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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을 탈출하라-625화 (625/850)

625화

브라질 병사들을 피해 그동안 숨어 살았던 노예들이 갑자기 살바도르로 남하하고 있으며, 이 탈주한 노예들은 북미왕국의 무기로 무장하고 있는 터라 지원 병력이 필요하다는 내용이 적힌 브라질 총독의 편지가 대서양을 건너 리스본에 도착하자 현재 포르투갈을 실질적으로 통치하고 있는 섭정 페드루 왕자는 급히 측근들을 소집해 이 문제를 논의하기 시작했다.

헌데 이 논의가 채 끝나기도 전에, 측근 중 한 명이 팔마레스의 흑인들이 살바도르를 점령했다는 기사가 실린 북미신문을 에스파냐에서 구해왔다며 가져오자 페드루 왕자는 직접 그 신문 기사를 확인하고 답답하다는 얼굴로 한숨을 내쉬었다.

“하. 탈주한 노예들이 결국 살바도르를 점령하다니...손해가 막심하군. 빌어먹을. 이래서 노예무역을 금지해야 한다고 이야기했던 건데...”

페드루 왕자는 북미왕국과의 관계를 생각해서라도 노예무역을 금지해야 한다는 입장이었지만, 노예무역에 관여한 귀족들이 결사반대하며 섭정인 페드루 왕자가 계속 노예무역을 금지하겠다는 의견을 고수한다면 정신병으로 유폐된 아폰수 6세를 복귀시키기 위해 움직이겠다고 설치자 내전이 발발할 것을 우려한 페드루 왕자는 일단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헌데 그 결과 브라질 식민지의 중심지인 살바도르를 잃었고, 그 여파가 얼마나 커질지 예측하기 어려웠기에 골치 아프다는 얼굴을 하자 페드루 왕자의 보좌관이 조심스럽게 의견을 제시했다.

“이를 빌미로 노예무역을 허용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던 귀족들을 좀 쳐내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살바도르를 잃게 된 책임을 노예무역을 옹호했던 귀족들에게 돌리자는 보좌관의 제안에 페드루 왕자가 머리를 부여잡으며 중얼거렸다.

“젠장. 그게 가능하겠나? 그 오만방자한 귀족들이라면 오히려 나에게 탈주한 노예들 따위에게 살바도르를 잃은 책임을 지라고 난리 칠 것이 분명한데?”

물론 탈주한 노예들이 북미왕국의 무기로 무장한 것은 노예무역을 허용했기 때문인 만큼, 이번 사태의 책임은 노예무역을 옹호한 귀족들이 지는 것이 맞겠지만, 귀족들이 이를 순순히 받아들일 리가 없었다.

그리고 페드루 왕자는 나라를 다스리는 섭정이었으니 살바도르를 지키지 못한 것은 원칙적으로는 그의 책임이라고 주장할 것이 뻔했고.

그리고 회의실에 앉아 있던 페드루 왕자의 측근들은 후안무치한 귀족들이라면 당연히 그럴 것으로 생각하였기에 쓴웃음을 짓고 있을 때, 최근 페드루 왕자의 측근으로 합류한 외교관인 휴고가 입을 열었다.

“허나 포르투갈의 미래를 생각해서라도 이번 기회에 어떻게든 노예무역에 관여한 귀족들을 일부라도 쳐내야 합니다. 그래야 노예무역을 금지할 수 있고, 노예무역을 금지해야 다시 북미왕국과 외교 관계를 맺을 수 있을 테니까요.”

“이미 북미왕국은 탈주한 노예들을 하나의 세력으로 인정하고 그들과 동맹을 맺었습니다. 그러니 이제 와서 노예무역을 금지해봐야 딱히 얻을 것은 없어보입니다만...”

보좌관은 상황이 이렇게 흘러간 이상, 굳이 노예무역으로 벌어들이는 돈을 포기할 필요가 있겠느냐는 반응을 보이자 휴고가 고개를 저었다.

“그렇다 하더라도 노예무역은 금지해야 합니다. 유럽 각국은 북미왕국과의 외교 관계를 위해 노예무역을 금지했고, 일부 나라에서는 노예 제도마저 폐지해 식민지의 노예들을 해방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헌데 저희만 계속 노예무역을 허용하면 저희는 외교적으로 고립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아시잖습니까. 카리브 해의 상황을.”

“으음...”

최근 카리브 해로 이동하는 포르투갈 국기를 단 배들은 잉글랜드나 프랑스의 식민지 함대에 의해 검색을 받고 있었다.

잉글랜드와 프랑스도 공식적으로 노예무역을 금지함에 따라 자신들의 영역에서 노예선이 활동하는 것을 막기 위함이라는 명분으로 말이다.

그래서인지 카리브 해로 향한 노예선 중 대다수는 복귀하지 못하고 있었고, 이것 때문에 손해를 보게 된 노예무역에 관여한 상인들과 귀족들이 불만을 터트리고 있다는 사실을 떠올린 페드루 왕자가 휴고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을 때, 휴고가 계속해서 입을 열었다.

“그리고 지금이야 북미왕국이 간접적으로 팔마레스로 도망친 노예들을 돕고 있습니다만, 계속해서 간접적으로만 도우리라는 보장이 없잖습니까.”

휴고의 말에 순간 회의실은 술렁거리기 시작했고.

“...북미왕국이 동맹을 돕는다는 구실로 아국을 공격할 수도 있다고 생각하는 건가?”

북미왕국의 국력을 떠올린 페드루 왕자가 꺼림칙하다는 얼굴로 질문하자 휴고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전하. 그리고 제가 정말로 우려하는 것은 북미왕국이 우리 포르투갈을 공격하기 시작하면 신대륙의 식민지뿐만 아니라 아프리카의 식민지까지 공격할 수도 있다는 점입니다.”

“아프리카 식민지를?”

휴고의 말에 페드루 왕자가 미간을 찌푸리며 반문하자, 보좌관이 너무 겁을 주는 것 아니냐는 얼굴로 반문했다.

“그건 힘들지 않겠습니까? 보급은 어쩌고요?”

분명 북미왕국의 해군이 무척 강력하다는 것은 보좌관도 알고 있었다.

다만 북미왕국의 배들은 돛이 아닌 증기기관으로 움직였기에 배를 움직이려면 석탄이 필요했고, 이 연료 보급 문제로 북미왕국의 배들은 장거리 항해가 쉽지 않다는 사실은 이미 잘 알려져 있었기에 보좌관이 이를 지적하자 휴고는 그게 뭐가 문제냐며 어깨를 으쓱했다.

“그거야 연료 보급선을 따로 대동하면 그만이지 않습니까. 특히 북미왕국의 수송선들은 크기가 커서 많은 양의 물자를 실을 수 있으니까요.”

“그건...그렇긴 한데...”

장거리 항해가 아예 불가능한 것은 아니라는 휴고의 대답에 보좌관이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을 때, 휴고가 다시 입을 열었다.

“그리고 저희가 아프리카 해안가를 완전히 장악하고 있는 것은 아니잖습니까. 그러니 식량이나 식수 같은 기본적인 물자는 다른 나라들의 항구에서 보급받으면 그만이고요.”

아프리카 서해안 지역을 포르투갈이 모두 장악한 것은 당연히 아니었다.

파나마 운하가 생기기 전까지는 아시아로 이동하려면 거대한 아프리카 대륙을 빙 돌아가야 했으니, 당연히 유럽 각국은 아프리카 해안 곳곳에 물자를 보급할 수 있는 항구를 만들어 두었고.

여기에 다른 유럽 국가들은 북미왕국과 우호적인 관계를 맺기 위해 애를 쓰고 있었고, 그런 만큼 북미왕국의 함대가 보급을 요청하면 이를 거절할 리 없다는 것은 회의실에 있는 사람들도 짐작했기에 휴고의 말에 그저 신음만 흘리고 있을 때, 휴고가 계속해서 자기 생각을 밝혔다.

“북미왕국의 국왕은 아프리카 노예무역을 무척 부정적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저희가 노예무역을 계속한다면, 이를 막기 위해 아프리카 지역으로 진출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헌데 북미왕국이 아프리카 지역으로 진출하게 되면 아국의 교역로는 다 끊어지게 되지요.”

휴고의 말처럼 북미왕국이 정식으로 포르투갈에 선전포고한 후 함대를 보내 노예무역의 중심지인 앙골라 해안의 루안다를 공격해 점령하고 이곳을 거점으로 포르투갈의 선박을 공격하기 시작한다면, 동아프리카, 인도, 동남아, 그리고 동아시아를 오가는 포르투갈의 배들은 모두 차단될 테고, 자연히 교역로는 모두 끊어지게 되는 셈이었다.

그러면 각 지역의 식민지들은 급격히 흔들릴 테고, 이걸 다른 나라들이 그냥 두고 볼 리가 없으니, 정말 휴고의 말대로 북미왕국이 아프리카 지역으로 진출해 식민지를 공격하기 시작하면 15세기에 처음 아프리카에 진출한 이후 200년 넘게 고생하며 개척했던 식민지들을 몽땅 잃을 수도 있다는 위기감에 페드루 왕자는 식은땀을 흘리며 휴고를 바라보았다.

“...그...그러니 그 전에 노예무역을 금지하고 이를 알려 북미왕국이 아프리카 식민지를 공격하는 것은 막아야 한다는 건가?”

“그렇습니다.”

휴고의 말이 끝나자 페드루 왕자는 잠시 고민하며 슬쩍 회의실을 둘러보았지만, 휴고의 예측이 나름 논리적이라 다른 이들도 딱히 반박하지 못하고 있는 터라 페드루 왕자는 바로 결정을 내렸다.

“알겠네. 일단 이번 일로 손해를 본 귀족들을 회유한 후 노예무역을 옹호하던 귀족 중 일부를 쳐내고, 노예무역을 금지하도록 하지. 그리고...반대파 귀족들이 움직일 수 있으니 형님을 유폐한 별궁의 감시를 더욱 강화하도록 하고.”

내전까지도 감수하겠다는 페드루 왕자의 결정에 다른 측근들이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을 때, 한 귀족이 입을 열었다.

“헌데 전하. 일부 귀족을 회유하고 적대적인 귀족을 쳐내려면 시간이 꽤 걸릴 텐데 그사이에 탈주한 노예들이 브라질 지역을 다 장악하는 것이 아닌지 걱정스럽습니다. 브라질 총독이 살바도르를 지키기 위해 브라질 전역의 병력을 집결시킬 예정이었다는 보고서도 보내오지 않았습니까.”

“음...물론 살바도르가 함락되면서 노예들을 막을 병력이 대부분 사라진 것이 걱정스럽긴 한데 브라질 지역의 드넓은 영토를 생각해보면 아무리 탈주한 노예들이 북미왕국의 무기로 무장하고 있다 한들 단기간에 브라질 지역을 다 장악하는 것은 어렵지 않겠습니까.”

브라질 지역의 드넓은 영역을 생각하면 살바도르를 장악한 탈주 노예들이 이동하는 데도 시간이 꽤 걸릴뿐더러 브라질 지역의 포르투갈인들이 순순히 탈주한 노예들에게 항복하겠느냐는 한 장군의 반박에 보좌관이 입을 열었다.

“소문은 빠르게 퍼지는 법입니다. 탈주한 노예들에게 살바도르가 함락했다는 것이 알려지면 기존의 노예들이 과연 가만히 있겠습니까.”

“으음...”

브라질 총독부에서는 노예들이 도망치거나 반란을 일으키면 병사를 파견해 가혹하게 진압했고, 이 때문에 노예들은 잔뜩 겁을 먹고 주인들의 말에 복종했다.

하지만 살바도르가 함락되고, 브라질 총독부가 사라졌으니 도망치거나 봉기하더라도 병사가 파견될 리 없었고, 이것이 알려지면 포르투갈인들은 휘하의 노예들이 반란을 일으키지는 않을까 걱정해야 할 처지니 살바도르를 점령한 탈주한 노예들에게 맞서기는 무리라는 보좌관의 반박은 일리가 있었고.

해서 페드루 왕자가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그럼 귀족들을 설득하는 문제와는 별개로 논의했던 것처럼 신대륙에 지원 병력을 일부 파견할 필요는 있겠어. 다만...살바도르를 탈환하기에는 무리겠지?”

“대규모의 함대와 수만의 지원 병력을 보낸다면야 가능하겠습니다만...”

페드루 왕자의 시선에 장군이 얼굴을 떨구며 말을 흐리자 페드루 왕자는 속으로 혀를 차며 입을 열었다.

“당분간은 리스본이 혼란스러워질 텐데 많은 병력을 뺄 수야 없는 노릇이지. 그럼 살바도르의 탈환을 목표로 하기보다는 일단 북부 해안 지역을 지킬 수 있을 병력 정도만 보내야겠군. 그리고 휴고.”

“말씀하시지요. 전하.”

“북미왕국에 다녀와야겠네.”

휴고는 갑작스러운 페드루 왕자의 말에 잠시 신음을 흘리며 빠르게 머리를 굴렸다.

“으음...곧 노예무역을 금지할 예정이니 탈주한 노예들의 지원을 그만해달라고 요청하라는 뜻이군요.”

페드루 왕자는 자신의 속내를 빠르게 파악한 휴고가 기꺼웠던지 슬쩍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렇지. 탈주한 노예들이 저렇게 활개를 치는 것은 다 뒤에서 북미왕국이 각종 물자를 지원해주기 때문일 걸세. 그러니 북미왕국이 마음만 먹는다면 탈주한 노예들을 진정시킬 수도 있을 테고.”

“분명 그렇겠지요.”

“그리고 자네가 아까 이야기한 것처럼 북미왕국이 지금 상황에 만족하지 않고 우리에게 선전포고하고 직접 아프리카 지역으로 진출하면 우리 포르투갈은 망할 수밖에 없네. 그러니 그 전에 북미왕국을 진정시킬 필요가 있고.”

이에 휴고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그러려면 전하께서 친서라도 써 주셔야 할 것 같습니다만...”

“아. 물론이네. 반대파를 처리하고 나면 노예무역을 금지할 생각이라는 것과 앞으로 북미왕국과 우호적으로 지내고 싶다는 내용의 편지를 써주지. 이 정도면 되겠나?”

페드루 왕자가 묻자 휴고는 이번 일을 잘만 해결하면 페드루 왕자의 신임을 확고히 할 기회라는 것을 눈치채고 자신도 모르게 새어 나오는 미소를 애써 숨기며 대답했다.

“물론입니다. 최선을 다해 북미왕국을 설득해 보겠습니다. 전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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