 예상되는 터라 굳이 탐사대를 증원하지 않았고요.”
군사청장의 말마따나 당장은 해안가 인근을 연결하는 철도를, 그 이후에는 내륙의 각 거점 도시를 연결하는 철도를 부설할 계획인데 이게 보통 큰일이 아니었다.
그렇기에 대분지 지역에 철도를 부설하는 것은 쭉 밀릴 수밖에 없었고, 철도가 연결되어 있지 않다면 내륙 지역의 개발은 쉽지 않았기에 정성국은 굳이 이 대분지 지역의 탐사에 한 발짝 물러난 군사청장의 결정을 이해했다.
다만 정성국은 이 대분지 지역이 고원 지대라는 것을 떠올리고 조금 아쉽다는 듯 중얼거렸다.
“흐음...고원 지대이고 원주민도 적다면 대규모로 가축을 방목하기엔 딱 좋은 지형이긴 한데...”
물론 대분지 지역 전체에 가축을 방목할 수야 없을 것이다.
저 지역엔 사막도 꽤 많으니까.
다만 전생의 아이다호 주, 유타 주, 네바다 주는 모두 가축을 방목해 키우기 적합한 터라 축산업이 발달해있다는 것과 점차 북미왕국의 생활 수준이 올라가면서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육류 소비량을 생각하면 이 대분지 지역을 본격적으로 개발해보는 것도 나쁘진 않겠다 싶었고.
‘물론 당장은 어렵겠지만 본격적으로 인구가 폭증할 1, 20년 후를 생각해보면...’
정성국이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때, 군사청장이 정성국의 혼잣말을 듣고 바로 질문을 던졌다.
“허면 탐사대를 추가로 증원해 대분지 지역을 본격적으로 탐사할까요?”
이에 정성국은 이 대분지 지역을 계속해서 방치할 것이 아니라면, 일단 지형의 탐사는 미리 해둘 필요가 있다는 생각에 고개를 끄덕였다.
“음...그래. 일단 탐사대를 일부 증원해 대분지 지역을 탐사는 해두게. 그리고 원주민들과 접촉해 감자를 비롯한 고원 지대에서 재배할 만한 여러 작물과 말, 소, 양 같은 가축을 넘겨서 원주민들이 안정적으로 먹고살 수 있도록 돕고.”
“아. 일단 원주민들의 수부터 늘리고 후에 북미왕국에 합류시킬 생각이십니까?”
“그러는 편이 나을 것 같네. 당장 이 지역을 개발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니까.”
정성국은 일단 원주민들과 접촉해 이들이 자립하고 부족의 규모를 키울 수 있도록 돕고, 늘어난 원주민들이 실질적으로 성인이 될 때쯤에 그동안 우호적으로 교류하던 원주민 부족을 북미왕국에 합류시킨 후 이들을 이용해 대분지 지역을 개발할 생각으로 군사청장의 질문에 고개를 끄덕이자 군사청장이 정성국의 대답에서 그의 속내를 파악하고 빙긋 웃으며 답했다.
“아. 무슨 뜻인지 알겠습니다. 허면 탐사대뿐만 아니라 외무청, 보건청의 협조를 얻어 일부 인원을 대분지 지역에 파견하도록 하겠습니다.”
이에 정성국은 그게 가능하겠느냐는 얼굴로 군사청장을 바라보았다.
“그러면야 좋겠지만...외무청은 몰라도 보건청의 의원들을 파견할 수 있긴 한가?”
의원들을 원주민 부족에 파견하면 이들이 원주민들의 병을 치료할 테고, 자연스레 원주민들은 북미왕국을 우호적으로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그러니 외무청에서는 아직 북미왕국에 합류하지 않은 부족들에도 의원들을 보내고 싶어했지만, 문제는 의원들이 터무니없이 부족하다는 점이다.
물론 북미왕국에서 최선을 다해 의원들을 육성하고 있었지만, 북미왕국의 인구도 계속해서 늘어나는 탓에 이 의원들만으로는 오히려 부족한 판국이라 언제나 의원 부족에 허덕이는 상황이었기에.
이런 정성국의 의문에 군사청장이 어깨를 으쓱했다.
“뭐...쉽진 않겠지만, 어쩌겠습니까. 다른 지역의 원주민들은 배를 이용해 대규모로 물자를 보내서 환심을 살 수 있지만, 대분지 지역은 철도는커녕 길도 썩 좋지 않아 대규모로 물자를 보내기도 어려운 만큼, 의원을 파견하는 것이 원주민들을 회유하는 데 최선일 테니 노력해 봐야겠지요. 아니면...군의관을 보내는 것도 하나의 방법일 테고요.”
군사청장의 말에 정성국은 조금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의원이 부족한데 군의관이라고 풍족할 리 없었으니.
하지만 군사청장의 말처럼 대분지 지역에는 의원을 파견해 저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것이 최선이었기에 정성국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 부분은 자네에게 일임하도록 하지.”
“알겠습니다. 전하.”
그 후 정성국은 군사청장과 커피를 마시며 대분지 지역의 탐사에 관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고, 군사청장이 커피를 다 마신 후 자리에서 일어나기 전에 정성국에게 질문을 던졌다.
“헌데 전하. 미시시피 탐사대는 어쩔까요?”
이미 미시시피 탐사대의 목적인 미시시피 강과 주변의 지형 탐사는 모두 끝났기에 미시시피 탐사대원들을 최근 신설한 아마존 탐사대로 보내는 것이 어떻겠냐는 말을 하는 군사청장을 보고 정성국은 잠시 고민하다 빙긋 웃으며 말했다.
“일단은...포상이 먼저겠지?”
“예? 아. 하하하. 그야 물론입니다. 그동안 미시시피 강의 지류들을 탐사하고, 또 배에서 내려 말을 타고 주변 지형을 살피느라 무척 고생한 것은 사실이니 대대적으로 포상과 휴가를 줄 생각입니다.”
군사청장의 대답에 정성국은 만족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그래. 공을 세웠으면 상을 주는 것이 먼저지. 그리고...그 친구들이 휴가에서 돌아오면 개인의 의사를 묻게. 미시시피 탐사대에 남아 지금처럼 아직 아국에 합류하지 않은 부족을 돌아다니거나 아니면 원하는 곳으로 자리를 옮기거나. 물론 해군 탐사대원들은 모험심이 강해서 태반은 아마존 탐사대로 이동할 것 같기는 한데...”
“아마 그럴 것 같긴 합니다만...그렇다고 아직 아국에 합류하지 않은 원주민들과의 교류도 무척 중요한 임무이니만큼, 모두 아마존 탐사대로 내빼지는 않게끔 설득해보겠습니다.”
“하하하. 그러도록 하게. 자네만 믿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