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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을 탈출하라-638화 (638/850)

638화

정성국은 새한성 대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환자들을 진료하고, 연구하느라 바쁜 김 의원이 예정도 없이 자신을 찾아오자 조금은 의아한 표정을 지으면서도 일단 김 의원의 방문을 환영했다.

“음? 이게 얼마 만인가. 오랜만일세. 김 의원.”

“그간 강녕하셨습니까. 전하.”

집무실에 들어온 김 의원이 정성국에게 고개를 숙이며 인사하자 정성국이 피식 웃었다.

“그럼. 내가 건강하다는 것은 자네도 잘 알지 않나.”

“하하하. 그건 그렇지요.”

김 의원은 북미왕국에서 가장 경험이 많고 뛰어난 의원이었기에 당연히 왕실 주치의도 겸직하고 있었고, 정성국을 비롯한 왕실 가족의 건강 상태를 빠삭하게 알고 있던 터라 정성국의 반문에 웃음을 터트렸고.

“헌데 자네가 갑자기 웬일인가? 자네는 나보다 더 바쁜 사람 아닌가.”

정성국의 말마따나 김 의원은 오전에는 새한성 대학교의 부속 병원에서 환자들을 진료하고 수술하며, 오후에는 의과대학의 학생들을 가르치고, 저녁에는 의과대학 내 의학 연구소에서 의학 발전을 위해 연구하는 연구원들을 관리하고, 직접 각종 수술법을 정립하느라 쉴 시간조차 얼마 안 될 정도였다.

헌데 그렇게 바쁜 김 의원이 자신을 찾아오자 무슨 일이 있나 싶어 정성국이 조금 걱정스러운 시선으로 김 의원을 바라보자, 김 의원은 활짝 웃으며 입을 열었다.

“급히 보고할 내용이 있어서 이렇게 전하를 찾아뵈었습니다.”

그리고 그런 김 의원의 얼굴을 보고 정성국은 기대감을 감추지 못하며 질문을 던졌다.

“보고? 뭐라도 발견한 건가?”

“일전에 전하께서 말씀하셨던 푸른곰팡이를 발견한 것 같습니다.”

“헉! 그게 정말인가?”

페니실린의 발견으로 각종 세균성 질병을 정복하면서 인류의 평균 수명은 대폭 연장되었고, 덕분에 전 세계 인구도 대폭 증가했다.

누군가는 페니실린이 등장하지 않았다면, 전 세계 인구수가 절반이 채 되지 않았을 거라 예상할 정도로.

그만큼 페니실린은 인류의 역사를 바꾼 세기의 발견이라 할 수 있었고.

문제는 전생에서 페니실린의 발견은 단순한 우연일 뿐이지 의도한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페니실린을 처음으로 발견한 것으로 알려진 플레밍은 의외로 무척 게을러서 실험을 끝내면 배양접시를 깨끗하게 세척하고 치우는 다른 연구원들과는 달리 실험이 끝난 배양접시를 그냥 내버려 두기 일쑤였고, 푸른곰팡이 포자가 바람을 타고 배양접시에 떨어져 페니실린을 발견할 수 있었던 것도 다 이런 플레밍의 성격과 우연이 겹친 덕분이었다.

아니었다면, 페니실린의 발견은 수십 년 후에나 가능했을 것이고, 그만큼 의학의 발전은 지체되었을 것은 분명했고.

이를 잘 알고 있는 정성국은 자신이 개입하지 않는다면 페니실린의 발견이 무척 늦춰질 거라 예상했고, 그의 추측처럼 현미경의 개발로 인해 세균의 존재를 확인하고, 이 세균이 질병을 일으킨다는 것을 알게 된 의원들과 의학 연구원들이 항균작용을 하는 물질을 찾아내기 위해 애를 썼지만 몇 년째 아무런 성과도 거두지 못하고 있었다.

해서 정성국은 약 2년 전쯤 김 의원과 식사를 하던 도중 지나가듯 힌트를 주었다.

푸른곰팡이를 연구해보라고.

이에 김 의원은 갑자기 푸른곰팡이를 연구해보라고 이야기하는 정성국의 말에 의아하긴 했지만, 정성국이 괜히 푸른곰팡이를 언급하지는 않았을 거란 생각에 일부 연구원들을 빼서 푸른곰팡이 연구에 배정했다.

다만 푸른곰팡이도 수백 종이 있었기에 바로 페니실린을 발견하지는 못했는데 드디어 성과가 있다는 이야기에 정성국은 무척 기뻐할 수밖에 없었고.

그때 김 의원이 말했다.

“상한 멜론에 핀 푸른곰팡이를 다른 균에 투입해보았는데...시간이 흐르자 이 균들이 사멸하더군요.”

“허...그럼...”

“그렇습니다. 전하. 푸른곰팡이가 세균을 죽이는 항균작용을 하는 것 같습니다. 그러니 이 푸른곰팡이를 연구한다면...그동안 불치병으로 여겨졌던 여러 세균성 질병을 치료할 수 있을 테고요.”

북미왕국의 의학 기술은 계속해서 발전하고 있었다.

특히 마취제, 진통제의 개발로 외과수술 분야는 획기적으로 발전했고.

다만 질병의 경우는 아직 성과가 더뎠다.

그 때문에 북미왕국에서는 질병의 치료보다는 예방을 위해 힘쓰고 있었는데, 푸른곰팡이를 연구하면 질병의 치료도 가능해질 것만 같았기에 김 의원이 흥분을 감추지 못하며 이렇게 대답하자 정성국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분명 그럴 테지.”

정성국 역시 페니실린이 얼마나 대단한지를 잘 알고 있었기에 흐뭇한 얼굴로 그렇게 대꾸한 후, 훗날을 대비해 슬쩍 입을 열었다.

“허. 이것 참...혹시나 하는 마음에 연구해보라고 이야기한 건데 정말로 세균을 죽이는 푸른곰팡이가 존재할 줄은 꿈에도 몰랐군.”

“어? 그렇습니까? 저는 전하께서 무언가 확신을 갖고 말씀하신 줄 알았습니다만...”

이에 김 의원이 고개를 갸웃하자 정성국은 단순한 우연에 불과하다며 손을 내저었다.

“음? 아닐세. 그저 왕실 상단을 통해 입수한 유럽의 고서적을 살피던 중에 상한 과일을 이용해 병을 치료했다는 한 아프리카 부족의 주술사에 관한 글귀를 보고 상한 과일에 피는 푸른곰팡이 덕분이 아닐까 싶어 한 번 연구해보라고 한 거지.”

애당초 말라리아 치료제 역시 킨코나 나무껍질을 복용하는 남미 원주민들의 민간요법에서 단서를 얻어 개발했고, 이 때문에 의학 연구소에서는 여러 민간요법이 실제로 효과가 있는지, 그리고 효과가 있다면 어떤 성분 때문인지를 연구하고 있었기에 김 의원은 정성국의 말에 딱히 당황하진 않았다.

“아. 그렇습니까? 이것 참...하늘이 아국을 돕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런 김 의원의 반응에 정성국은 내심 안도하며 곧바로 화제를 돌렸다.

“아무튼, 푸른곰팡이에 세균을 죽이는 작용을 하는 물질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게 된 이상 이 푸른곰팡이 연구에 더 많은 인력을 집중하도록 하게.”

이에 김 의원은 당연한 것 아니겠냐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응당 그래야지요. 푸른곰팡이에서 세균을 죽이는 작용을 하는 물질을 추출하고 정제해 약으로 만들 수 있다면 수많은 사람을 살릴 수 있을 테니까요.”

“그렇지. 그리고 그 물질...흠. 일단 페니실린이라 칭하지. 이 페니실린을 추출하고 정제해 약으로 만드는 연구는 화학자들과 함께하게.”

정성국이 슬쩍 자신에게 익숙한 페니실린이라는 이름을 붙였지만, 김 의원은 크게 개의치 않았다.

어차피 이름이 중요한 것은 아니었고, 아직 연구원들도 푸른곰팡이에서 어떠한 물질이 항균작용을 하는 것인지는 파악하지 못했으니까.

다만 김 의원은 정성국이 화학자들과 함께 연구해보라는 이야기에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예? 화학자들과요?”

“그래. 이 페니실린의 화학적 구조를 밝혀내야 대량생산을 할 수 있을 테니까.”

플레밍은 페니실린을 처음으로 발견하긴 했지만, 몇 번의 실험 끝에 자신의 발견을 실패로 단정하고 페니실린의 연구에 손을 뗐다.

하지만 병리학자 하워드 플로리와 생화학자 에른스트 체인은 우연히 플레밍의 발표자료를 확인하고 플레밍의 연구가 너무 엉성해 실패했을 뿐이며 자신들이 연구하면 새로운 결과를 얻을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해 연구에 착수했고, 결국 페니실린이 효과가 있다는 것을 입증해 내었고.

다만 이들도 페니실린의 대량생산에서는 막혔고, 페니실린의 화학적 구조를 밝혀내 페니실린을 대량으로 생산해 인류를 구원한 것은 결국 여성 화학 공학자인 마가렛 허친슨 루소였다.

그렇기에 정성국은 화학자와 함께 연구해보라고 조언한 것이고, 이러한 정성국의 조언에 김 의원이 일리가 있다고 생각해 고개를 끄덕였다.

“아...그건 그렇군요. 알겠습니다. 전하. 새한성 대학교에서 화학을 가르치는 화학자들과 함께 연구를 진행하도록 하지요.”

“그래. 내가 아라에게도 이야기해두지.”

김 의원의 대답에 만족한 정성국은 이렇게 대화를 마무리하려다가 문득 행정청장이 최근 보고한 내용을 떠올리며 다시 입을 열었다.

“아. 그리고 김 의원.”

“예. 전하.”

자리에서 일어나려던 김 의원이 다시 자리에 앉자 정성국이 말했다.

“자네도 알다시피 계속해서 아국의 영역이 넓어지고 인구가 늘어나면서 행정청이 맡아야 할 업무가 늘어나고 있어. 그러니 언제까지 보건 업무를 행정청에서 맡을 수는 없네.”

“결국, 보건청을 신설해야 한다는 거군요. 하긴...언제까지 각종 보건 업무를 행정청에서 담당할 수야 없는 노릇이니 이해는 갑니다만...”

김 의원이 조금은 떨떠름한 얼굴로 그렇게 말을 흐리자 정성국이 피식 웃었다.

“자네는 여전히 보건청장 자리를 맡고 싶지는 않은가 보군?”

이에 김 의원이 멋쩍은 듯 웃었다.

“허허허. 솔직히 그렇습니다. 물론 공중 보건이 무척 중요하다는 사실을 잘 알지만...저는 의학의 발전에 매진하고 싶거든요.”

정성국은 가장 경험이 많고 의학 지식도 풍부한 김 의원이 보건청장이 되어 보건청을 진두지휘했으면 하는 마음이 없지는 않았지만, 생각해보면 김 의원은 현재도 많은 치료법을 개발하고 있었기에 이런 김 의원을 현업에서 손을 떼게 하는 것도 상책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기에 잠시 턱을 매만지며 생각에 잠겼다가 결정을 내렸다.

“흠...알겠네. 그럼 그동안 행정청에서 보건 업무를 담당하는 고위급 관리 중 적당한 이를 보건청장으로 세워야겠군.”

이에 김 의원은 슬쩍 미소짓다가 정성국의 눈치를 보고 애써 표정을 관리하며 고개를 숙였다.

“전하의 뜻을 받들지 못해 송구합니다.”

그런 김 의원을 보고 정성국은 피식 웃었다.

“아닐세. 대신 의학 발전에 매진해 그를 통해 더 많은 사람을 살릴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주게.”

“그야 물론입니다. 전하.”

* * *

“아. 오셨습니까? 마침 잘 되었군요. 막 사람을 보내 구시카와 공을 모실 생각이었는데.”

투로시노가 자신의 집무실을 들어오는 구시카와 조슈를 반기며 이렇게 말을 건네자, 구시카와 조슈는 눈을 번쩍였다.

구시카와 조슈는 현 유구국의 섭정인 오자토 초료의 측근으로, 그의 밀명을 받고 사츠마 번이 유구국을 감시하기 위해 파견한 이들의 눈을 피해 몰래 준비해둔 배를 타고 제주도에 도착한 후 마침 제주도에 정박해 있던 북미왕국의 배를 타고 아이누 섬으로 이동해 북미왕국의 보호국이 되겠다는 뜻을 투로시노에게 전했지만, 바로 무언가 답을 줄 거라는 예상과는 달리 본국에 이를 알리겠다고 나선 투로시노 덕분에 꽤 오랫동안 이 포로나이 항에서 허송세월을 보내야 했다.

해서 구시카와 조슈는 새한성에서 무언가 답이 오지 않았을까 싶어 이렇게 며칠마다 투로시노의 집무실을 방문했었고.

헌데 투로시노가 자신을 부를 생각이었다고 이야기하니 마침내 본국에서 투로시노에게 유구국의 요청에 대한 답을 전달했을 거라는 생각에 눈을 번쩍이며 급히 입을 열었다.

“예? 설마...새한성에서 연락이 온 겁니까?”

이런 구시카와 조슈의 반응에 투로시노는 구시카와 조슈가 이를 애타게 기다렸음을 알기에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새한성에서는 왜구의 침입에 고초를 겪고 있는 유구국의 사정을 듣고 무척 안타까워하며, 어떻게든 나라를 살리기 위해 아국에 보호를 요청한 유구국을 돕기로 했습니다.”

“그...그게 정말입니까!”

구시카와 조슈가 자신의 대답에 기쁨을 감추지 못하며 다시 한번 되묻자 투로시노가 빙긋 웃었다.

“그럼요. 해서 새한성에서는 유구국을 보호하기 위해 새로 함대까지 구성해 보냈습니다.”

“함대를요? 아! 설마 새로 구성된 함대가 유구국에 배치되는 겁니까?”

구시카와 조슈는 이곳 포로나이에서 머무르며 북미왕국의 군사체계를 어느 정도 알 수 있었고, 그렇기에 북미왕국이 자신들의 요청을 수락한다면 3함대에서 일부 전선을 파견하지 않을까 싶었는데 본국에서 따로 함대를 구성해 파견했다는 이야기에 놀란 얼굴로 질문을 던지자 투로시노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이곳에서 잠깐 휴식을 취한 후 곧바로 유구국으로 향할 예정이지요. 아. 저기를 보십시오. 저기 보이는 전선들이 바로 유구국에 파견될 전선들입니다.”

투로시노가 집무실 창가를 가리키며 이야기하자 목이 꺾일 정도로 빠르게 고개를 돌린 구시카와 조슈가 저 멀리 보이는 선착장에 정박한 거대한 크기의 선박을 보고 눈을 크게 떴다.

“어? 저건...철선 아닙니까?”

북미왕국에서 철선은 의외로 수송선의 역할을 하는 터라 구시카와 조슈가 조금 의아하다는 얼굴로 중얼거리자 투로시노가 씩 웃었다.

“예. 최근에 건조한 신형 전선이지요.”

“신형 전선이요?!”

“그렇습니다. 아국의 최신 기술이 집약된 신형 전선이지요. 아마 천급 전선보다 전투력이 몇 배는 될 겁니다.”

“오오!”

구시카와 조슈는 3함대의 천급 전선이 얼마나 강력한지 알고 있었기에 이런 투로시노의 장담에 자신도 모르게 탄성을 내질렀고, 그런 구시카와 조슈를 보고 투로시노가 덧붙였다.

“비록 소규모 함대이긴 합니다만, 최근에 건조한 신형 전선만으로 구성된 최신예 함대라 전투력은 구시카와 공의 예상보다 더 대단할 겁니다. 그리고 이 함대를 지휘하시는 분은 악명높은 카리브 해의 해적들을 소탕한 것으로 유명한 김봉길 1함대 사령관이십니다.”

“헉! 김봉길 1함대 사령관께서 직접 함대를 이끌고 오셨다는 겁니까?”

구시카와 조슈는 이곳에서 머물며 여러 정보를 접했기에 김봉길 1함대 사령관이 정성국이 가장 신뢰하는 지휘관이자 해군 지휘관 가운데 가장 높은 지휘관이라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기에 그러한 김봉길 1함대 사령관이 직접 최신예 함대를 구성해 유구국을 지키기 위해 왔다는 이야기에 도저히 믿기지 않는다는 얼굴로 투로시노를 바라보자 투로시노는 믿으라는 듯 빙긋 웃었다.

“그렇습니다. 그러니 유구국에서는 더는 왜구나 다름없는 사츠마 번에게 막대한 조공을 바칠 필요가 없을 겁니다.”

“...정말...정말 감사드립니다.”

구시카와 조슈는 북미왕국에서 대답을 미뤘기에 북미왕국이 자신들을 돕지 않을 수도 있다고 생각해 무척 초조해했었는데, 이렇게 북미왕국에서 전격적으로 자신들을 돕겠다고 나서자 감격해 투로시노를 보고 깊이 머리를 숙이며 감사의 뜻을 표했고.

아이누인들도 예전에는 유구인들처럼 왜인들에 의해 착취당한 경험이 있었기에 구시카와 조슈가 지금 어떤 심정인지 충분히 이해한 투로시노는 빙그레 웃으며 입을 열었다.

“아닙니다. 그러니 슬슬 돌아가실 준비를 하시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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