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41화
원정 함대에서 내린 홋타 마사토라를 비롯한 사절단 일원은 자신들이 포로나이로 이동했을 때 타고 왔던, 포로나이 선착장 한쪽에 정박해 있는 배에 올라타고 에도로 복귀했고.
에도로 복귀했을 때는 이미 해가 진 시점이었기에 내일 쇼군을 알현해야겠다고 생각한 홋타 마사토라는 일단 아버지께 보고하기 위해 발걸음을 옮겼다.
홋타 마사토라의 아버지인 홋타 마사토시는 전대 쇼군인 도쿠가와 이에쓰나가 사망한 이후, 이복동생인 도쿠가와 쓰나요시를 후계자를 내세우며 이에쓰나 시절에 권세를 떨쳤던 사카이 다다키요와 맞섰고, 도쿠가와 이에쓰나가 결국 쇼군에 취임하자 그 공으로 사카이 다다키요 대신 다이로에 임명되며 도구카와 이에쓰나의 최측근이 되었다.
그렇기에 홋타 마사토라가 젊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사절단의 대표가 될 수 있었던 것이고 말이다.
그러니 홋타 마사토라는 아버지인 홋타 마사토시를 제일 먼저 찾을 수밖에 없었고.
홋타 마사토시는 무사히 북미왕국을 다녀온 차남을 반기며 직접 북미왕국을 방문한 홋타 마사토라의 이야기를 경청했고, 홋타 마사토라가 새한성 도로를 가득 메운 자전차와 마차, 수백 명을 태우고 철길을 따라 빠르게 이동하는 기차, 하늘을 나는 비행기, 밤이 되면 환하게 불을 밝히는 전깃불, 찬 바람이 나오는 냉방장치 등을 설명하자 놀라움을 금치 못하며 중얼거렸다.
“허어. 북미왕국에 신기한 기물이 많다고는 들었다만...그 정도였다고?”
“그렇습니다. 아버님. 기물 하나하나가 정말 놀라울 정도였습니다. 특히 사절단에 포함된 난학에 정통한 학자들도 북미왕국의 기물들을 보고 경악하기만 할 뿐, 도대체 무슨 원리로 작동하는 것인지 감히 짐작조차 하지 못했습니다.”
1543년 표류한 포르투갈인들을 통해 서양식 총포 기술이 전해지면서 왜국은 유럽 학문과 기술에 관심을 보였고, 전국 시대에는 이를 남만학이라 불렀으며 곧 에도 막부가 들어서고 에도 막부는 선교에 관심 없는 네덜란드와만 교류하면서 유럽의 학문, 기술, 문화 등은 네덜란드를 통해 전해지게 되면서 난학이라고 불리게 되었다.
그리고 알음알음 유럽의 기술 수준이 높다는 것이 알려지면서 이 난학을 연구하는 학자들도 있었고, 네덜란드 상인들이 이야기하기를 북미왕국의 학문과 기술은 유럽의 학문과 기술과 통하는 부분이 있다는 이야기에 막부에서는 난학에 정통한 학자들을 사절단에 포함시켜 이 학자들이 무언가 얻어오기를 기대했고.
헌데 홋타 마사토라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난학을 연구한 학자들의 수준으로는 북미왕국의 기술 수준을 헤아릴 수 없어 아무런 성과가 없다는 말에 홋타 마사토시는 안색을 굳힐 수밖에 없었다.
“...그래? 그 정도로 기술 수준에서 차이가 난다는 말이지?”
“예.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말이지요. 또한, 북미왕국은 끝도 없이 펼쳐진 논밭에서 식량을 비롯한 각종 작물을 재배하고 있었고, 강철로 만든 철길을 그 드넓은 북미왕국 곳곳에 깔고, 건축 재료로 사용하고, 거대한 배를 만드는 데 사용할 정도로 막대한 양의 강철을 생산할 정도였습니다. 아국의 국력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였지요.”
“으음...”
물론 북미왕국의 국력이 대단하다는 것은 알고 있었고, 그렇기에 북미왕국과 우호적으로 지내려고 사절단까지 파견했지만, 이웃 국가가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엄청난 강국이라는 것이 딱히 좋을 것은 없었기에 홋타 마사토시는 생각이 많은 얼굴로 계속 이야기하라는 듯 손짓했고.
이에 홋타 마사토라는 북미왕국을 방문해 느꼈던 것들을 모두 이야기한 후, 북미왕국과 협상한 내용을 알리자 홋타 마사토시는 눈을 빛냈다.
“북미왕국에서 지원금을 준다고? 이주민의 수에 비례해서?”
“그렇습니다. 그리고 원한다면 귀금속이 아닌 교역품으로 주겠다고 하니, 교역품으로 받는다면 그 이득은 더욱 클 테고요.”
북미왕국의 물품은 품질이 좋아 비교적 비싼 가격에도 잘 팔리는 만큼, 잘만하면 이를 통해 더 큰 이익을 볼 수 있다는 아들의 말에 홋타 마사토시가 슬쩍 웃으며 말했다.
“각 번의 백성들을 북미왕국으로 이주시키고, 그 대가의 대부분은 막부가 얻는다라...멋진 계약이로군. 고생했다. 마사토라.”
“아닙니다. 아버님.”
“그럼 밤이 늦었으니 잠시 눈을 붙이거라. 바로 쇼군 전하를 알현해야 하니까.”
“알겠습니다. 아버님.”
* * *
사츠마 번의 번주인 시마즈 마츠히사는 유구국에 파견한 구로사와와 병사들이 아무런 기별도 없이 가고시마에 도착했다는 보고를 받고 이게 무슨 일인가 싶어 류쿠재번봉행인 구로사와를 불렀고, 구로사와의 이야기를 듣고 뜬금없다는 얼굴로 되물었다.
“...뭐? 갑자기 북미왕국의 함대가 나타나 자네들을 모두 추방했다고? 대체 왜?”
그동안 북미왕국과는 별다른 관계가 없었는데, 왜 갑자기 북미왕국의 함대가 유구국에 나타나 자신들을 적대한 것인지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았던 시마즈 마츠히사가 다시 질문을 던지자 구로사와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그게...유구국이 북미왕국에 밀사를 보내 북미왕국을 상국으로 모실 테니 유구국을 보호해달라고 요청한 모양입니다.”
그 말에 시마즈 마츠히사는 표정을 굳혔고, 순간 정전은 먼지 떨어지는 소리가 들릴 정도로 고요해졌다.
“...유구국이 북미왕국의 속국이 되었다고?”
“그렇습니다. 주군.”
시마즈 마츠히사는 고개를 숙이고 대답하는 구로사와를 싸늘히 바라보며 다시 입을 열었다.
“그리고 북미왕국은 속국인 유구국을 보호하겠다면서 함대를 보내고 자네와 병사들을 위협해 추방했다?”
“...그렇사옵니다. 주군.”
이에 구로사와는 주군인 시마즈 마츠히사가 분노했다는 것을 깨닫고 더욱 저자세로 대답했고.
“그리고 자네는 북미왕국이 무장을 해제하고 유구국을 떠나라는 통보를 받자마자 순순히 무장을 해제하고 맨몸으로 배를 타고 도망쳤고?”
하지만 시마즈 마츠히사의 태도는 달라지지 않았고, 잘못하면 유구국에서 도망쳤다는 이유로 목이 달아날 수도 있겠다고 여긴 구로사와가 급히 고개를 조아렸다.
“...죽여주시옵소서! 주군.”
구로사와를 냉막한 얼굴로 바라보던 시마즈 마츠히사는 자신의 잘못이니 죽여달라고 벌을 청하는 구로사와를 보고 차가운 어조로 물었다.
”...그래. 마지막으로 할 말은 그게 단가?”
이에 구로사와는 위기감을 느끼고 쿵 소리가 날 정도로 머리를 바닥에 찧으며 외쳤다.
“북미왕국의 함대가 나타나 나하 항에 정박하면서, 그리고 북미왕국의 함대에서 무장한 병사들이 하선해 선착장 인근을 장악하고 북미왕국의 배에서 오자토의 심복인 구시카와가 내리는 것을 목격하면서 소신은 어떠한 희생을 치르더라도 유구국이 북미왕국을 끌어들였다는 사실을 주군께 전해야 한다는 생각외엔 하지 못했습니다! 시간이 흐를수록 북미왕국은 더 많은 병력과 선박을 유구국에 보낼 가능성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적이 무서워 항복한 것이 아니라 정보를 최대한 빠르게 전달해야 하기에 항복한 것이라는 이야기에 시마즈 마츠히사는 구로사와가 가당찮은 변명을 내뱉는다고 생각했지만, 덧붙인 이야기에 순간 멈칫했다.
“음? 북미왕국에서 파견한 병력은 얼마나 되길래?”
“정확한 숫자는 알 수 없었습니다. 다만 북미왕국의 배 6척 가운데 2척은 수송선으로 보였고, 전투용 선박에도 병사들이 많아 보이지는 않았으며, 배에서 내린 북미왕국의 병사들은 대략 200명 내외였습니다.”
“그거밖에 안 된다고?”
북미왕국의 규모를 생각해보면 파견한 병력이 많지는 않았기에 시마즈 마츠히사가 되묻자, 기회라고 생각한 구로사와가 재빨리 답했다.
“그렇습니다. 물론 북미왕국의 무기는 우리의 무기보다 월등하다는 사실은 알고 있지만, 수가 너무 적었기에 일종의 선발대가 아닌가 싶었고, 그렇기에 하루라도 빨리 이 소식을 주군께 전해야 하는데, 북미왕국의 함대와 병사들이 선착장을 장악하고 있는 터라 죽을 각오를 하고 덤벼든다 할지라도, 배를 구해 탈출할 수 있을 거란 보장이 없었습니다. 해서 어찌해야 하나 고민하던 찰나, 북미왕국의 지휘관이 무장을 해제하면 돌아갈 수 있도록 배를 마련해주겠다고 제안해서 치욕을 무릅쓰고 바로 무장을 해제한 겁니다.”
“으음...”
시마즈 마츠히사가 구로사와의 말을 듣고 턱수염을 쓰다듬으며 생각에 잠겼을 때, 분위기가 바뀌었음을 직감한 구로사와가 조심스레 다시 입을 열었다.
“그리고...북미왕국의 지휘관은 저와 대화하면서 유구국 영토에 있는 왜인들을 모두 추방할 것이라 이야기했었습니다. 해서 저에게 가고시마로 돌아가는 길에 아마미 군도의 왜인들에게도 이 사실을 알리는 것이 낫지 않겠느냐고도 했고요.”
“뭐?! 아마미 군도?!”
구로사와의 말에 갑작스럽게 유구국 문제에 개입한 북미왕국을 상대로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하던 시마즈 마츠히사는 기겁했다.
사츠마 번은 유구국을 점령하고 유구국의 영토인 아마미 군도를 빼앗아 지배했지만, 대내외적인 시선을 고려해 형식상으로는 아마미 군도가 여전히 유구국의 영토인 것처럼 위장했다.
헌데 유구국이 갑자기 북미왕국에 신속해 버리고, 북미왕국은 유구국의 영토를 보호한다면서 실제로는 사츠마 번이 지배하고 있는 아마미 군도까지 유구국의 영토라면서 왜인들을 추방하겠다고 알렸으니 말로 해결하긴 어려워 보였고.
특히, 아마미 군도는 사탕수수를 경작할 수 있는 아열대 기후라 사츠마 번은 그동안 이 아마미 군도에서 사탕수수 재배해 막대한 이득을 취해왔기에 아마미 군도를 잃게 되면 사츠마 번은 엄청난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었고.
해서 시마즈 마츠히사는 마음속으로 결정을 내리고 자신의 옆에 있던 자신의 손자를 바라보았다.
“츠나타카. 병력을 준비해라.”
이에 시마즈 츠나타카는 시마즈 마츠히사가 북미왕국과의 전쟁을 결정했음을 깨닫고 어떻게든 이를 막아야 한다는 생각에 바로 입을 열었다.
“할아버님. 일단 고정하시지요.”
그 말에 시마즈 마츠히사가 목소리를 높였다.
“고정? 북미왕국이 유구국을 넘어 아마미 군도까지 노리는데 고정하라고?! 북미왕국이 유구국을 홀라당 집어삼키는 꼴을 그냥 지켜보라는 이야기냐!”
“그렇다고 북미왕국과 전쟁을 벌일 수는 없지 않습니까. 차라리 막부에 도움을 요청하는 것이...”
시마즈 츠나타카는 어떻게든 할아버지의 결정을 바꾸기 위해 막부를 거론했지만, 시마즈 마츠히사는 콧방귀를 뀌었다.
“흥. 막부가 우리를 돕겠느냐? 시간만 낭비하는 꼴이다.”
막부는 꾸준히 자신들을 견제해온 만큼, 막부에 도움을 요청해봐야 막부에서 나설 리 없었다.
거기에 사츠마 번은 청나라와 조공 무역 때문에 유구국을 멸망시키지 않고 유지했기에, 지금 상황은 공식적으로는 북미왕국의 속국이 된 유구국을 공격하는 꼴이었는데 이걸 막부에서 도와줄 리 없지 않은가.
“하지만...”
“고작 4척의 배를 두려워할 이유가 없다.”
시마즈 마츠히사의 단언에 시마즈 츠나타카는 답답하다는 얼굴로 말했다.
“하오나 예전 에조 지역에서 전쟁이 벌어졌을 때, 북미왕국의 배 단 1척을 감당하지 못해 막대한 피해를 보았고, 그 여파로 아이누인들의 독립을 허락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니 고작 4척이라고는 하나 상대하기 쉽지는 않을 겁니다. 또한, 그 4척을 상대로 승리를 거두었다 한들 끝이 아니잖습니까. 유구국이 북미왕국에 신속한 상황에서 유구국을 건드리면 북미왕국과의 전쟁입니다. 청나라도 상대하지 못한 북미왕국을 어찌 저희가 상대한단 말입니까.”
시마즈 츠나타카의 말에 정전에 있던 다른 가신들도 고개를 끄덕였다.
북미왕국 전선은 강력하기로 소문났고, 또 어떻게 이를 상대한다고 한들 뒷감당은 어찌하겠는가.
하지만 시마즈 마츠히사의 생각은 다른지 곧바로 입을 열었다.
“물론 예전 에조 지역에서 북미왕국의 배 1척에 큰 피해를 보긴 했지. 하지만 그때는 아이누인들이 바다에서 공격할 거라 생각조차 하지 못했기에 어선까지 동원해 병력을 실어나르려 했고, 그렇기에 피해가 컸을 뿐이다. 아니었다면, 물론 성과는 조금 거두었겠지만, 그렇게 큰 피해를 보지는 않았겠지. 수송 선단을 분산만 시켜 두었어도 해결될 문제였어.”
이에 일부 가신들이 고개를 끄덕이며 시마즈 마츠히사의 의견에 동의했다.
분명 북미왕국의 전선이 대단한 것은 맞는데, 숫자의 한계가 명백하니 싸워주지 않는다면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을 테니까.
“으음...그럼 주군께서는...”
“그래. 최대한 많은 배를 동원할 거다. 대신 북미왕국의 배를 상대하기보다는 최대한 분산시켜 유구 섬에 상륙시키는 것을 목표로 할 거고.”
“상륙이라면 슈리 성을?”
“그래. 북미왕국이 유구국에 개입한 명분은 유구국의 요청 때문이다. 그렇다면 유구국이 요청을 철회하면 북미왕국이 유구국 문제에 개입할 명분은 사라지는 셈이고.”
시마즈 마츠히사의 말에 가신들이 침음을 삼키고 있을 때 시마즈 츠나타카가 중얼거렸다.
“으음...쇼테이 왕을 포로로 잡아 유구국이 북미왕국에 도움을 요청했던 것을 철회시킨다는 거군요?”
“그렇지.”
“하지만 저희가 유구국을 공격하면 자연히 유구국의 상국인 북미왕국에도 선전포고하는 셈입니다. 그런 상황에서 유구국이 도와달라는 요청을 철회한다 해도 전쟁이 끝날 것 같지는 않습니다만...”
이에 시마즈 마츠히사는 어깨를 으쓱했다.
“그 부분은 협상으로 해결해야지. 지금이야 북미왕국이 우리와의 협상을 거부하겠지만 우리가 쇼테이 왕을 확보한다면 북미왕국과 협상할 수 있을 거다. 그러면 적당히 북미왕국의 체면을 세워주고 물러나게 만들 수 있어.”
“으음...”
시마즈 마츠히사의 이야기에 시마즈 츠나타카와 가신들은 아예 가능성이 없는 이야기는 아니라고 생각해 수긍하고 있을 때, 시마즈 마츠히사가 자신의 손자와 기신들을 한번 훑어본 후 선언했다.
“그러니 최대한 많은 병력과 배를 준비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