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36화
정성국은 왜국 사절단과의 협상이 성공적으로 끝났다는 외무청의 보고를 받자마자, 유구국으로 함대를 파견하기 위해 군사청장과 김봉길 1함대 사령관을 호출했고, 둘은 함께 정성국의 집무실을 방문했다.
“부르셨습니까. 전하.”
“왔나. 앉게.”
정성국이 집무실을 방문한 군사청장과 김봉길에게 커피를 건네준 후 잠시 잡담을 나누다가 이들을 호출한 이유를 꺼냈다.
“방금 외무청에서 왜국 사절단 대표와의 협상이 잘 끝났다는 보고를 올렸네.”
그 말에 커피의 향을 즐기던 군사청장이 눈을 번뜩이며 커피잔을 내려놓고 정성국을 바라보았다.
“허면?”
“그래. 우리가 유구국에 개입하더라도 막부는 움직이지 않을 거야. 그러니 북방항로가 닫히기 전에 출항하는 것이 나을 것 같은데...준비는 끝났나?”
그 말에 군사청장은 김봉길을 바라보았고, 김봉길은 자신만만한 미소와 함께 보고했다.
“이미 신형 전선 4척으로 원정 함대를 구성해 출항 준비까지 모두 마친 상태입니다. 그러니 전하께서 명령만 내리신다면 바로 출항할 수 있습니다.”
1만 톤급 철선 1척, 5천 톤급 철선 1척, 3천 톤급 철선 2척으로 구성된 원정 함대의 출항 준비를 끝내 두었다는 김봉길의 보고에 정성국은 고개를 끄덕이며 군사청장을 바라보았다.
“그래? 그럼 원정 함대의 보급은?”
“이미 아이누 섬으로 각종 보급 물자를 미리 보내둔 상태고, 3함대에서 원정 함대의 보급을 책임져주기로 했습니다.”
군사청장의 보고에 정성국이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명령을 내렸다.
“흐음...그렇단 말이지? 그럼 3일 후에 출항하도록 하게.”
“어라? 3일 후요?”
이미 모든 준비가 끝났고, 막부에서도 유구국 문제에 개입하지 않겠다고 약속한 이상, 하루라도 빨리 움직이는 것이 낫지 않으냐는 얼굴을 하는 김봉길을 보고 정성국이 어깨를 으쓱했다.
“왜국 사절단이 그때 떠나기로 했거든. 포로나이로 가는 김에 왜국 사절단을 태우고 가게.”
왜국 사절단이 왜국에 도착해 북미왕국과 협상한 내용을 막부에 알려야 막부에서도 유구국 문제에 개입하지 않을 테니, 김봉길도 왜국 사절단이 아직 새한성에 있는 상황에서 먼저 출항해봐야 크게 의미 없다는 것은 이해했다.
다만 새김포에서 포로나이를 오가는 다른 배를 놔두고 신형 전선에 왜국 사절단을 태우라는 정성국의 명령은 조금 의외라 김봉길이 고개를 갸웃했고.
“왜국 사절단을요? 쾌적한 여객선을 내버려 두고 뭐하러...아. 왜국 사절단에게 신형 전선이 얼마나 강력한지를 알리실 생각이십니까?”
신형 전선은 기존의 전선과는 달랐고, 그렇기에 포로나이에 도착할 때까지 신형 전선에 탑승한 해군 병사들이 신형 전선에 익숙해질 수 있도록 항해하면서 각종 훈련을 진행할 예정이었는데, 이를 왜국 사절단에게 보여주어 신형 전선의 전투력이 기존의 전선보다 훨씬 강력하다는 것을 알릴 생각이냐는 김봉길의 물음에 정성국은 빙긋 웃었다.
“그렇네. 왜국 사절단에게 신형 전선의 전투력을 제대로 알려 이들을 통해 유구국에 파견된 신형 전선으로 구성된 원정 함대가 규모는 작아도 얼마나 강력한 함대인지 왜국에 알릴 생각이야. 그래야 유구국 문제로 사츠마 번과 아국이 충돌했을 때, 어떻게든 사츠마 번을 도와야 한다는 주장보다 유구국 문제에 손을 떼야 한다는 막부의 주장에 손을 들어주는 이들이 더 많을 테지.”
정성국의 말에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 김봉길이 정성국을 보고 물었다.
“흐음...그건 그렇겠군요. 헌데 전하.”
“응?”
“사츠마 번과 충돌하게 되면, 사츠마 번을 직접 공격해도 되겠습니까?”
살벌한 미소를 지으며 물어보는 김봉길을 보고 정성국이 턱을 매만지며 질문을 던졌다.
“사츠마 번을 직접 공격하겠다고? 아. 유구국에서 대기하며 사츠마 번의 공격을 방어하는 것이 아니라 아예 원정 함대를 이끌고 가고시마 만 안쪽으로 들어가 사츠마 번의 본거지를 포탄으로 박살이라도 낼 생각인가?”
사츠마 번의 본거지라 할 수 있는 가고시마 성은 해안에 무척 가까이 위치해 있었기에 해안가에서의 공격에 무척 취약하긴 했다.
더불어 신형 전선에 장착된 해군형 120mm 화포는 포신 길이를 키워 사거리를 늘린 녀석이니만큼, 김봉길이 원정 함대를 끌고 가고시마 만 안쪽으로 진입하면 곧바로 가고시마 성을 공격할 수도 있었고.
해서 정성국이 묻자 김봉길이 씩 웃으며 답했다.
“그렇습니다. 그래야 유구국 문제를 빠르게 처리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저나 원정 함대가 언제까지 유구국에서 지낼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요.”
김봉길은 1함대 사령관이니만큼, 그리고 원정 함대도 결국 1함대 소속이니만큼, 계속해서 유구국에 머무를 수는 없었다.
그러니 빠르게 유구국 문제를 해결하려면 사츠마 번의 본거지인 가고시마 성을 공격하는 것이 최선 아니겠냐는 얼굴로 정성국을 바라보자 정성국이 잠깐 고민하다 지침을 내려주었다.
“그야 그런데...흠. 그럼 이렇게 하지. 일단 포로나이에서 유구국 사절을 태우고 유구국에 이동하게. 그리고 유구국에 도착하면 사츠마 번에서 유구국에 파견한 관리들을 모두 추방하고.”
“추방이요? 유구인들은 그 치들에게 원한이 꽤 깊을 텐데...유구인들의 환심을 얻기 위해 그냥 쓸어버리는 것이 낫지 않습니까?”
사츠마 번은 유구국을 점령한 이후 막대한 조공을 요구했다.
그리고 유구국은 이 조공을 감당하기 위해 무거운 인두세를 부과했기에, 유구인들은 남녀를 불문하고 죽어라 일을 해야 했고, 그럼에도 세금을 감당하지 못해 사츠마 번에 노예로 팔려가거나 인두세를 줄이고자 자체적으로 인구를 조절해야 할 정도였고.
그러니 유구인들은 사츠마 번에 강한 원한을 가질 수밖에 없었고, 그런 만큼 유구국에 파견된 사츠마 번의 관리와 병사들을 쓸어버리면 쉽게 유구인들의 호의를 얻을 수 있는데 추방할 필요가 있겠느냐고 묻는 김봉길이었고, 이에 정성국이 어깨를 으쓱했다.
“그렇게 되면 사츠마 번은 꽤 시간이 흐른 후에야 유구국의 상황이 급변했다는 사실을 파악하겠지. 그리고 아국과의 충돌 시점도 늦춰지겠고.”
“아. 사츠마 번의 관리들을 추방해 아국이 유구국을 보호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리시겠다는 거군요? 해서 사츠마 번이 유구국을 되찾기 위해 병력을 파견하게끔 유도하고?”
김봉길이 정성국의 속내를 짐작하고 확인 차 질문하자 정성국이 고개를 끄덕였다.
“정확하네. 그리고 유구국을 되찾겠다고 사츠마 번의 병사들이 배를 타고 몰려오면, 그때는 사츠마 번의 공격을 허락하지.”
“하하하. 관리들을 통해 유구국이 아국의 보호국이 되었다는 사실을 알렸는데도 사츠마 번이 유구국을 공격하면, 아국을 무시한 것과 같으니 그때는 사츠마 번을 아예 박살 내도 된다는 뜻이로군요?”
김봉길이 무척 기대된다는 얼굴로 그렇게 이야기하자 정성국이 선선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 그리고 그 정도 명분이 있다면, 다른 영주들도 아국에 반감을 드러내기보다는 사츠마 번의 무모함을 탓할 테고.”
그때 옆에서 가만히 듣고 있던 군사청장이 입을 열었다.
“허나 외무청의 보고로는 아이누 독립 전쟁 이후 왜국은 아국 전선의 전투력을 무척 높게 평가한다고 들었습니다. 허니 사츠마 번에서 관리들을 통해 유구국에 아국의 신형 전선으로 구성된 함대가 배치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이를 경계해 움직이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만...”
이에 정성국은 크게 개의치 않는다는 얼굴로 대꾸했다.
“전혀 상관없네. 물론 저 친구는 조금 실망하겠지만.”
그러면서 김봉길을 가리키자 김봉길이 웃음을 터트렸다.
“하하하. 그렇긴 하죠. 다만 저뿐만이 아니라 원정 함대의 병사들도 다들 실망할 겁니다.”
“에이. 그럴 리가.”
정성국이 코웃음을 치자 김봉길이 진짜라는 듯 말했다.
“정말입니다. 원정 함대의 병사들도 실전을 경험했던 3함대의 이야기를 듣고 무척 기대하고 있거든요.”
“실전을?”
이에 김봉길이 슬쩍 웃으며 말했다.
“실전도 그렇고...추가 수당도 그렇지요.”
“아...”
생각해보면 다른 함대와는 달리 1함대는 후방이라 실전을 경험하지 못한 탓에 실전에 참여한 후 받는 각종 추가 수당과는 인연이 없었다.
이를 떠올린 정성국이 아차 하는 얼굴이자 군사청장이 쓴웃음을 지으며 옆에서 이야기했다.
“제가 알기로도 이 추가 수당 때문에 원정 함대에 지원한 병사들이 무척 많았습니다. 특히 왜국은 아이누 독립 전쟁 당시 지급 전선 1척에도 빌빌대지 않았습니까. 그러니 신형 전선으로 구성된 원정 함대라면 사츠마 번의 수군 따위는 손쉽게 상대할 수 있을뿐더러, 신형 전선은 철선이라 기존의 전선보다 더욱 튼튼하니 만큼...”
“위험하지도 않고, 추가로 돈을 벌 기회라 여긴다는 거지?”
정성국이 조금 걱정스러운 얼굴로 질문하자 김봉길이 웃으며 대답했다.
“그렇긴 합니다만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지금이야 들떠있습니다만...포로나이로 이동하는 동안 철저히 훈련시켜서 적을 얕보는 일은 없게 만들 테니까요.”
정성국은 말을 하지 않았는데 자신의 걱정을 눈치챈 김봉길을 보고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그래. 자신감은 좋네만, 자만심은 안돼. 알지?”
“물론입니다.”
“그럼 자네는 바로 준비하도록 하게.”
“알겠습니다. 그럼 내년에 뵙겠습니다.”
정성국의 축객령에 김봉길이 자리에서 일어나 정성국에게 인사하고 집무실 밖으로 나갔고, 정성국은 집무실에 남은 군사청장을 보고 물었다.
“유구국 문제는 그렇다 치고...아마존 탐사대의 창설은 어떻게 되어가나?”
북미왕국은 앙골라 장가와 포르투갈을 중재해주는 대가로 아마존 강 하구 일대를 얻을 예정이었고, 아마존 강 하구를 얻은 만큼, 정성국은 본격적으로 아마존 강을 탐사하기 위해 아마존 탐사대를 창설하라고 명령해두었기에 이에 대해 질문하자 군사청장이 바로 답했다.
“일단 각 탐사대에서 경험 많은 탐사대원들을 빼서 아마존 탐사대를 창설했습니다.”
“음? 설마 그들만으로 아마존 강을 탐사할 생각은 아니지?”
아마존 강은 나일강과 함께 세계 2대 강 중 하나라는 사실을 아는 정성국이 설마 하는 얼굴로 군사청장을 바라보자 군사청장이 살짝 미소지으며 답했다.
“유럽에서 확보한 지도를 통해 아마존 강이 남미 지역으로 뻗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데 고작 20명으로 이곳을 탐사하기야 하겠습니까. 이들은 교관입니다.”
“교관?”
“예. 어차피 외무청과 개발청에 문의를 해보니 아마존 강 하구 일대가 아국의 영토가 되고, 이곳에 거점 항구를 세우기까지는 꽤 시간이 걸릴 것 같으니 새롭게 해군 탐사대원을 모집해 훈련시킬 생각입니다.”
“새로 해군 탐사대원을 모집해...훈련시켜 아마존 강에 투입하겠다고?”
아마존 강의 자연환경이 얼마나 만만치 않은지 잘 아는 정성국이 떨떠름한 얼굴로 군사청장을 바라보자 군사청장이 당연한 것 아니냐는 얼굴로 답했다.
“그렇다고 다른 탐사대에 소속된 병사들을 아마존 강으로 보내는 것도 비효율적이지 않겠습니까. 북태평양 탐사대나 북대서양 탐사대가 경험했던 환경과 아마존 강의 환경은 전혀 다른 터라 이들의 경험은 크게 도움이 되지 않고, 남태평양 탐사대는 남태평양 지역을 순찰하는 것이 우선이라 뺄 수 없지요.”
“아...그것도 그렇군.”
“그리고 전하께서도 아시겠지만, 현재 미시시피 탐사대는 미시시피 강 지류를 탐사하며 원주민들과 계속해서 접촉하며 얼굴을 익히고 친분을 쌓고 있습니다. 헌데 이들을 빼서 아마존 강에 투입하면...그동안의 노력이 물거품이 되어버릴뿐더러 솔직히 미시시피 강의 환경과 아마존 강의 환경도 다른 편이라...”
미시시피 탐사대는 꾸준히 미시시피 강과 그 지류를 탐사했고, 덕분에 탐사대가 탐험한 영역은 대평원 지역 전체에 달했다.
즉, 북미왕국의 탐사한 영역은 전생의 미국의 영역인 사우스다코타 주, 노스다코타 주, 몬태나 주와 캐나다의 영역인 매니토바 주, 서스캐쳐원 주, 알버타 주의 남부 지역까지 넓어지게 되었고.
그러면서 여러 부족과 적당히 필요한 물품들을 거래하면서 친분을 쌓고 있었는데, 이들을 굳이 아마존 강에 투입할 필요가 있느냐는 군사청장의 이야기에 정성국은 그도 그렇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초짜들에게 그 험난한 아마존 강 탐사를 맡기는 것도 걱정되어 한참을 고민하다 한숨을 쉬며 말했다.
“휴우. 아마존 강에는 수십 미터 길이를 자랑하는 거대한 뱀을 비롯해 각종 위험한 괴물이 넘쳐나는 터라 피해를 줄이기 위해서라도 최대한 경험 많은 이들로만 탐사하고 싶었는데...어쩔 수 없군. 모험심 강한 젊은이들이 헛되이 죽지 않도록 철저히 훈련시키도록 하게. 기존의 해군 탐사대 훈련보다 몇 배는 더 철저히. 그리고 아마존 강 하구 일대를 확보하면 현지인들도 일부 고용하도록 하고.”
이런 정성국의 이야기에 군사청장은 정성국이 유럽인들이 남긴 과장된 기록을 믿는 것 같아 조금은 당황했지만, 준비야 철저할 수록 좋았고, 훈련은 많이 할 수록 나쁠 것 없었기에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전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