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37화
앙골라 장가의 줌비는 슬슬 포르투갈과 평화협상을 하는 것이 어떻겠냐는 북미왕국의 제안에 흔쾌히 동의했다.
아무리 북미왕국의 지원을 받는다고 한들 포르투갈과 계속해서 전쟁을 치르는 것은 앙골라 장가에도 부담이 컸으니까.
특히 북미왕국에서 앙골라 장가를 돕기 위해 함대를 파견하긴 했지만, 북미왕국이 파견한 함대는 강력한 대신 소규모였기에 드넓은 브라질 동해안 지역을 완전히 방어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했다.
기껏해야 주요 항구인 마세이오 항, 살바도르 항, 리우데자네이루 항에 함대를 분산 배치해 방어하는 것이 전부라 포르투갈이 이러한 사실을 눈치채고 해군을 동원해 브라질 동해안 지역을 공격한다면 그동안 확보한 항구들을 모두 잃을 수밖에 없는 터라 이쯤에서 포르투갈과 평화협상을 통해 전쟁을 끝내는 것이 나아 보였던 것이다.
해서 줌비는 부하들과 상의해 이번 협상으로 포르투갈과의 전쟁을 끝내기로 결정을 내리고, 음베아에게 이번 협상에 대해 전권을 맡겼다.
해서 음베아는 협상을 위해 곧바로 북미왕국으로 향하는 배에 탑승했고.
북미왕국에 도착할 때까지 선실 안에 처박혀 외무청 관리에게 북미왕국의 말과 글을 배우던 음베아는 목적지인 새진주에 도착했다는 선원들의 이야기에 북미왕국에서 새김포와 함께 가장 거대한 항구라는 새진주를 구경하기 위해 바로 갑판으로 이동했고, 살바도르와는 전혀 다른 거대한 항구도시를 보고 내심 감탄했으며, 멀리서도 그 존재감을 과시하는 초고층 건물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허어. 김현우 함장에게 듣긴 했었는데...저렇게 높은 건축물이 존재한다니 정말 놀랍군요.”
멀리서도 보이는 초고층 건물에 눈을 떼지 못하는 음베아를 보고 음베아를 따라 갑판으로 나온 외무청 관리가 자랑스레 말했다.
“그렇지요? 저희도 저 초고층 건물을 볼 때마다 놀라곤 합니다.”
외무청 관리의 대꾸에 음베아는 고개를 끄덕이며 한참을 초고층 건물에 시선을 고정하다가 김현우 함장에게 들었던 이야기를 떠올리고 질문을 던졌다.
“헌데 저 건축물이 이 세상에서 가장 높다는 것이 정말입니까?”
“그렇습니다. 인간이 만든 건축물 중에선 가장 높다더군요. 그래서 아국의 백성들은 저 초고층 건물을 구경하기 위해 멀리서도 새진주를 방문하고, 덕분에 새진주는 언제나 저렇게 사람들로 바글바글하지요.”
이에 음베아는 조금은 당혹스러운 얼굴로 외무청 관리를 바라보았다.
“어? 그럼 저기 보이는 사람들이 다 새진주의 주민은 아니라는 겁니까? 저 초고층 건물을 구경하기 위해 다른 지역에서 새진주를 방문한...백성들이라고요?”
“그럼요.”
새진주는 북미 동해안 지역의 백성들이 수도인 새한성으로 이동하려면 거쳐야 하는 항구이기도 했고, 처음으로 고층 건물이 들어선 터라 언제나 관광객들이 넘쳐났다.
더불어 올해 초에 초고층 건물이 완공되고, 이 초고층 건물이 세계에서 가장 높은 건축물이라는 것이 알려지면서 북미왕국 건축기술의 정수를 직접 두 눈으로 보려는 관광객들이 너도나도 새진주를 방문하기 시작했기에, 새진주는 주민 반, 관광객 반이라는 소리까지 나올 정도였으니.
이를 외무청 관리가 웃으면서 설명하자 음베아는 큰 충격을 받은 얼굴로 점차 가까워지는 새진주를 응시하다 중얼거렸다.
“허...부럽군요.”
“예?”
외무청 관리가 음베아의 말에 고개를 갸웃하자 음베아는 새진주를 응시하면서 입을 열었다.
“북미왕국인들이 부유하다는 사실은 예전에 들어본 적이 있습니다만...일반 백성들이 여행에 나설 정도로 부유할 줄은 몰라서 말입니다.”
이 시대에 여행을 떠난다는 것은 귀족이나 부유한 상인이 아니라면 현실적으로 어려웠다.
먹는 것도, 자는 것도, 이동하는 것도 다 돈이 필요했으니까.
이를 알고 있는 음베아는 수많은 북미왕국의 백성들이 고작 관광을 위해 새진주를 방문한다는 사실에 그만큼 북미왕국의 백성들이 부유하다는 것을 파악하고 놀라고, 부러워한 것이고.
음베아의 설명에 이를 이해한 외무청 관리가 살짝 미소를 지으며 대꾸했다.
“아. 부럽다는 것이 그런 의미였군요. 맞습니다. 아국의 백성들은 꽤나 부유한 편이지요. 이는 아국의 자랑거리 중 하나이기도 하고요. 허나 앙골라 장가의 전권대사께서 그렇게 부러워하실 것은 없습니다. 앙골라 장가의 백성들도 가까운 미래에 아국의 백성들처럼 풍족하게 살아갈 수 있을 테니까요.”
이에 새진주를 바라보던 음베아는 떨리는 눈동자로 외무청 관리를 바라보았다.
“그게...정말로 가능할까요?”
이에 외무청 관리는 활짝 웃으며 대답했다.
“그럼요. 물론 그러려면 포르투갈과 평화 조약을 체결한 후 앙골라 장가의 내정과 개발에 전력을 다해야겠지만 말입니다.”
“으음...”
“그리고 앙골라 장가는 아국의 동맹국이니만큼, 아국에서도 앙골라 장가를 돕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겁니다. 그러니 앙골라 장가의 백성들도 한 20년 후쯤이면 아국의 백성들처럼 좋은 구경거리를 직접 보기 위해 기꺼이 여행을 떠날 정도로 부유해지지 않겠습니까?”
처음에는 외무청 관리의 말이 그저 빈말이라고 생각해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던 음베아였지만, 외무청 관리가 덧붙인 말에 희망을 품었다.
생각해보면 이 북미 대륙도 한때는 유럽의 식민지나 다름없었는데 북미왕국의 국왕이 약 20년 전에 이 북미 대륙에 상륙해 세력을 확장하고 북미왕국을 건국해 나라를 발전시킨 덕분에 북미왕국의 백성들이 저렇게 잘살게 되었으니 자신들도 노력한다면, 그리고 허허벌판이나 다름없는 북미 대륙 각지를 빠르게 개발해 이렇게 발전시킨 북미왕국이 도와준다면, 앙골라 장가도 북미왕국처럼 부유해질 수 있다고 생각했기에.
해서 음베아가 슬쩍 미소를 지으며 소망하듯 중얼거렸다.
“...한때 포르투갈인들의 노예로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제대로 입지도 못하며 시키는 일만 해야 했던 아국의 백성들이 여행을 떠날 정도로 부유해진 다라...하하하. 상상만 해도 흐뭇하군요. 정말 그런 날이 왔으면 좋겠습니다.”
이에 외무청 관리는 북미왕국에서 앙골라 장가를 전폭적으로 지원하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씩 웃었다.
“분명 그런 날이 올 겁니다. 아무렴요.”
* * *
“앙골라 장가와 포르투갈 간의 협상이 드디어 끝났다고?”
앙골라 장가의 전권대사가 새진주에 도착한 이후 앙골라 장가와 포르투갈의 전권대사는 웅크린 늑대의 중재 하에 평화협상을 시작했다.
그리고 마침내 이 평화협상이 끝났다고 이야기하는 조용한 곰을 보고 정성국이 눈을 빛내자, 조용한 곰이 대답했다.
“그렇습니다. 그리고 협상이 끝나자마자 평화조약문을 작성해 앙골라 장가와 포르투갈의 전권대사들이 서명함에 따라 두 나라의 전쟁은 오늘부로 끝난 셈이지요.”
전생에선 결국 포르투갈의 압박에 못 이겨 배신자의 손에 목숨을 잃은 줌비와 포르투갈에 소탕되었던 팔마레스로 도망친 노예들이 현생에선 앙골라 장가라는 나라를 세우고, 포르투갈도 앙골라 장가의 존재를 인정했다는 사실에 정성국은 묘한 미소를 짓다가 그런 정성국의 반응에 의아해하는 조용한 곰의 시선을 느끼고 표정 관리를 하며 화제를 돌리기 위해 입을 열었다.
“평화조약문 내용을 볼 수 있나?”
“여기 있습니다. 전하.”
조용한 곰이 정성국에게 앙골라 장가와 포르투갈이 맺은 평화조약문 사본을 넘겨주자 정성국은 이를 빠르게 훑어보고 중얼거렸다.
“흠. 결국, 앙골라 장가 전권대사의 주장대로 위도를 기준으로 영역을 나눈 건가?”
“그렇습니다. 포르투갈 전권대사는 현재 두 나라가 장악한 영역을 명시하고 이 영역을 침범하지 않는다는 문구를 삽입함으로써 훗날 내륙으로 확장할 수 있는 여지를 어떻게든 남기려 했지만, 포르투갈과는 달리 당장은 브라질 북부 내륙 지역으로 진출하기 어려운 앙골라 장가의 처지에선 이를 절대 허용할 수 없었으니까요.”
비록 북미왕국에서 포르투갈의 내륙 진출을 우려해 아마존 강 하구 일대를 뜯어내긴 했지만, 아마존 강 말고도 여러 강이 있는 터라 포르투갈은 이를 따라 내륙으로 진출할 수도 있었고, 육로를 이용해 내륙으로 진출할 수도 있었다.
그렇기에 웅크린 늑대는 포르투갈 전권대사인 휴고가 은근슬쩍 삽입하려는 문구를 통해 포르투갈의 속내를 파악하고 포르투갈을 경계하며 음베아에게 이를 알려주었고. 음베아는 웅크린 늑대의 말을 듣고 기겁했다.
당장 브라질 남동부를 개발하려는 앙골라 장가의 입장에선 브라질 북동부 내륙으로 진출하려는 포르투갈을 막을 수 없었으니까.
해서 음베아는 웅크린 늑대에게 여러 조언을 청했고, 웅크린 늑대는 기꺼이 음베아에게 조언을 해 주었다.
“해서 앙골라 장가의 전권대사는 그런 문구를 삽입한다면, 훗날 두 나라가 내륙으로 영역을 확장하면서 다시 영토분쟁이 생길 수 있으니 이번에 양국의 경계를 확정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더불어 저희 입장에서도 포르투갈이 내륙으로 영역을 확장하면서 식민지를 넓혀봐야 좋을 것이 없잖습니까. 해서 웅크린 늑대가 은근히 앙골라 장가 전권대사의 편을 들어주었고, 여기에 급한 것은 포르투갈이다 보니 포르투갈 전권대사는 결국 앙골라 장가 전권대사의 주장에 동의하며 최대한 경계선을 남쪽으로 내리려 했습니다. 그 결과 남위 9도를 경계선으로 정하는 것에 양국의 전권대사가 동의했습니다.”
그러면서 웅크린 늑대가 미리 준비한 남위 9도에 선이 그어져 있는 남미 대륙의 지도를 정성국에게 건네자 정성국은 이를 확인하고 슬쩍 웃었다.
“나쁘지 않네. 포르투갈 식민지 확장을 완전히 막은 셈이니.”
이번 평화 조약으로 포르투갈은 남쪽으로는 남위 9도 이하로는 영역을 넓힐 수 없고, 서쪽으로는 북미왕국에 넘긴 아마존 강 하구 일대에서 막힐 수밖에 없는 터라 전생처럼 각종 광물이 묻혀 있는 브라질 고원 지대로 진출할 수 없게 된 만큼, 포르투갈은 전생과는 달리 남미 지역보다 다른 지역의 식민지에 더 집중할 것이 분명했다.
더불어 북미왕국에서 계속해서 신대륙에서만 재배할 수 있는 각종 상품 작물을 유럽에 수출해 상품 작물의 가격을 폭락시키고, 막대한 지력을 소모하는 사탕수수 경작으로 브라질 북부 해안 지역의 경작지가 황폐해지면 브라질 북부 해안 지역의 가치는 계속해서 떨어질 테니 어쩌면 먼 미래에 포르투갈은 브라질 북부 해안 지역의 식민지를 포기할 수도 있었고.
해서 정성국이 흡족한 표정으로 계속 평화조약문을 살펴보다 의외라는 듯 중얼거렸다.
“그리고...허. 포로의 몸값을 무척 높게 책정했네?”
이에 조용한 곰이 고개를 끄덕였다.
“예. 개발할 곳이 많고 인구가 부족한 앙골라 장가 입장에선 포로들의 몸값을 받는 것보다는 포로들의 노동력을 이용하는 편이 나으니까요.”
“허나 인력이 부족한 것은 포르투갈 역시 마찬가지일 텐데 이걸 허용했다고?”
포르투갈은 이미 노예무역을 포기하기로 했고, 애초에 포르투갈은 인구가 많은 나라가 아니었다.
포르투갈 본국의 영토는 전생의 남한과 비슷한 면적이었지만, 인구는 고작 200만 내외에 불과했으니.
그렇기에 노예무역마저 포기한 상황에서, 그리고 북부 해안 지역의 노예들이 어떻게든 앙골라 장가로 탈출할 것이 뻔한 상황에서 브라질 북부 해안 지역의 농장을 놀리지 않으려면 많은 인력이 필요했고, 이러한 인력을 충원할 길은 앙골라 장가에 남아있는 포르투갈인들과 포로로 잡힌 병사들이었고.
헌데 포르투갈 전권대사는 이를 포기한 셈이라 정성국이 의외라는 듯 중얼거리자 조용한 곰이 말했다.
“양국의 경계선을 설정할 때 앙골라 장가가 양보해준 만큼, 이 부분은 포르투갈에서 양보해주었습니다. 물론 5년 후엔 포로들을 풀어주겠다고 약속했기 때문이기는 합니다만...”
원래 앙골라 장가는 남위 8도를 기준으로 하자고 주장했지만, 그렇게 되면 포르투갈의 주요 항구 중 하나인 레시페 항마저 앙골라 장가에 넘어가게 되는 터라 휴고는 기를 쓰고 남위 9도를 주장했고, 음베아는 이를 받아들이는 대신 포로의 몸값을 대폭 올려 포로들이 몸값을 지불하고 풀려나는 것을 막기로 했다는 설명에 정성국이 그제야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흠. 이러면 포로 중 귀족들을 제외하면 대부분은 5년간 노역에 종사해야겠군.”
“그렇습니다. 그리고 이들의 노동력으로 앙골라 장가가 빠르게 발전할 테니 나쁠 것은 없지요. 해서 앙골라 장가 전권대사는 5년 동안 포로들을 철저히 부려먹을 생각인 듯싶더군요.”
이에 정성국은 혹시나 하는 마음에 입을 열었다.
“아. 그렇다고 노예처럼 마구 다루지는 말라고 하게. 자네도 잘 알지?”
정성국의 당부에 조용한 곰이 씩 웃으면서 대답했다.
“그럼요. 소중한 노동력인데 어찌 그러겠습니까. 아국에서 포로들을 어떻게 관리해야 효율적으로 이들의 노동력을 이용할 수 있는지 잘 가르쳐줄 생각입니다.”
“그래. 이번에 앙골라 장가로 보내는 각종 건설 장비들과 포로들을 이용해 빠르게 앙골라 장가를 개발하도록 하게.”
“알겠습니다. 전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