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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을 탈출하라-659화 (659/850)

659화

한창 집중하며 올라온 보고서를 빠르게 훑고 결재하던 정성국은 갑자기 조용한 곰이 방문하자 그의 얼굴을 살폈고.

환한 얼굴의 조용한 곰을 보고 나쁜 일은 아니다 싶어 기왕 조용한 곰이 방문해 집중이 깨진 김에 잠깐 휴식을 취할 겸 자리에서 일어나 굳은 몸을 풀고 티테이블로 향하며 조용한 곰에게 물었다.

“식후라 커피는 마셨을 것 같은데...다른 차를 줄까?”

“하하하. 전하께서 내려주시는 커피를 제가 마다한 적이 있습니까. 더 마시면 되는 것을요.”

이에 정성국은 피식 웃으며 커피를 내리기 시작했고, 그러면서 조용한 곰에게 용건을 물었다.

“헌데 갑자기 무슨 일인가.”

“파리에서 급한 연락이 와서 말입니다.”

“파리? 설마...”

조용한 곰이 프랑스의 수도인 파리를 언급하자 정성국은 눈을 빛내며 조용한 곰을 바라보았고, 조용한 곰은 환하게 웃으며 정성국이 짐작하는 내용이 맞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맞습니다. 전하. 잉글랜드의 중재를 프랑스가 받아들이겠답니다.”

엄밀히 이야기해 이번 프랑스와 반프랑스 동맹 사이의 중재는 잉글랜드뿐만 아니라 북미왕국도 관여하고 있었다.

하지만 북미왕국은 그동안 유럽 문제에 깊이 관여하는 것을 꺼려왔고, 그 때문에 북미왕국은 직접 나서 프랑스와 대화하기보다는 잉글랜드의 뒤에서 잉글랜드에 힘을 실어주는 터라 조용한 곰은 북미왕국의 중재가 아닌 잉글랜드의 중재라고 표현했고.

그리고 이를 듣고 정성국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휴. 다행이군.”

“그러게 말입니다.”

물론 잉글랜드의 뒤에 북미왕국이 있었고, 예전에 북미왕국을 만만히 봤다가 대차게 깨진 이후로 프랑스는 북미왕국을 은근히 두려워하긴 했지만, 유럽에서의 대프랑스 전쟁에서 프랑스를 둘러싼 여러 나라의 합공에도 밀리지 않고 점차 승기를 얻자 이전처럼 특유의 자신감을 되찾은 프랑스였기에 자신들의 제의를 거절할 수도 있다고 보았다.

헌데 프랑스가 이렇게 나오면 프랑스가 유럽을 장악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라도 결국 반프랑스 동맹에 각종 군수품을 지원해야 했는데, 가뜩이나 유럽에 많은 양의 신식 소총이 넘어간 상태에서 더 많은 신식 소총을 판매해야 한다는 사실이 썩 내키지 않는 정성국이었다.

특히나 유럽 국가들은 유럽에서의 전쟁으로 큰 손해를 보았으니 이를 만회하기 위해 다른 지역으로의 진출, 정확히는 식민지 확장에 열을 올릴 것이 뻔해 보였는데 지금이야 신식 소총의 수가 많지 않기에 유럽 국가들은 신식 소총으로 무장한 병력을 싸고돌지만, 신식 소총이 많이 풀린다면 결국 식민지를 정복하려는 병사들의 손에도 신식 소총이 쥐어질 텐데 그렇게 되면 아프리카나 인도, 동남아의 세력들은 유럽 세력을 결코 버티지 못할 테니 말이다.

해서 정성국은 안도하며 말했다.

“그래도 생각보단 빠르게 결정했군. 현 유럽의 정세가 워낙 프랑스에 유리하게 돌아가는 터라 어떻게든 버티며 시간을 끌지 않을까 했는데 말이지.”

북미왕국이야 국왕인 정성국부터 일을 질질 끄는 것을 싫어했고, 덕분에 북미왕국의 관리들도 빠르게 일을 처리하는 경향이 있지만, 유럽은 사정이 달랐다.

그렇기에 외무청에서는 프랑스가 앞에서는 협상을 논의하면서도 뒤에서는 네덜란드 지역을 완전히 점령하기 위해 병력을 움직일 수 있다고 보았고, 이는 잉글랜드에서도 비슷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그 때문에 잉글랜드는 협상 중에 네덜란드 지역이 완전히 점령되는 것을 막고자 대륙 파병군마저 지원하고 있었으니.

해서 정성국이 이를 떠올리고 말하자 조용한 곰이 흐뭇한 얼굴로 웃으며 답했다.

“프랑스는 예전에 아국을 만만히 보았다가 호되게 당한 이후로 아국을 내심 두려워할뿐더러, 아국이 프랑스의 목줄을 단단히 잡고 있지 않습니까. 그러니 중재를 제의하는 잉글랜드 대사 옆에 아국의 대사가 함께하니 이 제의를 거절할 수 없었겠지요.”

조용한 곰이 목줄을 언급하자 정성국은 묘한 표정을 지었다.

“목줄이라...신식 소총 말이지?”

“그렇습니다. 전하. 이미 프랑스에 4만 자루의 신식 소총을 판매했고, 이 신식 소총은 그대로 전투를 치르는 병사들의 손에 쥐어졌습니다. 덕분에 프랑스는 4만 명의 강력한 정예병을 얻게 되었습니다만...아국이 마음만 먹는다면, 이 정예병을 무력화시킬 수 있잖습니까. 물론 시간은 조금 걸리겠습니다만.”

정성국이 다른 나라들에 신식 소총을 판매하는 것은 다 신식 소총을 원하는 나라에 목줄을 채우기 위해서였다.

신식 소총의 성능은 머스킷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였고, 그런 만큼 각국은 정예병들에게 신식 소총을 쥐여줬는데 북미왕국과의 마찰로 교역이 끊기면 총알을 수입할 방법이 없었고, 그렇게 되면 정예병들은 무장해제되어 버리니 말이다.

당연히 이를 다른 나라들도 모르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신식 소총을 버리기엔 신식 소총의 성능이 너무 대단했고, 여기에 유럽에서 전쟁이 벌어지면서 생존마저 걸렸으니 신식 소총을 마다할 수는 없었고, 그만큼 유럽은 북미왕국의 눈치를 봐야만 했다.

이건 현재 유럽에서 가장 강력한 나라인 프랑스도 예외는 아니었고.

해서 정성국은 자신의 의도대로 프랑스도 신식 소총 때문에 북미왕국에 반발할 수 없다는 사실에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물론 이러한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지금도 유럽 각국은 북미왕국의 기술을 따라잡기 위해 애를 쓰고 있고, 각 대사관이나 정보기관을 통해 수집한 정보에 따르면 확실히 전생과 비교하면 과학 기술의 발전은 빠른 편이라 언젠가는 유럽 각국도 자체적으로 후장식 소총이나 총알을 생산할 수는 있겠지만, 아마 그때쯤 되면 북미왕국은 지금보다 그 격차를 더욱 벌릴 테니 유럽 각국은 계속해서 북미왕국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을 것이 분명했고.

해서 정성국은 자신감 넘치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확실히 그렇긴 하지. 다만 계약은 계약이니 굳이 총알 판매를 막을 생각은 없는데 말이지.”

원래 칼은 뽑기 전이 더 무서운 법이었다.

그러니 프랑스가 중재를 거절했다고 해서 총알 판매를 막아 다른 국가들에 불안감을 줄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 정성국이 이렇게 이야기하자 조용한 곰이 조금은 짓궂은 미소와 함께 말했다.

“하지만 전쟁이 길어지고 전투가 더욱 격렬해지면 총알 소모량도 급증할 텐데, 아국의 총알 생산량엔 한계가 있으니 이를 빌미로 적당히 물량을 조절할 수 있다는 것쯤은 프랑스도 잘 알고 있으니까요. 그럼 4만 명의 정예병이 무장해제 되는 셈이니...그런 위험을 감수할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특히 저희 계산으로는 프랑스가 보유한 총알 재고량은 200만 발 미만이다 보니...”

200만 발이라 봐야 1인당 50발이면 전부다.

물론 발사속도가 느린 머스킷이라면 50발로도 몇 번의 전투를 치를 수 있겠지만, 발사속도가 빠른 신식 소총이라면 딱 한 번의 전투도 겨우 치를 정도에 불과한 수준이었고.

그러니 더욱 북미왕국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는 조용한 곰의 이야기에 정성국은 자신도 모르게 혀를 찼다.

“이것 참...보안 때문에 공방의 규모를 빠르게 키우지 못한 것 때문에 프랑스가 피해 볼 줄은 몰랐군.”

“하하하. 그러니 참으로 웃긴 일이 아닙니까. 프랑스 대사관의 직원들이 자주 새양주에 기웃거리는 통에 보안을 더욱 신경 써야 했고, 그렇기에 공방의 확장이 더뎌졌으니까요.”

새양주는 몇 년 전 새한성 북동쪽에 새롭게 건설한 계획도시로 원래는 다른 용도로 건설한 도시였지만 유럽과 정식으로 외교 관계를 맺고 외교관들이 새한성을 드나들기 시작하자 보안이 중요한 공방들은 새양주로 이전시켰다.

당연히 이러한 공방들 가운데는 무기 제조 공방과 화약 제조 공방이 있었고.

그리고 이들 공방은 새양주로 이전한 이후 계속해서 확장하면서 더 많은 무기와 총알을 생산하기 시작했다.

헌데 기관총을 개발하고 배치하면서 총알 소모량은 다시 급격히 증가했고, 덕분에 공방을 확장하고 인원을 충원해야 하는데 새양주에 무기 제조 공방과 화약 제조 공방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외교관들은 북미왕국 특유의 화약 제조법을 캐기 위해 대사관의 인원을 새양주로 보내 방문해 새양주의 주민들과 접촉하기 시작했고 이를 알게 된 북미왕국은 인력 충원보다 보안부터 신경 쓰면서 인원 충원이 더뎌졌고, 덕분에 유럽에 판매할 총알이 부족해진 것이다.

물론 군사청에서 훈련으로 소모하는 총알과 비축해둔 총알을 돌리면 되긴 하는데 저들의 행동이 괘씸했던 정성국 이하 관리들은 그럴 필요를 느끼지 못했고 조용한 곰은 이러이러한 문제 때문에 인력 충원이 늦어져 생산에 차질이 빚어진다고 각국 대사들에게 넌지시 경고했다.

이에 다른 대사들은 북미왕국의 정보력에 혀를 내두르며 새양주로 파견했던 인원들을 복귀시켰지만, 프랑스는 미련을 버리지 못한 듯 때때로 새양주로 새로운 인원을 파견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기에 조용한 곰이 웃으며 이야기하자 정성국이 피식 웃으며 대꾸했다.

“아무튼, 프랑스가 협상장에 오른 만큼, 이제 외무청에서 고생해줘야겠네.”

“당연한 일이지요. 물론 네덜란드와 에스파냐는 프랑스를 협상장에 앉히기만 하더라도 충분한 대가를 약속하긴 했습니다만...저들이 빼앗긴 영토 일부분을 반환시킬 수 있다면 더 많은 대가를 약속한 만큼 최선을 다할 생각입니다.”

반프랑스 동맹 중 가장 급한 것은 역시 네덜란드였고, 그다음이 에스파냐령 네덜란드가 위험한 에스파냐였다.

해서 두 나라는 오스만 제국이 발칸 반도로 병력을 집중시킬 때부터 신성로마제국의 이탈을 우려해 그 전에 프랑스와 종전 협상을 하고 싶어 했지만, 프랑스는 거절했고.

그렇기에 두 나라는 북미왕국과 잉글랜드가 프랑스를 협상장에 앉히기만 하면 충분한 보상을 해주겠다고 약속했었다.

북미왕국과 잉글랜드가 중재하는 만큼 이들의 체면도 생각해야 하는 프랑스는 마음대로 자리를 박차고 나서진 못할 것이 분명했기에.

다만 이대로 종전을 맺는다면, 네덜란드는 프랑스가 점령하고 있는 카리브 해의 섬들과 본토 상당수를 잃게 되고, 에스파냐는 에스파냐령 네덜란드의 1/4을 잃게 되는 터라 북미왕국과 잉글랜드에 더 많은 대가를 약속하면서 도움을 바랐고.

그렇기에 조용한 곰이 최선을 다해 협상해 두 나라에 더 많은 대가를 받아내겠다고 이야기하자 정성국이 믿겠다는 얼굴을 하며 말했다.

“그래. 부탁하지. 대신 프랑스를 너무 몰아붙이지는 말고. 알지?”

“그럼요. 어찌 되었건 간에 유럽 내에서 프랑스의 영향력은 더욱 강해질 텐데 이번 일로 완전히 척을 지는 것보다야 적당히 달래는 것이 맞겠지요. 걱정하지 마십시오. 전하.”

아무리 북미왕국이 프랑스의 영향력 강화를 막기 위해 반프랑스 동맹의 요청에 따라 이번 중재에 개입했다 하더라도, 프랑스와 적대할 것이 아니라면 프랑스의 승리를 축하하면서 적당히 달래줄 필요가 있었다.

이를 잘 아는 조용한 곰은 걱정하지 말라면서 이렇게 대답하자 정성국은 고개를 끄덕이며 남은 한 나라를 언급했다.

“그리고...덴마크도 조금 챙겨주도록 하게. 물론 프랑스는 결코 스코네 지역의 포기하지 않을 테고, 결국 덴마크는 스코네 지역을 스웨덴에 돌려줘야 할 테니 덴마크의 타격이 무척 크지 않겠나.”

이번 대프랑스 전쟁은 덴마크가 스웨덴의 스코네 지역을 공격해 점령하고 프랑스의 중재를 거절하면서 일어났기에, 프랑스는 스코네 지역의 반환만큼은 절대 물러나지 않을 것이 분명했다.

그리고 이미 네덜란드와 에스파냐는 협상을 통해 종전을 생각하고 있는 만큼, 덴마크 혼자서 프랑스-스웨덴 연합을 막을 수는 없었고.

그러니 덴마크는 결국 스코네 지역을 넘겨줘야 하는데 그렇게 되면 덴마크의 손해는 정말 막심했다.

덴마크는 스코네 지역의 탈환을 위해 아이슬란드와 페로 제도를 북미왕국에 판매했고, 이 판매 대금을 몽땅 군사력에 투자했는데 그것마저 날린 셈이었으니.

해서 정성국이 이를 언급하자 조용한 곰이 고개를 끄덕였다.

“흐음...알겠습니다. 뭐 덴마크에서 사들인 아이슬란드와 페로 제도 덕분에 유럽 진출이 편해지기도 했고, 여러 이득을 취한 만큼 이대로 협상이 진행된다면 덴마크는 아국을 삐딱하게 바라볼 수도 있으니까요. 그러니 덴마크가 약간의 이득을 취할 수 있는 방향으로 협상을 진행하겠습니다.”

“그래. 부탁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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