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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을 탈출하라-631화 (631/850)

631화

정성국이 간식거리를 들고 집무실을 방문한 하얀 들꽃과 휴식 시간을 즐기고 있을 때, 조용한 곰이 집무실을 방문했고, 조용한 곰은 하얀 들꽃을 보고 움찔하며 입을 열었다.

“허허허. 이거 좋은 시간을 보내시는 데 제가 방해한 모양이로군요.”

이에 하얀 들꽃은 배시시 웃으며 고개를 저은 후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니에요. 이번에 왕실 숙수가 새로운 다과를 만들었는데, 무척 맛있어서 전하께 가져다드리려고 잠깐 들렀을 뿐인걸요. 그럼 이야기들 나누세요.”

그러면서 하얀 들꽃은 자리에서 일어나 집무실을 나섰고, 정성국은 오붓한 시간을 방해한 것을 무척 미안해하는 조용한 곰을 보고 피식 웃으면서 티테이블에 앉으라는 듯 손짓했다.

“와서 이거나 먹어보게.”

“이건...바클라바로군요? 무척 달아서 많이 먹긴 조금 그렇지만 맛은 있던데...오스만 대사관에서 보내온 것이 아니라 왕실 숙수가 이걸 만든 겁니까?”

조용한 곰이 티테이블 위에 놓인 네모난 모양의 후식을 보고 아는체하자 정성국이 잠시 의외란 얼굴로 그를 바라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아. 오스만 대사관을 방문했을 때 먹어본 건가?”

오스만 제국은 북미왕국과 외교 관계를 맺으면서 새한성에 대사관을 설립했고, 최근 조용한 곰은 오스만 대사와 자주 만나고 있기에 오스만 대사가 대동한 숙수를 통해 여러 오스만 제국의 디저트를 경험했으리라 생각한 정성국이 중얼거리자 조용한 곰이 바클라바를 반쯤 물어 우물거리다 삼킨 후 답했다.

“예. 매번 오스만 대사관을 방문할 때마다 새로운 음식과 다과를 대접받아서 입이 즐거울 정도지요.”

“하하하. 그럴 거야. 오스만 제국의 영역은 넓고, 우리와는 달리 여러 문화권과 접해 있어서 음식문화가 무척 발달했으니까.”

오스만 제국은 지리적 특수성으로 인해 동서양 문화로부터 동시에 영향을 받았고, 여기에 오스만 제국의 중심인 아나톨리아 반도는 무척 비옥해 식량이 풍부했던 터라 자연스럽게 음식 문화가 발전할 수밖에 없는 환경이었다.

해서 술탄 마호메트 2세의 재위 기간부터 이렇게 발전한 오스만 제국의 요리는 하나의 예술로 승화되기 시작했고.

정성국이 이를 이야기하자 직접 오스만 대사관을 방문해 오스만 제국의 식문화를 접한 조용한 곰이 고개를 끄덕이며 중얼거렸다.

“확실히 그게 조금 부럽긴 하더군요.”

“하하하. 그렇게 부러워할 필요 없네. 우리 북미왕국의 식문화도 빠르게 발전하고 있지 않나. 그보다 오스만 제국의 노예 문제는 어떻게 되어 가나?”

최근 조용한 곰이 오스만 대사관을 드나들며 오스만 대사와 이야기를 자주 나누는 것은 바로 오스만 제국의 노예무역 때문이었다.

오스만 제국은 노예제를 채택하고 있었고, 이 노예들은 오스만 제국을 유지하기 위한 중요한 수단이었기에 오스만 제국이 섣불리 노예무역을 금지하긴 어렵다는 점을 북미왕국에서도 인식하고 있었다.

해서 조심스럽게 이를 논의해왔었고.

헌데 최근 오스만 제국이 북미왕국으로부터 신식 소총을 수입해 무장하면서 유럽의 일에 끼어들 기미가 보이자, 오스만 제국이 신성 로마 제국을 공격하면 프랑스만 이득을 보는 터라 다른 유럽 대사들은 포르투갈을 예로 들면서 오스만 제국과도 외교 관계를 단절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이야기하기 시작했고, 이러한 분위기를 파악한 오스만 대사는 혹여 북미왕국이 외교 관계를 단절할까 걱정하며 조용한 곰과 이 문제를 논의하고 있었다.

해서 정성국이 일의 진행 상황을 묻자 조용한 곰이 입에 감도는 단맛을 커피로 씻어낸 후 말했다.

“일단 오스만 대사와는 대략적으로 합의했습니다. 오스만 제국 내에서의 노예무역을 금지하기로.”

“어? 그게 정말인가?”

보통은 민간에서 노예를 사용하고, 이들의 노동력을 이용하는 것과는 달리 오스만 제국에서는 정부에서 노예를 사용하며, 노예들을 이용해 군대로 만들거나, 관료들로 써먹는 만큼, 노예무역을 금지한다는 결정을 내리기가 쉽지 않았으니까.

해서 정성국은 오스만 대사가 노예무역을 금지하는 데 합의했다는 조용한 곰의 말에 무척 놀란 얼굴을 하자 조용한 곰이 조금은 씁쓸한 미소를 머금으며 다시 입을 열었다.

“다만 크게 의미는 없을 겁니다. 오스만 제국이 노예를 수급하는 곳은 주로 북아프리카, 동유럽, 크림반도 등인데...이 지역은 오스만 제국이 직접 통치하는 영역이 아니라는 이유로 노예무역을 금지할 수 없다는 대답을 했으니까요.”

조용한 곰의 대답에 오스만 제국의 속내를 파악한 정성국은 턱을 매만지며 중얼거렸다.

“흠. 결국, 아국과의 관계 때문에 노예무역을 금지하는 시늉만 하겠다는 거군?”

“정확합니다. 다만 공식적으로 오스만 제국 내의 노예무역을 금지하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겠다 싶었고, 오스만 제국과의 교류가 계속되고 교역 규모가 커진다면 훗날 이를 이용해 오스만 제국을 압박해 노예제도를 폐지하도록 압력을 넣을 수도 있기에 일단은 이 정도에서 넘어갈 생각입니다.”

일단 이 정도로 만족하고 나중을 기약하겠다는 조용한 곰의 대답에 정성국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게 낫겠지. 일단 오스만 제국이 유럽 세력을 어느 정도 견제해줄 필요성이 있으니까. 헌데 자네는 무슨 일로 집무실을 방문한 건가?”

“아. 웅크린 늑대가 연락을 보냈습니다. 에스파냐를 오가는 연락선이 새진주에 도착했는데 이 연락선에 포르투갈의 외교관이 탑승해 있었다고 말입니다.”

정성국은 조용한 곰의 보고에 피식 웃으며 중얼거렸다.

“이제 와서 포르투갈이 새진주로 외교관을 보냈다라...뭐 용건은 뻔하겠군. 살려달라는 거겠지?”

이에 조용한 곰은 빙긋 웃으며 대답했다.

“그렇습니다. 조만간 노예무역을 금지할 테니, 앙골라 장가의 확장을 멈춰달라더군요.”

앙골라 장가는 작은 앙골라라는 뜻으로 줌비가 이끄는 팔마레스의 흑인들이 세운 나라였다.

살바도르를 점령한 후 제대로 된 나라를 세우려고 마음먹은 줌비는 브라질 지역으로 끌려온 흑인 노예들은 대부분 앙골라 지역에서 끌려왔기에, 나라 이름을 작은 앙골라라는 의미의 앙골라 장가로 붙였고.

“앙골라 장가의 확장을 멈춰달라라...브라질 식민지를 수복할 생각은 없는 모양이지?”

“앙골라 장가의 병사들이 신식 소총으로 무장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기에 이미 빼앗긴 식민지를 수복할 생각은 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조용한 곰의 대답에 정성국은 티테이블을 손으로 톡톡 치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중얼거렸다.

“브라질 북부 해안 지역만 지키겠다?”

“그렇습니다. 포르투갈 외교관과 대화를 나눈 웅크린 늑대가 이야기하길 이미 포르투갈은 브라질 북부 해안 지역에 지원 병력도 보낸 모양입니다.”

“어? 그래?”

“예. 뭐 포르투갈 입장에서는 설탕을 비롯해 여러 작물을 재배할 수 있는 북부 해안 지역을 어떻게든 지키겠다는 생각이겠지요.”

이에 정성국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일단 조용한 곰에게 질문했다.

“흐음...그럼 자네는 어떻게 하는 것이 좋다고 보나?”

정성국의 질문에 조용한 곰은 이미 웅크린 늑대에게 연락을 받고 외무청의 고위 관리들과 이야기를 나눠본 듯 거침없이 입을 열었다.

“앙골라 장가가 브라질 북부 해안 지역으로 영역을 확장해 포르투갈 세력을 내쫓는다면 나쁠 것은 없습니다만 현재 해안가를 따라 남하하며 포르투갈 세력을 몰아내고, 여기에 내륙 개발까지 진행하고 있는 앙골라 장가가 그럴 여력이 있을까 싶습니다.”

“그렇긴 하지. 그럼 자네는 앙골라 장가와 포르투갈 사이를 중재하는 것이 낫다고 보는 모양이군?”

“그렇습니다. 지금 앙골라 장가는 나라를 제대로 세울 때이지, 계속해서 포르투갈과 싸울 때는 아니니까요.”

“흐음...”

정성국도 이를 모르지 않을 테니 조용한 곰은 당연히 정성국이 자신의 의견에 동의할 줄 알았다.

헌데 정성국은 생각이 많은 얼굴로 계속해서 탁자를 손으로 두드리고 있자 조용한 곰은 의아한 얼굴로 조심스럽게 질문을 던졌다.

“무언가 걸리시는 점이라도 있으십니까?”

이에 정성국은 슬쩍 자신이 걱정하고 있는 바를 이야기했다.

“포르투갈이야 열대작물을 재배할 수 있는 브라질 북부 해안 지역이 무척 가치가 있겠지만, 우리나 앙골라 장가 입장에선 별다른 가치가 없으니 이 지역을 포르투갈에 내어주는 것은 크게 상관은 없어. 다만 포르투갈이 북부 해안 지역을 통해 내륙으로 진출하는 것이 조금 걱정되는군.”

“아. 포르투갈이 아마존 강을 통해 브라질 내륙으로 영역을 확장할까 걱정하시는 겁니까?”

“그렇네.”

에스파냐가 안데스 산맥에 막혀 해안가를 따라 영역을 확장하는 사이, 포르투갈은 아마존 강과 연결된 수많은 지류를 탐사하며 빠르게 브라질 내륙을 탐사해 깃발을 꽂은 덕분에 거대한 브라질 식민지가 생겨났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는 정성국은 포르투갈에 브라질 북부 해안 지역을 허용했다가, 이들이 내륙으로 진출할 것을 우려했다.

특히, 앙골라 장가의 포로들이 노역에 종사한 후 풀려나면, 포르투갈도 남미 내륙에 여러 자원이 묻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될 테니 내륙 진출에 매달릴 가능성이 컸고.

“확실히...포르투갈이 브라질 내륙으로의 진출에 집중할 가능성이 크군요. 그동안 개척한 해안가 지역을 상당수 잃었으니 말입니다. 허면 이렇게 하는 것이 어떻습니까? 앙골라 장가와 포르투갈 사이를 중재하는 대가로 아마존 강 하구 일대를 넘겨받는 겁니다.”

“아마존 강 하구를?”

정성국이 조용한 곰의 말에 흥미를 보이자 조용한 곰이 슬쩍 미소를 지었다.

“그렇습니다. 아국의 생크루아 섬과 앙골라 장가의 마세이오 항 사이의 거리가 꽤 먼 터라 만약을 대비해 중간 거점을 마련할 필요가 있긴 했잖습니까.”

“그렇긴 한데...”

“그러니 중재의 대가로 브라질 북부 해안 지역에서 가장 서쪽에 위치한 아마존 강 하구 일대를 넘겨받아 이곳을 아국의 영토로 삼으면, 포르투갈뿐만 아니라 다른 유럽 세력도 아마존 강을 이용해 브라질 내륙으로 진출하는 것은 불가능해지겠지요.”

앙골라 장가가 내륙 개발에 성공한다면 교역이 활발해질 수밖에 없었기에 중간 거점이 있어서 나쁠 것은 없었다.

해서 남미 북쪽 해안 지역에 있는 네덜란드나 프랑스의 항구를 중간 거점으로 이용할 생각이었고.

헌데 조용한 곰은 그러지 말고 포르투갈의 영토인 아마존 강 하구 일대를 넘겨받아 중간 거점으로 사용하자는 이야기였고, 그렇게만 된다면 유럽 세력의 내륙 진출을 저지할 수 있어 나쁠 것은 없었지만 과연 포르투갈이 중재를 해주는 대가로 내륙으로 진출할 수 있는 아마존 강 하구 일대를 넘겨줄까 싶어 정성국은 턱을 매만지며 중얼거렸다.

“흐음...포르투갈이 이를 받아들일까?”

이에 조용한 곰은 자신만만한 얼굴로 답했다.

“포르투갈은 어떻게든 브라질 북부 해안 지역을 지키고 싶어 합니다. 그래서 본국에서 병사들을 파견한 거지요. 허나 브라질 북부 해안 지역에 배치된 병력은 살바도르에 배치되었던 병사들보다는 적고, 앙골라 장가에서 신식 소총으로 무장한 병력과 북미왕국에서 구입했다고 알려진 인급 전선을 투입한다면 브라질 북부 해안 지역을 지키지 못하리라는 것은 잘 알고 있을 겁니다. 물론 앙골라 장가는 브라질 북부 해안 지역에 별다른 관심이 없지만, 포르투갈은 이를 모르니까요. 그러니...”

“아마존 강을 통해 내륙으로 진출할 기회를 포기해서라도 브라질 북부 해안 지역을 지키려 들 수 있다는 거군.”

정성국의 중얼거림에 조용한 곰이 고개를 끄덕이며 웅크린 늑대가 포르투갈 외교관인 휴고와 대화하면서 알게 된 포르투갈의 내부 사정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그렇습니다. 그리고 포르투갈은, 아니. 현재 포르투갈을 통치하고 있는 페드루 왕자는 처음부터 노예무역을 금지하고 싶었지만, 노예무역에 관여한 귀족들의 세력에 밀려 금지할 수 없었다면서 이 기회에 대귀족들의 세력을 어느 정도 쳐낼 생각이라고 하더군요.”

“그래? 그럼 당분간 리스본은 꽤 시끄럽겠는데?”

“그럴 겁니다. 헌데 이번에 새진주를 방문한 포르투갈 외교관은 페드루 왕자의 측근인 모양입니다. 해서 이 포르투갈 외교관은 신식 소총 수입 문제도 거론했고요.”

조용한 곰이 여기까지 이야기하자 정성국은 조용한 곰의 뜻을 파악하고 입을 열었다.

“중재의 대가에 신식 소총 수입 건까지 묶자는 말이군?”

“그렇습니다. 그럼 포르투갈 외교관은 분명 아마존 강 유역 일대를 포기하고, 브라질 북부 해안 지역의 일부와 신식 소총을 택할 겁니다.”

조용한 곰의 확신에 정성국은 믿겠다는 얼굴로 조용한 곰을 바라보며 말했다.

“흐음...좋네. 외무청에서 나서서 그러한 방향으로 협상을 진행하도록 하게.”

“알겠습니다. 전하.”

그렇게 조용한 곰과의 대화를 마쳤을 때쯤, 누군가가 집무실의 문을 두드렸고.

“음? 무슨 일인가.”

이에 호위대장이 집무실로 들어와 정성국에게 하나의 보고서를 건넸다.

“포로나이에서 긴급 보고서가 올라왔습니다.”

“그래? 고맙네.”

정성국은 호위대장이 건네준 보고서를 급히 확인한 후 웃음을 터트렸다.

“하하하. 조선이 만주 동부 지역 전체를 받기로 결정했다는군.”

“아. 그렇습니까? 그거 잘 되었군요.”

조선이 만주 동부 전체를 가져가면 외무청의 일이 조금은 줄어드는 만큼 조용한 곰도 밝은 얼굴을 하자 정성국이 말했다.

“조금 있으면 9월이라 조선은 내년부터 본격적으로 만주 동부 지역을 개발할 생각이라고 하네. 그러니 전에 논의했던 대로 조선을 지원해주도록 하게.”

“알겠습니다. 바로 개발청에 이를 알리고 협조를 구하겠습니다.”

“그래. 부탁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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