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64화
5월이 되자 조선의 왕 이연은 세자인 이순과 함께 궁을 나섰다.
조선철도공사에서 진행하고 있던 철도 공사가 모두 끝났고,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기차를 이용할 수 있다는 보고가 올라오자 도저히 궁에 있을 수가 없었던 탓이다.
원래 이연은 철도 공사가 시작된 이후 공사 현장을 방문해보고 싶어했다.
이연도 철도가 조선의 발전에 얼마나 도움이 될지 잘 알고 있었으며, 철도를 깔면서 기차를 이용해 공사에 필요한 물자를 수송하고 있었으니, 공사 현장을 방문하면 사진으로만 보았던 기차를 직접 볼 수 있을 테니 말이다.
하지만 공사가 시작된 이후 곧 청나라와의 전쟁이 발발하자 이연은 공사 현장을 방문한다는 계획을 접을 수밖에 없었다.
물론 처음 청나라군의 침공을 격퇴한 이후 청나라군은 압록강 너머로 물러났고, 그 이후로는 별다른 전투 없지 대치만 지속하였지만, 나라가 전쟁 중인데 조선의 국왕인 이연이 함부로 궁을 비울 수야 없는 노릇이었으니까.
해서 전쟁이 끝나면 공사 현장을 방문하려는 계획을 세웠지만, 전쟁이 끝나자 전후 처리와 더불어 북미왕국으로부터 넘겨받게 된 만주 동부 지역, 소위 북방영토의 관리와 개발, 그리고 통치 문제로 인해 업무가 넘쳐나자 감히 궁을 빠져나갈 엄두를 내지 못했고.
그러는 사이 철도 공사는 순조롭게 진행되어 곧 철도 공사가 마무리될 것이라는 보고가 올라오자 이연은 고민하다 철도 공사가 마무리되면, 기차를 타고 온양에 있는 행궁으로 행차하고 싶다는 뜻을 밝혔다.
원래 이연은 피부병이 있어 온천이 있는 온양 행궁에 자주 행차했었으니까.
물론 북미왕국의 존재를 알게 되고, 북미왕국을 통해 위생과 청결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과 목욕탕의 존재를 파악한 후 궁 내에 북미왕국의 목욕탕을 건설하고 매일같이 목욕하면서 그동안 달고 살던 피부병을 비롯해 각종 자잘한 질병은 털어내며 건강을 챙긴 이연이었다.
그렇게 건강을 되찾은 이후에는 딱히 온천을 방문할 필요가 없어 멀리 떨어진 온양 행궁의 행차를 자제했었지만, 이번에 조선에 철도가 부설된 김에 기차를 타고 오랜만에 온양 행궁을 방문해 온천을 즐기며 피로를 풀고 싶었던 것이다.
해서 이연은 온양 행궁 행차를 밀어붙였고, 신하들도 오랜만에 온양 행궁을 방문해 온천을 통해 피로를 푸는 것도 나쁠 것 없다 여겼고, 이전과는 달리 기차를 이용했기에 행차하는 데 막대한 비용이 드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에 동의했고.
덕분에 이연은 철도 공사가 끝났다는 보고를 받자마자 궁궐을 나와 가까운 곳에 지어진 한양역으로 이동했고, 그곳에서 그토록 보고 싶었던 기차의 실물을 처음으로 볼 수 있었다.
그리고 이연은 기차의 실물을 보면서 거대한 쇳덩이의 존재감에 감탄할 수밖에 없었고.
“허. 이렇게 보니 참으로 놀랍구나. 이 거대한 것이 움직인다니...”
그런 이연의 감탄에 이연과 함께 한양역에 방문한 세자 이순이 흥분을 감추지 못하며 말했다.
“정말 그러하옵니다. 아바마마. 세계신문의 견문록을 보면 북미왕국에서 기차를 목격한 선비들이 항상 놀랍다는 이야기를 하는 이유를 알겠사옵니다.”
“그러게 말이다.”
그렇게 이연이 세자인 이순과 함께 기차를 보고 감탄하고 있을 때, 이연을 호종하는 금군별장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전하. 이 객차에 오르시옵소서.”
“아. 그리하지.”
이연은 금군별장의 말에 따라 기관차 근처에 있는 객차에 오르기 시작했고, 객차에 오르고 상선이 객차의 안쪽 문을 열며 객차 안의 모습이 보이자 이연은 생각보다 화려한 객차의 모습에 감탄사를 흘렸다.
“허. 이거 내부가 무척...화려하구나. 이걸 북미왕국에서 보내주었다고?”
곳곳에 화려한 장식의 북미왕국식 가구들이 즐비한 객차에 들어서며 이연이 중얼거리자 미리 대기하고 있던 상선이 허리를 굽히며 대답했다.
“그렇사옵니다. 전하. 이 객차는 북미왕국 왕실에서 사용하는 객차 중 하나로, 일반 객차의 경우 최대한 많은 이를 태울 수 있도록 의자가 배치된 탓에 전하께서 탑승하시기엔 불편할 거라면서 북미왕국 왕실에서 선물로 내어주었다고 들었습니다.”
조선과 북미왕국의 사정은 다르다.
북미왕국의 경우 워낙 땅덩이가 넓고 기본적으로는 장거리를 이동해야 했기에 일반 객차라도 어느 정도 공간을 확보했지만, 조선의 경우는 장거리 이동이라고 해봐야 부산에서 의주까지 이동하는 것이 전부인데 그래 봐야 하루면 충분했다.
그리고 기관차와 객차 모두 북미왕국에서 수입을 해와야 하는 터라 최대한 효율적으로 기차를 운영하길 원했고, 덕분에 조선의 객차에는 의자만 빼곡하게 채워버린 터라 이러한 객차를 조선의 국왕이 타긴 조금 그렇긴 했다.
물론 북미왕국과는 달리 조선의 국왕은 섣불리 궁을 비울 수야 없기에 기차를 이용할 일이 얼마나 있겠느냐마는, 이연도 그렇고, 세자인 이순도 기차에 무척 관심을 두고 있다는 사실은 북미왕국의 외무청에서도 잘 알고 있었기에, 외무청에서는 북미왕국 왕실의 이름으로 조선 왕실에 객차를 하나 선물하는 것이 낫지 않겠느냐고 건의했고 정성국은 이를 받아들였다.
해서 왕실 전용 기차를 제작했던 장인들이 나서서 객차 하나를 만들어 조선으로 보냈는데, 그 객차가 이것이라는 상선의 말에 이연이 만족스러운 얼굴로 중얼거렸다.
“허어. 참으로 고마운 일이로다. 헌데 그럼 조정 신료들은 일반 객차를 타는 것인가?”
그동안 조선에서 북미왕국으로 매년 사절단을 파견했지만, 아직 조정 신료 가운데는 기차를 타지 못한 이들도 있었고, 청나라의 전쟁부터 북방영토의 개척까지 그동안 자신뿐만 아니라 조정 신료들도 수많은 업무로 고생했던 터라 이연은 신료들의 피로도 풀 겸 함께 온양 행궁으로 행차하기로 했다.
다만 이들 신료 가운데는 나이가 많은 이들도 꽤 있었기에 이연이 이들이 불편할까 봐 상선에게 질문하자 상선은 이연이 무엇을 걱정하는지 눈치채고 답했다.
“그렇사옵니다. 허나 너무 걱정하지는 마시옵소서. 이곳 한양역에서 출발해 곧바로 천안역까지 멈추지 않고 이동하기로 했기에 천안역까지 도착하는 데 2시간이면 충분하고, 다른 노신분들도 크게 불편함을 겪지는 않으실 것이옵니다.”
“그런가.”
상선의 말에 이연이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을 때, 뒤늦게 객실에 올라 그 화려함에 감탄하던 이순이 상선에게 물었다.
“그런데...아까 듣자니 이 객차가 북미왕국 왕실이 사용하던 객차 중 하나라고 하지 않았나. 허면 북미왕국 왕실은 이 객차 말고 다른 객차도 사용하는 것인가?”
이에 상선은 이연과 이순이 기차에 무척 관심을 보인다는 것을 눈치채고 미리 기관사를 통해 정보를 입수하길 잘했다고 생각하며 곧바로 답했다.
“세자 저하께서도 아시다시피 북미왕국의 영토는 무척 광활하고, 그 때문에 기차가 빠르다 해도, 이동하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사옵니다. 그렇기에 북미왕국 왕실에서는 잠을 잘 수 있는 침실차라던가, 식사를 할 수 있는 식당차라던가, 기차 내에서 업무를 볼 수 있는 집무실이나 회의실이 존재하는 객차 등, 여러 객차가 있다 하옵니다.”
그 말에 이순은 머릿속에서 북미왕국의 지도를 떠올리고 이해가 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아. 하긴...기차를 타고 이동하는 데만 하더라도 며칠이 걸릴 테니...”
‘삐이이익!’
그때 앞쪽에서 시끄러운 소리가 들려오자 이순이 눈을 크게 뜨며 상선에게 급히 물었다.
“이 소리는 무엇인가.”
“기차가 곧 출발할 것을 알리는 소리이옵니다. 하오니 옥체의 안전을 위해 착석해주시옵소서.”
“그리하지. 세자도 그만 둘러보고 여기 앉거라.”
“알겠사옵니다. 아바마마.”
이연은 상선의 말에 따라 세자인 이순과 함께 객실 중앙에 있는 푹신한 의자에 앉았고.
‘덜컹.’
기차가 크게 흔들리는 소리와 함께 움직이는 느낌이 나자 이연과 이순은 급히 객차 옆에 있는 커다란 유리창을 바라보며, 멈춰있던 창문의 풍경이 변화하는 것을 보며 탄성을 질렀다.
“오오. 정말로 움직이는군.”
“참으로 신기하옵니다. 아바마마.”
“그러게 말이다.”
물론 기차의 존재나 증기기관의 존재를 이연이나 이순도 모르지는 않았다.
특히 이연은 이순에게 유학뿐만 아니라 북미왕국의 학문도 익힐 필요가 있다는 이유로 북미왕국의 교과서와 세계신문 등을 계속 읽게 했었으니.
다만 이 거대한 쇳덩이가 움직인다는 것은 신기했기에 이연이 미소짓고 있을 때, 이순이 창밖의 풍경을 보고 말했다.
“어? 저기를 보시옵소서. 아바마마.”
“음? 아...”
객차에는 커다란 유리창이 있어 바깥 풍경을 볼 수 있었는데, 기차의 좌우 풍경 모두 백성들이 철로를 따라 줄지어 서 있었고, 움직이는 기차를 보며 기뻐하며 손을 흔들고 있었기에 이연이 새삼 놀랍다는 듯 중얼거렸다.
“백성들이 참 많이도 모였구나. 저들은 종종 기차를 보았을 터인데.”
“그래도 여전히 신기한 구경거리가 아니겠사옵니까.”
그 말에 이연은 그건 그렇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조금은 걱정이 된다는 듯 중얼거렸다.
“헌데 저러다 위험하지는 않을까 싶은데...”
이연은 기차를 조금이나마 가까이서 구경하겠다고 덤비다 혹여 사고가 날까 우려하자 상선과 함께 객차에 오른 금군별장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걱정하지 마시옵소서. 전하. 이미 백성들도 선로 위가 무척 위험하다는 사실을 모르지 않을뿐더러, 만약을 대비해 훈련도감 병사들이 한양역에서 한강철교까지 배치되어 있으니 별다른 문제는 없을 것이옵니다.”
“한강철교 이남은 괜찮고?”
“아무래도 백성들이 많이 없으니 괜찮을 거라고 생각되옵니다.”
“그런가...”
금군별장의 말에 이연이 최근 들어 세계신문이 선로 위에 오르는 것이 무척 위험하다는 기사를 계속해서 싣고 있다는 것을 떠올리고 고개를 끄덕였을 때, 처음으로 보는 궁궐 바깥의 풍경에 시선을 고정하고 바깥 풍경을 구경하던 이순이 목소리를 높였다.
“오오! 아바마마! 저길 보시옵소서! 한강이옵니다!”
“허어. 진정하거라.”
이연이 잔뜩 흥분한 세자에게 진정하라고 이야기하자 세자인 이순도 자신이 너무 흥분했음을 인정하고 애써 호흡을 가다듬고 있을 때, 무척 시끄러운 소리와 기차가 한강을 가로지르는 한강철교를 지나자 이순은 다시 흥분해버렸다.
“허억! 아바마마! 기차를 타고 강을 건너고 있사옵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이연도 꽤 놀랐기에 그런 이순의 모습을 타박하지는 않고 도도히 흐르는 한강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허...마치 물 위를 달리는 것과 같으니 참으로 신기하구나. 더불어 이 무거운 기차가 달릴 수 있는 한강철교를 건설한 북미왕국의 건축 기술도 놀랍고.”
그 사이 기차는 한강철교를 지나 남쪽으로 내달리기 시작했고, 그때쯤 흥분을 조금 가라앉힌 이순이 말했다.
“그러게 말이옵니다. 아바마마. 거기에 한강철교의 길이도 무척 길지 않사옵니까. 해서 기껏해야 배다리를 놓는 것이 전부였는데 이리도 튼튼한 다리를 건설하다니...북미신문에 나온 초고층 건물을 보고 짐작은 했었습니다만 정말 북미왕국의 건축 기술은 세계에서 최고인 듯하옵니다.”
“그렇지. 그러니 이러한 북미왕국의 건축 기술을 아국의 장인들도 배울 수 있으면 좋으련만...”
이연의 말에 이순이 눈을 빛내며 입을 열었다.
“아바마마. 소자가 듣기로는 북미왕국은 대학교에서 인재들을 기른다고 알고 있사옵니다. 그러니 북미왕국의 대학교에 유학생을 보내면 되지 않겠사옵니까. 그리고 아국과 북미왕국과의 관계를 생각하면 그 정도는 북미왕국에서도 허락하지 않을까 싶사옵니다만...”
그러면서 이순은 이미 어의들을 북미왕국의 유학생으로 보내고 있다는 사실을 넌지시 상기시키자 이연은 세자인 이순이 유학생을 보낼 생각을 했다는 것 자체에 만족하며 대답했다.
“그게 생각보다 쉽지 않단다. 북미왕국은 한창 영토 곳곳을 개발하기 위해 전력을 다하고 있고, 그만큼 많은 인재가 필요하지. 그러니...”
“대학교의 자리가 부족하다는 뜻이옵니까?”
“그렇다더구나. 그 때문에 북미왕국에서 계속 대학교를 건설하고는 있지만...당분간은 자국의 인재를 키우는 데 집중해야 하는 터라 의과 대학을 제외하면 유학생을 받아들이기는 어렵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이연의 설명에 이순은 신음을 흘렸다.
그가 알기로 북미왕국은 대학교를 계속 늘리고 있다고 했는데 그런데도 인재가 부족해 유학생 몇 명도 받기 어려울 정도라니.
새삼 북미왕국의 발전 속도가 빠르다는 것에 놀라면서도 이대로는 조선이 북미왕국을 따라가기는커녕 북미왕국에 뒤처질 거라는 조바심이 들어 이연을 보고 말했다.
“허면 조선에서도 대학교를 세우는 것이 어떻겠사옵니까.”
이에 이연은 고개를 저었다.
“우리가 무슨 수로 대학교를 세우겠느냐. 대학교를 세우려면 학생들을 가르칠 선생이 필요한데.”
“그야 북미왕국에 부탁해 건축 기술자 2, 3명 정도만 지원받으면 되지 않겠사옵니까.”
“음? 2, 3명?”
“북미왕국의 대학교처럼 여러 학문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건축 기술 한 분야만 가르치는 거라면 북미왕국에서 사람 몇 명만 파견하면 그만이니 그리 어려울 것은 없어 보이옵니다. 그리고 그렇게 북미왕국의 건축 기술을 익히면 우리 조선이 새로운 철도도 부설할 수 있을 테고, 새로운 철교도 건설할 수 있지 않겠사옵니까.”
이순은 기차를 직접 타고 나니 기차의 가치를 확실히 깨달을 수 있었고 조선의 발전을 위해 더 많은 노선을 깔아야 한다는 것도 깨달을 수 있었다.
문제는 새로운 철도를 부설하려면 북미왕국의 도움이 필수적인데, 북미왕국은 자국의 개발을 우선시하니 자연히 조선은 뒤로 밀릴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해서 자체적으로 이러한 인재를 키워야 한다는 이순의 주장에 이연은 신음을 흘리며 바깥 풍경을 바라보다 입을 열었다.
“하긴...그 드넓은 북미왕국 영토를 모두 개발하려면 수십 년도 부족할 텐데 그때까지 기다릴 수야 없겠지. 네 뜻대로 북미왕국에 요청해보도록 하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