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34화
선실에서 자신의 가신과 대화를 나누던 왜국 사절단의 대표인 홋타 마사토라는 새김포에 도착했다는 말을 전해 듣고 한걸음에 갑판 위로 올라왔고, 눈앞에 보이는 광경에 압도된 듯 한참을 바라보다 숨을 내쉬며 중얼거렸다.
“후우. 이거 정말 놀랍군. 저 거대한 철선이 저렇게나 많이 정박해 있는 모습이라니...”
그리고 함께 갑판 위로 올라왔다 마찬가지로 거대한 항구 도시인 새김포를 정신없이 살펴보던 가신은 홋타 마사토라의 중얼거림에 정신을 차리며 대꾸했다.
“그러게 말입니다. 물론 저 새김포 항이 북미 서해안에서 가장 큰 항구이자 수도인 새한성의 외항에 가깝기에 수많은 선박이 드나든다는 이야기를 듣기야 했습니다만 이건 정말이지...장관이로군요.”
북미왕국이 최대한 정보를 차단하는 데 주력했지만, 조청전쟁 이후 왜국이 작정하고 북미왕국의 정보를 수집하자 꽤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일단 왜국은 나가사키를 통해 네덜란드와 교류했기에 유럽에 퍼진 북미왕국의 정보를 획득할 수 있었고, 여기에 조선에 퍼진 북미왕국의 정보는 워낙 많았기에 왜관을 통해 비교적 수월하게 북미왕국의 정보를 습득한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정보들을 북미왕국을 방문하려는 왜국 사절단에게 흘러 들어갔고.
그렇기에 홋타 마사토라는 저기 보이는 철선이 개발된 지 채 10년도 되지 않았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는데, 저런 철선이 수십 척이나 있었으니 북미왕국의 국력에 새삼 놀랄 수밖에 없었다.
특히 왜국 사절단이 타고 있는 이 배도 그렇고, 이곳 새김포에 도착하기까지 들리던 항구에도 대여섯 척씩은 배치되어 있었으니 북미왕국이 단기간에 건조한 철선은 어마어마한 숫자라는 뜻이고, 이를 통해 북미왕국의 국력을 짐작할 수 있었으니 홋타 마사토라는 질린 기색이 역력했고.
그때 옆에서 연신 두리번거리며 새김포의 모습을 바라보던 가신은 화들짝 놀라며 두 손으로 눈을 비볐다가 자신이 잘못 본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고 입을 쫙 벌리며 말했다.
“헉! 저기! 저걸 좀 보시지요!”
“음? 맙소사. 저...저건 대체 무슨 배길래 저리 크단 말인가!?”
홋타 마사토라가 가신과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이들이 탄 배는 새김포에 가까워졌고, 그렇기에 이들은 여러 선착장 가운데 한 선착장에서 유난히 크고 거대한 철선을 볼 수 있었다.
그리고 그 거대한 철선은 섬나라이기에 배의 중요성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왜인들의 마음을 사로잡았고.
그렇기에 홋타 마사토라는 급히 포로나이에서부터 자신을 안내해주던 외무청 관리를 찾았고, 그를 보자마자 질문을 던졌다.
“혹시 저 제일 커다란 배가 무슨 배인지 들을 수 있겠습니까?”
홋타 마사토라의 손가락을 따라 고개를 돌린 외무청 관리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무언가 생각난 듯 손가락을 튕겼다.
“음? 아! 저게 말로만 듣던 신형 전선인 모양이군요.”
“신형 전선? 그럼 저게 전투용 선박이라는 겁니까?”
“그렇습니다. 물론 기존의 인급, 지급 천급 전선도 강력합니다만, 아국의 선박 건조기술의 수준이 올라가고 철선까지 건조할 수 있게 되었는데, 계속해서 나무로 만든 전선을 건조할 이유가 없잖습니까. 해서 신형 전선을 개발하고 있다 들었습니다만 저게 그 신형 전선 중 하나인 모양입니다.”
확신에 차 설명하는 외무청 관리의 모습에 홋타 마사토라는 자신도 모르게 탄식했다.
예전 막부는 고작 1척의 지급 전선을 상대하지 못해 막대한 피해를 보았고 결국 에조를 탈환하는 것을 포기했다.
헌데 그 대단한 지급 전선보다 몇 배는 커다란 철선이니만큼, 이번에 북미왕국에서 개발했다는 신형 전선이 얼마나 대단한지는 능히 짐작되었으니 말이다.
해서 홋타 마사토라는 잠시 넋을 놓고 북미왕국의 다양한 크기의 신형 전선들을 바라보다가 정신을 차리고 혹시나 싶어 옆에 있는 외무청 관리에게 요청했다.
“으음...혹시 저 제일 커다란 신형 전선을 구경할 수 있겠습니까?”
이에 신형 전선은 처음 보는 터라 열심히 구경하던 외무청 관리가 회의적인 얼굴로 말했다.
“이렇게 멀리서 구경하는 것은 상관없겠지만, 가까이서 구경하거나 저 신형 전선에 탑승하긴 어려울 겁니다. 저 선착장은 군용 선착장이라 관련자가 아니면 저 안에 들어가지도 못하거든요.”
“하아...정말 안 되겠습니까?”
홋타 마사토라가 간곡히 부탁하자 외무청 관리는 잠시 생각해보았지만, 보안을 무엇보다 중요시하는 북미왕국에서 외국 사절을 전선에 태울 것 같지는 않았고.
다만 사절단의 대표인 홋타 마사토라가 저렇게 부탁하니 매정하게 끊을 수 없다고 판단한 외무청 관리가 너무 기대하지는 말라는 얼굴로 대답했다.
“흠...일단 군사청에 요청은 해보겠습니다만, 너무 기대하지는 마십시오.”
“부디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그 후 외무청 관리가 곧 있을 하선을 준비하고자 선실로 향했을 때, 홋타 마사토라의 가신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입을 열었다.
“허. 놀랍군요. 저 정도 크기면 아타케부네보다 몇 배는 커 보이는데, 전투력이 얼마나 가공할지 정말 궁금하군요.”
“저기 보이는 지급 전선만 하더라도 그렇게 대단했는데, 저 배는 철선이고 몇 배는 크니 전투력은 지급 전선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대단하겠지.”
홋타 마사토라는 가신의 물음에 뻔하지 않겠느냐는 얼굴로 이렇게 대답한 후 군용 선착장을 지나쳐 점차 멀어지고 있었지만, 여전히 존재감을 보여주는 신형 전선 중 가장 큰 전선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다만...난 저만한 크기의 쇳덩이를 바다에 띄운 북미왕국의 기술력이 놀랍군.”
“...확실히 그렇지요. 북미왕국이 자랑하는 전기라던가 이런 것은 신기하고 편리하기는 한데 너무 뜬금없는 기술이라 그게 얼마나 대단한 기술인지는 이해하지 못했는데, 저 거대한 쇳덩이가 바다에 떠 있는 모습을 보니 북미왕국의 기술 수준을 확실히 깨닫게 되는군요. 그리고 외국 상인들과 조선인이 왜 북미왕국의 기술을 세계에서 제일로 평가했는지 이해했고요.”
가신의 대답에 홋타 마사토라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래. 그건 부정할 수 없군. 그리고 북미왕국의 기술력이 세계에서 최고라면, 이들과 우호적으로 지내면서 이들의 기술을 배울 필요가 있어. 그러니 새한성에 도착하면 자네는 최대한 많은 서적을 구해보게.”
“알겠습니다.”
* * *
정성국은 조용한 곰이 찾아와 보고한 내용에 묘한 표정을 지었다.
“아. 왜국 사절단이 새김포에 도착했다고?”
“그렇습니다.”
“그럼 사절단의 규모는?”
이 질문에 조용한 곰이 빙긋 웃으며 답했다.
“투로시노가 나름 잘 설득한 모양입니다.”
“하하하. 그거 다행이군.”
북미왕국에서 왜국 사절단의 새한성 방문을 허락하자 막부는 무려 500명 규모의 대규모 사절단을 보내길 원했다.
허나 북미왕국은 그런 대규모 사절단의 방문을 허용해봐야 일거리만 많아질 뿐이라 이를 거절하며 딱 20명만 허용했고.
이에 막부에서는 조선에서는 매년 200명 규모의 사절단을 보내는 것을 거론하며 왜 자신들을 차별하느냐며 반발했지만, 조선과는 특별한 관계라 대규모 사절단을 허용했을 뿐이고, 북미왕국에 사절단을 보내는 다른 나라들은 특수한 경우가 아니면 북미왕국이 허용한 20명 규모의 사절단을 파견하는 터라 막부의 요청을 받아줄 수 없다는 점을 밝혔다.
이에 막부는 투로시노에게 불만을 표했지만, 투로시노가 이들을 잘 달래며 설득했고, 덕분에 막부는 대규모 사절단을 보내는 것을 포기하고 20명 규모의 소규모 사절단을 파견했다고 하니 정성국은 만족하며 조용한 곰을 바라보고 말했다.
“뭐 외무청이야 외국 사절을 접대하는 데 익숙해졌을 테니 따로 이야기할 필요는 없겠고...이주 문제와 유구국 문제도 믿고 맡겨도 되겠지?”
정성국의 말에 조용한 곰은 믿고 맡겨달라는 얼굴로 대답했다.
“물론입니다. 헌데...”
“음? 할 말이라도 있나?”
“원활한 협상을 위해 협상에 들어가기 전 왜국 사절단을 사격 훈련에 참관시키려 하는데 이 사격 훈련에서 기관총을 선보여도 되겠습니까?”
외무청은 왜국 사절단과의 협상에서 유리한 고지를 잡기 위해 협상 전에 호위대의 사격 훈련에 참관시킬 생각이었는데, 이 사격 훈련에서 기관총까지 사용하겠다는 말에 정성국은 너무 과한 것 아니냐는 얼굴로 조용한 곰을 바라보았다.
“허. 그건 너무 압박하는 것 아닌가? 솔직히 갑오 소총과 회전 단총만으로도 충분할 것 같은데?”
“그렇긴 한데 유럽 각국의 대사들이 기관총을 실제로 보고 싶어 해서 말입니다.”
“아...”
기관총의 존재가 조선 사절단을 통해 알려진 이후 새한성에 있는 대사들은 기관총의 실물과 발사 모습을 무척이나 보고 싶어했다.
다만 현재 유럽에서 한창 전쟁 중인 상황에서 기관총을 보여줘 봐야 제발 팔아 달라고 집요하게 덤벼들 것이 뻔했기에 기밀이라는 이유로 꼭꼭 숨겨 두었고.
허나 기관총의 생산량이 늘어나면서 슬슬 일선에 배치할 생각이었으니 어차피 알려질 것 제대로 보여주는 것도 나쁘지 않다 싶었다.
그리고 어차피 왜국 사절단의 새한성 방문을 허용한 이상, 이들에게 북미왕국의 국력을 확실히 보여줘서 감히 북미왕국과 적대할 엄두도 못 내게 만드는 것이 최선이라는 계산이 서자 정성국은 고개를 끄덕였다.
“흠. 알겠네. 그러도록 하게. 다만 기관총을 선보이면 유럽 대사들이 자네를 꽤 귀찮게 굴 텐데 괜찮겠나?”
이에 조용한 곰은 씩 웃었다.
“북미왕국의 강력함을 널리 알리는 일인데 그 정도는 감수해야지요. 그리고 어차피 저들이 제일 두려워하는 것은 아국이 일부 국가에만 기관총을 판매하는 상황인데 기관총은 절대 판매할 생각이 없다고 못 박는다면 대사들도 집요하게 귀찮게 굴지는 않을 것 같고요. 후장식 화포도 그렇잖습니까.”
“하하하. 알겠네.”
* * *
왜국 사절단은 새한성에 도착해 정성국을 알현한 후 외무청이 짜둔 일정에 따라 새한성 인근을 둘러보았고.
그러다 호위대가 사격 훈련을 하는데 이 훈련을 참관할 생각이 있느냐고 묻자 홋타 마사토라는 냉큼 승낙했다.
출발하기 전 북미왕국의 무기에 대해 여러 이야기를 들었던 탓에 실제 성능이 궁금했던 탓이다.
그리고 사격 훈련장에 도착했을 때, 의외로 새한성에 도착한 이후 정성국이 주최한 연회에서 안면을 튼 여러 유럽 대사들이 미리 와있었기에 홋타 마사토라는 조금 의아한 얼굴을 하며 자신에게 비교적 호의적이었던 네덜란드 대사에게 다가갔고.
“아. 오셨습니까?”
“대사님께서 여긴 어쩐 일이십니까?”
홋타 마사토리의 질문에 네덜란드 대사가 빙긋 웃었다.
“아. 북미왕국의 사격 훈련은 무척 볼만합니다. 그러니 사격 훈련을 참관할 기회를 놓칠 수야 없는 노릇이지요.”
“그래요? 그래서 대사분들이 이렇게 오신 겁니까?”
“그렇습니다. 특히 이번 사격 훈련은 그동안 북미왕국이 꼭꼭 숨겨 두었던 기관총을 선보인다고 해서 말입니다.”
네덜란드 대사가 기관총이라는 단어를 입에 올리자 이를 들어본 홋타 마사토리가 눈을 빛냈다.
“기관총이라면...”
“예. 총알을 끊임없이 발사할 수 있다는, 이번 조청 전쟁에서 제 위력을 발휘한 무기이지요. 아. 사격 훈련이 시작되었군요.”
그렇게 홋타 마사토리는 네덜란드 대사의 설명을 들으며 호위대원들이 일사불란하게 대열을 바꿔가며 갑오 소총으로 사격하는 모습을 보고 감탄했고, 호위대원들이 말을 타고 달리며 회전 단총을 사용해 표적을 명중시키는 모습에 그 전투력이 능히 짐작되어 경악했다.
그리고 말을 탄 호위대원들이 사격 훈련장에서 나가자 일부 호위대원들이 마치 소구경 대포처럼 보이는 무언가를 들고 나타나 무언가를 설치하기 시작했고, 이 모습을 보고 네덜란드 대사가 흥미를 보였다.
“호오. 삼각대라. 기관총의 무게가 꽤 나가는 모양이군요. 저런 식이라면 공격용 무기로 쓰긴 쉽지 않아 보이는데...”
이에 옆에 있던 에스파냐 대사가 끼어들었다.
“그러니 북미왕국이 검차라는 것을 만든 거겠지요. 저 기관총의 위력을 극대화하기 위해.”
“하긴...”
“그리고 꼭 검차가 아니더라도 마차나 수레를 이용해 끌고 다니면서 발사하면 그만이니 위력만 정말 소문처럼 대단하다면 무게는 큰 문제가 아닐 겁니다.”
“그건...그렇지요. 흐음.”
그렇게 대사들이 잠시 잡담을 나누는 사이 사격 준비가 끝난 건지 한 호위대원이 기관총을 잡았고.
‘타타타타타타타타타타탕!’
순식간에 총알이 발사되면서 나무로 된 표적이 부서지는 광경에 대사들은 기겁했다.
“맙소사!”
“이런 미친!”
“말도 안 돼!”
물론 대사들도 기관총이 총알을 연속으로 발사하는 무기라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지금 그들의 눈앞에서 보이는 광경은 대사들이 이야기를 듣고 예상한 것과는 차원이 다른 위력을 보였기에 놀라 어쩔 줄을 몰라 했고.
홋타 마사토리는 예상과는 달리 너무나도 강력한 위력을 선보이는 기관총을 보고 선선한 가을임에도 식은땀을 흘리며 속으로 생각했다.
‘네덜란드 상인이 북미왕국이 마음만 먹는다면 세계도 정복할 거라는 주장을 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비웃었는데...이건 차원이 다르구나. 북미왕국과는 절대 맞서지 말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