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조선을 탈출하라-629화 (629/850)

629화

“이야. 어떻게든 시간 내서 새김포를 방문하길 잘했군. 이거 정말 장관인데?”

새한성에서 각종 보고서에 파묻혀 살던 정성국은 오랜만에 궁을 나와 새김포를 방문했다.

이는 오랜만에 새한성을 방문한 김봉길이 신형 전선으로 교체하기 시작한 1함대의 위용을 자랑했기에 문득 호기심이 생겼기 때문이다.

해서 정성국은 바람을 쐴 겸 곧바로 김봉길과 함께 새김포로 향하는 배에 올라탔고.

배 안에서 김봉길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던 정성국은 새김포가 보인다는 호위대원의 보고에 곧바로 갑판 위로 이동했고, 갑판 위에서 신형 전선들이 나란히 정박해 있는 선착장을 바라보며 감탄을 금치 못하자 함께 따라 나온 김봉길이 씩 웃었다.

“하하하. 그렇지요? 고작 8척에 불과하긴 합니다만...신형 전선 중에 가장 작은 3천 톤급 전선조차 천급 전선보다는 크다 보니 단순히 선착장에 정박해 있는 모습조차 위용이 넘칠 정도입니다.”

물론 최근 가장 많이 건조되고 있고 선착장에 가장 많이 정박해 있는 수송선만 하더라도 5천 톤급 철선이니만큼, 얼핏 보면 신형 전선들이 나란히 정박해 있는 군용 선착장보다는 일반 선착장이 더 그럴싸해 보이기는 했다.

다만 갑판 위에 기다란 포신이 보이는 신형 전선은 수송선과는 느낌이 전혀 달랐기에 가까이서 보면 신형 전선들이 정박해 있는 군용 선착장에 더 눈길이 갈 수밖에 없었고, 이 때문인지 군용 선착장 주변에는 이 신형 전선들을 구경하려는 사람들이 꽤 많아 보였기에 정성국이 슬쩍 입을 열었다.

“그래서 그런지 구경꾼들도 많구만?”

“하하하. 뭐 그런 편입니다. 특히 신형 전선은 크기도 클뿐더러 도색도 다르고, 거기에 갑판 위에 포탑이 존재하는 터라 기존의 전선이나 수송선과는 느낌이 전혀 다르지 않습니까. 그 때문에 신형 전선이 양산되어 1함대에 배속되기 시작한 후로는 언제나 사람이 바글거리지요.”

그동안 1함대는 후방이라는 이유로 다른 함대에 비해 지원이 처질 수밖에 없었다.

당연히 1함대에는 오래된 전선들로 가득했고.

해서 정성국은 1함대의 사기진작을 위해 새김포에서 생산되는 신형 전선을 우선적으로 1함대에 배속했는데, 이 덕분에 군용 선착장이 일종의 관광지가 되어 버렸다는 이야기에 정성국이 피식 웃으며 계속해서 군용 선착장에 정박한 신형 전선들을 살펴보다가 중얼거렸다.

“멋지긴 멋지네. 아. 조만간 막부의 사절단이 방문할 텐데, 새김포에 도착하자마자 꽤 놀라겠군.”

“분명 그럴 겁니다. 특히 왜인들은 1만 톤급 철선을 본 적이 없을 테니까요. 헌데 전하.”

“음?”

“이번에 방문하는 막부의 사절단과 유구국의 문제를 논의할 거라는 이야기가 들려오던데 정말입니까? 전하께서는 유구 문제에 개입하기를 꺼리셨잖습니까?”

북미왕국의 증기기관 기술 수준이 궤도에 올라 모든 선박에 기관을 장착하기 전에는 바람을 이용해야 했기에 아시아에서 북미대륙으로 이동할 때는 북방 항로를 이용했어도, 북미대륙에서 아시아로 이동할 때는 남방 항로를 이용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기에 김봉길은 류큐라 불리는 유구 섬에 관심을 보이며 유구인들을 돕는 대신 유구 섬을 중간 보급항으로 사용하고 싶어했고.

다만 당시에는 정성국이 유구 문제에 굳이 개입하고 싶지 않다는 의사를 밝혔기에 김봉길도 유구국에 관심을 거두었는데, 최근에 외무청에서 들려오는 이야기를 들어보면 이런 정성국의 생각이 변한 것 같았기에 김봉길이 조심스럽게 질문을 던지자 정성국이 어깨를 으쓱했다.

“유구인들의 처지가 안타깝긴 했지만, 당시 상황에서는 어쩔 수 없었지. 한창 북미왕국을 발전시켜야 할 시점에서 유구국의 문제로 왜국과 험악하게 지낼 필요는 없었으니까.”

당시에는 아이누인들을 돕고 이들을 북미왕국에 받아들인 일로 왜국과의 관계가 무척 좋지 않았다는 것을 떠올린 김봉길이 고개를 끄덕였다.

“음...그렇긴 했지요. 허나 지금은 아국의 사정이 많이 나아졌고, 왜국이 반발한다 하더라도 충분히 감당할 수 있으니 유구 문제에 개입하신다는 뜻이로군요.”

“뭐 그렇지. 다만 자네의 예상처럼 왜국이 크게 반발하지는 않을 걸세. 외무청에서 새한성에 방문할 막부의 인사들을 잘 설득할 테니까.”

조청전쟁의 결과가 알려지면서 북미왕국의 군사력이 대단하다는 것은 왜국도 잘 알고 있었다.

특히 3함대가 청나라 수군을 대부분 격파하면서 조청전쟁이 벌어지는 동안 청나라의 바다를 대부분 장악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왜국은 3함대를 두려워할 수밖에 없었다.

왜국은 대부분의 물류 수송을 해운에 의존했기에 비슷한 상황에 부닥치면 타격이 클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막부에서는 북미왕국과 더 우호적으로 지내기 위해 사절단을 보내겠다고 나선 것이었고.

그러니 외무청에서 나선다면, 그리고 북미왕국을 직접 방문해 북미왕국이 소문처럼 강력하다는 것을 직접 목격한다면 막부의 반발은 크지 않으리라고 예상한 정성국이었다.

일단 유구국은 막부에 신속하고 조공을 보내는 정도였지, 막부가 유구를 점령하고 있는 상황은 아니었으니까.

이를 정성국이 김봉길에게 설명하자 김봉길이 고개를 끄덕이며 중얼거렸다.

“하긴...이곳에 와서 호위대가 훈련하는 모습을 보고, 또 군항에 정박해 있는 전선들을 본다면 감히 아국에 반발하지는 못하겠지요. 예전에 왜국은 고작 지급 전선 1척에 호되게 당했었으니 더욱 그럴 겁니다. 허나 막부는 그렇다 치고, 유구국을 실질적으로 장악하고 있는 사츠마 번은 순순히 유구국에서 물러나려 하지 않을 테고, 이들을 설득하기는 쉽지 않을 텐데요?”

정성국의 말마따나 막부는 고작 조공을 바치는 유구국 때문에 다시 북미왕국과 전쟁을 치르고 싶은 마음은 없을 테니 적당한 이권을 받는다면 유구 문제에 손을 떼겠지만, 실제로 유구국을 장악하며 이를 통해 막대한 부를 누리고 있는 사츠마 번은 유구국을 포기할 리 없으며, 이를 설득하려면 막대한 이권을 제시해야 하는데 이미 마리아나 제도와 필리핀 북부에 차모로 항과 일로카노 항이라는 중간 거점이 존재하는 상황에서 굳이 그럴 필요가 있겠느냐는 얼굴을 하는 김봉길이었고.

이에 정성국은 짓궂은 웃음을 머금고 입을 열었다.

“설득? 일개 지방 정권인 사츠마 번을 설득할 이유가 없지. 공식적으로 유구국은 청나라와 왜국에 이중으로 신속한 독립국이지 사츠마 번과는 아무런 관계가 아니잖나.”

사츠마 번은 유구국을 점령한 이후 중국과의 무역을 위해 유구국을 존속시켰다.

이 때문에 공식적으로 유구국은 독립국이긴 했지만, 북미왕국이 이를 내세워 유구국을 보호국으로 받아들이면 사츠마 번이 가만히 있을 리 없다는 사실은 정성국도 잘 알고 있을 텐데 짓궂게 웃으며 사츠마 번과는 아무런 대화를 하지 않겠다고 이야기하자 김봉길은 정성국이 유구국 문제로 사츠마 번이 북미왕국에 반발하면 힘으로 찍어 누를 생각임을 눈치챘고, 오히려 이를 반겼다.

사츠마 번은 왜구의 소굴이기도 했고, 임진년에는 조선을 침공하기도 했으며, 그가 천급 함선을 타고 남방 항로를 이용했을 당시에도 유구 섬 인근을 지나갈 때마다 알짱거리며 신경 쓰이게 하는 터라 언젠간 본때를 보여줘야겠다고 생각했었기에.

그리고 김봉길은 이를 정일신에 맡기는 것보다 자신이 직접 하고 싶었기에 정성국의 눈치를 보며 슬쩍 입을 열었다.

“크흠. 전하. 일이 그렇게 흘러가면 결국 유구국을 보호하기 위해 함대를 파견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아마 그렇게 되겠지?”

“그거 저희 1함대에서 보내면 안 되겠습니까?”

“음?”

유구에 함대를 보낸다면 아시아를 담당하는 3함대가 움직여야지 왜 1함대가 움직이느냐는 얼굴로 정성국이 김봉길을 바라보자 김봉길이 급히 입을 열었다.

“1함대도 실전을 경험해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되어서 말입니다. 그리고 신형 전선을 실전에 투입할 기회이기도 하고요.”

이에 정성국은 잠시 생각에 잠겼는데, 김봉길의 말마따나 포탑을 채용한 신형 전선을 실전에 투입할 기회이기도 하고 3함대는 최근의 전쟁으로 실전을 제대로 경험해본 만큼, 이번엔 1함대를 파견하는 것도 나쁘진 않다고 생각했다.

특히 해안경비대가 창설되어 해안 방어와 순찰을 맡고 있는 만큼, 신형 전선 일부가 빠져나간다고 해도 문제가 생길 것 같지는 않았고.

“흐음...알겠네. 군사청장에겐 따로 말을 해두지.”

“오! 감사합니다. 전하. 1함대에 소속된 병사들이 이 소식을 듣는다면 무척 기뻐할 겁니다.”

김봉길의 대답에 정성국은 피식 웃으며 말했다.

“글쎄? 1함대의 병사들보다는 자네가 더 좋아하는 것으로 보이네만? 자네가 직접 움직일 건가?”

“하하하. 1함대의 함장들도, 병사들도 실전 경험이 없는 만큼 제가 직접 지휘하는 것이 여러모로 낫지 않겠습니까?”

정성국은 해맑게 웃는 김봉길을 보고 혀를 찼다.

“쯧쯧. 대신 소규모 원정 함대를 구성하게. 다 끌고 갈 생각하지 말고.”

“알겠습니다. 그렇게 하지요.”

그렇게 정성국이 김봉길과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이들이 탄 배는 선착장에 정박했고, 정성국은 선착장에서 내리며 질문을 던졌다.

“헌데 저기 정박해 있는 신형 전선의 숫자가 조금 부족한 것 같은데?”

“아. 처음 건조된 3척의 신형 전선은 조선소에 들어가 있습니다.”

“음? 무슨 문제라도 생겼나?”

처음으로 건조한 3종류의 신형 전선이 모두 조선소에 들어가 있다는 이야기에 정성국은 미간을 좁히며 혹여 무슨 문제라도 있는지 급히 질문하자 김봉길이 손을 내저었다.

“아닙니다. 그저 무선 통신 장치를 장착하기 위해 배를 개조할 필요가 있어서 말입니다.”

“무선 통신 장치? 그걸 신형 전선에 장착한다고?”

정성국이 무선 통신에 대한 개념을 설명한 이후, 연구청에서는 꾸준히 무선 통신을 연구해오고 있었고, 자동교환기를 개발한 이후 지혜로운 나무와 연구원들이 대부분 무선 통신에 매달리면서 무선 통신의 연구가 생각보다 빠르게 진행되었다.

덕분에 올 초에는 전파를 송수신하는 장치를 만들어 실제 무선으로 신호를 전송하는 데 성공했고, 무선 통신에 성공한 것에 고무된 지혜로운 나무와 연구원들은 계속 무선 통신에 매달리며 전파를 송수신하는 장치를 개량해 최근엔 최대 4.5km 거리까지 무선으로 신호를 주고받을 수 있게 되었으며, 이를 무선 통신 장치라고 이름 붙였고.

다만 무선 통신 장치의 크기가 큰 편이었고, 신호를 송수신할 수 있는 거리가 아직은 얼마 되지 않는 까닭에 연구청에서는 이 무선 통신 장치의 성능에 만족하지 않고, 이를 개량하기 위해 온 힘을 쏟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정성국은 김봉길의 이야기에 놀란 얼굴로 되묻자 김봉길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언제까지 깃발로 신호를 주고받을 수야 없는 노릇 아니겠습니까. 그리고 연구청에서야 이번에 개발한 무선 통신 장치의 크기와 성능에 불만을 품고 더 연구할 필요가 있다고 하는데...저희가 보기엔 충분히 만족스러워서 말입니다. 해서 이번에 개발한 무선 통신 장치를 신형 전선에 장착해줄 것을 연구청에 요청했고, 연구청에서는 3개의 무선 통신 장치를 보내줘서 처음 건조했던 3척의 신형 전선에 장착 중입니다.”

군사청, 특히 해군에서는 한때 선박 간에 전화선을 연결해 유선으로 연락을 주고받으려는 계획까지 세웠던 만큼, 오히려 무선 통신 장치의 성능에 만족하고, 이를 써먹기 위해 곧바로 연구청에 요청했음을 깨달은 정성국은 일의 진행 상황을 파악하고 싶어서 발걸음을 옮기며 말했다.

“그래? 그럼 조선소부터 방문해봐야겠군.”

“그러시지요.”

그렇게 배에서 내린 정성국은 김봉길을 대동하고 곧바로 조선소로 이동했고.

조선소에 정박해 있는 3척의 신형 전선의 상부 구조물에 장인들이 붙어 무언가를 장착하는 모습을 멀리서 확인한 정성국은 발걸음을 옮기다가 의외의 인물을 보았기에 입을 열었다.

“어? 지혜로운 나무? 자네가 여긴 웬일인가?”

신형 전선을 바라보고 있던 지혜로운 나무는 고개를 돌려 정성국을 확인하고 빙그레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저야 이번에 개발한 무선 통신 장치를 신형 전선에 설치하는 문제 때문에 잠시 들렀습니다. 전하. 헌데 전하께서는 이곳까지 어인 일이십니까?”

“신형 전선을 구경하러 나왔다가 일부 전선에 무선 통신 장치를 장착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궁금해서 와 봤지.”

“그러십니까?”

지혜로운 나무가 갑자기 정성국이 이곳에 나타난 이유를 이해하고 고개를 끄덕이자 정성국은 지혜로운 나무의 옆에 서서 한창 개조 중인 신형 전선을 바라보며 질문을 던졌다.

“무선 통신 연구는 잘 되어 가나?”

“물론입니다. 계속해서 전파를 송신할 수 있는 거리를 늘리는 연구에 중점을 두고 있고, 어제 실험에서는 12km의 거리에서도 신호를 수신할 수 있었습니다.”

“오? 그래?”

“예. 물론 아직은 갈 길이 멀긴 합니다만 계속해서 장치의 성능이 나아지는 만큼, 가까운 미래에는 새한성에서 포로나이까지 무선으로 통신을 주고받을 수도 있을 겁니다. 그 때문에 최근 해저 통신선을 연구하는 친구들이 조금 의기소침한 것이 유일한 문제랄까요?”

지혜로운 나무의 농담에 정성국은 웃으며 대꾸했다.

“하하하. 어차피 둘 다 필요한 기술이고 해저 통신선 연구에 성공한다면 내가 충분히 보상해줄 테니 괜한 걱정하지 말고 연구에 집중하라고 하게.”

“허허허. 전하의 말씀을 전한다면 연구원들도 기운을 차리겠군요. 알겠습니다. 전하.”

지혜로운 나무가 웃으며 대답하자 정성국이 덧붙였다.

“그리고 무선 통신 연구도 마찬가지야. 아. 전파를 더 멀리 송신하는 것뿐만 아니라, 전파를 수신할 수 있는 장치를 소형화하는 것도 신경 써주게.”

“소형화요?”

고개를 갸웃하는 지혜로운 나무에게 정성국은 무선 통신을 이용한 라디오 방송에 관해 설명했고, 이를 듣고 지혜로운 나무는 신음을 흘리다 한숨을 내쉬었다.

“휴우. 정말 갈 길이 멀군요. 알겠습니다. 전파를 수신할 수 있는 장치의 성능 개량에도 더욱 힘쓰도록 하겠습니다.”

“그래. 부탁하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