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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을 탈출하라-642화 (642/850)

642화

아이누 경비대원들이 잘 경계를 서는지 순찰한다는 명목으로 유구국의 궁성인 슈리 성의 성벽 위를 어슬렁거리며 높은 곳에서 북미왕국의 궁과는 전혀 다른 슈리 성의 경치를 즐기고 있던 김봉길은 한 선원이 급히 슈리 성으로 달려오자 무슨 일인가 싶어 마중 나갔고.

아마미 군도를 확보하기 위해 잠시 떠났던 5천 톤급 신형 전선이 나하 항에 복귀했다는 보고를 받고 나하 항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선착장에 있던 5천 톤급 신형 전선의 함장인 박중우를 보고 말을 걸었다.

“여. 잘 다녀 왔나?”

“아. 오셨습니까. 함대 사령관님.”

박중우가 김봉길에게 경례하자 김봉길은 적당히 경례를 받아주고 질문을 던졌다.

“그보다 아마미 군도의 왜인들은 모두 추방했나?”

아마미 군도가 사츠마 번의 자금줄이라는 사실과, 이 아마미 군도가 1609년 사츠마 번이 유구국을 침공하면서 실제로는 사츠마 번에게 넘어갔지만, 이 사실이 청나라에 알려지는 것을 꺼린 사츠마 번이 대외적으로는 유구국의 영토로 알렸기에 공식적으로는 유구국의 영토라는 사실을 구시카와 조슈에게 들었던 김봉길은 나하 항에 머물던 사츠마 번의 관리와 병사들을 추방한 이후 곧바로 함대를 둘로 나눠 2척의 신형 전선을 아마미 군도로 보냈다.

일단 아마미 군도를 장악할 필요가 있었기에.

해서 김봉길이 질문을 던지자 박중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더불어 아마미 군도의 노예들을 모두 해방했고요.”

“노예? 많던가?”

이에 박중우는 씁쓸한 얼굴로 대답했다.

“아마미 군도의 일부 지주들을 제외하면 대부분이 노예였습니다.”

“뭐?”

아마미 군도의 주민들은 대부분 노예가 되어 있었다.

이는 사츠마 번이 아마미 군도를 일종의 식민지처럼 다뤘기 때문인데, 사츠마 번은 아마미 군도의 주민들에게 막대한 세금을 물리고, 여기에 섬의 출입을 통제함으로써 각종 생필품은 비싸게 팔아 치우고 주민들이 생산하는 설탕 같은 물품들은 헐값이 사들이자 사츠마 번의 이익은 극대화되었지만 아마미 군도의 주민들은 도저히 버틸 수 없었다.

그러니 어떻게든 살기 위해 노예가 되었고.

이러한 실태를 박중우가 설명하자 김봉길은 혀를 차며 중얼거렸다.

“거참...좀 적당히 해 먹을 것이지...”

“그러게 말입니다.”

김봉길은 아마미 군도의 주민들이 안타까웠지만, 어차피 지나간 일이고 이젠 노예에서 해방되었으니 상황이 나아질 거라고 생각하며 다른 질문을 던졌다.

“그보다 왜인들의 반발은 없었고?”

이에 박중우가 피식 웃었다.

“총을 들고 있는 상대에게 대들 만한 배짱을 지닌 친구는 없더군요. 다만...”

“다만?”

“일부는 노예를 가족이라고 속이고 어떻게든 데려가려고 해서 실랑이가 좀 벌어졌을 뿐이지요.”

박중우의 대답에 김봉길이 고개를 갸웃했다.

“음? 가족으로 속였다고?”

“예. 노예는 재산이나 마찬가지잖습니까. 그러니 여자 노예는 아내로, 남자 노예는 남편이나 동생이나 형으로, 아이들은 자식이라고 우기면서 함께 배에 타려고 하더군요.”

그러면서 박중우는 3인 가족이 찢어져 3개의 8인 가족이 만들어진 예도 있었다고 이야기하자 김봉길은 기가 찬다는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거참...그게 통할 거라고 생각한 건가?”

“그러게 말입니다. 해서 그런 경우는 철저히 몸을 수색해 돈이 되는 것들은 싹 압수했습니다.”

“큭큭. 잘했네. 잘했어.”

박중우의 이야기에 김봉길이 킬킬거리고 있을 때, 박중우가 조금은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헌데...한 가지 특이한 점이라면 노예에서 해방된 주민들이 썩 기뻐하지는 않는 눈치더군요.”

“음? 대체 왜? 노예에서 해방되면 무척 기뻐해야 하는 것 아닌가?”

김봉길은 박중우의 말에 어리둥절했다.

김봉길이 2함대에 있으면서 여러 경로로 노예를 확보해 해방했었는데, 그때마다 노예들은 기뻐 어쩔 줄을 몰라 했으니까.

다만 일부 노예 생활을 오래 한 이들은 불안감을 느끼는 경우도 있었다는 것을 떠올린 김봉길이 혹시나 하는 얼굴로 이런 경우냐고 묻자 박중우가 조금 애매하다는 얼굴로 대답했다.

“뭐 오랫동안 노예 생활을 한 것이 맞습니다. 다만 이들은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라기보다는...미래를 포기했다고 보는 것이 맞을 겁니다.”

“음?”

“알고보니 아마미 군도가 유구국의 영토였을 때도, 유구국의 세금으로 꽤 많이 걷어간 모양입니다. 그리고 일부는 이 유구 섬에서 세금을 감당하지 못하고 노예가 되어 아마미 군도로 흘러 들어간 인물들이라 노예에서 해방되어 봐야 어차피 세금을 감당하지 못해 다시 노예가 될 텐데 무슨 의미가 있겠느냐...뭐 이런 분위기가 만연하더군요.”

이런 박중우의 설명에 김봉길은 안타까운 얼굴로 대답했다.

“...그래도 앞으로는 조금 나아지겠지. 이젠 누구에게도 조공을 바칠 필요는 없으니 말이네.”

아마미 군도의 남쪽은 원래부터 유구국의 지배를 받았지만, 북쪽은 비교적 독립적이었고, 1571년 유구국이 북쪽의 호족들을 정리하면서 유구국이 아마미 군도 전체를 온전히 장악하게 되었기에 일종의 점령지나 다름없었다.

그러니 세금이 조금 높을 수는 있었고.

또한, 그동안은 사츠마 번에 막대한 양의 조공을 바쳐야 했으니 유구국 전체의 세금이 높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제 상황은 변했고, 북미왕국은 유구국에 조공을 받을 생각이 없었으니 상황이 나아지지 않겠느냐고 김봉길이 이야기하자 박중우가 조금은 회의적인 얼굴로 중얼거렸다.

“그렇다면 좋겠습니다만...과연 그러겠습니까?”

이에 김봉길은 뒷머리를 긁적이다 말했다.

“뭐 너무 세금을 많이 거두면 생산성이 떨어진다는 것을 잘 설명하면 알아듣지 않겠어?”

“부디 그랬으면 좋겠군요.”

“그들의 처지가 안타까운가 보군?”

“예. 조금 그렇더군요. 더불어 그들을 북미왕국으로 이주시키는 것이 그들에게 더 나을 텐데...라는 생각도 들고요.”

박중우의 말에 김봉길이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이다 쓰게 웃었다.

북미왕국의 백성들이 어떻게 살아가는지를 알고 있다 보니, 이렇게 외국에 나와 귀족에게, 지주에게, 영주에게 착취당하며 겨우겨우 살아가는 백성들을 보면 이들의 처지가 안타깝기도 하고, 이들을 북미왕국으로 이주시키는 것이 낫지 않을까 싶기도 했었으니까.

하지만 가뜩이나 인구가 적은 유구국의 백성을 북미왕국으로 이주시켰다간 유구국이 텅 비게 되고 유구국의 가치는 사라지기에 김봉길이 입을 열었다.

“그건 현실적으로 어렵고...대신 이들도 북미왕국의 백성들처럼 잘 살게 도와주면 되겠지.”

“가능할까요?”

“그거야 유구인들에게 달린 문제고. 다만...우리가 조금은 도와줄 수 있겠지.”

김봉길의 말에 박중우가 고개를 끄덕였을 때, 김봉길이 다시 말했다.

“그리고 당장 아무런 기대도 하지 않는 아마미 군도의 주민들을 확실히 도울 방법도 있고.”

“예?”

“그들의 수가 얼마나 되지?”

“이번에 노예에서 해방된 이들이요? 2천 명쯤 됩니다만...”

그 말에 김봉길은 잠시 팔짱을 끼고 생각에 잠겼다가 말했다.

“흠. 생각보다 많긴 한데...그들을 일꾼으로 고용해 이곳을 조금 개발하자고. 일단은 이곳에 전용 선착장을 비롯해 여러 시설을 건설해야 하니까.”

“아. 그거 괜찮겠군요. 어차피 아마미 군도의 땅은 황폐해져서 한 1, 2년 땅을 묵히는 것도 괜찮아 보이니까요. 그리고 아이와 노약자, 여인들을 빼면 기껏해야 800명 수준이니 크게 부담될 것은 없을 겁니다.”

박중우의 대답에 김봉길이 고개를 갸웃했다.

“땅이 황폐해졌다고?”

“예. 유구인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돈 때문에 오랫동안 사탕수수만 경작했기에, 땅이 무척이나 황폐해진 모양입니다. 그래서인지 아마미 군도에선 식량이 부족해 언제나 기근에 시달렸다고 하더군요. 그러니 몇 년간은 지력을 회복시키는 것이 낫겠지요.”

사탕수수는 생각보다 많은 지력을 소모했다.

북미왕국에서야 워낙 땅이 남아돌기에 한번 작물을 재배하면 다음 해엔 땅을 놀리거나, 혹은 구아노를 비롯한 비료를 뿌려 지력을 회복시켜 농사를 지었지만, 이곳은 그럴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고.

해서 아마미 군도도 그렇지만 유구국의 다른 지역들도 상황이 썩 좋은 것은 아니라고 박중우가 이야기하자 김봉길은 혀를 찼다.

“쯧쯧. 그래? 그럼 포로나이에 연락해서 식량을 왕창 가져오라고 해야겠네.”

“예. 그러는 것이 나을 겁니다.”

박중우의 대답에 김봉길은 물자를 내린 후 포로나이로 귀환할 수송선을 통해 포로나이로 연락을 보내야겠다고 생각하며 발걸음을 옮기다 아차 하는 얼굴로 질문했다.

“아. 그리고 정현구 함장은?”

“계획대로 아마미 군도에서 대기 중입니다.”

박중우와 함께 아마미 군도로 이동한 정현구 함장이 지휘하는 3천 톤급 신형 전선은 아마미 군도에 남아있었다.

사츠마 번의 움직임을 파악해야 했으니까.

그리고 사츠마 번의 배가 보이면 바로 회항해 이를 알리기로 되어 있었고.

그렇기에 김봉길은 박중우의 이야기에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아쉬움에 투덜거렸다.

“아. 빨리 무선 통신 거리가 늘어났으면 좋겠다.”

“하하하. 그러게 말입니다.”

* * *

사츠마 번의 관리와 병사들이 나하 항에서 추방된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나하 항의 분위기는 완전히 변해 있었다.

이전에는 유구국의 정보가 외부에 퍼질 것을 경계한 사츠마 번이 나하 항을 방문하는 선박들을 통제하기도 했고, 사츠마 번의 병사들이 행패를 부리는 경우가 많았기에 나하 항에는 상인들도 얼마 없었고 조용한 편이었다.

하지만 북미왕국의 원정 함대가 나하 항에 정박하면서, 원정 함대의 병사들이 나하 항을 돌아다니며 돈을 쓰기 시작하자, 이 돈을 노리고 유구인들이 노점을 시작하면서 점차 나하 항에 활기가 돌기 시작했고.

그리고 이런 효과를 노리고 원정 함대 소속 병사들의 외출을 허락했던 김봉길은 이러한 변화에 만족하면서도, 혹시 병사들이 사고 치지는 않을까 싶어, 가끔 나하 항을 돌아다녔다.

“함대 사령관님!”

“어? 무슨 일인가?”

김봉길이 순찰을 핑계로 시장을 돌아다니다 노릇노릇하게 구운 닭꼬치를 손에 들었을 때, 부관이 허겁지겁 뛰어왔기에 김봉길이 어리둥절했을 때, 부관이 애써 호흡을 고른 후 김봉길의 귓가에 조용히 말했다.

“방금 우티 함에서 무선 통신으로 연락을 했습니다.”

그 말에 김봉길은 눈을 번쩍였다.

우티 함은 아마미 군도에 남아 사츠마 번이 남하하는지를 감시하던 3천 톤급 신형 전선으로, 이 우티 함과 무선 통신이 가능했다는 이야기는 우티 함이 사츠마 번의 함대를 발견하고 전속력으로 나하 항으로 달려와 인근에서 무선 통신을 보냈다는 뜻이었으니까.

“...우티 함이 무선 통신을 했다고? 그럼...”

“예. 아마미 군도 북동쪽에서 사츠마 번의 함대를 발견했답니다.”

그 말에 김봉길은 품에서 돈을 꺼내 노파에게 주고 닭꼬치를 하나 더 집어 부관에게 넘겨주고 함대가 정박해 있는 선착장으로 발걸음을 옮기며 물었다.

“함대의 규모는?”

“확실한 것은 아니지만...약 300척 규모로 짐작된답니다.”

부관의 대답에 김봉길은 눈이 휘둥그레졌다.

사츠마 번의 군사력이 대단하다는 것은 알지만 일개 지방 정권이 300척에 달하는 배를 동원했다는 사실은 놀라웠기에.

“허. 그렇게 많다고?”

“정현구 함장의 말론 동원할 수 있는 배는 모두 동원한 것 같답니다. 작은 어선까지도 다 동원했다더군요.”

“그래?”

“그리고...저희가 걱정한 대로 함대의 진형이 무척 분산되어 있다고 하더군요.”

그 말에 김봉길은 닭꼬치를 우물거리다 피식 웃었다.

“흥. 최대한 우리를 피해 상륙해보겠다는 거군?”

“그렇습니다.”

저들이 생각하는 것은 뻔했고, 이를 모를 리 없는 김봉길이었다.

해서 어느 정도 준비해둔 상태이기에 김봉길은 단숨에 닭꼬치를 뜯어 삼키고 말했다.

“저들이 나하 항에 접근하기 전에 최대한 격파한다. 바로 함대 경보 울려.”

“알겠습니다. 함대 사령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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