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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을 탈출하라-649화 (649/850)

649화

정성국이 집무실에서 업무를 보고 있을 때 누군가가 급하게 문을 열었기에 정성국은 무슨 일인가 싶어 고개를 들었고.

자신을 보고 환하게 웃는 조용한 곰을 보고 정성국이 말했다.

“음? 무슨 좋은 소식이라도 있나? 얼굴이 무척 밝은데?”

“예. 포로나이에서 방금 막 보고서가 도착했습니다. 사츠마 번과의 평화협상이 성공적으로 마무리되었다는군요.”

“뭐? 아니 그게 무슨...”

조용한 곰의 대답에 정성국은 이게 무슨 소린가 하는 표정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원정 함대를 파견한 후, 원정 함대에서 정기적으로 보고서를 보내왔고, 이 보고서에 따르면 북미왕국의 예상대로 사츠마 번은 순순히 유구국을 포기하기보다는 다시 유구국을 점령하려고 병력을 동원했고, 원정 함대는 이를 막기 위해 출격해 아마미 군도 인근에서 야간 해전을 치렀고.

그 후 사츠마 번의 원정을 완전히 방어하고, 아마미 군도에 상륙한 왜인들을 모두 잡아 나하 항에 건설한 임시 포로수용소에 가두고 사츠마 번과의 협상을 위해 사츠마 번의 거점인 가고시마 항으로 이동한다는 내용의 보고서를 바로 어제 전달받았는데 하루 만에 협상이 모두 완료되었다는 보고서가 올라오니 정성국은 당황할 수밖에 없었고.

조용한 곰은 자신의 예상과는 달리 어리둥절해 하는 정성국의 반응에 고개를 갸웃하다 무엇 때문인지를 깨닫고 급히 입을 열었다.

“아. 이 연락은 이번에 가동된 항공 연락망을 통해 전해진 겁니다. 전에 올라온 원정 함대의 보고서는 남방 항로를 이용해 전해진 거고요. 그러니...”

“어? 아아! 그래서 하루 차이로 전해진 건가?”

정성국은 조용한 곰의 설명에 상황을 이해하고 감탄사를 터트렸다.

이미 북미왕국 전역에 공항이 건설되었고, 계속해서 황새급 비행기가 양산되어 각 공항에 배치되면서, 군사청에서는 이를 통해 항공 연락망을 구성하고 시범적으로 운용해보기 시작했고.

몇 번의 시범 운용 도중 발생한 문제점을 보완해 이번에 본격적으로 항공 연락망 체계를 완비했는데 이 항공 연락망 덕분에 최근의 보고서를 빠르게 확보했다는 사실을 이해한 것이다.

해서 정성국이 감탄하자 조용한 곰이 웃으며 한마디 했다.

“예. 보고서 작성 날짜는 무척 차이가 나지만 말입니다.”

“하하하. 그런가. 아무튼, 빠르게 연락을 주고받을 수 있게 되어 정말로 다행이군.”

“이게 다 전하께서 비행기 개발에 전폭적인 지원을 하신 덕분이 아니겠습니까.”

조용한 곰이 슬쩍 아부하자 정성국은 피식 웃으며 이야기의 주제를 돌렸다.

“그보다 사츠마 번과의 협상 내용을 자세히 좀 이야기해보게.”

이에 조용한 곰은 고개를 끄덕이고 설명을 시작했다.

“예. 김봉길 1함대 사령관은 사츠마 번과의 협상을 위해 원정 함대를 이끌고 가고시마 만 안쪽으로 진입했고, 사츠마 번은 원정 함대가 포격을 준비하자 공격이 임박했음을 깨닫고, 바로 백기를 들어 올린 모양입니다.”

“허. 용케 눈치챘군.”

“그러게 말입니다. 아무튼, 그러면서 협상이 시작되었고, 처음 사츠마 번의 사절은 유구국은 사츠마 번의 괴뢰국에 불과한데 왜 북미왕국이 유구국 문제에 개입하느냐며 강하게 항의했지만, 김봉길 함대 사령관은 이미 북미왕국은 유구국을 괴뢰국이 아닌 독립국으로 인정했고, 유구국의 요청을 받아 보호하기로 했으니 끝난 문제라고 일축한 모양입니다.”

“하하하. 역시 김봉길이 잘 대응했군.”

정성국은 김봉길의 대응에 만족했다.

따지고 보면 유구국은 괴뢰국이나 식민지에 가까운 것이 사실이긴 했으니까.

“그렇지요. 그리고 사츠마 번이 유구국을 탈환하기 위해 병력을 움직인 것은 명백한 적대 행위라면서 계속 전쟁을 지속할 것인지, 아니면 잘못을 인정하고 그에 대한 배상을 하는 조건으로 전쟁을 그만둘지 선택하라고 압박했고, 이미 대다수의 병력을 잃고, 거기에 후계자와 가신마저 포로로 잡힌 사츠마 번은 아국이 원하는 대로 자신들의 잘못을 인정하고 더는 유구국에 어떠한 권리도 주장하지 않겠다고 약조했습니다.”

조용한 곰의 대답에 정성국은 흡족한 얼굴을 했다.

원래 외교적인 협상은 외무청 관리가 맡아야 하지만, 정성국은 일부러 원정 함대의 사령관인 김봉길에게 사츠마 번과의 협상을 맡기고, 외무청에서는 이를 보좌하라고 명령했는데, 그건 외교관인 외무청 관리보다는 함대 사령관인 김봉길이 사츠마 번을 더욱 강하게 압박할 수 있을 거라는 예상 때문이었다.

그리고 정성국이 바란 대로 김봉길은 사츠마 번의 사절을 강하게 압박해 결국 사츠마 번이 유구국의 권리를 깨끗하게 포기하게 했으니 정성국으로선 흡족할 수밖에.

다만 정성국은 한 가지 걸리는 것이 있어 급히 질문을 던졌다.

“헌데 아마미 군도는?”

“아마미 군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물론 사츠마 번의 사절은 순순히 아마미 군도를 내어주고 싶지는 않은 눈치였습니다만...저들이 실제로 지배하고 있었다고 한들 대외적으로 아마미 군도는 유구국의 영토로 알려진 만큼, 아마미 군도 역시 유구국의 영토이고, 사츠마 번이 유구국의 모든 권리를 포기한 만큼 아마미 군도도 포기해야 한다는 아국의 주장을 받아들였습니다.”

조용한 곰이 이야기한 것처럼 김봉길과 협상한 요쿠보는 어떻게든 아마미 군도는 지키려고 애를 썼다.

시마즈 가문의 영지인 가고시마는 땅이 척박할뿐더러, 토양 자체가 화산재가 많아 벼농사에 적합하지도 않았고, 여기에 걸핏하면 태풍과 지진 등의 자연재해가 발생해 이를 복구하는 데 큰 비용이 들어갈 수밖에 없어 막부에서 인정한 석고에 비해 풍족한 편은 아니었다.

해서 사츠마 번은 조금이나마 이득을 챙기고자 유구국을 점령하고도 유구국을 형식상으로 유지하면서 중국과의 무역을 유지하고, 아마미 군도를 철저히 식민지로 만들어 부를 챙긴 것이고 말이다.

헌데 유구국이 떨어져 나가면 청나라와의 조공 무역도 사라지고 그동안 유구국이 바쳤던 조공마저 사라지는 셈인데, 여기서 설탕을 재배할 수 있는 아마미 군도까지 잃게 되면 타격이 무척 클 수밖에 없었고.

그렇기에 요쿠보는 어떻게든 김봉길을 설득해 아마미 군도의 여러 섬 중 하나라도 지키려고 애를 썼으나, 김봉길은 아마미 군도의 섬 하나라도 넘겨주면 그만큼 사츠마 번의 영향력이 남쪽으로 확장되는 만큼 절대 불가를 외쳤고, 결국 요쿠보는 눈물을 머금고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흠. 다행이군. 유구국은 작물을 재배할 땅이 넓질 않아 아마미 군도가 넘어갔다면 여러모로 곤란했을 텐데.”

물론 북미왕국에서 작물을 값싸게 팔아도 상관없기는 하지만, 자체적으로 곡물을 생산하는 것이 최선이기에 정성국이 이렇게 말하자 조용한 곰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요. 물론 계속된 사탕수수 재배로 땅이 무척 황폐해진 것이 문제긴 합니다만...”

“그거야 농업 연구소의 연구원들을 일부 파견해 유구인들에게 지력을 덜 소모하는 작물을 소개하거나...아. 이번에 남태평양 탐사대가 발견한 나우루 섬의 구아노를 조금 캐서 비료로 뿌려도 될 테고.”

호주 연합이 해군을 육성하고 이 해군이 호주 연합의 해안가를 지키게 되면서 5함대와 남태평양 탐사대는 조금이나마 여유가 생겼고, 덕분에 남태평양 탐사대는 기존의 영역을 순찰하는 것뿐만 아니라 북서쪽, 그러니까 동남아시아 방면으로의 탐험을 시작했다.

그러면서 여러 섬을 발견하고 원주민들과 교류하면서 이와 관련된 내용을 새한성에 보고하고 있었고.

헌데 최근에 나우루 섬이라는 남태평양의 한 섬을 발견했는데, 이 섬에 철새들이 많이 살기에 혹시나 해 살펴보니 구아노를 발견해 급히 새한성에 보고했고, 덕분에 정성국도 남태평양 탐사대가 나우루 섬을 발견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정성국은 전생의 기억을 통해 이 나우루에 막대한 양의 구아노가 묻혀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에 기뻐했으며, 정성국이 나우루 섬을 언급하자 조용한 곰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건 그렇지요.”

“그보다 전쟁 배상금은 어떻게 되었나? 순순히 내어주던가?”

이에 조용한 곰이 씩 웃으며 대답했다.

“전쟁 배상금과 원정 함대가 확보한 포로들의 몸값을 묶었습니다. 그리고 포로 중에는 후계자인 소영주마저 잡혀 있었으니 사츠마 번이 어찌 버티겠습니까.”

“그럼?”

정성국이 잔뜩 기대하는 눈빛으로 조용한 곰을 바라보자 조용한 곰이 빙긋 웃으며 입을 열었다.

“예. 전하께서 언급하신 임진년에 시마즈 가문이 끌고 간 조선인들 전부를 내어주기로 약조했습니다.”

“오! 그게 정말이지?”

임진왜란 당시 각 번의 번주들은 조선인들을 대거 포로로 끌고 갔다는 사실과 임진왜란에 시마즈 가문도 참전했고, 이때 조선인 기술자들을 대거 확보해 여러 기술의 발전을 꾀했다는 사실을 아는 정성국은 이번에 유구국 문제로 사츠마 번과 분쟁이 발생할 것 같자 원정 함대를 파견하면서 사츠마 번을 굴복시키고, 전쟁 배상금을 이용해 조선으로 귀환하지 못하고 왜국에 남은 조선인들을 확보하라는 명령을 내렸었다.

다만 그가 기억하기로 사츠마 번은 조선의 도공들을 많이 확보했고, 이들로 인해 사츠마 번은 도자기를 생산할 수 있었으며, 후에 이삼평의 아리타 도자기와 함께 일본의 대표적인 도자기로 꼽히는 사쓰마 도자기를 생산하는 도공들을 과연 내어줄까 걱정했는데 사츠마 번이 조선인들 전부를 내어주기로 약속했다고 하니 정성국은 무척이나 반색했고.

“예. 시마즈 가문이 끌고 가 강제로 정착시킨 조선인들 가운데 가장 문제가 되는 이들이 바로 도공인데...저희가 조선인들의 의사를 확인해 사츠마 번에 남길 원하는 이는 데려가지 않겠다고 이야기하기도 했고, 시일이 흘렀기에 도자기 제작 기술을 어느 정도 습득했기에 설사 조선인들이 모두 돌아간다 하더라도 도자기를 생산할 수 있기 때문인지 저희의 걱정과는 달리 바로 받아들이더군요.”

“허어. 그거 다행이군.”

어차피 도자기는 북미왕국의 도자기가 세계 제일이라고 알려져 있었기에 사츠마 번에서 계속해서 도자기를 생산한다고 해도 아무런 상관이 없었기에 정성국이 웃으며 대답하자 조용한 곰이 덧붙여 말했다.

“그리고 시마즈 가문이 보유하고 있는 조선의 예술품을 전량 인수하기로 했습니다.”

왜란 당시 왜군은 기술자뿐만 아니라 수많은 문화재를 약탈해갔다.

해서 정성국은 북미왕국이 정식으로 왜국과 교역을 시작한 이후 알음알음 이 약탈품들을 회수하기 시작했지만, 당시 조선을 침공한 번주들은 주로 서쪽에 자리했기에 직접적으로 교역할 수 없어 썩 지지부진했고.

해서 정성국은 이 기회에 시마즈 가문이 보유하고 있던 약탈품들을 확보하라는 지시를 내렸고, 외무청 관리가 이를 확보했다는 이야기에 정성국은 무척 기뻐했다.

“오오! 그래?”

“예. 뭐 사츠마 번은 전쟁 배상금과 포로들의 몸값으로 그동안 축적한 재물을 대부분 넘겨줘야 하는 터라, 창고에 보관되어 있던 여러 사치품을 팔아 치워야 하는 상황이고, 여기서 아국이 조선과 관련된 예술품을 좋은 가격에 산다니 마다할 이유가 없지요.”

조용한 곰의 설명에 정성국은 만족스러운지 미소를 지으며 중얼거렸다.

“흐. 그러면 저들이 일부 물품을 빼돌릴 가능성도 적겠군?”

“물론입니다. 물품을 빼돌리기는커녕 시마즈 가문의 당주가 현명하다면, 주변의 영주들과 접촉해 조선의 예술품을 사들여 되파는 방식으로 차익을 노릴 수도 있을 테고요.”

조용한 곰의 이야기에 정성국은 크게 웃었다.

충분히 가능성이 있는 이야기였고, 이런 식으로나마 규슈 지역에 남아 있는 조선의 문화재들을 회수하고 싶었던 것이다.

“하하하. 그거 괜찮은 생각인데? 제발 시마즈 가문의 당주가 현명하길 바라야겠군.”

그리고 정성국이 조선의 예술품들을 수집하고 있다는 사실을 잘 아는 조용한 곰은 사츠마 번과 세부 협상을 맡았던 외무청 관리에게 연락해 시마즈 가문을 움직여야겠다고 생각했고.

그때 정성국이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입을 열었다.

“아. 그리고 그런 상황이라면...시마즈 가문이 보유하고 있는 다른 예술품들도 사들이게.”

“예? 전하께선 동양의 예술품은 조선 것 외에는 별다른 관심이 없으시잖습니까.”

조용한 곰의 반문에 정성국은 어깨를 으쓱했다.

“그렇긴 한데...뭐 계속해서 미술관과 박물관을 짓고 있는 만큼, 전시할만한 예술품이 많아지는 것은 나쁠 것 없지 않겠나.”

“아. 뭐 그렇긴 하군요. 알겠습니다. 바로 연락하지요.”

조용한 곰의 대답에 정성국은 만족한 얼굴로 되물었다.

“그리고 유구국으로 보낼 물자는?”

보고서를 통해 유구인들의 상황이 워낙 엉망이라는 것을 깨달은 정성국은 유구인들을 지원하기 위해 식량과 생필품 등의 각종 물자를 추가로 보내라고 이야기했었기에 정성국이 이를 확인하자 조용한 곰이 빙긋 웃으며 대답했다.

“거의 준비가 끝났습니다. 아마 올해 안에 이 물품들을 전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래? 그럼 다행이...아. 그리고 김봉길에게 이야기해 혹시 그 물자가 엄한 곳으로 흘러가지 않도록 잘 감시하라고 전하게. 알지?”

정성국은 유구국에서 이 물자를 빼돌릴 것을 걱정해 이야기하자 조용한 곰이 조금은 살벌한 웃음과 함께 대답했다.

“걱정하지 마시지요. 철저히 감시할 생각이니까요.”

“그래. 자네들만 믿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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