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조선을 탈출하라-660화 (660/850)

660화

에도에 있는 거대한 무가 저택의 정원.

뒤에서 들려오는 아들의 목소리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정원의 풍경을 감상하던 현 쇼군인 도쿠가와 츠나요시의 심복인 홋타 마사토시가 아들의 보고가 끝나자 입을 열었다.

“그래. 각 번에서 북미왕국으로 이주할 백성들을 히로사키 번으로 보냈다고?”

올 초 북미왕국과 협상한 대로 막부가 직접 이주민을 모집했다.

물론 말만 그렇고 실제로는 막부가 직접 이주민을 모집하기보다는 각 번의 규모에 따라 인원을 할당했고, 각 번에서는 그에 해당하는 인원을 북미왕국과 가까운 히로사키 번으로 보내는 방식이었다.

그리고 이 일을 맡은 이는 직접 북미왕국을 방문했었던 홋타 마사토라였고. 홋타 마사토라는 각 번에서 이주민들을 보내자 이들을 데려가라며 북미왕국에 통보하고 이를 아버지에게 보고한 것이고 말이다.

“그렇습니다. 아버님.”

그리고 홋타 마사토라의 대답에 홋타 마사토시는 세부 사항을 파악하기 위해 다시 질문을 던졌다.

“각 번에서 보낸 이주민의 수는 얼마나 되지?”

“1만 명이 조금 넘습니다.”

이에 홋타 마사토시는 무언가 마음에 들지 않는 듯 살짝 눈매를 좁히며 중얼거렸다.

“1만 명이라...생각보다 적은 것 같은데?”

막부로서는 북미왕국으로 이주하는 이주민이 많을수록 좋았다.

그만큼 각 번의 부가 줄어드는 셈이었으니까.

거기에 홋타 마사토라는 백성들을 북미왕국으로 이주하는 대신 북미왕국으로부터 받게 되는 지원금 중 일부를 번주들에게 나눠 번주들의 반발을 최소화하려 했지만, 홋타 마사토시의 생각은 달랐다.

괜히 번주들에게 지원금을 넘길 필요는 없다고 본 것이다.

북미왕국이 내어주는 지원금이 엄청나게 많은 것도 아니다 보니 이를 번주들에게까지 나눠주면 막부가 얻는 이득은 많지 않았기에.

더불어 대다수의 번주들은 불필요한 천민들을 보낼 것이 뻔한 터라 지원금을 내어주면 오히려 각 번들도 나름대로 이득이 될 것이 뻔했고.

해서 홋타 마사토시는 막부에서 지원금을 독식하자고 주장했고, 쇼군인 도쿠가와 츠나요시는 이를 받아들였다.

그런 만큼, 이주민들이 많으면 많을수록 좋은데 생각보다 수가 적어 못마땅하다는 얼굴을 하자 아들인 홋타 마사토라가 급히 입을 열었다.

“처음이니 그렇기도 하고, 1만 명이 올해 북미왕국으로 보낼 이주민 전부는 아닙니다. 계속해서 번주들의 협조를 얻어 이주민을 모집할 생각이니까요.”

“그래?”

“예. 해서 올가을이 되기 전에 말씀드린 대로 3만 명 정도를 보낼 생각입니다. 그 정도면 북미왕국도 만족할 테고, 북미왕국을 통해 얻는 지원금도 짭짤할 테지요.”

이에 홋타 마사토시는 조금 안색을 풀면서도 아쉽다는 듯 중얼거렸다.

“지원금이나 북미왕국과의 관계를 생각하면 더 많은 이주민을 모집해 보내는 것도 좋긴 한데...”

“그러면 각 번주들이 반발할 겁니다. 단 한 차례 모집하는 거라면 모를까 매년 이주민을 모집하는 터라 수가 늘어날수록 각 번들의 부담은 클 테니까요.”

홋타 마사토시는 더 많은 이주민을 모집해 북미왕국으로 넘겨도 된다고 생각했다.

에도 막부에는 대략 300개의 번이 존재했고, 그런 만큼 3만 명이라고 해봐야 각 번에서 보내야 하는 이주민은 100명, 대략 30가구 정도이니 여기서 더 보내도 각 번들이 받는 부담은 많지 않으리라 본 것이다.

하지만 홋타 마사토라의 생각은 달랐다.

물론 작은 번은 1, 20가구 정도, 큰 번은 3, 40가구 정도만 이주민으로 내어주면 돼서 큰 불만은 없지만, 여기서 이주민의 수를 늘리면, 분명 불만이 생길 것이다.

그리고 이 불만 가득한 시선을 감당해야 하는 것은 쇼군이 아닌 자신들이었고.

그러니 너무 다른 번들을 몰아붙일 필요는 없다는 것이 홋타 마사토라의 생각이었고, 이를 조곤조곤 아버지에게 이야기하자 홋타 마사토시는 어쩔 수 없다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쯧. 어쩔 수 없지. 아무튼, 이 일은 네가 도맡으면서 북미왕국과의 우호 관계를 개선하는 데 집중하거라.”

“그야 물론입니다.”

작년 겨울, 아마미 군도 인근 해역에서 벌어진 북미왕국의 원정 함대와 사츠마 번의 해전 결과는 막부도 접할 수 있었고, 예상대로 북미왕국의 신형 전선은 예전 아이누 독립 전쟁 당시 막부의 함대를 휘저었던 지급 전선보다 몇 배는 강력해졌다는 사실에 쇼군인 도쿠가와 츠나요시는 북미왕국과 더욱 친하게 지내야 한다고 판단했다.

그리고 홋타 마사토시 역시 쇼군과 같은 의견이었기에 이를 아들에게 다시 한번 당부하자, 홋타 마사토라는 당연하다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자 홋타 마사토시가 덧붙였다.

“그리고 당장은 어렵겠지만, 언젠간 우리도 조선처럼 매년 북미왕국에 사절단을 보내거나, 아니면 유럽 국가들처럼 북미왕국에 사절을 주재시킬 수 있도록 북미왕국을 설득해 보거라.”

막부는 북미왕국의 무기들과 각종 기술을 무척 탐낼 수밖에 없었다.

해서 북미왕국을 통해 신식 소총을 비롯한 각종 기술 서적들을 수입하려고 애를 썼고.

하지만 북미왕국은 신식 소총의 판매를 거절했고, 기술 서적 역시 마찬가지였다.

어차피 해외로 넘길 수 있는 수준의 기초 기술 서적들은 이미 새한성을 방문했던 홋타 마사토라가 확보해 가져간 것을 알고 있고, 그 이상의 서적은 반출 불가라는 사실을 알린 것이다.

그렇기에 막부는 조선처럼 계속해서 북미왕국에 대규모 사절단을 파견하고, 그 사절단에 학자와 기술자들을 대거 포함시켜 관찰을 통해 어떻게든 북미왕국의 기술을 습득하고자 했고.

이에 홋타 마사토라는 어두운 표정으로 대답했다.

“으음...솔직히 전자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저희야 사절단을 매년 보내면 좋겠지만, 북미왕국으로선 사절단이 도착할 때마다 신경 써야 할 테니 말입니다. 그래서 조선 사절단의 존재를 알고 유럽 각국도 조선처럼 대규모 사절단을 허용해달라고 요구했지만, 북미왕국에서는 조선은 특별한 관계라 허용했을 뿐이라며 단칼에 끊었다고 하니 말입니다.”

대규모 사절단을 보내고 싶은 것은 유럽도 마찬가지였다.

조선의 경우 대규모 사절단을 매년 보내오고 있었고, 이 사절단에는 학자, 장인, 예술가, 그리고 조선의 미래를 이끌 양반가의 자제들이 대거 포함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새한성의 각국 대사들은 자신들도 대규모 사절단을 보내길 원할 수밖에 없었다.

특히나 북미왕국은 아직 외국인들의 방문을 꽤 제한하고 있었기에.

하지만 북미왕국 측에서는 조선의 경우 워낙 특별한 경우라 허용한 것이지 다른 나라는 불가하다며 단칼에 거부했고, 이를 각국 대사들은 무척 아쉬워하며 그가 새한성을 방문했을 때도 이야기했었기에 홋타 마사토라가 부정적으로 대답하자 홋타 마사토시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중얼거렸다.

“으음...아쉬워. 조선처럼 매년 대규모 사절단을 파견해 우리 일본의 인재들에게 북미왕국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는데. 그럼 유럽 국가들처럼 사절을 새한성에 주재시키는 것은 가능하겠느냐?”

최선이 안된다면 차선이라도 원하는 홋타 마사토시의 반응에 홋타 마사토라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입을 열었다.

“...그 정도는 가능할 것 같습니다. 새한성에 대사관을 설립한 유럽 국가들의 예를 들며 같은 대우를 해달라고 요구하면 될 테니까요. 물론 투로시노는 아시아 문제의 경우 자신이 담당하는 터라 굳이 새한성에 사절을 보낼 필요는 없다고 이야기했습니다만...”

“그래도 새한성에 사절을 주재시켜 북미왕국의 정보를 수집할 필요가 있어. 그러니 이번에 이주민들을 포로나이로 보내면서 너도 함께 포로나이를 방문해 투로시노를 설득하거라.”

“알겠습니다. 아버님. 그리고 조선과도 더 우호적으로 지낼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아들인 홋타 마사토라가 조선을 언급하자 홋타 마사토시는 손으로 턱수염을 매만지며 생각에 잠겼다.

“조선이라...하긴. 북미왕국과 조선과의 관계는 보통이 아니고 북미왕국과 우호적으로 지내려면 조선과도 우호적으로 지내긴 해야겠구나.”

“그렇습니다. 더불어 조선의 경우 북미왕국에 대규모 사절단을 보내면서 북미왕국의 기술을 습득하고 있잖습니까. 그러니 저희는 차라리 조선에 공을 들이는 것이 나을 것 같습니다.”

아들의 말에 홋타 마사토시는 최근 조선에 파견한 첩자들이 보내온 보고서를 머릿속에서 떠올리며 속으로 생각했다.

‘그러고 보면 조선은 북미왕국과 교류하면서 개혁을 외치고 기술 발전에 매진하고 있다지? 자체적으로 증기기관을 개발하고 있고, 철도를 부설해 곧 기차가 조선 땅을 달릴 거라고도 했지. 그러니 북미왕국뿐만 아니라 조선과도 우호적으로 지내며 이런 기물들의 원리를 깨우칠 필요가 있긴 하겠군. 특히 조선에는 북미왕국의 서적들이 무척 많다고 하니...’

“흐음...네 말이 일리가 있구나. 알겠다. 쇼군 전하께 말씀드리도록 하마.”

* * *

정성국은 청장 회의에 참석해 청장들과 회의를 하다가 잠깐 휴식을 취할 겸 티타임을 가졌고.

청장들은 정성국이 직접 내린 커피를 마시며 황송한 얼굴과 함께 이런저런 잡담을 나누고 있었다.

그러다 행정청장이 문득 떠올랐다는 듯 기품있는 동작으로 커피를 즐기고 있는 정성국을 바라보며 말했다.

“아. 전하. 그러고 보니 이번에 포로나이에서 조선인들이 도착했습니다.”

정성국은 행정청장의 이야기에 잠시 고개를 갸웃하다 행정청장이 말한 조선인이 누군지를 깨닫고 환한 미소로 되물었다.

“음? 아. 사츠마 번에서 데려온 옛 조선인들의 후손들 말인가?”

“그렇습니다. 전하. 현재는 새김포에서 머물고 있고, 곧 적당한 곳에 정착시킬 생각입니다.”

“적당한 곳이라면...”

“최근에 북미왕국으로 이주하는 조선인들은 대부분 우래건 지역으로 보내긴 했습니다만...이들은 장인들이 대다수라 우래건 지역으로 보내기보다는 새김포와 새목포로 보내는 것이 나을 것 같더군요. 해서 일부는 새김포에, 일부는 새목포에 정착시킬 생각입니다.”

새김포와 새목포는 여러 공방이 즐비했고, 그렇기에 사츠마 번에서 데려온 조선인들도 이곳에서라면 쉬이 일자리를 구해 큰 어려움 없이 정착할 수 있을 테니 이 지역들에 정착시킬 생각이라는 행정창장의 이야기에 정성국은 만족한 듯 활짝 웃으며 말했다.

“그래. 그게 낫겠지. 그리고 우리는 그들에게 북미왕국으로 이주한다면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을 거라고 약속했네. 그러니 그들이 북미왕국에 정착해 잘 지낼 수 있도록 행정청에서 조금만 더 신경 써주게.”

“물론입니다. 전하.”

행정청장이 대답하자 옆에 있던 조용한 곰이 끼어들었다.

“아. 그리고 다른 번에 정착한 옛 조선인들의 후손들도 데려올 수 있을 듯합니다.”

“음? 그게 무슨 소린가?”

정성국이 눈을 빛내자 조용한 곰이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시마즈 가문에서 주변의 다른 번과 협상해 각 번에 정착해 있는 조선인들을 데려오고 있는 모양입니다.”

“설마 우리에게 보내려고?”

“그렇습니다. 정확히는 되팔기 위함이지요.”

조용한 곰이 되팔기라는 단어를 강조하자 정성국은 상황을 짐작하고 중얼거렸다.

“되팔기라...사츠마 번이 조선인들을 다시 우리에게 넘기는 대신 중간에서 차익을 챙기겠다는 거군?”

“그렇습니다. 사츠마 번의 수익이 급감했으니 이런 식으로나마 이익을 챙기겠다는 속셈인 것 같습니다.”

이에 정성국은 마치 노예 거래 같아 살짝 얼굴을 찌푸리기는 했지만, 이 시대에 백성은 번주의 재산일 뿐이라는 것을 떠올리고, 그리고 그렇게 해서라도 조선인들의 후손들을 데려와 이곳에서 더 나은 삶을 살게 해줄 수 있다면 나쁠 것 없다는 생각에 얼굴을 풀며 말했다.

“뭐 상관없겠지. 아니. 시마즈 가문이 그렇게 행동해주면 우리야 좋지.”

“그렇지요. 다만 시마즈 가문이 중간에 껴있고, 큐슈에 정착한 조선인들의 후예는 다들 장인들이다 보니 몸값이 생각보다 높다는 것이 조금 문제입니다.”

“몸값이 높다라...”

“이번에 막부에서 이주민을 모집해 아국으로 보내고 있고, 아국에선 이에 대한 대가를 지불하기로 하지 않았습니까. 헌데 조선인들을 데려오려면 이 대가에 10배가 넘는 금액을 내어주어야 하니...조금 비효율적이지요.”

북미왕국은 이주민들을 데려오며 그 대가를 내어주고 있었다.

그리고 이 대가의 가치는 대동소이했고.

즉 잉글랜드에서 보내는 아일랜드인이나, 에스파냐에서 보내는 멕시코 원주민들이나, 왜국에서 보내는 왜인들이나 거의 같은 대가를 내어주며 이주시키고 있다는 이야기였다.

헌데 왜국에 있는 조선인들을 데려오려면 10배나 많은 대가를 내어주어야 하니 조금은 비효율적인 것이 아니냐는 조용한 곰의 이야기에 조용한 곰은 상관없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상관없네. 어차피 돈은 많고 조선인들의 수도 많지 않아 크게 부담되지도 않잖나.”

“그렇기야 하지요.”

“그러니 아까워하지 말고 시마즈 가문에 대가를 약속하고 조선인들의 후예를 데리고 오도록 하게.”

“알겠습니다. 전하.”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