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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을 탈출하라-620화 (620/850)

620화

포로나이에 있던 투로시노는 청나라에서 3함대와 접촉해 일전에 중단되었던 평화 협상을 계속하고 싶다는 말을 했다는 이야기를 전해 듣고 곧바로 배를 타고 제주도로 이동했고.

제주도에서 자신을 기다리고 있던 3함대 사령관인 정일신에게 현 청나라의 상황을 들으면서 예전에 청나라와 협상을 진행했던 강소성의 수군 진영으로 향했다.

그리고 수군 진영에 도착해 예전에 투로시노와 협상했던 청나라의 예부 상서인 연목과 간단하게 인사를 나누고 여독을 풀기 위해 휴식을 취했고.

다음날 청나라가 만들어둔 회담장으로 들어가자 회담장에서 기다리고 있던 연목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투로시노를 반겼다.

“편히 쉬셨습니까.”

“예. 덕분에 편히 쉴 수 있었습니다. 신경 써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닙니다. 헌데 괜찮으시다면 바로 협상을 시작했으면 합니다만...”

투로시노는 곧바로 협상을 시작하자는 연목의 제의에 속으로 생각했다.

‘허. 청나라의 사정이 정말 좋지 못한 모양이로군.’

이번에 투로시노가 연목을 다시 만났을 때 놀랐던 것은 예전보다 조금 더 말투가 공손해졌다는 것이었다.

물론 예전에도 연목이 투로시노를 존대하긴 했으나, 저들은 청나라가 세상의 중심이라고 생각했기에 자신에게 극존칭을 하지는 않았다.

헌데 이번에는 말끝마다 자신을 높였기에 속으로는 이들도 현재 자신들의 상황이 좋지 못하다는 것을 알고 있구나 싶었고.

여기에 곧바로 협상을 시작하자는 것을 보면 청나라가 그만큼 급하다는 의미였기에 이번 협상으로 만주 일부는 확실히 확보할 수 있겠다 싶어 입꼬리가 올라가는 것을 애써 참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크흠. 좋습니다. 저도 오랫동안 아이누 섬을 비울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니까요.”

그러면서 투로시노는 자세를 바로 하고 먼저 말을 꺼내라는 듯 연목을 바라보자 연목은 속으로 한숨을 내쉬며 입을 열었다.

“이전 협상 당시 북미왕국에서는 우리 대청이 전쟁배상금을 지급한다면 화친을 맺을 의사가 있다고 하셨지요? 그 점은 변함없으십니까?”

“그렇습니다. 청나라가 아국에서 책정한 전쟁배상금 1억 냥을 지급한다면, 아국은 기꺼이 이 무의미한 전쟁을 끝낼 생각입니다.”

여전히 전쟁배상금으로 1억 냥을 고수하는 투로시노를 보고 연목이 눈을 빛내며 슬쩍 찔러보았다.

“전에 말씀하시기로는 전쟁배상금은 전쟁에 투입되는 각종 물자와 이를 조선까지 운반하는 비용이 포함되어 있다고 들었는데...시간이 흘렀는데도 전쟁배상금은 그대로군요?”

지난 협상 이후 시간이 흘렀고, 그만큼 더 많은 물자가 소모되었음은 분명한데 전쟁배상금이 그대로라는 의미는 전쟁배상금의 책정이 실제 가치와 동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냐는 연목의 말에 투로시노는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당연히 시간이 흐를수록 전쟁배상금은 올라갈 수밖에 없습니다. 다만 1억 냥도 버거워했는데 여기서 전쟁배상금을 더 올린다면 청나라가 감당하기 어려울 것 같아 아국에서 배려한 것뿐이지요. 다만 청나라에서 아국의 배려를 원치 않으신다면 이 배려를 거두고 전쟁배상금을 올릴 수도 있습니다만...”

한번 찔러보았다가 전쟁배상금이 올리겠다는 투로시노의 말에 연목은 기겁하며 손을 내저었다.

“아...아닙니다. 북미왕국의 배려 감사히 받겠습니다. 크흠. 아무튼, 우리 대청이 부유하다고는 하지만 현 상황에서 1억 냥을 지급할 수야 없는 노릇이라 북미왕국에서 이야기했던 현물로 이 전쟁배상금을 지급하고 싶습니다만...”

“그럼 전쟁배상금으로 만주를 넘기시겠다는 겁니까?”

투로시노가 눈을 빛내며 급히 질문을 던지자 연목은 고개를 저었다.

“북미왕국에서는 만주의 가치를 1억 냥으로 책정해 만주를 넘기라고 이야기하지만, 우리 대청이 보기엔 만주의 가치가 고작 1억 냥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어차피 북미왕국이 계속 1억 냥이라는 전쟁배상금을 고수한다면, 청나라는 만주의 가치를 부풀려서 북미왕국에 넘겨줄 영토를 줄이겠다는 속셈이었고, 투로시노도 청나라에서 이렇게 나오리라는 것은 짐작했기에 빙긋 웃으며 말했다.

“그럼 청나라에서는 만주의 가치를 어느 정도로 생각하십니까?”

“우리 대청에서는 만주의 가치를 최소 10억 냥 이상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만...”

연목이 만주의 가치로 최소 10억 냥, 그러니까 북미왕국의 화폐로는 무려 100억 원이라는 금액을 언급하자 투로시노는 헛웃음을 터트렸다.

“허허허. 뭐 만주에는 금과 은이 지천으로 널려있답니까.”

물론 청나라가 만주의 가치를 높게 평가하리라는 것은 예상했지만, 이건 너무 심한 것 아니냐는 얼굴을 하며 투로시노가 연목을 바라보자 연목이 그 시선을 피하며 입을 열었다.

“만주는 무척 광활합니다. 그러니 어딘가엔 금과 은이 묻혀있을 수도 있겠지요. 그리고 듣자 하니 남만인들은 모피를 부드러운 금이라고 부른다던데, 만주의 북동부에는 사냥감이 넘쳐나니 금이 지천에 널려있다고 봐도 될 터이고요.”

“흠. 분명 모피가 돈이 된다는 것은 인정하겠습니다만 애초에 아국은 만주에서 채취할 수 있는 여러 자원까지 고려해 만주의 가치를 1억 냥으로 생각했는데 10억 냥은 조금...”

만주가 넓긴 하지만, 심양과 그 인근을 제외하면 제대로 개발되지도 못한 곳이었고, 현재의 기술력으로는 제대로 개발하기도 어려운 곳이었다.

다만 땅덩이가 넓은 탓에 여러 자원이 묻혀있을 수도 있다고 북미왕국에서 현재 만주의 가치보다 몇 배는 더쳐서 1억 냥을 불렀는데 10억 냥은 좀 아니지 않으냐는 얼굴로 투로시노가 연목을 바라보자 연목이 조금 봐달라는 듯 하소연했다.

“그렇다고 만주의 가치가 고작 1억 냥이라는 것은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너무 박해요.”

만주의 가치를 1억 냥으로 정하면 만주 전체를 넘겨줘야 하는데, 강희제는 다른 땅은 다 넘겨주더라도 북경의 방어를 위해 심요 지역만큼은 지키라고 신신당부를 했기에 연목이 어떻게든 만주의 가치를 올리기 위해 애를 썼고, 그런 연목을 보고 투로시노는 턱을 매만지다 입을 열었다.

“흐음...좋습니다. 그럼 만주의 가치를 정확히 측정하는 것이 먼저겠군요. 먼저...”

* * *

해가 진 이후 투로시노는 회담장에서 나와 선착장에 정박해 있던 천급 전선에 올라탄 후 익숙하게 함장실로 향했고, 함장실의 문을 열자마자 고소하고 향긋한 커피의 향이 투로시노를 반기자 투로시노가 슬쩍 미소지었을 때, 정일신의 목소리가 들렸다.

“아. 왔나?”

커피를 내리던 정일신이 투로시노를 보고 손을 흔들자 투로시노가 함장실의 문을 닫고 자리에 앉으며 말했다.

“저도 커피 좀 주십시오.”

“그러지. 헌데 협상은 어떻게 진행되어가나? 오늘도 만주의 가치를 두고 협상하다 온 건가?”

협상을 시작한 지 일주일이 흘렀지만, 아직까지 투로시노와 연목은 만주의 가치를 정하기 위해 목소리를 높였다.

만주를 얼마로 책정하느냐에 따라 청나라가 북미왕국에 내어줘야 하는 땅의 크기가 결정되는 만큼, 연목은 필사적이었고.

투로시노는 굳이 악착같이 만주의 가치를 절하시킬 필요까지는 없었지만, 청나라의 사정이 좋지 못한 만큼, 최대한 청나라를 압박해 더 많은 이득을 얻기 위해, 그리고 본국에서 확보하길 원하는 지역 가운데 요동 반도의 경우 청나라가 쉽게 내어줄 것 같지 않았기에 만주의 가치를 깎아내는 데 집중하고 있었으며, 이러한 사정을 들어 알고 있는 정일신은 큰 기대를 하지 않고 커피를 건네주며 질문을 던지자 투로시노가 씩 웃으며 대답했다.

“아닙니다. 일단 합의 끝에 만주의 가치를 3억 냥 수준으로 정했습니다.”

이에 정일신은 눈을 빛내며 투로시노를 바라보았다.

“3억 냥이라...그럼 청나라는 만주의 1/3 정도를 넘겨줄 각오를 한 건가?”

“그보다 더 넘겨줄 각오를 한 것 같습니다.”

“음?”

정일신이 무슨 의미냐는 표정으로 투로시노를 바라보자 투로시노는 커피를 한 모금 마시고 피로가 풀리는 느낌이라 슬쩍 미소를 짓다가 입을 열었다.

“어제저녁에 청나라의 전령이 도착해 조금 시끄러웠잖습니까?

일단은 청나라와는 전쟁 중이고 이곳은 적진이다 보니 병사들은 3교대로 경계를 서고 있었고, 덕분에 어제 늦은 밤에 전령이 방문했다는 사실을 파악하고 오늘 아침에 투로시노에게 이 사실을 전해 주었던 정일신이 고개를 끄덕이자 투로시노가 이야기를 계속했다.

“그 전령이 무슨 소식을 전했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어떻게든 버티면서 만주의 가치를 올리려던 예부 상서가 태도를 완전히 바꿨습니다. 해서 만주의 가치를 3억 냥으로 정하고, 어느 정도 개발이 되어 있는 심요 지역을 1억 5천 냥으로, 그 주변 지역을 5천 냥으로, 그리고 송화강과 그 지류인 눈강 동쪽, 그리고 아무르 강 북쪽의 땅을 1억 냥으로 책정했습니다.”

“어?! 잠깐만. 그럼 설마...”

투로시노의 설명을 듣고 정일신이 눈을 휘둥그레 뜨자 투로시노가 씩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예. 송화강과 그 지류인 눈강 동쪽의 땅을 아국에 넘기겠다고 하더군요.”

투로시노의 대답에 정일신은 속으로 만주의 지도를 떠올리고 놀라 입을 쫙 벌렸다.

“맙소사. 그 정도면 만주의 절반이 넘잖아?”

“그렇습니다. 대신 청나라는 아국이 조선과 연합을 알아서 설득해주길 바라고 있고요.”

원래 북미왕국에서는 청나라를 압박하기 위해 자신들과는 별개로 조선, 그리고 연합과 알아서 협상하라고 이야기했었지만, 개별적으로 조선, 연합과 협상하게 되면 화친을 맺기까지 이견을 조율하느라 오랜 시일이 걸릴 수밖에 없었다.

해서 청나라는 북미왕국에 만주의 절반을 넘게 넘기는 대신, 북미왕국이 조선과 연합에 영향력을 발휘해 곧바로 화친을 맺을 수 있게 주선해달라는 조건을 걸었고.

이를 투로시노가 이야기하자 정일신이 대꾸했다.

“아. 연합과 조선의 몫까지 합쳐서 넘길 테니 알아서 나눠 가져라?”

“예. 따로 협상할 시간이 없는 것 같았습니다.”

투로시노의 추측에 정일신이 수긍하면서 중얼거렸다.

“허. 이러면 대체 어제 도착한 전령이 무슨 소식을 전했는지 정말 궁금해지는데...”

“그러게 말입니다. 아무튼, 본국에서 원했던 요동 반도를 얻지 못한 것은 조금 아쉽습니다만...요동 반도를 포기한 대신 그 몇 배에 달하는 땅을 확보했으니 나쁠 것은 없어 보입니다.”

요동 반도를 손에 넣으면 청나라에 비수를 겨누게 되는 만큼, 웬만하면 요동 반도를 얻고 싶긴 했지만, 연목은 심요 지역만큼은 절대 내어줄 수 없다는 태도였고, 본국에서도 요동 반도의 경우는 굳이 무리할 필요 없다고 이야기한 만큼, 이 정도면 충분하다고 생각한 투로시노가 이 조건으로 청나라와의 평화 협상을 마무리할 뜻을 내비치자 정일신도 좋은 조건이라는 생각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 허면 바로 평화 조약을 체결할 생각인가?”

“예. 대략적인 협상이 끝났으니 곧바로 조약문을 작성하고 내일 서명할 생각입니다. 예부 상서가 계속 재촉을 해서 말입니다.”

“허. 정말 급한 모양이군.”

“예. 그리고 곧바로 아무르 강과 압록강 인근에 배치된 병력을 철수시킬 테니 그곳에 배치된 조선군과 연합군이 추격하지 않도록 서찰을 써달라는 것을 보면 뭐...”

투로시노의 말에 정일신은 혀를 내두르며 동녕국에 사람을 보내 청나라의 내부 사정을 확인하긴 해야겠다고 여기며 이야기를 돌렸다.

“헌데 아무르 강 북쪽의 땅은 모두 연합에 넘겨준다 치더라도...송화강과 눈강을 기준으로 그 동쪽의 땅을 모두 조선에 넘겨줄 생각인가? 그거 감당 못 할 것 같은데...”

요동 반도를 얻지 못했을 때 조선에게 넘겨줄 생각이었던 연해주만 하더라도 조선의 면적과 비슷했다.

이는 연해주만 넘기더라도 조선의 땅 크기가 2배로 늘어난다는 뜻이었는데, 여기에 송화강, 눈강, 아무르 강으로 둘러싸인 거대한 땅덩이마저 조선에 넘긴다면, 조선의 영토는 대략 4배 가까이 늘어나게 되는데 과연 이 넓은 영토를 조선이 감당할 수 있을지 의문이었기에 정일신이 턱을 쓰다듬으며 말하자 투로시노가 어깨를 으쓱했다.

“일단 그 부분은 조선과 이야기를 나눠볼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이에 정일신은 대화를 나누는 동안 적당히 미지근해진 커피를 단숨에 들이켜고 투로시노를 바라보았다.

“그럼 내일 평화 조약에 서명하는 데로 조선으로 갈 텐가?”

“예. 그래야 할 것 같습니다.”

“알겠네. 준비해두도록 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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