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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을 탈출하라-652화 (652/850)

652화

“전하! 설탕 생산량을 획기적으로 늘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눈이 내리던 1월의 어느 날, 정성국은 잔뜩 흥분한 얼굴로 집무실을 방문해 외치는 연구청장을 보고 어리둥절한 얼굴로 말했다.

“음? 갑자기 그게 무슨 소린가? 아. 혹시 획기적인 설탕 정제 과정을 새로이 개발하기라도 한 건가?”

연구청에서는 기계를 이용해 기존의 공정을 더욱 효율적으로 개량하는 연구도 하고 있기에 무언가 성과라도 있는가 싶어 정성국이 묻자 연구청장이 고개를 거세게 흔들었다.

“그것이 아니라 다른 작물에서도 설탕을 뽑아낼 수 있게 되었습니다!”

“뭐? 다른 작물? 대체 무슨 작물에서 설탕을 뽑아낸단 말인가?”

정성국을 자신도 모르게 반문하면서도 머릿속으로 사탕무와 감자를 떠올렸다.

전생에서 설탕은 무척 중요한 기호품이었고, 그 때문에 전쟁 등으로 설탕 수입이 불가능해진 프랑스나 독일은 사탕무나 감자에서 설탕을 추출해 설탕을 만들기도 했었으니까.

“첨채라는 작물입니다. 전하.”

“첨채?”

조금 생소한 이름에 고개를 갸웃하는 정성국을 보고 연구청장이 설명했다.

“그렇습니다. 단무우라고도 불리는 작물인데 생김새는 무하고도 비슷합니다. 다만 무보다 단맛이 강해서 농업 연구소에서는 이 첨채에도 당 성분이 있지는 않을까 싶어 현미경을 이용해 이 첨채를 관찰했고, 사탕수수처럼 첨채에도 당 성분이 존재한다는 것을 발견한 모양입니다. 해서 첨채를 이용해 설탕을 만드는 연구에 착수했고, 결국 첨채에서 설탕을 뽑아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전하.”

연구청장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첨채는 사탕무로 짐작되었기에 정성국은 슬쩍 미소를 지었다.

전생에서 설탕 생산의 30프로 가까이 차지했던 것이 바로 사탕무에서 추출한 설탕이라는 것을 생각해본다면, 이번 농업 연구소의 발견은 무척 고무적이었기에.

물론 북미왕국은 영토가 무척 넓었고, 덕분에 사탕수수를 재배할 수 있는 땅도 많이 가지고 있었지만, 세계적으로 계속해서 설탕 소비량이 증가하고 있어 설탕 수출량이 나날이 늘어나고 있고, 더 늘어날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사탕무에서 설탕을 뽑아낼 수 있는 방법은 무척 가치 있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오호. 제조법을 확립했다는 건가?”

“그렇습니다.”

그러면서 연구청장은 첨채를 이용해 설탕을 만드는 법을 간략히 설명하기 시작했고, 정성국은 이를 유심히 들었다.

아무래도 사탕수수로 만드는 설탕에 익숙한 정성국은 사탕무로 만드는 설탕이 생소했기에.

그리고 연구청장의 설명을 들어보니 사탕무로 설탕을 만드는 방법은 사탕수수로 설탕을 만드는 방법과 대체로 유사했다.

다만 당액을 추출할 때, 사탕수수는 압착해 당액을 짜낸다면, 사탕무의 경우 얇게 썰어 따뜻한 물에 넣어 당분을 추출해 당액을 만든다는 것과 사탕무에는 당밀이 없어 사탕수수와는 달리 당밀을 분리하는 과정이 필요 없다는 것이 다를 뿐이었고.

이러한 연구청장의 설명에 정성국은 혹시나 하는 얼굴로 질문을 던졌다.

“그럼 생산성은 어떤가. 첨채를 통해 설탕을 생산하는 것이 사탕수수를 이용해 설탕을 생산하는 것보다 나은 건가?”

과정이 일부 간략화되었기에 정성국이 혹시나 해서 물었지만, 연구청장은 고개를 저었다.

“그건 아닙니다. 물론 당밀을 분리하는 과정이 빠지긴 하는데, 당액을 추출하기 취해 첨채를 얇게 썰고 따뜻한 물에 넣어 당분을 추출해 당액을 만들어야 하니 공정 자체는 거기서 거기지요.”

“그래?”

“또한, 단위면적 당 설탕 생산량은 사탕수수 쪽이 조금 더 낫긴 합니다. 사탕수수나 첨채나 작물에서 뽑아내는 설탕의 양은 별반 차이가 없는데, 뿌리채소라 어느 정도 공간을 필요로 하는 첨채와는 달리 사탕수수는 빽빽하게 키울 수 있으니 말입니다.”

“으음...역시 그런가.”

연구청장의 대답에 정성국은 역시나 하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사탕수수보다 사탕무에서 설탕을 뽑아내는 것이 더 효율적이라면, 전생에서도 판매되는 설탕 대부분은 사탕무에서 추출한 설탕이었을 테니 말이다.

그때 연구청장이 정성국의 반응을 보고 급히 입을 열었다.

“다만 열대 기후에서만 재배할 수 있는 사탕수수와는 달리 첨채는 온대, 냉대 기후에서도 재배할 수 있어 이러한 단점을 어느 정도 보완할 수도 있습니다.”

그 말에 잠시 생각에 잠겼던 정성국이 입을 열었다.

“흠. 계산해보면 단위면적 당 설탕 생산량은 떨어지지만, 사탕수수를 재배할 수 있는 면적보다 첨채를 재배할 수 있는 면적이 훨씬 넓으니 그 단점을 상쇄할 수 있다는 얘긴가?”

“그렇습니다. 전하. 저희야 작물을 재배할 수 있는 땅이 남아돌지 않습니까. 농업 연구소의 말로는 저 누벨 프랑스나 이로쿼이 지역 같은 비교적 추운 지역에서도 첨채를 재배해 설탕을 생산할 수 있다고 하니...”

“그럼 어지간한 곳에선 다 재배할 수 있다고 봐도 되겠군.”

정성국의 중얼거림에 연구청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입니다. 그리고 계속해서 농경지가 늘어나고 있으며, 덕분에 아카디아 항을 통해 유럽에 식량을 대거 수출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나날이 늘어만 가는 식량의 보관 때문에 골머리를 썩이고 있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이런 지역에 첨채를 대량으로 심어 설탕을 생산하는 편이 나아 보입니다. 특히 사탕무의 잎 부분이나, 부산물들은 가축의 사료와 비료로도 사용할 수 있다고 하니...”

이에 정성국은 나쁘지 않다는 표정을 지었다.

연구청장의 말마따나 계속해서 경작면적이 넓어지면서 북미왕국에서 생산하는 식량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지만, 이 식량들을 모두 수출할 수는 없었다.

유럽의 배들은 크기가 작아 한 번에 실을 수 있는 식량의 양이 적을뿐더러, 너무 많은 식량을 수입하면 식량 가격이 폭락하고, 그렇게 되면 농민들뿐만 아니라 수많은 땅을 보유한 지주라 할 수 있는 귀족들도 손해 보는 것은 마찬가지였기에 각국에서도 수입 물량을 어느 정도 조절하고 있었기에.

해서 북미왕국은 계속 남는 식량을 보관하고 처리하는 문제로 고민하고 있었고, 최근에는 남는 식량을 가축의 사료로 사용할 정도였으니.

그런 만큼, 식량 대신 사탕무를 심어 설탕을 추출하고, 남은 부산물은 가축의 사료로 처리한다면 훨씬 효율적으로 보인 것이다.

더불어 축산업의 발전도 꾀할 수 있을 테고.

“오호...그래? 그럼 자네 말대로 첨채를 대규모로 심고 설탕 제조 공방을 건설하는 것도 괜찮겠군.”

정성국이 첨채 재배에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자 연구청장이 기대 어린 눈초리로 정성국을 바라보았다.

“그럼?”

“그래. 농업 연구소에 전해 제대로 된 보고서를 올리라고 하게. 그 보고서를 확인하고 다른 청장들과 상의해 결정을 내리도록 하지. 아. 물론 첨채에서 설탕을 뽑아내는 방법을 연구한 연구원들에게 제대로 포상을 하도록 하고.”

“하하하. 그야 당연한 것 아니겠습니까.”

정성국의 이야기에 활짝 웃는 연구청장을 보고 정성국이 다시 슬쩍 입을 열었다.

“그리고...이 첨채라는 작물 말이네. 만주나 시베리아에서도 재배할 수 있는 건가?”

정성국의 물음에 연구청장은 농업 연구소를 방문했을 때, 들었던 연구원들의 설명을 머릿속에서 떠올려 본 후 조심스럽게 대답했다.

“아마 가능할 것 같습니다만...설마 연합과 조선에 첨채 재배를 권유하고 두 나라에서 생산되는 첨채를 수입하실 생각이십니까?”

“일단 첨채에서 설탕을 추출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려 연합과 조선이 첨채를 재배하도록 권유할 생각이기는 하네. 하지만 이를 수입할 생각은 없어. 아무리 이 지역을 드나드는 수송선들이 빈 배로 복귀한다 하더라도 그건 조금 비효율적일 테니 말일세.”

“그건 그렇지요. 그럼...?”

“그래. 현지에 설탕 제조 공방을 세우는 편이 낫겠지.”

“하지만 현지에 설탕 제조 공방을 세우게 되면 첨채 설탕 제조법이 흘러나갈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만...”

연구청장의 우려에 정성국은 어깨를 으쓱했다.

모든 기술을 독점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모든 부를 독점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으니까.

“그 정도는 감수해야겠지. 아니면 연합과 조선에 현지에 세울 설탕 제조 공방의 지분을 넘겨주는 것도 괜찮겠군. 그러면 새로운 첨채 설탕 제조법이 퍼져나가면 두 나라의 이득이 줄어들 테니 두 나라도 조심하겠지.”

“으음...확실히...”

연구청장이 정성국의 이야기에 수긍했을 때, 정성국이 다시 입을 열었다.

“그리고 아직까지 아시아에서 설탕의 가치는 무척 높네. 그러니 두 나라는 아마 눈이 뒤집혀 첨채를 재배하려 들 거야. 자연히 만주와 시베리아 지역이 발전할 테니 아국으로선 나쁠 것 없지.”

만주와 시베리아 지역이 발전할수록 북미왕국은 이 지역들에 신경을 덜 써도 되는 만큼, 연구청장은 정성국의 이야기에 슬쩍 웃었다.

“하긴...그건 그렇군요. 하지만 연합과 조선에서도 설탕이 생산되면 분명 다른 나라들도 눈치를 챌 것인데...”

“상관없네. 뭐 그렇게 된다면 설탕 생산량은 더욱 늘어나고, 그로 인해 설탕 가격은 낮아져 많은 사람들이 설탕을 맛볼 수 있을 터이니 말일세.”

정성국이 기억하기로 전생에서 사탕무를 연구해 설탕을 추출한 프로이센의 과학자 프란츠 아하르트는 돈 때문에 제당법을 연구한 것이 아니라 모든 인류에게 설탕이 주는 달콤함을 누릴 수 있도록 하려고 연구를 진행했고, 그 연구 결과를 무상으로 넘겨줌으로써 인류가 마음껏 설탕을 먹을 수 있게 되었다.

그런 만큼 정성국은 정보기관을 통해 유럽에 이 사실을 슬쩍 흘리는 것도 고려했다.

유럽 각국이 사탕무에서 설탕을 추출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시행착오를 겪겠지만 언젠간 제당법을 발견해낼 테고, 그럼 자체적으로 설탕을 생산하면서 설탕 가격은 더욱 낮아져 프란츠 아하르트가 꿈꿨던 것처럼 모든 인류가 설탕의 달콤함을 맛볼 수 있을 테니 말이다.

그리고 정성국이 이런 속내를 살짝 밝히자 연구청장은 새삼 놀랍다는 얼굴로 정성국을 바라보았다.

연구청장은 이를 듣고 어떻게든 기술을 독점해 설탕 생산량을 늘리고 이를 통해 더 큰 이득을 얻는 법만 생각했는데, 정성국은 자국의 백성뿐만 아니라 타국의 백성들까지 생각해 막대한 이득을 일부 포기할 뜻을 밝혔으니 말이다.

해서 연구청장은 약간의 불만을 훌훌 털어버리고 정성국에게 머리를 숙이며 말했다.

“전하의 뜻이 그러시다면야...알겠습니다. 허면 바로 농업 연구소로 돌아가 제대로 된 보고서를 작성해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그래. 부탁하네. 아. 그리고 말이네, 첨채의 이름을 사탕무로 바꾸는 것이 어떻겠나?”

정성국은 첨채보다 자신에게 익숙한 사탕무라는 이름을 대중화시키기 위해 은근슬쩍 이를 연구청장에게 언급하자, 연구청장은 조금 놀랍다는 얼굴로 정성국을 바라보았다.

“허허허. 우연입니까?”

“음? 그게 무슨 소린가.”

“농업 연구소의 연구원들은 첨채를 사탕무라고 부르더군요. 그게 직관적이고 입에 착 달라붙는다면서 말입니다.”

연구청장의 대답에 정성국이 웃음을 터트렸다.

“하하하. 그런가? 사람이 생각하는 것이 다 똑같은 모양일세. 아. 어쩌면 우리가 첨채를 농가에 소개하더라도 농부들도 첨채를 사탕무라고 부를지도 모르겠군.”

“허허허. 일리가 있군요. 알겠습니다. 허면 농업 연구소에 이야기해 첨채의 이름을 바꾸도록 하겠습니다.”

“그래. 부탁하네. 아. 그리고 농업 연구소에 들른 후 연구청으로 복귀하면, 경운차를 연구하는 연구원들에게 사탕무의 존재를 설명하고 이를 쉽게 수확할 수 있는 기계를 개발해보라고 하게.”

정성국의 명령에 연구청장은 신음을 흘리며 중얼거렸다.

“으음...확실히 대량으로 재배할 거라면 제대로 된 수확 기계가 필요하긴 하겠군요.”

“그렇지. 특히나 사탕수수는 기계로 수확하는 데, 사탕무를 손으로 수확한다면 인력이 부족한 우리로서는 차라리 사탕수수에 집중하는 편이 나을 테니까.”

목화 수확 기계의 개발 이후 연구청에서는 곧 사탕수수 수확 기계도 개발해냈다.

설탕은 목화와 비견될 정도로 중요한 상품 작물이었으니 연구 인력을 최대한 집중한 결과였다.

그리고 이 사탕수수 수확 기계 덕분에 북미왕국은 사탕수수 재배면적을 빠르게 늘리며 설탕 생산량을 대폭 끌어올릴 수 있었고.

그런 만큼, 연구청장은 정성국의 이야기에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알겠습니다. 이미 감자, 고구마 등의 땅속 작물을 수확할 수 있는 기계를 연구 중이니만큼, 바로 착수하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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