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6화
음베아와 함께 마을을 돌아다니면서 새로운 거주지인 마세이오 항의 개발 현황을 확인하고 주민들을 독려하던 줌비는 전사가 급히 달려와 북쪽에서 북미왕국의 배들이 보인다는 보고에 일전에 북미왕국에서 살바도르의 공격을 위해 보내주기로 했던 함대임을 직감하고 남은 시찰은 음베아에게 맡기고 선착장으로 이동했고.
선착장에 도착하니 저번에 방문한 뒤로 항구의 방어를 위해 아예 눌러앉은 인급 전선의 함장이 선착장에서 이곳으로 접근하는 북미왕국의 함대를 기다리고 있다가 줌비를 보고 인사했기에 잠깐 그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렇게 줌비가 인급 전선의 함장과 대화를 나누는 사이 어느덧 마세이오 항에 접근한 북미왕국의 배들은 선착장에 정박하기 시작했고, 처음으로 선착장에 정박한 북미왕국의 배에서 함장으로 짐작되는 한 인물이 배에서 내려 줌비의 옆에 있던 함장에게 눈인사를 건넨 후 줌비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반갑습니다. 당분간 흑인들의 자유를 위해 투쟁하는 킬롬보 도스 팔마레스의 깃발 아래에서 함께 움직일 김현우라고 합니다.”
“이렇게 우리를 도와주러 와줘서 정말 고맙소이다. 줌비라고 하오.”
줌비는 유창하게 에스파냐어를 하는 김현우를 환대하며 잠시 인사를 나눈 뒤 곧바로 살바도르 공격에 관련된 이야기를 꺼냈고, 김현우는 이런 곳에서 중요한 이야기를 나누기엔 적절하지 않다는 생각에 일단 줌비와 함께 함장실로 이동해 줌비의 이야기를 경청했다.
“흐음...살바도르에 주둔한 병력이 8천 명에 달한다고요?”
줌비는 살바도르를 공격할 생각으로 담바에게 살바도르의 정보 수집을 맡겼고, 담바는 포르투갈에 반감을 품은 노예들과 접촉해 나름 양질의 정보를 수집했기에 살바도르의 동향을 거의 완벽하게 파악할 수 있었다.
이를 통해 현재 살바도르에 주둔 중인 포르투갈 병력이 8천 명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김현우는 예상보다 살바도르에 배치된 병력이 많았기에 의아하다는 표정을 짓자 줌비가 대답했다.
“그렇소이다. 원래는 5천 명 정도였는데, 우리가 신식 소총으로 무장했다는 소식을 들었는지, 브라질 남부에 주둔한 병력 일부를 살바도르에 배치하고, 선원과 수병들을 무장시킨 모양이오.”
“음? 아. 저들은 당연히 바다에서의 공격은 없을 거라고 여긴 모양이군요?”
실제로 남부에 배치된 병력을 모두 합쳐봐야 500명이 채 되지 않았기에 추가로 배치된 병력의 대부분은 바로 수병들이었다.
포르투갈은 브라질 식민지를 방어하기 위해 포르투갈 식민지 함대를 만들어 배치해두었는데, 킬롬보의 흑인들이 바다로 쳐들어올 리가 없으니 포르투갈 식민지 함대의 수병들을 모두 하선시켜 방어 병력으로 사용하자는 살바도르 방어 사령관인 카스토르의 의견은 합리적으로 들릴 수밖에 없었다.
해서 브라질 총독인 마누엘은 카스토르의 의견을 받아들여 포르투갈 식민지 함대의 수병들을 무장시켜 배치해 만약을 대비했고.
이러한 사정을 대충이나마 짐작한 김현우가 중얼거리자 줌비가 동의했다.
“그런 것 같소이다. 그러니 북미왕국의 배가 살바도르의 선착장으로 접근한다면, 이들은 북미왕국의 해군을 막기 위해 다시 배에 오를 것이 분명하오. 다만...”
“다만? 걸리는 점이라도 있으십니까?”
“듣자니 살바도르에 정박해 있는 배가 30척 규모는 되는 모양이라...”
줌비가 말을 흐리며 슬쩍 김현우를 바라보자 김현우는 줌비가 무엇을 걱정하는지를 깨닫고 자신만만한 미소와 함께 입을 열었다.
“고작 3척의 배로 30척이 넘는 포르투갈의 배를 상대할 수 있겠냐는 겁니까.”
이에 줌비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북미왕국의 해군이 강력하다는 것은 잘 알고 있었고, 살바도르에 정박 중인 배들이 전부 포르투갈의 식민지 함대는 아니겠지만, 바다는 위험했기에 상선이라 하더라도 무장을 충실히 갖추고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는 터라 수에서 너무 차이가 나니 줌비는 불안할 수밖에 없었고.
해서 조금은 걱정스럽다는 얼굴로 김현우를 바라보자 김현우는 빙긋 웃으며 대답했다.
“그건 걱정하실 필요가 전혀 없습니다. 아국의 포탄 앞에선 수가 무의미하니까요.”
“그게 정말이오?”
“그럼요. 솔직히 그들을 상대하는 건 1척만으로도 충분합니다. 물론 시간이야 걸리겠지만요.”
그러면서 김현우는 인급 전선 1척만 하더라도 수십 척의 범선을 상대하는 것이 어렵지는 않으며, 북미왕국에서 이 마세이오 항을 방어하기 위해 괜히 인급 전선 1척을 보낸 것이 아니라는 것을 설명하자 줌비는 믿겠다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고.
“그리고 우리의 전투력을 포르투갈도 잘 알고 있을 겁니다. 그러니 우리가 접근하면 육지에 내렸던 선원들은 화들짝 놀라며 다시 배에 오르겠지요.”
물론 김현우가 이끄는 3척의 인급 전선으로 구성된 소규모 함대는 삼태극기를 내리고 킬롬보 도스 팔마레스의 깃발을 달고 활동할 예정이었지만, 인급 전선의 외형은 전형적인 북미왕국의 배인지라 포르투갈인들도 북미왕국의 해군으로 인식할 가능성이 컸다.
그리고 북미왕국 해군의 강력함이야 유럽인들이 잘 알고 있었고.
그러니 포르투갈은 육지에 배치했던 선원과 수병들을 다시 배에 태울 수밖에 없다는 김현우의 이야기에 줌비가 자신의 허벅지를 치며 맞장구쳤다.
“오오! 확실히 그렇구려. 허면 우리가 상대해야 할 병력이 줄어들 테니 참으로 다행이오.”
“예. 그리고 아까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포르투갈군은 아마 요새를 끼고 싸울 것 같은데...”
“그렇소이다. 분명 저들이 병력은 더 많지만, 화력에서 밀린다는 것을 잘 알기에 야전에서 싸우기보다는 요새와 요새에 있는 대포를 이용해 우리를 상대할 생각인 모양이오. 해서 살바도르를 함락하는데 피해가 클 것 같아 조금 걱정이고.”
이미 자신들이 신식 소총으로 무장하고 있다는 사실은 포르투갈인들도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 신식 소총이 북미왕국에서 건네주었다는 사실을 잘 알기에 북미왕국에서 추가로 신식 소총을 지원했을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았고.
해서 포르투갈인들은 일단 살바도르 요새를 끼고 버티다 본국의 지원을 받은 후 팔마레스의 흑인 노예들을 공격하기로 마음먹었고, 이 사실은 최소한 살바도르 내에는 널리 퍼졌기에 줌비가 조금 골치 아프다는 얼굴을 하자 김현우가 미소 지으며 말했다.
“걱정하실 것 없습니다. 저희가 도울 테니까요.”
“음?”
“일단 바다를 깨끗하게 정리하고 나서 저희가 포격으로 요새를 무너뜨리겠습니다.”
김현우의 선언에 줌비가 놀란 얼굴로 그를 바라보았다.
“헉! 그게 정말 가능하오? 내가 알기로 살바도르의 요새는 언덕에 지어져 바다에서 포격하기가 어렵다고 들었는데...”
“가능할 겁니다. 아국의 화포는 사거리가 더 길거든요.”
김현우가 인급 전선에 실린 화포들의 성능을 설명하며 살바도르 요새를 무너뜨려 주겠다며 장담하자 줌비의 안색이 밝아졌다.
비록 자신들이 신식 소총으로 무장하고 있다 해도, 요새에 틀어박힌, 그리고 자신들보다 더 많은 숫자의 병력을 상대하기는 쉽지 않다는 것을 모르지 않았기에.
해서 줌비는 북미왕국의 도움을 받아 요새를 포위해 장기전을 생각했었는데 인급 전선에 실린 화포가 그렇게 위력적이라면 손쉽게 요새를 점령할 수 있을 것 같았기에 줌비는 기쁠 수밖에 없었다.
“하하하. 그럼 살바도르의 점령이 생각보다 쉽겠구려.”
“예. 요새를 무너뜨리면 알아서 백기를 들어 올릴 겁니다. 뭐 끝까지 저항하더라도 발악에 불과할 테지요.”
“물론이외다. 신식 소총으로 무장했으니 요새만 무너진다면 쉽게 점령할 수 있을 터이니. 허면 바로 이동했으면 하는데 괜찮겠소?”
걱정했던 살바도르 요새의 점령도 쉽게 진행될 것 같자 줌비는 빨리 브라질 총독부가 자리한 살바도르를 점령하고 싶어 엉덩이를 들썩이며 김현우에게 묻자 김현우가 흔쾌히 승낙했다.
“그러시지요. 그리고 보급 물자는 저희가 운반하겠습니다.”
이 마세이오 항에서 살바도르까지는 대략 500km가량 떨어져 있었기에 보급 물자를 수송하는 것도 일이었는데 북미왕국의 배를 이용해 보급 물자를 수송하면 여러모로 편할 수밖에 없었기에 줌비는 반색했다.
“오! 그러면 더 빠르게 이동할 수 있겠구려. 알겠소. 어차피 준비는 끝났으니 내일 바로 움직이리다.”
* * *
한참 방어 준비를 하느라 바쁘게 움직이던 살바도르 방어 사령관인 카스토르는 브라질 총독인 마누엘이 자신을 찾는다는 이야기를 듣고 브라질 총독부의 집무실로 향했고.
근심 어린 얼굴로 앉아있던 마누엘은 카스토르가 집무실로 들어오자 벌떡 자리에서 일어나 카스토르를 반기며 질문을 던졌다.
“그래. 내일이면 노예들이 살바도르에 도착할 텐데...방어 준비는 끝났나?”
포르투갈에 반기를 든 흑인 노예들은 거침없이 남하해 어느덧 이곳에서 하루 거리까지 근접했기에 마누엘은 불안한 얼굴이었고, 이를 눈치챈 카스토르는 자신감 넘치는 어조로 대답했다.
“물론입니다. 살바도르를 지키기 위해 모든 포르투갈인이 합심했습니다. 해서 민간인들도 머스킷으로 무장하고 자원입대했고, 덕분에 1만 명에 달하는 병력이 모였고, 이 정도의 병력 차라면 아무리 저들이 신식 소총으로 무장하고 있다 해도 야전에서도 해볼 만합니다.”
킬롬보 도스 팔마레스의 흑인들이 신식 소총으로 무장하고 해안가를 따라 빠르게 남하한다는 소식이 살바도르에 퍼지면서 브라질 식민지로 이주한 포르투갈인들은 생명과 재산을 지키기 위해 기꺼이 머스킷을 들고 앞다투어 자원입대했고, 덕분에 방어 병력이 무척 늘어났기에 비록 무기의 질이 떨어지더라도 이 정도의 병력 차이라면 충분히 해볼 만하다 여긴 카스토르가 자신감을 보이자 마누엘은 불안감을 조금 떨쳐내며 혹시나 해 질문을 던졌다.
“그렇긴 한데 설마 야전에서 싸울 생각은 아니지? 듣자니 생각보다 많은 노예들이 내려오는 것 같은데?”
“하하하. 물론이지요. 이용할 수 있는 것은 최대한 이용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래. 잘 생각했네.”
괜히 모험하기보단, 본국에서 지원이 올 때까지 안정적으로 버틸 생각이니 걱정하지 말라는 카스토르의 장담에 마누엘이 안도하고 있을 때, 갑자기 집무실의 문이 열리며 카스톨의 부관이 뛰어들어와 외쳤다.
“사령관님!”
“무슨 일인가.”
“북쪽에서 북미왕국의 배가 접근하고 있습니다!”
“뭐라고?!”
북미왕국이 팔마레스의 노예들과 동맹을 맺은 만큼, 노예들을 도와 북미왕국의 해군이 포르투갈을 공격할 가능성도 있긴 했다.
다만 최근에 브라질 북부에 북미왕국의 배들이 드나들고 있는데, 이 북미왕국의 배들은 포르투갈의 배를 보고도 못 본 척 지나갔기에 마누엘과 카스토르는 북미왕국의 유럽 각국의 눈치를 살펴 자신들을 직접 공격하지는 않고 킬롬보의 노예들을 앞세우는 것으로 판단해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바다로의 공격은 없을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고.
헌데 노예들이 살바도르에 접근한 이 시점에서 북미왕국의 배가 살바도르로 접근한다는 것은 노예들을 도와 살바도르를 직접 공격하겠다는 의미였기에 카스토르가 기겁하자 옆에 있던 마누엘이 카스토르의 부관에게 급히 질문을 던졌다.
“몇 척이나 되나?”
“일단 보이는 것은 3척뿐이긴 합니다만...”
“3척이라...”
일단 함대의 규모는 작았기에 마누엘은 안도했지만, 곧 북미왕국 해군의 강력함을 떠올리고 저 소규모 함대도 무시 못 할 수준이라는 것을 깨닫고 근심 어린 얼굴로 카스토르를 바라보았다.
“어쩌지?”
이에 한참을 고민하던 카스토르가 입을 열었다.
“...일단 선원들과 수병들은 다시 배에 탑승시켜 만약을 대비해야 할 것 같습니다.”
카스토르의 대답에 마누엘은 앓는 소리를 냈다.
선원들과 수병들이 모두 빠져나가면 병력의 1/3은 줄어드는 셈이었으니.
“끙...역시 그런가?”
“예. 일단 북미왕국은 킬롬보의 노예들과 동맹을 맺었으니 우리를 공격할 수도 있습니다.”
“그렇긴 한데 북미왕국의 해군은 적수가 없을 정도라고 알려져 있잖나. 그러니...”
마누엘은 어차피 북미왕국의 해군을 상대하기 어렵다면 배를 포기하더라도 수병들과 선원들을 육지에 묶어두는 것이 낫지 않느냐는 얼굴이었지만 카스토르의 생각은 달랐다.
“그렇다고 그냥 내버려 뒀다간 북미왕국의 배가 선착장에 정박해 있는 배들을 모두 침몰시키고, 도시마저 불태울 겁니다. 그러면 장기전은 불가능해집니다.”
“으음...”
“그리고 북미왕국의 해군이 강력하다 한들 고작 3척입니다. 살바도르에 정박해 있는 모든 배를 징발한다면 35척에 가까우니 충분히 해볼 만합니다.”
마누엘은 강력하다고 소문난 북미왕국의 해군을 과연 상대할 수 있을지 의문이었지만, 카스토르의 말마따나 도시가 불타오르고 항구가 봉쇄되면 장기전은 불가능해지기에 어쩔 수 없다는 얼굴로 카스토르의 제의를 승낙했다.
“...알겠네. 일단 선원들은 바로 배에 탑승시키게.”
마누엘의 승낙에 카스토르는 곧바로 선원들과 수병들을 배로 복귀시키기 위해 집무실을 나갔고, 홀로 남은 마누엘은 북미왕국이 직접 개입하려 하는 현 상황이 막막했기에 한숨을 내쉬며 노예무역을 허용해야 한다고 주장한 본국의 대귀족들을 원망하듯 중얼거렸다.
“브라질을 개발하려면 흑인 노예들이 필요하니 절대 노예무역을 금지해선 안 된다고? 브라질이 사라지면 노예무역 자체가 대폭 축소될 텐데 대체 무슨 생각으로...하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