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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을 탈출하라-624화 (624/850)

624화

“허. 정말 놀랍군요.”

네덜란드 대사가 북미왕국과 청나라가 평화조약을 체결했다는 사실이 실린 북미신문을 내려놓으며 놀라움을 감추지 못하자, 대사들을 초청했던 잉글랜드 대사가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예. 물론 북미왕국의 무기들을 생각하면 결국 북미왕국이 승리하리라고 여겼습니다만 그래도 청나라를 상대로 본국에서 따로 병력도 보내지 않고, 현지의 병력만으로 상대했는데도 이렇게 일방적인 결과가 나올 줄은...”

물론 잉글랜드 대사도 아시아의 사정을 어느 정도 알고 있었고, 그렇기에 청나라가 조선 방면에만 신경을 쓸 수 없다는 것을 모르지는 않았다.

허나 북미왕국에서도 따로 병력을 파견하지도 않았는데, 북미왕국이 등장하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나라로 알려진 청나라를 상대로 이렇게 일방적인 승리를 거두리라고는 미처 예측하지 못했기에 북미왕국의 군사력에 조금 질린 얼굴을 하며 말하자 커피를 마시고 있던 에스파냐 대사가 입을 열었다.

“제가 알기로 이번에 청나라가 북미왕국에 넘겨 준 지역은 청나라 귀족 계급을 차지하고 있는 만주인들의 고향으로 알고 있습니다. 헌데 이러한 땅의 절반을 전쟁배상금으로 내어준 것을 보면 그만큼 청나라의 사정이 좋지 못하다는 뜻이겠지요.”

“헌데 전 조금 의문이긴 합니다. 북미왕국은 왜 전쟁배상금으로 영토를 받았는지 말입니다.”

덴마크 대사의 의견에 네덜란드 대사도 같은 생각인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게 말입니다. 북미왕국이 영토가 부족하진 않잖습니까. 인구가 부족하지.”

“예. 거기에 제가 알기로 이번에 획득한 이 만주라는 지역은 제대로 개발된 지역도 아니고, 인구가 많은 지역도 아니라 하니, 당분간은 그냥 방치할 수밖에 없을 텐데 말입니다.”

덴마크 대사의 말에 다른 대사들이 공감한다는 얼굴로 북미왕국의 의도를 파악하기 위해 머리를 굴리고 있을 때, 에스파냐 대사가 피식 웃었다.

“쿡쿡. 그게 어쩔 수 없었던 모양입니다.”

“음? 뭐 아시는 거라도 있으십니까?”

잉글랜드 대사가 질문을 던지자 에스파냐 대사가 커피잔을 내려놓으며 다했다.

“친분이 있는 외무청 관리에게 듣기로는 북미왕국은 청나라의 땅에는 별다른 관심이 없었답니다. 문제는 청나라는 계속된 전쟁으로 궁핍해져서 전쟁배상금을 낼 돈이 없었고요.”

“아.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영토를 받은 모양이군요.”

“예. 그리고 만주인들의 고향이 만주이긴 한데 이번에 넘긴 땅은 현 청나라 황실이나 귀족 계급의 만주인들과는 별다른 관계가 없는 땅이랍니다. 변방에 가깝달까요? 해서 청나라는 부담 없이 땅을 넘긴 모양이고...덕분에 북미왕국은 이 땅을 관리하는 문제로 꽤 골치가 아픈 모양이더군요.”

그러면서 이 영토를 관리하는 문제로 북미왕국의 관리들이 매일같이 야근하고 있다는 말을 덧붙이자 잉글랜드 대사가 대꾸했다.

“그야 그렇겠지요. 지도를 보면 이번에 획득한 영토가 거의 프랑스만 하던데...”

“그래서인지 북미왕국은 이 땅을 연합과 조선에 넘기거나, 혹은 현지의 원주민 부족들을 지원할 모양인 듯합니다.”

“그렇습니까?”

물론 북미왕국의 입장에서 이번에 획득한 영토가 애물단지이기는 했으나, 그들이 알기로 이 지역에는 꽤 많은 모피가 나는 곳이니만큼 가치가 없지는 않았는데 이를 동맹국에 넘길 수도 있다는 이야기에 대사들은 북미왕국의 배포에 새삼 놀란 얼굴을 할 수밖에 없었고.

그때 덴마크 대사가 입을 열었다.

“전 이번에 북미왕국이 획득한 영토보다 5곳의 개항장을 확보했다는 것이 더 부럽습니다.”

파나마 운하가 건설된 이후 덴마크의 상인들이 파나마 운하를 이용해 태평양을 넘어 아시아를 방문하긴 했지만 큰 이득을 챙기지는 못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동남아시아의 향료 무역은 이미 네덜란드가 독점하고 있었고, 청나라와의 교역은 공식적으로는 불가능해 밀무역에 종사하는 상인들과 접촉해야 했는데, 아무런 연줄이 없는 덴마크 상인으로서는 그게 불가능했고.

덕분에 마닐라에서 에스파냐 상인들에게 청나라의 물품을 구할 수밖에 없었고, 당연히 에스파냐 상인들은 무척 비싸게 팔아먹어 태평양을 횡단하느라 걸린 시간과 고생을 생각하면 딱히 이득이 없다고 울상이었던 상인들의 이야기를 전해 들었던 덴마크 대사는 5곳의 개항장을 확보한 북미왕국이 무척 부러울 수밖에 없었고, 덴마크 대사의 말에 네덜란드 대사가 고개를 끄덕였다.

“아. 그것도 그렇군요. 아국의 상인들이 위험을 무릅쓰고 머나먼 아시아에 도착한다 해도 청나라와의 교역이 쉽지 않으니...”

“휴우. 본국의 사정이 어려워 이번 전쟁에 개입하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쉽군요.”

에스파냐는 필리핀의 식민지를 통해 비교적 손쉽게 청나라의 밀무역상들과 거래할 수 있긴 하지만, 직접 청나라 본토의 상인들과 거래할 수 있는 북미왕국이 부럽긴 매한가지였기에 한숨을 쉬며 중얼거리자 잉글랜드 대사가 어깨를 으쓱했다.

“뭐 조선도 그렇고 북미왕국도 그렇고 저희가 조금이나마 돕겠다는 것을 거부한 만큼, 유럽에서 전쟁이 벌어지지 않았더라도 각국이 이번 전쟁에 개입하는 것은 불가능했을 겁니다. 차라리...”

“차라리?”

“현재 청나라의 사정이 무척 좋지 않은 것으로 보이는 만큼, 저희가 연합해 청나라를 공격해 개항장을 확보하거나, 그게 아니면 청나라의 반란군과 접촉해 개항장을 확보하는 것이 나아 보이는군요.”

“어?!”

잉글랜드 대사의 말에 아시아에 제대로 된 거점이 필요했던 덴마크 대사가 화들짝 놀라며 엉덩이를 들썩였고.

에스파냐 대사는 잉글랜드 대사의 말에 왜 이 자리에 껄끄러운 프랑스 대사를 부르지 않은 것인지 이해하고 묘한 얼굴로 잉글랜드 대사를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

“으음...조금 자세히 이야기해주시겠습니까?”

* * *

정성국은 연이은 회의로 피로가 가득한 얼굴로 조용한 곰이 건넨 보고서를 살펴보다가 묘한 표정을 지으며 중얼거렸다.

“몽골 지역에 문제가 생겼다? 그게 청나라가 화급히 아국과 평화조약을 체결한 이유인가?”

갑자기 청나라가 적극적으로 협상에 임한 이유가 궁금했던 정일신은 동녕국을 통해 알게 된 청나라 상인들을 통해 정보를 수집했고, 그 결과 몽골 지역에 문제가 발생했다는 사실과 청나라에서는 이 몽골 지역의 문제를 무척 심각하게 여기고 있다는 사실을 파악할 수 있었다.

해서 정일신은 바로 이 소식을 전했고, 보고서는 여러 손을 거쳐 결국 정성국의 손에 들리게 되었고.

“그렇습니다. 청나라는 유목민족이다 보니 유목민들이 뭉치면 위협적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고, 그 때문에 청나라 황실은 몽골 지역을 세심하게 관리하고 있었습니다. 헌데 삼번이 반란을 일으킨 이후 몽골 지역에 신경을 쓰지 못하는 사이 서로 사이가 좋지 않던 할하부 좌익과 할하부 우익의 분쟁이 커진 모양입니다.”

외몽골 지역에 자리한 할하부가 좌익과 우익으로 나누어져 수십 년째 분쟁 중이라는 사실은 정성국도 알고 있었기에 갑자기 청나라가 할하부의 분쟁을 신경 쓰는 것이 이상해 턱을 매만지며 중얼거렸다.

“흐음...고작 내분이 일어났다고 청나라가 태도를 바꾼 거란 말인가? 아. 혹시 한 쪽이 다른 한 쪽을 복속시켜 세력을 키울 것을 우려한 건가?”

이이제이도 잘 써야지, 잘못하면 한쪽의 세력을 급격히 키워줄 수 있었다.

애당초 명나라도 여진족을 이이제이로 잘 관리하고 있다가 임진왜란 이후 북방에 제대로 신경을 쓰지 못하는 사이 누르하치가 주변 부족을 집어삼키며 세력을 키워 후금, 그리고 청나라를 건국한 만큼, 청나라 황실에서는 이를 우려해 개입하려는 것이 아닌가 해서 정성국이 중얼거리자 조용한 곰이 고개를 저었다.

“그게 아니라 할하부 우익이 외세를 끌어들였답니다.”

“외세? 할하부 우익이 끌어들일 만한 외세라면...설마 준가르를?”

보통 할하부를 둘로 나눠 좌익과 우익으로 부르지만, 몽골은 지도를 볼 때 중원을 북쪽에 놓고 지도를 보는 터라, 실제 할하부 우익이 자리한 곳은 외몽골 좌측에 자리하고 있는데, 이미 러시아 차르국이 연합의 공세에 밀려 서쪽으로 후퇴한 만큼, 할하부 우익이 끌어들일 외세는 준가르 뿐이라 정성국이 설마 하는 얼굴로 조용한 곰을 바라보자 조용한 곰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할하부 우익이 도움을 요청하자 준가르가 지원 병력을 파견한 모양입니다. 덕분에 할하부 좌익은 몇 번의 전투에서 패배하며 순식간에 밀려버렸고, 급히 청나라에 병력을 지원해달라고 요청한 모양이고요.”

정성국이 알기로 전생의 준가르는 1685년까지는 중앙아시아를 점령하는 데 집중하기도 했고, 국영 상단을 통해 확보한 정보도 비슷했기에 아직 준가르가 청나라를 공격하지는 않으리라고 짐작했는데, 준가르가 몽골 지역의 문제에 개입했다고 하니 의외라는 얼굴을 하면서, 청나라의 사정이 뻔히 짐작되어 중얼거렸다.

“헌데 현재 청나라는 할하부 좌익을 돕고 싶어도 당장 봉골로 보낼 병력이 없으니 아국과 평화조약을 체결해 조선, 시베리아 부족 연합과의 전쟁을 모두 마무리 짓고, 아무르 강과 압록강 인근에 배치된 병력을 철수시켜 몽골 지역으로 보낼 생각인 모양이군?”

“그렇습니다. 물론 서쪽과 남쪽에 형성된 전선의 상황도 썩 좋지는 않습니다마는...주나라가 섬서성을 완전히 장악한다 하더라도 북경을 공격하기 위해선 산서성을 지나야 하니 산서성에서 이를 막을 수 있고, 동녕국이야 북경을 공격하려면 육로로는 어렵고, 해로를 이용한다 하더라도 발해만에 가득한 청나라 수군을 감당하긴 어렵습니다. 그러니 여유가 있지요. 헌데 몽골 지역은 상황이 다릅니다.”

“아아. 준가르가 할하부 우익과 연합해 할하부 좌익을 복속시켜 외몽골 지역을 완전히 장악하게 되면 그다음 목표는 내몽골 지역의 차하르부일 테니.”

정성국의 말에 조용한 곰이 대꾸했다.

“맞습니다. 그리고 차하르부는 세력도 약할뿐더러 청나라 황제의 요청에 따라 병력을 차출한 터라 준가르와 할하부 연합을 상대하지 못할 겁니다. 그러면 바로 북경을 공격할 수 있게 되지요. 물론 북경을 방어하기 위해 배치된 병력이 꽤 많기야 합니다만...수도가 공격받는다는 소식이 알려지면 청나라는 급격히 흔들릴 수밖에 없습니다.”

예전에 명나라는 장성을 이용해 북방민족을 방어했지만, 청나라가 중원을 장악한 이후로는 몽골 지역을 직간접적으로 다스렸기에 장성을 관리하지 않았고, 그렇기에 준가르는 곧바로 북경을 공격할 수 있게 된다.

그리고 후방인 북경이 공격받게 되면, 자연히 주나라, 그리고 동녕국과 대치 중인 병력은 후방을 걱정하며 불안해할 수밖에 없게 되고, 잘못하면 순식간에 청나라가 흔들릴 수 있다는 조용한 곰의 이야기에 정성국이 피식 웃었다.

“그렇겠지. 분명 딴생각하는 친구들도 생겨날 테고.”

이에 조용한 곰도 슬쩍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예. 그래서 청나라는 준가르와 할하부 우익이 할하부 좌익을 완전히 복속시키기 전에 이를 어떻게든 막아야 하고, 그 때문에 청나라는 아국과의 평화 협상이 끝나자 곧바로 압록강 연안에 배치된 병력을 철수시킨 모양입니다.”

“허. 공식적으로는 아직 조선과의 전쟁이 끝난 것도 아닌데 말이지?”

물론 이번에 체결한 평화조약의 내용 중에 북미왕국이 조선과 연합이 청나라와 화친을 맺도록 적극적으로 중재한다는 내용이 있기도 했고, 실제 조선군과 연합의 병사들이 압록강과 아무르 강을 넘지 못하게 막아달라는 요청을 수락하기도 했지만, 아직 형식적인 개별 협상이 남아있는데도 병력을 철수했다는 이야기에 정성국이 혀를 차자 조용한 곰이 웃으며 말했다.

“그렇습니다. 그리고 병력의 철수가 끝날 때쯤, 청나라의 예부 상서가 배를 타고 압록강 인근에 도착해 정식으로 조선과 평화 협상을 시작하고 싶다는 뜻을 알렸고, 조선에서는 사절단을 구성해 압록강 인근으로 파견할 예정이라고 하더군요.”

정성국은 조용한 곰의 말에 턱을 매만지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입을 열었다.

“조선과 청나라와의 평화 협상은 별문제 없이 진행되겠지?”

“물론입니다. 청나라야 조선과의 화친을 바라고 있고, 이미 아국이 청나라와 평화조약을 체결한 이상, 조선 혼자 버틸 수는 없는 노릇이니 조선도 협상을 깨버릴 수야 없을 테니까요. 그리고 아국의 요청에 따라 청나라에서 조선의 체면을 세워주기 위해 약간의 예물도 넘길 생각이니...”

“그럼 아무르 강 유역은?”

“아직 별다른 소식은 없습니다. 아무래도 가까운 압록강 유역과는 달리 아무르 강 유역은 북경에서 멀리 떨어져 있다 보니 아직 명령을 받지 못한 것 같습니다. 다만 알바진에 주둔하고 있는 아이누 탐사대장에게 연락을 보내 아이누 탐사대장도 현 상황을 어느 정도 파악하고 있는 만큼, 별다른 문제는 없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조용한 곰의 보고에 정성국은 고개를 끄덕이다 문득 걸리는 것이 있어 질문을 던졌다.

“그렇다면야...아. 헌데 동녕국의 반응은 어떻던가.”

동녕국은 북미왕국과 청나라가 평화조약을 체결했다는 것을 결코 반길 수 없었다.

북미왕국의 3함대가 해안가를 누빈 덕분에 청나라 수군은 발해만 안쪽으로 물러났고, 덕분에 동녕국은 편하게 청나라의 해안 지역을 약탈할 수 있었으니까.

그리고 북미왕국이 청나라와 전쟁을 끝낸 이상, 청나라 수군은 발해만에서 나와 남하할 테고, 이들을 상대해야 하는 동녕국으로서는 발등에 불이 떨어진 셈이었고.

해서 정성국이 묻자 조용한 곰이 피식 웃으며 답했다.

“아국이 청나라와 평화조약을 체결했다는 소식을 듣고, 무척 아쉬워했다더군요. 다만 3함대가 청나라의 수군함대와 수군 진영을 박살 낸 덕분에 막대한 이득을 취한 만큼, 그리고 아국의 강력함을 직접 목격한 만큼 별다른 말은 하지 않은 모양입니다.”

“그래?”

“아. 대신 저희가 개항장을 확보하고 청나라의 상인들과 직접 교역할 수 있게 되면서 그동안 중개 무역으로 막대한 이득을 취했던 동녕국은 순식간에 수입이 감소할 수밖에 없기에 이 부분을 조금 배려해달라고 요청했습니다.”

이에 정성국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입을 열었다.

“가만히 앉아서 이득을 챙기는 동녕국이 조금 아니꼽기는 한데...동녕국이 청나라의 시선을 분산시켜줄 필요가 있으니 어느 정도 배려는 해 주게.”

“알겠습니다. 전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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