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61화
그렇게 시마즈 가문과의 거래 문제를 일단락한 정성국은 다시 커피잔을 들어 커피를 마시기 시작했을 때, 행정청장이 정성국에게 말을 걸었다.
“아. 그리고 전하.”
“음?”
“개발청에서 일부 부서를 독립시켰다는 소식을 듣고 생각한 건데 저희도 일부 부서를 독립시켰으면 합니다만...”
행정청장의 말에 정성국은 고개를 갸웃했다.
“음? 행정청에서 독립시킬 부서가 있나?”
“일단 소방 업무를 맡은 부서를 따로 독립시켜 별도의 조직을 만드는 것이 낫지 않을까 싶습니다.”
“소방 업무라...”
정성국은 행정청장의 말에 다시 커피잔을 내려놓고 생각에 잠겼다.
북미왕국의 인구는 영토에 비해 많은 편은 아니지만, 도시의 수는 꽤 많은 편이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영토가 워낙 넓어 기반 시설과 관리들을 전 영토에 촘촘하게 설치하고 파견할 수 없다 보니 수도나 전기, 통신망 등을 이용하려면 도시에서 살 수밖에 없고, 한 번 도시에서 살아본 이들은 더는 물도, 전기도, 전화도 사용하지 못하는 곳에선 무척 불편함을 느끼고 도시에서만 생활하려고 하니 어쩔 수 없는 일이랄까.
그리고 정부 입장에서도 주민들이 곳곳에 퍼져 있는 것보다야 도시에 모여 사는 게 관리하기 편하다 보니 이를 은근히 유도하기도 했고.
그런 덕분에 북미왕국엔 각 지역의 거점 도시뿐만 아니라 1만 명이 넘는 소규모 도시들도 무척 많았는데 그렇게 사람들이 도시로 몰려들어 도시의 인구밀도가 오르다 보니 여러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었고, 그중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이 바로 화재였다.
특히 몇 년 전에는 런던에서 대화재가 발생해 런던 상당수가 파괴되지 않았던가.
물론 북미왕국이야 땅이 넘쳐나다 보니 건물들을 건설할 때 다닥다닥 붙여 건설하기보단 충분히 거리를 두었기에 각 건물 사이의 도로가 방화선이 되어 불이 번지는 경우는 거의 없었지만, 또 모를 일이었다.
해서 정성국은 런던 대화재의 소식을 듣고 아차 하며 행정청장에게 이야기해 소방 업무를 담당하는 부서를 창설하게 했고.
이들은 각 도시에 배치된 경비대원들의 도움을 받아 최근 종종 발생하는 화재를 진압하고 있었다.
그리고 행정청장은 이들을 독립시키는 것이 어떻겠냐고 이야기하자 내가 답하기도 전에 다른 청장들이 한마디씩 했다.
“어? 그거 괜찮아 보입니다. 최근 도시 내에서 화재가 간혹 발생하고 있잖습니까.”
“예. 특히 겨울엔 더 빈번하지요. 지난겨울에도 3차례의 화재가 발생하지 않았습니까.”
“아. 그랬죠. 특히 마지막 화재의 경우 주민들이 어떻게든 화재를 진압하겠다고 덤볐다가 자칫하면 인명피해가 날뻔하지 않았습니까.”
“예. 하필이면 소규모 도시라...”
약 2달 전, 텍사스 지역의 카랑카와라는 소도시에서 원인 모를 화재가 발생해 공동 주택 1채가 전소되었다.
헌데 이 공동 주택에 막 불이 번지기 시작했을 때, 갑작스러운 화재로 공동 주택에서 탈출한 주민들과 주변에 사는 주민들이 이 불을 끄겠다고 겁 없이 달려들었고, 덕분에 인명피해가 발생할 뻔했다.
아마 뒤늦게 경비대가 도착해 공동 주택에서 유독 연기를 마셔가며 물을 뿌려대는 주민들을 강제로 철수시키지 않았다면, 분명 사달이 났을 것이 분명했고.
정성국은 이 보고를 받고 기겁하며 즉각 북미신문을 통해 백성들에게 소방 교육을 지시하고, 행정청 산하 소방 부서도 대폭 확충하라고 명령했었다.
그리고 청장들의 말에서 이를 떠올린 정성국이 입을 열었다.
“분명 그랬지. 해서 행정청 산하의 소방 부서를 대폭 확충하기로 했고. 헌데 아예 이들을 독립시키자라...”
“예. 당장은 각 거점 도시에만 소방 부서를 창설해 배치 중입니다만...지금도 수많은 소규모 도시들이 만들어지고 있고, 백성들은 편리함을 찾아 가까운 도시들로 몰려들고 있습니다. 그러니 화재의 위험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고, 자연히 이런 도시들에도 소방 부서를 창설해야 할 겁니다. 그러면 가뜩이나 비대한 행정청이 더욱 비대해질 테지요. 그러니 소방 부서는 따로 빼는 것이 나을 듯싶습니다.”
행정청장의 이야기에 고민하던 정성국은 그의 말처럼 소방 부서를 따로 빼는 것이 맞겠다 싶어 행정청장의 의견에 동의했다.
“흠...확실히 행정청장의 말이 맞는 것 같군. 그럼 그러도록 하지. 소방 부서를 독립시켜 소방국을 창설하도록 하게. 그리고 모든 도시에 소방국의 분소가 들어설 수 있도록 지원해주고.”
“그리 하겠습니다. 전하.”
행정청장은 산하 부서가 독립하면서 일거리가 줄어들 것을 기대하고 슬쩍 미소를 짓고 있을 때, 정성국이 옆에 있는 연구청장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연구청장.”
“말씀하시지요.”
“연구청에서는 소방국을 위한 장비 개발에 더욱 힘써주기 바라네.”
“아. 전하께서 말씀하신 그 소방차를 말씀하시는 겁니까?”
계속해서 화재가 발생하면서 이미 소방마차는 존재했다.
그리고 자동차가 개발되면서 이 소방마차를 소방차로 업그레이드하라고 지시했었고.
해서 연구청장이 정성국의 지시에 소방차를 거론하자 정성국은 고개를 저었다.
“소방차뿐만 아니라 방화복과 더불어 공기 호흡기도 만들어야 할 것 같네.”
이에 연구청장은 잠깐 생각에 잠겼다가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어...방화복이야 열에 강한 옷을 말씀하시는 것 같으니 이해를 하겠습니다만...공기 호흡기요?”
그게 대체 뭐냐는 얼굴을 하는 연구청장을 보고 정성국이 설명했다.
“자네도 알잖나. 불이 나면 연기가 발생한다는 것을. 그리고 그 연기를 들이마시면 위험하다는 것은 알지?”
이에 연구청장은 쓰게 웃었다.
유독 가스의 존재는 예전에 기관을 연구하면서 널리 알려졌으니까.
“아. 그거야 압니다만...전하께서는 그런 유독 기체가 존재하는 지역에서 숨을 쉴 수 있는 장비를 개발해보라는 말씀이십니까?”
연구청장은 정성국의 뜻을 파악하고 그런 장비를 만들 수 있는가 싶어 조금 난처한 얼굴로 되묻자 정성국이 말했다.
“그렇지. 너무 어렵게 생각하지 말게. 소방차에는 물통이 있고, 그 물통 안에 있는 물을 이용해 불을 끄지 않나.”
“그야 그렇습니다만...어?”
“그래. 자그마한 공기통을 만들고 그 공기통을 들고 다니면서 공기통 안에 있는 공기로 호흡한다면 유독 기체가 가득한 지역에서도 안전하겠지 않겠나?”
그 말에 연구청장이 신음을 흘리며 생각에 잠겼지만, 이론적으론 가능해 보였다.
물론 오랫동안 활동해야 한다는 것을 생각하면, 그리고 이 공기통을 직접 들고 다녀야 하는 만큼 효용성이 있나 싶었지만, 그거야 연구를 통해 개량해나가면 될 것 같았고.
“으음...확실히 그렇긴 하지요. 알겠습니다. 전하께서 말씀해주신 개념을 연구청 연구원들에게 전달해서 공기 호흡기를 연구해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래. 부탁하네.”
연구청장의 대답에 정성국이 만족하며 이야기를 마무리했을 때, 행정청장이 다시 끼어들었다.
“그리고 연금을 담당하는 부서도 독립시켰으면 합니다.”
“연금을 담당하는 부서까지?”
“그렇습니다. 점차 연금 대상자가 많아지면서 연금 부서의 인원이 엄청나게 늘어나고 있는 터라 이들도 따로 독립시키는 것이 나을 것 같습니다만...”
행정청장의 의견에 정성국이 잠시 고민하다 입을 열었다.
“흠...연금만 담당하는 부서가 행정청 산하 부서 가운데 가장 규모가 크다는 것은 알지만...이들을 독립시키면 업무에 지장이 있지 않을까?”
“지장은 없을 겁니다. 연금 대부분은 한번 지급하기 시작하면 계속 지급해야 하는 형태라 연금을 담당하는 부서에서 따로 해당 백성들의 자료를 확보하고 있으니 말입니다.”
그러면서 행정청장은 독립한다고 행정청과 연금 부서의 업무적인 교류마저 끊기는 것은 아니니 상관없다고 이야기하자 정성국인 고민 끝에 행정청장의 의견을 수락했다.
“좋네. 그럼 연금을 담당하는 부서도 따로 독립시키게. 이름은...연금 복지국으로 하지.”
행정청장은 거대한 연금 부서가 떨어져 나가는 만큼 기뻐 어쩔 줄을 모르며 즉각 고개를 끄덕였고.
“연금 복지국이라...알겠습니다. 전하.”
이를 보고 피식 웃은 정성국은 기왕 이렇게 된 김에 다른 부처도 독립시킬 생각으로 커피를 홀짝이고 있는 군사청장을 보고 말했다.
“그리고 군사청장.”
“말씀하시지요. 전하.”
“현재는 군사청에서 각 도시의 치안을 맡고 있지 않나.”
군사청장은 정성국의 말에 선선히 고개를 끄덕이다 흠칫하며 정성국을 바라보았다.
“그렇지요. 아?! 설마 경비대 전체를 독립시킬 생각이십니까?”
이에 정성국은 고개를 저었다.
경비대는 말이 경비대지 북미왕국 육군 대다수인데 이들을 독립시킬 수는 없었으니까.
다만 시간이 흐르며 경비대도 내부적으로는 두 부류로 나뉘었기에 정성국이 이를 거론했다.
“그럴 수야 없지. 다만 경비대도 내부적으론 두 부류로 나뉘지 않나. 도시 내부에 배치되어 치안을 유지하는 경비대와 도시 인근에 배치되어 만약을 대비하는 경비대로.”
정성국이 군사청을 창설한 지도 거의 20년이 흘렀고, 당시 뛰어난 전사가 되기를 희망하면서 군사청에 지원했던 이들 가운데 경비대에 속한 옛 전사들은 어느덧 중년이 되었다.
그렇기에 군사청에서는 이들을 따로 빼서 치안 업무를 맡겼고.
그렇게 경비대는 전쟁에 참여하는 부대와 치안을 유지하는 부대로 나뉘었는데, 정성국이 이를 거론하자 군사청장이 정성국의 뜻을 이해하고 입을 열었다.
“아. 전하께서는 치안을 유지하는 경비대만 따로 독립시키실 생각이시군요.”
“그렇지. 솔직히 치안은...군사청에서 맡는 것보단 행정청에서 맡는 것이 나아.”
이에 행정청장이 기겁하자 정성국은 피식 웃으며 빠르게 입을 열었다.
“다만 행정청이 워낙 규모가 큰 만큼, 치안을 유지하는 경비대를 행정청에 붙이기는 좀 그러니, 이들을...치안국으로 독립시키도록 하지.”
“치안국이라...알겠습니다. 그리하도록 하지요.”
군사청장이 정성국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자 정성국이 다시 질문을 던졌다.
“헌데 치안국을 독립시키면 군사청 소속 육군 병력이 얼마나 빠져나가는 거지?”
“음...1만 2천 명가량이 빠져나갈 겁니다.”
“어휴. 많네.”
군사청장의 대답에 정성국은 투덜거릴 수밖에 없었다.
북미왕국의 육군은 대략 7만 명 수준에서 유지하고 있었다.
북미왕국의 영토나 국력을 생각하면 꽤 적은 수였지만, 인구 중 상당수가 성인이 아니었을뿐더러, 한창 일을 하며 나라를 발전시켜야 할 젊은이들을 병사로 만드는 것은 정성국이 썩 내키지 않아 했다.
물론 당장 북미왕국을 위협하는 세력이 있다면야 어쩔 수 없지만, 이미 북미왕국은 북미 대륙 전체를 장악했고, 남미에도 북미왕국에 대항할 세력은 없다고 봐도 되었기에.
그 외의 나라야 강력한 해군으로 상륙 자체를 막으면 그만이었고.
해서 정성국은 1만 2천 명이나 달하는 경비대원들이 군사청에서 이탈한다는 이야기에 이들을 충원해야 하나 잠시 고민하다 군사청장에게 말했다.
“현 상황을 생각해보면, 굳이 추가로 경비대원들을 모집할 필요는 없을 것 같은데 어떻게 생각하나.”
“음...물론 아국의 위용이 널리 알려져 있는 터라 다른 나라들이 과연 아국을 공격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긴 합니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본토를 지키는 경비대의 수는 고작 3만 명에 불과합니다. 그건 너무 적지 않습니까.”
그 말에 나와 군사청장의 이야기를 커피를 홀짝이며 경청하던 법무청장이 슬쩍 끼어들었다.
“분명 적긴 한데...솔직히 그 어떤 나라가 북미왕국을 공격하겠습니까. 일단 다른 나라들이 아국을 공격하려면 무적이라 불리는 북미왕국 해군을 격파해야 하는데요. 그러니 육군 규모는 축소해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만...”
이런 법무청장의 의견에 일부 청장들이 고개를 끄덕이자, 오히려 조용한 곰이 나서서 이를 반대했다.
“그렇긴 합니다. 하지만 아국의 병력 규모를 적정 수준으로 유지할 필요는 있다고 생각합니다. 타국에 눈도 어느 정도는 의식해야 하니까요.”
“병력 규모가 너무 적으면 다른 나라들이 딴생각할 수 있다?”
“그렇습니다.”
조용한 곰의 의견에 연구청장이 고개를 갸웃했다.
“글쎄요. 저들도 회전 단총이나 기관총, 전차, 비행기 등의 존재를 뻔히 아는데 과연 그러겠습니까? 어차피 아국의 병력 규모는 크게 의미 없다고 생각합니다만...”
하지만 조용한 곰은 연구청장의 생각과는 다른지 고개를 저으며 반문했다.
“사츠마 번의 경우를 생각해보시지요. 저들은 아국의 무장 수준을 어느 정도 알면서도 수가 적으니 이를 피해 목적을 이룰 수 있을 거라 생각하고 유구국을 점령하기 위해 움직였지요. 같은 방식으로 생각하는 나라가 과연 없겠습니까.”
“으음...”
“물론 아국이 패할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만...적절한 군사력을 유지해 타국이 감히 공격하지 못하도록 막는 것이 낫지 않겠습니까.”
이에 일부 청장들이 조용한 곰의 의견에 공감하자 정성국은 잠시 고민하다 결론을 내렸다.
“조용한 곰의 말도 일리는 있네. 다만 아국의 병력 규모가 적다고 생각해 덤빌 개념 없는 작자들이라면 고작 1, 2만의 병력을 추가한다고 해서 생각을 바꿀 것 같지는 않아. 그러니 일단은 현 병력 규모를 유지하자고.”
어차피 군사청의 문제는 다른 청장들이 개입하기 어렵기도 했고, 정성국의 말도 일리는 있었기에 조용한 곰은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고, 군사청장은 정성국이 결론을 내리자 바로 대답했다.
“알겠습니다. 전하. 허면 치안국 창설 후 따로 병력을 충원하진 않겠습니다.”
“그래. 대신 기존 부대의 화력을 증가시키도록 하게.”
그 말에 군사청장이 눈을 빛냈다.
“화력이라면...화포와 함께 기관총도?”
“그렇네.”
정성국의 수락에 군사청장은 강력한 기관총으로 경비대를 무장시킬 수 있다는 생각에 살짝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알겠습니다. 뭐 당장이야 기관총 물량이 부족하지만...사정이 나아지면 바로 경비대에도 기관총을 배치하도록 하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