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조선을 탈출하라-614화 (614/850)

614화

정성국은 오랜만에 집무실을 벗어나 연구청의 연구소로 향했고, 그곳에서 자신을 기다리고 있던 박기동과 함께 연구소 뒤편의 시험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시험장 한가운데 있는 커다란 쇳덩이를 보고 정성국은 감탄했고.

“와우. 생각보다 크네?”

“그렇죠? 최대한 많은 병사를 태우기 위해 크기를 좀 키웠습니다.”

정성국이 집무실을 벗어나 이 시험장을 방문한 것은 그동안 연구청에서 오랫동안 연구하던 장갑차의 개발이 끝나고 시제품이 완성되었다는 보고를 접했기 때문이다.

처음 정성국은 경유기관을 개발하면서 장갑차를 떠올리고 박기동에게 슬쩍 이야기했었는데, 정성국의 의도와는 달리 전차에 가까운 검차가 튀어나왔다.

해서 정성국은 박기동에게 장갑차의 개념을 명확히 설명해주었고, 그 이후로 연구청에서는 정성국이 이야기한 전장의 마차라는 장갑차를 개발하기 시작했고, 결국 결과물이 나온 것이다.

그리고 연구청에서 개발한 장갑차는 정성국이 많이 개입했기 때문인지 전생의 궤도형 장갑차와 몹시 흡사한 모습이었기에 정성국은 만족한 얼굴로 장갑차를 바라보며 박기동에게 물었다.

“그래? 몇 명이나 탑승할 수 있는데?”

“총 10명입니다. 물론 2명은 승무원이라 실질적으로 수송할 수 있는 숫자는 8명이고요.”

이번에 개발한 장갑차의 경우 검차처럼 기관총이 장착되어 있었기에 최소 2명의 승무원을 예상했던 정성국은 이를 제외하고도 8명을 태울 수 있다는 이야기에 그 정도면 나쁘지 않다 싶어 미소를 지었다.

“8명이라...괜찮네. 헌데 이거 장갑은 튼튼한 편인가?”

정성국이 장갑차에 가까이 다가가 손으로 장갑을 두드리며 질문을 던지자 박기동이 자신만만하게 대답했고.

“머스킷의 총알 따위는 무시할 수 있습니다.”

정성국은 박기동의 대답에 인상을 썼다.

“야. 그거야 당연한 거고. 문제는 커다란 쇳덩이도 막을 수 있느냐는 거지.”

이에 박기동은 뻘쭘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전면으로 날아오는 포탄은 어느 정도 버틸 수 있습니다. 그 외엔 버티기 어렵고요.”

“아. 전면 장갑만 강화한 거냐?”

“예. 그렇지 않으면 장갑 무게로 인해 항속 거리나 연비가 대폭 줄어들어서 말입니다.”

“하긴...”

비록 궤도형 장갑차의 경우 차량형 장갑차보다 감당할 수 있는 무게가 높긴 한데, 아직 경유기관의 수준이 전생과 비교할 수 있을 정도는 아닐뿐더러, 정성국의 말에 따라 최대한 많은 병력을 수송하기 위해 크기를 키우다 보니, 자연히 무게가 많이 나갈 수밖에 없었다.

해서 박기동과 연구원들은 고민 끝에 전면에 장갑을 몰아주고 그 외엔 딱 총탄만 막을 수 있을 정도로 얇게 만들어 무게를 최대한 줄이기 위해 노력했다는 것을 짐작한 정성국이 수긍하자 박기동이 슬쩍 덧붙여 말했다.

“그리고 현재 검차의 개량형인 전차의 개발도 거의 끝났는데, 전차의 장갑은 훨씬 두껍기에 전차가 앞에서 시선을 끌어주거나 포탄을 방어해주면, 장갑차가 포탄 공격을 받을 것 같지는 않아서 이렇게 설계했습니다.”

이에 정성국은 흥미롭다는 얼굴로 박기동을 바라보았다.

“호오. 전차와 장갑차를 함께 편제하라는 거지?”

“예. 연구원들과 상의해보니 그편이 효율적일 것 같아서 말이지요.”

청나라군과의 전투에서 검차는 놀라운 활약을 펼쳤기에 당연히 군사청이나 연구청에서는 검차를 양산하고 싶어했다.

다만 막상 실전에 투입해보니 바로 검차를 양산하기에는 걸리는 점이 많아 일단 개량작업에 착수했고.

그리고 정성국은 이 검차 개량작업에도 깊숙이 개입했으며, 그러면서 검차의 정식 명칭을 자신에게 익숙한 전차로 바꿨고.

헌데 박기동이 전차를 거론하며 장갑차와 전차를 함께 운용할 것을 전제로 장갑차를 설계했다고 하니 자신이 말하기도 전에 이를 파악한 연구원들의 능력이 만족스러워 정성국은 웃음을 터트렸다.

“하하하. 그거 나쁘지 않네. 그럼 전차는 언제쯤 시제품이 나오는데?”

“전차에 들어가는 부품은 이 장갑차의 부품과 상당수 비슷해서...뭐 반년 안에는 시제품이 나올 것 같긴 합니다.”

“그래? 기대하도록 하지. 그보다 슬슬 저 녀석이 움직이는 모습을 좀 보고 싶은데?”

“알겠습니다.”

박기동은 연구원들에게 손짓했고, 연구원 한 명이 장갑차에 탑승하자 곧 시동이 걸린 후 시끄러운 소리와 함께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정성국은 장갑차가 움직이는 모습을 흥미로운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다가 커다란 웅덩이를 넘는 모습을 보고 감탄사를 터트렸다.

“오오. 생각보다 잘 움직이는데?”

“그럼요. 얼마나 고생을 했는데요.”

박기동은 장갑차를 연구하다 겪은 시행착오를 떠올리는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자, 정성국은 피식 웃으며 질문을 던졌다.

“저거 속도하고 항속 거리는 얼마나 나와?”

“일단 속도는 검차와 비슷합니다. 최고 시속은 35km까지 나오고 항속 거리는 150km 정도죠.”

이에 정성국은 놀란 얼굴로 박기동을 바라보았다.

“어? 검차보다 항속 거리가 배는 늘어났네?”

“예. 검차에 장착했던 경유기관보다 몇 배는 발전된 기관을 장착한 덕분에 연료효율도 훨씬 높였고...검차의 경우 2, 3시간마다 연료를 보급해야 하다 보니 여러모로 불편한 터라 항속 거리를 늘리기 위해 연료통의 크기를 대폭 늘렸거든요.”

박기동의 말마따나 검차를 운용하면서 가장 곤란했던 부분이 바로 전투 중간마다 연료를 보급하느라 잠깐씩 멈춰야 했다는 점이었고, 이 때문에 검차의 개량형인 전차 역시 크기를 조금 키운 김에 연료통을 대폭 늘렸다고 덧붙이자 정성국이 무척 만족스러운 얼굴로 말했다.

“잘 생각했어. 항속 거리는 길면 길수록 좋지.”

그렇게 정성국이 박기동과 대화를 나누는 동안에도 장갑차는 각종 장애물을 넘나들었고, 그 모습을 보던 정성국이 새삼 북미왕국의 기술력에 감탄하며 입을 열었다.

“이야. 궤도를 장착해서 그런지 확실히 험지에서도 잘 움직이는구만. 잘 만들었네.”

“허면...?”

“그래. 일단 20대 정도 만들어서 굴려보고 문제가 없는지 확인해봐.”

정성국의 대답에 그동안 장갑차를 개발하느라 고생했던 박기동을 비롯해 그 뒤에서 귀를 기울이던 연구원들은 드디어 장갑차 개발의 1단계는 통과한 셈이었기에 환호성을 터트렸고.

정성국은 그런 박기동과 연구원들의 반응을 흐뭇한 미소와 함께 바라보다 박기동에게 연구원들의 포상을 당부한 뒤 슬쩍 일거리를 던져주었다.

“그리고...저걸 보니까 슬슬 상용차를 만들어도 되겠다.”

“예? 상용차요?”

“그래. 저기서 크기를 더 키우고, 궤도 대신 바퀴를 달고, 장갑은 떼버리면 승객이나 물건을 나르기 딱 좋잖아?”

물론 지금도 마차에 동력 자전거를 연결해 승객이나 물자를 나르고는 있었지만, 동력 자전거의 출력과 제동 문제로 마차의 크기를 키울 수 없는 것이 불만이었던 정성국은 아예 버스와 트럭을 개발하라는 지시를 내리자 박기동이 정성국의 이야기를 듣고 곰곰이 생각하다 고개를 끄덕였다.

“으음...확실히...그렇군요. 알겠습니다. 바로 연구에 들어가겠습니다.”

* * *

자금성의 대전에 들어선 강희제는 용상에 앉아 내각대학사를 바라보며 질문을 던졌다.

“그래. 할하부에서 지원요청이 들어왔다고?”

“그렇사옵니다. 황상 폐하.”

“설마 연합이 몽골로 우회한 건가?”

그동안 연합은 흑룡강에서 청나라군과 대치하고 있었는데, 연합이 마음만 먹는다면 몽골을 우회해 바로 북경을 공격할 수 있었기에 강희제가 걱정스러운 어조로 질문을 던지자 내각대학사가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그것은 아니옵고, 할하부 우익이 중가르를 끌어들인 모양이옵니다.”

“뭐?! 중가르를?”

할하부의 좌익과 우익이 서로 투닥거리는 것은 상관없었지만, 다른 세력을 몽골로 끌어들이는 것은 절대로 용납할 수 없었다.

헌데 중가르라면 호시탐탐 몽골 초원을 노리는 오이라트가 건국한 나라였으니 강희제가 기겁하자 내각대학사가 차분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렇사옵니다. 해서 중가르의 1만 기병이 할하부 우익에 합류해 할하부 좌익을 공격 중이고, 이 때문에 할하부 좌익에서 급히 도움을 요청했사옵니다.”

그리고 내각대학사의 설명이 끝나자마자 대신들이 한마디씩 하기 시작했다.

“황상 폐하. 중가르의 갈단은 몽골제국의 부활을 꿈꾸는 야심가이옵니다. 이들이 할하부를 복속시키면, 그다음 목표는 차하르부가 될 것이 분명하옵니다. 하오니 곧바로 지원병력을 보내 이를 막아야 하옵니다.”

“그렇사옵니다. 몽골제국이 부활하면 당연히 우리 대청을 공격할 것은 자명한 일이옵니다. 하오니 곧바로 할하부 좌익에 병력을 파견해야 하옵니다.”

대신들은 중가르가 할하부를 복속시키면 무슨 일이 일어날지 잘 알고 있었기에 일제히 지원병력을 보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지만, 강희제는 골치가 아플 수밖에 없었다.

사방이 적이라 이를 막기 위해 사방에 병력을 배치하겠다고 세금을 올리는 바람에 백성들이 불만을 품기 시작했고, 일부 지역에서는 반란까지 일어났는데, 여기서 또 지원병력을 만들겠다고 추가로 세금을 걷거나 유력자들의 재산을 뜯는다면, 청나라 내부는 더욱 혼란해질 수밖에 없으니까.

해서 강희제는 한탄하듯 말했다.

“병력이 없지 않나. 병력이. 설마 황도를 지키는 양황기나 정황기를 보내라는 건가?”

“으음...”

대신들 역시 북경을 지키는 정예병인 양황기나 정황기를 빼라고 이야기하지는 못했다.

다만 중가르가 할하부를 복속시키는 것을 그냥 두고 볼 수 없다고 생각한 내각대학사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황상 폐하. 일단 차하르부에서 병력을 일부라도 차출해 할하부 좌익에 보내는 것이 어떻겠사옵니까.”

“...그걸로 될까?”

병력이 워낙 부족해 벌써 차하르부에서 병력을 차출한 지 오래였고, 이런 상황에서 또다시 병력을 차출해봐야 얼마 되지 않는다는 것을 짐작한 강희제가 떨떠름한 표정으로 반문하자 내각대학사가 대답했다.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지 않겠사옵니까. 그리고 차하르부 역시 준가르의 다음 목표가 자신들이라는 것을 모르지 않을 테니 최대한 도울 겁니다.”

“흐음...”

내각대학사의 말처럼 준가르의 다음 목표가 자신들이라는 것을 차하르부도 잘 알고 있을 테니 가용할 수 있는 병력을 모두 지원해주지 않을까 싶었던 강희제가 고개를 끄덕이자 내각대학사가 다시 입을 열었다.

“하옵고 현재 대청은 사방이 적이옵니다. 이런 상황이 길어져 봐야 대청에 좋을 것이 없으니 적을 줄여야 하옵니다.”

“누가 그걸 모르는가. 적을 줄이기 위해 오삼계를 공격 중이지만, 아무런 성과가 없는 것을 자네도 잘 알지 않나.”

강희제의 대답에 내각대학사는 잠시 강희제의 눈치를 살피다 입을 열었다.

“...화친 외엔 방법이 없사옵니다. 황상 폐하.”

그리고 내각대학사가 화친을 입에 올리자 대전은 고요해졌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화친할 수 있는 대상은 북미왕국 외엔 없었으니.

문제는 북미왕국에선 만주를 원한다고 이야기했으니, 내각대학사의 말은 결국 만주를 포기해야 한다는 뜻과도 같았기에 대신들은 잔뜩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지금 북미왕국과 협상하라는 건가?”

그리고 잔뜩 가라앉은 강희제의 목소리가 대전을 울리자 대신들은 일제히 시선을 내리깔면서 강희제의 눈치를 살폈지만, 내각대학사는 개의치 않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렇사옵니다. 황상 폐하. 북미왕국과 협상해 화친을 맺으면 조선과 연합과의 전쟁도 끝낼 수 있사옵니다. 그렇게 되면 북방과 압록강 인근에 배치된 7만 명의 병력을 이용할 수 있게 되며, 천진에 집결해 있는 수군을 내려보내 명나라의 잔당들의 움직임을 막을 수도 있사옵니다. 그러면 모든 것이 해결되옵니다. 허니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일단 북미왕국과 화친을 맺어야 하옵니다.”

“으음...”

처음 내각대학사가 북미왕국과의 화친을 거론했을 때만 하더라도 대신들은 강희제가 불호령을 내릴 거라고 짐작했지만, 강희제의 반응이 생각보다 나쁘지 않았기에 눈치를 살피던 대신들도 하나둘 의견을 밝히기 시작했다.

“일단 북미왕국과 화친을 맺어 외적의 수를 줄이고 내부를 정리하는 것도 괜찮을 것 같사옵니다. 황상 폐하.”

“절대 아니 되옵니다! 북미왕국은 만주를 노리고 있사온데 어찌 북미왕국과 화친을 맺을 수 있겠사옵니까!”

“그렇사옵니다! 만주는 우리 대청의 발상지이옵니다. 절대 포기해선 아니 되옵니다!”

“허나 지금도 겨우 균형을 맞추고 있는 상황에서 몽골 지역이 준가르에 넘어가면 무게추는 급속도로 기울어질 수밖에 없사옵니다! 그 전에 북미왕국과 화친을 맺어야 하옵니다! 황상 폐하!”

“그렇사옵니다! 그리고 북미왕국이 만주를 언급하긴 했지만, 설마 만주 전체를 원하지는 않을 것이옵니다. 허니 만주 일부를 내어주더라도 북미왕국과는 일단 화친을 맺어야 하옵니다! 황상 폐하!”

대신들의 의견은 둘로 나뉘었는데, 만주 출신의 대신들은 결사반대를 외쳤고, 한족 출신의 대신들은 나라를 보존하기 위해 북미왕국과 협상해야 한다고 외쳤다.

그리고 이를 용상에서 지켜보던 강희제는 점차 의견대립이 격해지자 손을 들어 대신들의 입을 막았고.

침묵이 가득한 대전에서 한참을 고민하던 강희제는 예부 상서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바로 북미왕국과 접촉할 수 있겠나?”

“북미왕국의 3함대가 대만 섬을 거점으로 두고 동해안을 순찰하고 있으니, 이들을 통해 북미왕국과 접촉할 수 있사옵니다.”

“허면 접촉해 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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