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66화
그렇게 조선 문제에 관한 이야기를 마무리 지은 정성국은 다시 조용한 곰을 보고 질문을 던졌다.
“아. 그러고 보니 조용한 곰. 프랑스와 반프랑스 동맹 간의 협상은 어떻게 진행되어가나? 아직도 제자리인가?”
외무청의 대회의실에서 프랑스와 반프랑스 동맹 간의 협상이 진행된 지도 벌써 한 달이 넘었다.
그리고 협상이 시작된 후 정성국은 이 협상에 꽤 관심을 가졌었지만, 협상에 참여한 대사들은 자국의 손해를 최소화하고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한 치의 양보도 없이 대치하고 있는 터라 협상에 별다른 진전이 없어 이내 신경을 껐었고.
해서 무언가 변동 사항이라도 있나 싶어 조용한 곰에게 이를 질문하자 조용한 곰이 웃음을 터트렸다.
“하하하. 아닙니다.”
“어? 아니라고? 그럼...”
“예. 이대로라면 협상이 완료되기까지 1년은 족히 걸리겠다면서 이전과는 달리 중재를 맡은 푸른 안개가 적극적으로 협상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빠르게 협상이 진행되어 종전한다면 프랑스나 반프랑스 동맹에 속한 나라들이나 전비를 줄일 수 있으니 나쁠 것은 없기에 못 이기는 척 푸른 안개의 중재에 따르고 있고요. 해서 아마도 다음 달쯤에는 모든 협상이 완료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습니다.”
그 말에 정성국이 반색했다.
이번 협상은 여러 나라가 관여하는 터라 협상을 끝내기까지 무척 오랜 시일이 걸릴 것으로 생각했었기에.
“오호. 역시 장인어른께 중재를 맡긴 것이 정답이었군.”
푸른 안개는 북미왕국 왕실의 일원이자 정성국의 장인이다 보니, 유럽의 대사들은 푸른 안개의 중재를 쉬이 무시할 수 없었고, 덕분에 빠르게 협상이 진행되고 있다는 사실에 정성국이 기뻐하며 이를 언급하자 조용한 곰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하하. 그렇지요.”
“그럼 전에 이야기했던 대로 협상이 진행되는 건가?”
푸른 안개의 중재대로 협상이 진행된다면, 이는 외무청에서 일전에 정성국에게 보고한 대로 협상이 진행된다는 뜻이었기에 이를 조용한 곰에게 묻자 조용한 곰은 자세한 설명을 시작했다.
“그렇습니다. 전하. 에스파냐는 배상금을 내는 대신 이미 점령된 에스파냐령 네덜란드의 일부를 반환받을 수 있을 것 같고, 네덜란드는 프랑스가 점령한 카리브 해의 섬들의 권리를 모두 포기하는 대신 이미 점령된 네덜란드 본토의 땅은 지킬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허. 에스파냐야 그렇다 치고, 네덜란드는 어떻게든 카리브 해의 섬들도 되찾고 싶어하지 않았나? 잉글랜드도 그걸 원했고?”
이번 전쟁이 시작되면서 프랑스는 유럽에서의 전투가 지지부진해지자 카리브 해에 배치된 프랑스 식민지 함대를 전폭적으로 지원했고, 덕분에 카리브 해의 프랑스 세력은 소앤틸리스 제도의 네덜란드 섬들을 차례차례 점령했다.
덕분에 네덜란드가 소유하고 있던 소앤틸리스 제도의 섬들은 모두 프랑스에 넘어가 버렸고, 프랑스가 소앤틸리스 제도에서 영향력을 급격히 넓히자 마찬가지로 소앤틸리스 제도에 일부 섬을 소유한 잉글랜드가 꽤 불편해할 수밖에 없었다.
해서 잉글랜드는 은근슬쩍 네덜란드의 편을 들면서 프랑스가 점령한 소앤틸리스 제도의 섬들을 반환하게끔 중재했고.
헌데 조용한 곰의 보고는 이전에 들었던 것과 달랐기에 정성국이 조금 놀라며 묻자 조용한 곰이 답했다.
“물론 그랬지요. 허나 프랑스는 이번에 점령한 몇몇 섬을 돌려주는 대신 막대한 배상금을 요구한 모양인데 네덜란드는 이번 전쟁으로 피해가 큰 편이라 이를 복구하려면 막대한 자금이 필요하다 보니 에스파냐처럼 큰 규모의 배상금을 감당할 수는 없는 모양입니다. 해서 네덜란드는 고민 끝에 결국 카리브 해의 섬들을 포기하는 방향으로 정한 모양입니다.”
그러면서 조용한 곰은 잉글랜드가 이번 네덜란드의 결정에 무척 안타까워했다는 이야기를 덧붙이자 정성국은 피식 웃으며 대꾸했다.
“정말 카리브 해에서 프랑스의 영향력을 줄이고 싶으면 잉글랜드가 네덜란드에 배상금을 지원해주면 되지 않나?”
“조금이라도 손해 보는 것은 싫다는 생각 아니겠습니까.”
조용한 곰의 말에 정성국은 혀를 차며 중얼거렸다.
“쯧. 그래도 일부 섬은 배상금을 내더라도 돌려받을 줄 알았는데...특히 트리니다드 섬은 조금 아깝지 않나?”
“당연히 아깝지요. 소앤틸리스 제도에서 가장 큰 섬이 바로 트리니다드 섬이니까요. 해서 네덜란드도 다른 섬들은 몰라도 트리니다드 섬은 어떻게든 지키려고 했고요.”
정성국은 조용한 곰의 대답에 상황을 파악하고 말했다.
“흠. 그럼 프랑스가 트리니다드 섬을 돌려줄 생각이 없는 건가?”
“그렇습니다. 전하께서도 아시다시피 프랑스는 사탕수수나 카카오, 담배 등 돈이 되는 신대륙의 상품 작물을 대량으로 재배할 땅을 원했고, 그 때문에 히스파니올라 섬이나 푸에르토리코 섬을 노렸습니다만 두 섬은 이미 아국의 영토가 되었잖습니까. 그렇다고 에스파냐가 쿠바 섬을 포기할 리도 없고요.”
카리브 해에서 큰 섬들은 모두 대앤틸리스 제도에 속해 있었는데, 자메이카 섬은 잉글랜드의 소유였고, 남은 3개의 섬은 원래 에스파냐의 소유였으나, 프랑스의 확장을 우려한 에스파냐가 히스파니올라 섬과 푸에르토리코 섬을 북미왕국에 판매해버렸고, 쿠바 섬은 멕시코 지역에서 출발한 배들이 본국으로 향할 때 들르는 중간 거점이었기에 에스파냐로선 프랑스에 쿠바 섬을 넘길 리 없었다.
그러니 프랑스는 차선으로 소앤틸리스 제도에서 가장 큰 섬인 트리니다드 섬에 매달릴 수밖에 없다는 것을 이해한 정성국이 중얼거렸다.
“으음. 그럼 프랑스는 그나마 큰 트리니다드 섬에 대규모 농장을 건설해 여러 상품 작물을 재배할 예정이라는 거군?”
“맞습니다. 프랑스 대사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일단은 트리니다드 섬을 집중적으로 개발하고, 후엔 주변의 섬들을 모두 개발할 생각인 모양입니다.”
“그게 가능한가? 인력은 어쩌고?”
이미 프랑스는 노예무역을 금지하기로 한 만큼, 이번에 프랑스가 새로이 점령한 섬들을 모두 개발할 수 있을까 회의적인 얼굴로 정성국이 묻자 조용한 곰은 뭐가 어렵겠냐며 대답했다.
“프랑스도 인구가 적은 편은 아니니까요. 프랑스에서 마음만 먹는다면 이번에 확보한 카리브 해의 섬들을 채우는 것이 문제겠습니까.”
그 말에 정성국은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프랑스는 약 2천만 명에 달하는 인구수를 자랑했기에 이주민들에게 적당한 혜택만 제공한다면 카리브 해의 조그마한 섬들을 채울 인력이야 충분히 구할 수 있을 테니.
그리고 조용한 곰의 말과 정성국의 반응에 옆에 있던 교육청장이 끼어들었다.
“이거 프랑스에서도 본격적으로 카리브 해의 섬들을 개발하기 시작한다면, 여러 상품 작물의 가격이 생각보다 내려가는 것 아닙니까?”
북미왕국의 대외 무역에서 꽤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 바로 설탕이었다.
해서 교육청장은 프랑스가 본격적으로 이번에 확보한 소앤틸리스 제도의 섬들을 개발하면서 이 설탕 수출량이 줄어들지는 않을까 우려하자 옆에 있던 관리청장이 상관없다는 얼굴로 답했다.
“뭐 생산량이 늘어날수록 가격이야 내려갈 수밖에 없지요. 다만 아국은 크게 타격을 받진 않을 겁니다.”
설탕 생산량이 고정된 상태에서 설탕 가격이 내려가면 타격이 크지만, 설탕 가격이 내려갈수록 설탕의 수요량은 증가할 테니 설탕 생산량을 늘릴 수 있다면야 북미왕국으로선 크게 손해를 보지는 않을 거라는 것과, 북미왕국은 사탕무를 이용해 설탕을 생산할 수 있게 되었으며 올해부터 본격적으로 북미 내륙 지역에 사탕무를 재배해 설탕 생산량을 훨씬 늘릴 거라는 관리청장의 설명에 다른 청장들은 다행이라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하하하. 농업 연구소의 연구원들 덕분에 한시름 놨군. 그보다 덴마크는?”
정성국의 질문에 조용한 곰이 어깨를 으쓱하며 대답했다.
“뭐 덴마크 대사야 어떻게든 스코네 지방에서 사수하려 노력하고는 있습니다만...결국 스코네 지방을 스웨덴에 돌려줄 수밖에 없다는 것을 덴마크 대사도 모르진 않습니다.”
“그렇겠지.”
“해서 덴마크 대사는 스코네 지방을 포기하는 대신 카리브 해의 조그마한 섬이라도 얻길 원하고 있고, 푸른 안개가 프랑스 대사와 협상해 프랑스가 확보한 카리브 해의 섬 중 하나를 덴마크에 넘길 예정입니다.”
조용한 곰의 대답에 정성국은 조금 회의적인 얼굴로 되물었다.
“음? 그걸 프랑스가 받아들일까?”
이에 조용한 곰이 씩 웃으며 대꾸했다.
“아니면 협상에서 덴마크의 편에 서서 스코네 지방 일부라도 보전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수도 있다고 이야기하니 프랑스 대사가 어쩌겠습니까.”
이러한 조용한 곰의 대답에 정성국과 청장들은 상황을 짐작하고 웃음을 터트렸다.
“하하하. 일종의 협박이로군.”
“그것도 협상의 묘미 아니겠습니까.”
“그래도 의외긴 의외군요. 엄밀히 따지면 프랑스는 승전국이고 덴마크는 패전국이잖습니까. 헌데 승전국이 패전국에 영토를 넘긴다니...”
법무청장의 지적에 조용한 곰이 입을 열었다.
“아국이 양 진영 간의 협상을 중재하고 있으니 프랑스도 아국의 노력에 대한 대가를 지급해야 하지 않습니까. 해서 프랑스는 아국에 카리브 해의 섬 하나를 넘길 생각인 것 같은데...어차피 아국은 자그마한 섬에 집착할 필요는 없지 않습니까?”
“아. 그럼 프랑스가 우리에게 중재의 대가로 넘길 섬을 그대로 덴마크에 넘기겠다는 건가?”
정성국의 질문에 조용한 곰이 수긍했다.
“그렇습니다. 전하. 현재 덴마크가 개발 중인 세인트토머스 섬으로 덴마크가 필요로 하는 작물을 모두 생산하긴 한계가 조금 있으니까요. 해서 덴마크는 카리브 해의 새로운 섬을 확보하고 싶어했지만, 이미 대부분의 섬은 다른 나라들이 깃발을 꽂아둔 상태였기에 방법이 없었고요.”
“그런 상황이라면야...크리스티안 5세도 최소한의 체면은 살릴 수 있겠군.”
“그렇지요. 물론 스코네 지방과 카리브 해의 자그마한 섬을 비교할 수야 없습니다만...”
프랑스가 어떤 섬을 넘길지는 모르겠지만, 조용한 곰의 말마따나 스코네 지방과 비교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이 섬을 잘만 활용하면 덴마크의 국왕인 크리스티안 5세는 정치적 압박을 어느 정도 해소할 수 있을 테니 덴마크 대사로서는 이것만으로도 감지덕지할 수밖에 없었고.
이를 이해한 정성국은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다른 질문을 던졌다.
“그보다 예상대로 협상이 진행되면 다른 나라들은 몰라도 에스파냐와 네덜란드에는 제대로 된 중재의 대가를 받아내야 하지 않나?”
덴마크는 몰라도 에스파냐나 네덜란드는 이번 중재로, 그리고 북미왕국이 은근슬쩍 에스파냐와 네덜란드의 편에 서서 협상을 진행하고 있었기에 잃었던 영토 일부분을 되돌려 받을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그 대가를 받아와야 하지 않겠느냐는 정성국의 물음에 조용한 곰이 자신만만한 미소와 함께 답했다.
“물론입니다. 이미 그 부분은 협상이 끝났습니다.”
“허어! 그래?”
벌써 그 부분에 대한 협상은 끝냈다는 조용한 곰의 이야기에 정성국이 감탄하자 조용한 곰이 빙긋 미소지으며 말했다.
“예. 일단 에스파냐에서는 페루 부왕령에 있는 구아노의 채굴권을 내어주기로 약속했습니다.”
그리고 조용한 곰의 말에 다른 청장들은 탄성을 질렀고, 옆에 있던 행정청장이 놀란 얼굴로 조용한 곰에게 급히 질문을 던졌다.
“구아노의 채굴권을요? 그게 정말입니까?”
북미왕국은 꾸준히 남미의 페루 부왕령에 있는 구아노들을 대량으로 수입하고 있었다.
그런 만큼 에스파냐는 구아노를 팔아 이득을 취하고 있었는데 북미왕국에 구아노의 채굴권을 넘겨 준다면 에스파냐는 이익이 줄어들 수밖에 없다.
이를 에스파냐에서도 잘 알 텐데 채굴권을 넘겨주었다는 이야기에 행정청장이 믿기지 않는다는 얼굴을 하자 조용한 곰이 어깨를 으쓱했다.
“그럼요. 아시다시피 구아노의 가격은 무척 싼 편이라 이를 아국에 수출해 얻는 이익은 그리 대단하진 않습니다. 그러니 넘겨줄 만하지요.”
“으음...”
다른 청장들이 조용한 곰의 말에 일리가 있어 고개를 끄덕이고 있을 때, 다시 조용한 곰이 말했다.
“그리고 네덜란드는 아국이 동남아시아와 인도 방면으로 진출하는 것을 적극적으로 돕기로 했습니다. 해서 먼저 동남아시아의 수마트라 섬, 자바 섬, 보르네오 섬에 거점 항구를 지을 수 있도록 현지의 원주민 세력을 설득하는데 네덜란드에서 돕기로 했으니 곧 이 지역에 외교관을 파견할 생각입니다.”
이에 정성국은 자신도 모르게 미소를 지었다.
생각해보면 저 섬들에는 모두 석유가 묻혀 있었으니까.
‘페르시아 만에 있는 석유도 중요하지만, 동남아시아에 있는 석유도 중요하긴 하지. 그러면...’
“좋은 생각일세. 다만 외교관을 동남아시아 지역으로 보낼 때 개발청의 관리도 함께 보내게.”
이에 개발청장이 한숨을 내쉬며 물었다.
“설마 바로 거점 항구를 건설하라는 뜻입니까?”
“그건 아니고...저 섬들에 석유가 있는지 탐사해보고 있다면 근처에 거점 항구를 짓자는 거지. 저 섬들에서 냄새나는 검은 물이 나온다는 이야기를 얼핏 들은 기억이 있거든.”
“허. 그렇습니까?”
개발청장이 눈을 빛내며 되묻자 정성국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기억하기로 수마트라 섬이나 보르네오 섬엔 꽤 많은 석유가 묻혀 있는 것으로 알고 있으니까.
“그래. 그러니 먼저 석유부터 찾아보게. 그리고 네덜란드의 도움을 받아 인근의 원주민 세력과 협상하면 되지 않겠나.”
“알겠습니다. 전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