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30화
투로시노가 방문해 이번에 획득한 만주 동부 지역을 조선에 넘기겠다는 제의를 전한 이후로 조선 조정은 꽤 시끌벅적해졌다.
당연히 그럴 수밖에 없었다.
조선보다 몇 배나 되는 땅을 거저 얻게 되었으니까.
다만 만주 동부 지역 가운데 아무르 강 이남의 땅을 모두 받을지, 아니면 우수리 강 동쪽의 북미왕국에서는 연해주라고 부르는 지역만 받을지에 관해선 의견이 엇갈렸고.
그런 상황에서 투로시노가 다시 제물포에 방문했다는 소식이 들려오자 조선의 대신들은 투로시노가 만주 동부 지역의 정보를 전해주기 위해 직접 방문했음을 직감하고, 바로 유철을 제물포로 보냈고, 유철은 제물포에 도착하자마자 지급 전선에서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 투로시노를 만날 수 있었다.
그리고 투로시노는 조급해 보이는 유철을 보고 슬쩍 미소를 지으며 유철에게 최근 작성한 만주 동부 지역의 보고서를 넘겨주었고, 유철은 보고서의 내용을 확인하고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얼굴로 투로시노를 바라보며 질문을 던졌다.
“이게...허. 여기 적힌 내용이 정말로 참입니까?”
“그렇습니다. 물론 알바진 요새에 드나드는 만주인들을 통해 얻게 된 정보가 대다수이다 보니 정확도가 다소 떨어져 오차는 있겠습니다만, 큰 차이는 없을 듯싶습니다.”
“허허허. 조선보다 넓은 땅에 백성은 고작 10만 명 내외라니....”
투로시노의 대답에 유철은 헛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자 투로시노는 자신 역시 처음에 이 사실을 알게 되고 무척 당황했었기에 이를 이해하며 입을 열었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원래 이 정도로 사람이 없지는 않았다고 하더군요. 다만 청나라의 태조가 청나라를 건국하기 전 자신에게 적대하는 부족들을 모두 정복하고 인적 자원을 충원하기 위해 부족원들을 포로로 삼아 모조리 끌고 가 버린 모양입니다. 거기에 청나라가 중원을 점령한 이후에는 청나라 황제를 따라 다시 중원으로 이주해버려 만주인들은 대폭 줄어들었고 그나마 남은 만주인들도 대부분 심요 지역으로 이동하면서 이번에 저희가 확보한 영토에 사는 만주인들은 얼마 되지 않는다고 합니다.”
“허어. 물론 우리 조선도 국경을 맞대고 있으니 만주 동부에 인구가 그리 많지 않다는 것을 알고는 있었지만, 그래도 이렇게 적을 줄은 미처 몰랐습니다.”
조선은 여진족과 국경을 맞대고 있었기에, 그리고 청나라의 태조인 누르하치가 여진을 통합하기 위해 주변 부족을 공격했을 당시, 두만강 북동쪽에 자리한 동해여진이 누르하치가 이끄는 건주여진을 피해 대거 조선에 귀화하면서 만주의 정보를 획득하기도 했었기에 만주 지역의 사정을 어느 정도 파악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북미왕국에서 획득한 만주 동부 지역의 인구가 많지 않으리라는 것은 짐작했지만, 이렇게 적을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했기에 허탈함과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자, 투로시노는 미안하다는 얼굴을 하며 말했다.
“아. 그건 제가 판단을 잘못 내렸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예? 그게 무슨...”
“점령지를 통치하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특히 점령지의 인구가 많으면 많을수록 이를 감당하기 쉽지 않지요. 해서 평화조약을 맺을 때 이번에 확보한 지역에 사는 주민들의 이주를 막는 조항을 넣지 않았습니다. 주민 중 일부가 청나라로 이주하게끔 말입니다.”
“아. 그럼 만주 동부에 있던 주민들이 떠난 겁니까? 그래서 10만 명 내외가 남은 거고요?”
투로시노의 말에 그제야 상황을 짐작한 유철이 급히 질문을 던지자 투로시노가 면목 없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청나라에서 만주인들에게 만주 일부가 아국에 넘어갔다는 사실을 알렸고, 생각외로 청나라의 영향력이 강한 모양인지 송화강과 그 지류 유역에 남아있던 만주인들이 대부분 서쪽으로 떠나면서 이번에 확보한 영토의 중부와 남부가 대부분 비어버렸습니다.”
“으음...그럼 그 10만 명에 달하는 백성은 대부분 북부에 있는 겁니까?”
“예. 태반이 아무르 강 유역에 살던, 청나라에서는 만주족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부족들이지요.”
그러면서 투로시노가 선실 안에서 만주 일대가 자세히 그려진 지도를 꺼내 탁자 위에 펼치면서 남아있는 원주민 부족들의 위치를 가리키자 유철은 복잡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아무르 강 유역이라...”
투로시노가 가리킨 곳은 대부분 아무르 강 중류 지역으로 우수리 강 서쪽, 그러니까 연해주 서쪽이었다.
그러니 조선에서 연해주만 받는다면, 10만 명은커녕 1, 2만 명의 백성만 확보하는 셈이라 인력 부족 문제가 클 것 같았고, 그렇다고 10만 명의 백성을 얻기 위해 만주 동부 지역을 다 받는다면 개발할 영역이 넓어지니 큰 의미가 없었으며, 연해주만 받되 아무르 강 유역에 사는 백성들을 연해주로 이주시키는 것은 북미왕국에서 받아들일 리 없었으니 유철의 고민은 깊어질 수밖에 없었고.
그런 유철의 반응에 투로시노가 애써 웃으며 말했다.
“그나마 이들은 알바진 요새를 드나들며 필요한 물품을 구입하는 터라 이들을 통제하기는 쉽습니다. 그러니 좋게 생각하면...”
“병력을 대거 파견하지 않더라도 만주 동부 전체를 수월하게 통치할 수 있다는 거구려.”
“그렇습니다. 그리고 제가 알기로 조선 조정에서는 북방으로 올려보낼 병력이 부족한 탓에 만주 동부 전체가 아닌 만주 일부, 그러니까 우수리 강 동쪽의 연해주만으로 만족해야 한다는 주장이 우세하다던데, 현재 만주 동부의 상황이 이러하니 조선이 만주 동부 전체를 가져가더라도 괜찮을 겁니다.”
당장은 청나라의 내부 사정이 무척 좋지 않을뿐더러 조선은 북미왕국과 동맹이니만큼, 청나라가 국경을 침범할 리 없었다.
그렇기에 당분간은 국경에 병력을 배치할 필요는 없었고.
다만 조선에는 많은 여진인들이 귀화해 살고 있었는데, 여진인 중 일부는 난폭하거나 성질이 억세 문제를 일으키는 경우가 많았고, 이 때문에 만주 동부 지역을 제대로 통치하려면 많은 병력을 보낼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는데, 이전과는 달리 중앙군을 육성하면서 병력의 수를 줄이려는 조선 입장에서는 이게 부담될 수밖에 없었다.
해서 조정 신료들은 이러한 부담을 덜기 위해 만주 동부 전체보다는 아쉽지만, 연해주로 만족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들이 많았고.
그리고 제물포에 도착해 원상을 통해 이러한 사정을 파악한 투로시노가 이렇게 이야기하며 은근히 만주 동부 지역을 다 가져가라는 듯 말하자 유철은 쉽지 않다는 얼굴로 답했다.
“대신 드넓은 만주 동부 전체를 개발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 문제겠지요. 인구가 부족하니 천상 조선의 백성들을 이주시켜야 하는데 추운 북방으로 가려는 이들이 얼마나 있을까 싶습니다. 그렇다고 강제로 북방에 백성들을 정착시키는 것은 부담이 크고.”
조선은 건국 초기 북방 지역으로 영토를 넓히면서, 북방을 개척해본 경험이 있기에 만주 동부 지역을 개척하는 일이 만만치 않다는 것을 짐작하고 있었다.
거기에 평안도, 함경도도 춥다는 소문이 자자해 백성들이 두 지역으론 이주할 생각을 하지 않는데, 그보다 더 북쪽에 있는 만주 동부 지역에 과연 백성들이 자발적으로 이주할까 싶었고, 그렇다고 일부 백성을 강제로 만주 동부 지역으로 이주시키자니 민심이 이반될 것이 우려되어 유철이 한숨을 내쉬자 투로시노가 입을 열었다.
“백성들을 강제로 이주시키기보다는, 여러 혜택을 주어 자발적으로 이주하도록 유도해야겠지요.”
“혜택이라...흠. 어차피 땅은 넓으니, 북방으로 이주해 개간한 땅의 소유권을 인정해주고, 각종 세금과 요역을 일정 기간 면제해 그 부담을 덜어주라는 뜻이구려.”
“그렇습니다. 그리고 조선이 만주 동부 전체를 가져간다면, 조선인들이 북방에 무사히 정착할 수 있도록 아국에서도 적극적으로 돕겠습니다.”
투로시노의 말에 유철은 의아함과 기대감이 반쯤 섞인 얼굴로 되물었다.
“북미왕국에서 돕겠다면...?”
“먼저 경운차를 파견해 만주 지역을 개간하는 일을 돕겠습니다.”
“헉! 경운차를요? 그게 정말입니까?”
농경 사회인 조선으로서는 북미왕국의 경운차가 무척 탐날 수밖에 없었다.
특히 북미왕국으로 계속해서 백성들이 빠져나가면서, 조금씩 노비나 소작농의 가치가 올라가고 있었으니 더더욱.
해서 조선에서는 북미왕국에 경운차의 수입을 타진했으나 북미왕국은 기술 유출을 이유로 절대 불가하다는 입장이었고.
헌데 이를 부분적으로나마 허용해주겠다는 뜻이나 다름없었기에 유철이 화들짝 놀라며 되묻자 투로시노는 빙긋 웃었다.
“그렇습니다. 허허벌판에 마을을 건설하는 것은 생각보다 쉽지 않습니다. 특히 북방은 추운 지역이니만큼, 겨울을 날 대비까지 해야 하는 터라 일손이 무척 부족하겠지요. 해서 조선의 백성들이 정착한 지역 인근의 개간은 아국에서 해드릴 터이니 조선에서는 개간된 땅을 이주민에게 나눠주시면 될 겁니다.”
“허어...그래 주시면 정말 감사하긴 한데...”
그동안 방치해 두었던 땅을 개간하기는 쉽지 않은 일인데, 이 일을 북미왕국이 해주면 땅을 개간하는 데 들어가는 인력을 다른 곳으로 돌릴 수 있고, 그렇게 되면 마을을 건설하는 것이 한층 수월해질 것이 분명했다.
거기에 북방으로 이주하면 잘 개간된 땅을 나눠준다고 알린다면 아무리 추운 북방이라 하더라도 이주하려는 백성들이 없지는 않을 것 같았고.
해서 유철은 북미왕국의 지원책에 만족한 얼굴을 하고 있을 때, 투로시노가 그런 유철을 보고 덧붙였다.
“그리고 만주의 기후는 조선과는 다른 만큼 작물을 재배하는 데도 여러 시행착오를 겪을 수밖에 없을 겁니다. 그런 만큼 아국에서 현지의 사정을 확인해 최소 3년에서 최대 5년간 정착민들에게 충분한 식량과 생필품을 공급하도록 하겠습니다.”
기후가 다른 지역에서 농사를 짓는 것은 생각보다 쉽지 않은 일이었다.
허나 농사라는 것이 한 번 실패하면 한 해의 수확이 날아가는 터라 타격이 클 수밖에 없었고.
그러니 북미왕국에서는 만주 지역에 정착한 조선인들이 제대로 수확할 때까지 식량과 생필품을 공급해 조선인들의 정착을 돕겠다고 하니 유철은 북미왕국에서 이렇게까지 조선을 도울 줄은 몰랐기에 무척 놀란 얼굴로 투로시노를 바라보았다.
“허억! 식량과 생필품까지 말입니까?”
“그렇습니다. 조선에서 북방으로 물자를 수송하는 것보다는 아국에서 수송하는 것이 더 싸게 먹힐 테니까요.”
투로시노의 말마따나 이동 거리는 조선이 더 짧지만, 조운선으로 물자를 수송하는 것보다는 북미왕국의 수송선이 한 번 움직이는 것이 효율적이었기에 유철이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그렇긴 하지요. 헌데 아국이 만주 동부 전체를 가져가야 그러한 지원을 받을 수 있다는 겁니까?”
이에 투로시노는 조금 미안하다는 얼굴로 대답했다.
“조선이 연해주만 가져간다면, 연해주 서쪽을 그냥 비워둘 수야 없으니 아무르 강 유역에 사는 부족을 뒤에서 지원해 세력을 구축해야 하는 터라...”
조선에 지원해 줄 수 있다는 물자들은 조선이 연해주만 선택하면 현지 부족에게 지원해줘야 할 물자였고, 그런 만큼 조선이 만주 전체를 가져가지 않는다면 경운차 서너 대 정도는 지원해줄 수 있어도 그 이상은 어렵다고 이야기하는 투로시노의 설명에 유철은 알겠다는 듯 손을 내밀었다.
“아. 이해했습니다. 그럼...만주 동부 지역 전체를 받는 것이 낫겠군요.”
유철이 생각하기에 북미왕국의 지원이 생각보다 대단한 터라 북미왕국의 지원을 받기 위해서라도 만주 동부 지역 전체를 받는 것이 나아 보였다.
그리고 걱정했던 것처럼 많은 병력을 파병할 필요도 없었고, 북미왕국의 지원과 더불어 조선에서도 만주로 이주하는 백성들에게 세금 감면의 혜택을 제공한다면 자발적으로 이주하려는 백성들이 생각보다는 많을 테니 만주 지역을 개발하는 데 필요한 인력을 어느 정도 확보할 수 있어 보였고.
해서 유철이 만주 동부 지역 전체를 받겠다는 의사를 밝히자 투로시노의 안색이 밝아졌다.
북미왕국이 연해주 서쪽의 원주민들을 독립시키려면 그 고생은 자신이 해야 했는데, 조선이 만주 동부 지역 전체를 가져가면 그러한 고생에서 해방될 수 있었으니 말이다.
해서 투로시노는 웃으며 농담을 던졌다.
“하하하. 그럴 겁니다. 그리고 혹시 또 압니까? 조선이 필요로 하는 자원들이 연해주 서쪽에만 묻혀 있을지?”
“하하하. 정말 그랬으면 좋겠군요. 아무튼, 알겠습니다. 이 자료들과 북미왕국의 지원책을 알려 개화파 관리들을 설득해보도록 하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