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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을 탈출하라-619화 (619/850)

619화

정성국은 자신을 찾아온 조용한 곰의 보고를 듣고 잠시 눈을 깜박이다 반문했다.

“얼마? 200만 페소?”

“그렇습니다. 전하.”

“아니. 정말 에스파냐에서 고작 200만 페소에 히스파니올라 섬과 푸에르토리코 섬을 우리에게 넘기겠다고 했단 말인가?”

조용한 곰은 그동안 에스파냐 대사와 영토 매매 협상을 진행해 왔다.

소앤틸리스 제도를 완전히 장악한 프랑스군이 다시 카리브 해에서의 세력을 확장하기 위해 히스파니올라 섬을 노리고 있었는데, 에스파냐에서는 이를 지키기 어렵다고 판단해 히스파니올라 섬과 포에르토리코 섬을 북미왕국에 매입해달라고 요청한 것이다.

그렇기에 급한 것은 에스파냐였고, 이점을 잘 이용하면 비교적 싸게 두 섬을 매입할 수 있다고는 생각했다.

하지만 200만 페소는 의외였다.

예전 마리아나 제도와 필리핀 북부의 땅을 매입하기 위해 에스파냐에 건넸던 금액이 400만 페소였다는 것과, 이때 매입했던 마리아나 제도와 필리핀 북부의 땅을 모두 합해봐야 푸에르토리코 섬의 절반 정도에 불과하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무척이나 저렴한 가격이었고.

해서 정성국이 당황한 얼굴로 조용한 곰을 바라보며 정말 에스파냐가 이러한 조건의 영토 매매 조약에 서명했느냐는 듯 되묻자 조용한 곰이 빙긋 웃으며 대답했다.

“전에도 말씀드렸다시피 현재 에스파냐의 상황이 좋지 못해서 말입니다. 그리고 에스파냐로선 빠르게 두 섬을 아국에 넘기지 못하면 한 푼도 받지 못하고 프랑스에 뺏길 수밖에 없는 상황이기도 하고요. 해서 일부러 협상을 천천히 진행하면서 에스파냐를 강하게 압박했고, 그 결과 두 섬의 가치를 200만 페소로 책정할 수 있었습니다.”

“하하하. 뭐 최대한 깎아보라고 이야기하긴 했지만, 이렇게 저렴한 가격에 두 섬을 매입할 수 있을 줄은 몰랐는데?”

정성국이 이번 영토 매매 협상의 결과에 무척 만족스러운 기색을 보이자 조용한 곰이 묘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더 싸게 매입할 수도 있었습니다. 다만 에스파냐와의 관계 때문에 값을 조금 더쳐준 거지요.”

“엥? 그게 무슨 소린가. 두 섬의 크기를 생각하면 200만 페소는 무척 저렴한 것 같은데?”

정성국이 조용한 곰의 말에 황당한 얼굴로 반문하자, 조용한 곰이 어깨를 으쓱했다.

“그렇긴 합니다만...문제는 두 섬이 무인도에 가깝다는 점입니다.”

“음? 무인도?”

정성국이 알기로 에스파냐는 카리브 해의 섬보다는 멕시코 지역이나 페루 지역을 더 중요하게 생각했기에, 두 섬의 개발에 소홀했고 그 때문에 두 섬의 인구가 그리 많은 편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무인도라고 불릴 정도는 절대 아니었기에 의아한 얼굴로 고개를 갸웃하자 조용한 곰이 설명을 시작했다.

“에스파냐는 저희에게 두 섬을 판매하고 두 섬에 살고 있던 주민들을 모두 쿠바 섬으로 이주시킬 작정입니다.”

“으음...쿠바 섬에 인력을 집중시켜 본격적으로 개발하겠다는 건가?”

“그렇습니다. 해서 두 섬의 주민들에게는 비슷한 크기의 쿠바 섬의 땅을 내어줄 생각이고, 자연히 이 주민들과 주민들에게 고용된 계약 노동자들이 모두 이주하게 되지요.”

“아...그럼 원주민만 남게 되는 건가?”

“그렇습니다. 헌데 문제는 두 섬의 원주민들은 이미...”

히스파니올라 섬은 콜럼버스가 인도로 향하는 항로를 찾기 위해 대서양을 횡단했을 때 처음으로 발견하고 상륙한 섬이었기에 유럽인들이 가져온 각종 질병으로 인한 피해가 클 수밖에 없었다.

여기에 노동력이 부족해 원주민들을 노예로 삼아 부리기 시작하면서 원주민들은 거의 전멸했고, 이러한 사정은 푸에르토리코 섬 역시 비슷했다.

그렇기에 에스파냐에서 에스파냐인들을 모두 이주시킨다면, 두 섬은 텅 비어버릴 수밖에 없다는 것을 떠올린 정성국이 골치 아프다는 얼굴로 중얼거렸다.

“끙. 그래서 무인도라고 한 거군?”

“예. 에스파냐 대사의 말로는 두 섬을 합쳐봐야 원주민의 수는 5백 명이 안 될 거라고 이야기하더군요. 그러니 두 섬을 개발하려면 천상 유럽의 이주민들을 두 섬에 정착시켜야 한다는 건데 가뜩이나 개발할 곳이 넘쳐나는 아국의 입장에선 썩 달갑지 않지요. 이걸 에스파냐에서도 모르지 않다 보니 처음부터 두 섬의 가격을 그리 높이 책정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면서 조용한 곰은 처음 에스파냐에서 히스파니올라 섬을 500만 페소, 푸에르토리코 섬을 100만 페소로 책정했다고 설명하자 어차피 에스파냐에서도 흥정할 것을 대비해 자신들이 받고 싶어하는 가격보다 높게 책정한 가격이 600만 페소라면, 저들은 두 섬의 가치를 생각보다 낮게 잡고 있었음을 짐작하고 정성국이 중얼거렸다.

“허. 그럼 정말 더 싸게 매입할 수도 있었겠군?”

“그렇습니다. 다만 이번 영토 협상의 주체는 누에바 에스파냐 부왕이다 보니 너무 값을 깎으면 아국에 우호적인 누에바 에스파냐 부왕의 정치적 입지가 줄어들 수밖에 없습니다. 해서 적당히 멈춘 거지요.”

누에바 에스파냐의 부왕인 안토니오 부왕은 북미왕국에 우호적인 인물이라 북미왕국의 입장에선 안토니오 부왕이 오랫동안 누에바 에스파냐의 부왕 자리를 지키는 것이 나았다.

해서 질질 시간을 끌며 악착같이 가격을 깎기보단 서로의 감정이 상하지 않을 선에서 멈췄다는 조용한 곰의 설명에 정성국은 외무청에서 잘 판단했다고 생각해 흡족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잘 했네. 괜히 아국에 우호적인 현 누에바 에스파냐 부왕을 실각시킬 필요는 없으니. 허면 오늘부로 히스파니올라 섬과 푸에르토리코 섬은 아국의 영토가 된 건가?”

“그렇습니다. 전하. 그리고 이 사실을 바로 프랑스 대사를 비롯한 각국의 대사들에게 통보할 생각이고요.”

프랑스는 히스파니올라 섬을 노리고 있는 만큼, 북미왕국이 히스파니올라 섬을 매입했다는 사실을 알려 프랑스의 움직임을 막을 생각이라는 조용한 곰의 말에 정성국은 매끈한 턱을 매만지며 말했다.

“흠. 프랑스 대사가 꽤 불평하겠는데...”

북미왕국이 히스파니올라 섬을 매입함으로써 프랑스는 히스파니올라 섬을 포기할 수밖에 없을 테니 프랑스 대사가 불만을 터트릴 것이 분명해 보여 정성국이 조금 우려하자 조용한 곰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겠지요. 프랑스는 예전부터 꾸준히 히스파니올라 섬을 노리고 있었으니까요. 해서 당분간은 교역품을 더 많이 배정해서 그 불만을 조금이나마 달래줄 생각입니다.”

최근 프랑스는 북미왕국과의 우호를 위해 노예 제도를 폐지하겠다고 약속했는데, 프랑스가 노리던 히스파니올라 섬을 북미왕국이 홀라당 가져가 버리고 그냥 모른 척한다면 프랑스와의 관계가 불편해질 수도 있었다.

그러니 프랑스를 배려하는 모습을 보여줄 필요가 있다는 조용한 곰의 말에 정성국이 동의했다.

“그거 괜찮네. 프랑스도 아국을 존중해 노예무역을 금지하고 노예 제도까지 폐지하겠다고 약속했으니 우리도 프랑스를 조금 배려해주는 것이 맞겠지. 허면 저들이 좋아하는 도자기나 비단, 진주를 넉넉히 배정해주게.”

“알겠습니다. 전하.”

* * *

정성국은 조용한 곰이 집무실을 나가자 곧바로 개발청장, 군사청장, 행정청장을 호출했고, 청장들이 집무실을 방문하자 미리 준비한 커피를 건네주며 입을 열었다.

“이번에 외무청에서 에스파냐와 히스파니올라 섬과 푸에르토리코 섬의 매매 협상을 진행한 것을 자네들도 알지?”

“아. 협상이 끝난 겁니까?”

정성국이 건네준 커피를 마시던 행정청장이 눈을 빛내며 묻자 정성국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200만 페소에 두 섬을 매입하기로 했네.”

“어? 고작 200만 페소에 말입니까?”

“외무청에서 잘 협상해준 덕분이지. 아무튼, 덕분에 오늘부로 두 섬은 아국의 영토가 되었는데, 다른 영토 매매 조약과는 달리 두 섬의 주민 대다수는 6개월 안에 쿠바 섬으로 떠날 걸세. 그럼 두 섬은 텅 비게 될 테니 이주민 일부를 두 섬에 정착시킬 필요가 있네.”

두 섬의 주민들이 이주한다는 정성국의 이야기에 행정청장은 아쉬운지 입맛을 다시다가 질문을 던졌다.

“흠. 두 섬을 본격적으로 개발하실 생각이십니까?”

“가뜩이나 개발할 곳이 많은데 그럴 필요가 있나 싶은데...”

플로리다 반도를 개발하기 시작하면서, 그리고 그곳에서 열대 기후에서 자라는 여러 작물을 재배하기 시작하면서, 프랑스와는 달리 북미왕국에서는 굳이 히스파니올라 섬이나 푸에르토리코 섬의 개발에 목을 멜 필요는 없었다.

다만 카리브 해를 오가는 배가 많은 편이라 두 섬을 비워뒀다간, 유럽인들이 몰래 상륙해 무단으로 섬을 점유할 수도 있는 노릇이라 이를 방지하는 정도면 족하지 싶어 정성국이 고개를 젓자 행정청장이 다시 질문을 던졌다.

“그렇긴 하지요. 한창 내륙을 개발하고 있으니. 허면 어느 정도의 인원을 정착시켜야 할지...”

“두 섬에 한 3천 명씩 정착시키면 될 것 같은데?”

“흠. 그 정도면 다른 지역의 개발에 크게 차질이 빚어질 정도는 아니로군요. 알겠습니다. 어차피 에스파냐인들이 모두 빠져나가면 두 섬의 거점 항구인 산토도밍고와 산후안이 텅 비어버릴 테니 그곳에 정착시키도록 하겠습니다.”

“그게 좋겠지. 다만 두 도시는 비교적 오래된 도시이니만큼, 상하수도 시설이 제대로 갖춰져 있을지가 의문이라 조금 걱정인데...”

정성국이 그렇게 말을 흐리며 개발청장을 바라보자 구도심을 개발하는 일은 신경 써야 할 것이 많기에 개발청장이 떨떠름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그냥 인근에 새롭게 항구를 건설하는 것이 낫지 않겠습니까?”

“새롭게 항구를 건설하겠다고? 그럼 시간이 오래 걸리지 않나?”

정성국의 질문에 개발청장은 예전 보스턴 항에 상하수도를 설치하느라 고생했던 기억을 떠올리고 고개를 저었다.

“상하수도가 제대로 설치되지도 않은 도시에 상하수도를 설치하는 것이 더 오래 걸립니다.”

“흠...그럼 자네가 알아서 하게. 아. 그리고 푸에르토리코 섬에는 외국인 거주구역도 만들도록 하고.”

“외국인 거주구역이요? 섬을 개방하실 생각이십니까?”

개발청장의 질문에 정성국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와이나 마리아나제도처럼 보급 거점으로 개방할 생각이네. 유럽에서 곧바로 카리브해로 이동하는 배들이 처음으로 도착하게 되는 섬이 푸에르토리코 섬이잖나.”

“아. 하긴...알겠습니다. 그러도록 하지요.”

그렇게 개발청장과의 대화를 끝낸 정성국이 그 옆에서 묵묵히 대화를 듣고 있던 군사청장을 바라보며 다시 입을 열었다.

“그리고 두 섬이 아국의 영토가 된 만큼, 일부 병력을 배치해야 할 것 같긴 한데...”

“일단 두 섬의 거점 항구를 지키기 위해 경비대를 파견하겠습니다. 그리고 토르투가 분함대와 생크루아 분함대를 두 섬으로 이전하는 것이 괜찮아 보입니다만...”

토르투가 섬이나 생크루아 섬은 무척 작은 섬이니만큼, 차라리 이번에 아국의 영토가 된 두 섬으로 분함대를 옮기는 것이 낫지 않겠느냐는 군사청장의 생각에 정성국은 잠깐 고민했지만, 썩 내키지 않았기에 고개를 저었다.

“흠. 그럼 토르투가 섬과 생크루아 섬이 무인도가 되어버리지 않나. 애써 건설한 시설들을 낭비하는 꼴이라 썩 내키진 않네.”

“그건 그렇습니다만...”

“그리고 토르투가 섬이 작은 게 조금 흠이긴 한데 파나마 운하에서 북미 동해안으로 이동하는 항로를 보호하는데 최적의 위치이기도 하니 썩 내키지 않는군. 그러니 토르투가 분함대는 그냥 내버려 두고, 생크루아 분함대를 키워 이들의 순찰 영역을 넓히거나, 히스파니올라 섬에 분함대를 하나 더 창설하는 게 나을 것 같은데?”

정성국의 말에 잠시 고민하던 군사청장은 일단은 생크루아 분함대의 규모를 키워 기존의 순찰 영역을 서쪽으로 넓히는 게 더 낫다고 판단해 입을 열었다.

“그럼 생크루아 분함대의 규모를 키우겠습니다.”

“그런가? 알겠네. 그럼 생크루아 분함대의 규모를 대폭 키우도록 하게. 자네도 알겠지만, 최근에 파나마 운하를 이용해 아시아로 방문하는 유럽의 배들이 조금씩 늘어나고 있는데 이들이 이용하는 항로가 바로 이번에 얻은 두 섬의 사이로 이동해 파나마 운하로 직행하는 항로이니 확실히 통제할 필요가 있어.”

정성국의 말에 군사청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유럽의 배들이 사고를 칠 엄두를 내지 못하도록 생크루아 분함대에 여러 척의 전선을 배치하도록 하겠습니다. 전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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