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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을 탈출하라-613화 (613/850)

613화

봄바람이 살랑살랑 불어오는 4월의 어느 날.

에스파냐 대사는 잔뜩 흥분한 얼굴로 조용한 곰이 건네주는 커피잔을 받으며 감사의 인사를 표한 뒤 입을 열었다.

“허어. 오늘 정말 놀라웠습니다.”

“그렇습니까?”

“예. 북미왕국의 기술이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고 있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비행기가 개발된 지 얼마나 되었다고 벌써 4인용 비행기를 개발할 줄은...”

오늘 새한성에서는 새로운 비행기를 알리는 행사가 있었고, 에스파냐 대사는 이 행사에 참석해 황새 급 비행기를 볼 수 있었다.

헌데 이 황새 급 비행기의 성능은 이전에 보았던 하얀 수리 급 비행기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대단한 성능을 자랑했기에 너무나도 빠른 북미왕국의 기술 발전 속도에 에스파냐 대사는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었고.

그런 에스파냐 대사의 반응에 조용한 곰도 처음 황새 급 비행기의 성능을 듣고 무척이나 놀랐던 기억이 떠올라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솔직히 저도 놀라긴 했습니다. 비행기가 개발된 이후로 전하께서는 비행기를 이용해 빠르게 이동할 수 있다고 여러 차례 말씀하시기는 했습니다만...이렇게 빨리 비행기를 이동 수단으로 사용할 수 있을지는 솔직히 몰랐거든요.”

이에 에스파냐 대사는 눈을 빛내며 질문을 던졌다.

“이동 수단으로 사용한다면...일반인도 탑승할 수 있는 겁니까?”

에스파냐 대사는 비행기를 타보고 싶었다.

이 시대에 하늘을 난다는 경험을 해볼 수 있다는 것은 무척 특별한 이야깃거리가 될 수밖에 없었으니까.

해서 조금 기대하는 눈빛으로 조용한 곰에게 물어보았지만, 조용한 곰은 고개를 저었다.

“글쎄요? 그건 모르겠습니다만...아시다시피 4인용 비행기라고 해도 실제 탑승할 수 있는 인원은 2, 3명뿐이라 아마 당장 민간에 개방하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북미왕국 곳곳에 공항을 만들고 정기 노선을 만들 생각이기는 했지만, 이걸 바로 민간에 개방할 수는 없었다.

정기 노선이라 봐야 하루, 혹은 2, 3일마다 한 번 인근의 공항을 오가는 정도가 될 텐데, 황새 급 비행기의 경우 크기가 아직 크지 않은 터라 탑승객을 얼마 태울 수 없었으니.

거기에 북미왕국 백성들은 비행기에 무척 관심을 두고 있었다.

하늘을 난다는 것이 신기할 수밖에 없지 않은가.

그러니 만약 이걸 민간에 개방했다간, 어떻게든 비행기를 타려는 백성들이 몰려들 테니 제대로 사용하기도 어려웠고.

해서 내부적으로는 관리를 태우거나, 급한 보고서 같은 짐을 운반할 예정이었고.

조용한 곰이 이를 잘 설명하자 비행기에 타보고 싶었던 에스파냐 대사는 무척 아쉬운 얼굴로 중얼거렸다.

“아. 그렇습니까? 그거 정말 아쉽군요. 헌데 조종사를 제외하면 탑승할 수 있는 인원은 3명 아닙니까?”

“지형에 따라 항법사가 필요하다고 하더군요.”

“항법사요?”

“예. 그나마 지형을 어느 정도 파악할 수 있는 육지 위와는 달리 바다 위에서 비행하려면 현재 위치를 정확하게 파악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니까요.”

이 시대에 위성 항법 장치가 있을 리 없으니 비행기의 속도, 상공의 풍향, 풍속 등을 고려해 현재 비행기가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 계산할 사람이 필요했다.

특히 대서양의 경우 정확히 경로를 파악하지 못한다면 제때 중간 기착지인 공항에 들르지 못해 추락할 수밖에 없었으니.

해서 북미왕국에는 그나마 지형을 확인해 현재 비행기가 어느 위치에 있는지 알 수 있는 땅 위에서의 비행은 조종사 1명을, 바다에서의 비행은 안전을 우려해 꼭 항법사를 탑승시키기로 내부적으로 결정을 내렸고.

그렇기에 조용한 곰이 항법사가 필요한 이유를 설명하자 에스파냐 대사는 오히려 놀란 얼굴로 조용한 곰을 바라보며 급히 질문을 던졌다.

“바다 위라니...설마 이번 황새 급 비행기는 대서양이냐 태평양을 건널 수 있는 겁니까?!”

“그렇다더군요.”

“맙소사...”

분명 오늘 행사장에서 이번에 개발한 황새 급 비행기는 크기가 큰 대신 더 많은 연료를 실을 수 있다는 설명을 듣긴 했지만, 드넓은 대서양이나 태평양을 비행기를 타고 횡단할 수 있다는 것은 무척 놀라웠기에 에스파냐 대사는 무척 놀란 표정을 지었고.

그런 에스파냐 대사의 반응에 조용한 곰은 그가 오해했음을 깨닫고 곧바로 입을 열었다.

“아. 물론 단번에 대서양이나 태평양을 건널 수 있는 것은 아니고, 바다 사이에 있는 아국의 섬들을 중간 거점으로 이용해야 합니다만...”

물론 그 정도만 해도 무척 놀라운 것이 사실이었기에 에스파냐 대사는 다시 한번 감탄사를 내뱉다 문득 떠오른 생각에 급히 조용한 곰에게 말을 걸었다.

“허어...어?! 그러면 이번에 개발된 비행기를 이용하면 유럽으로도 이동할 수 있겠군요?”

“예. 가능할 겁니다. 페로 제도는 유럽 각국에 무척 가깝잖습니까. 아마 잉글랜드나 네덜란드, 덴마크, 프랑스 북부 지역 정도는 페로 제도에서 비행기를 타고 방문할 수 있다더군요.”

“허. 그렇습니까...”

비행기의 속력은 배보다 월등히 빠른 만큼, 잘만 하면 며칠 만에 북미왕국에서 유럽으로 이동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 에스파냐 대사는 세상이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는 사실에 감탄하며, 에스파냐 역시 기술 발전에 더 많은 관심을 쏟아서라도 어떻게든 북미왕국을 따라가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을 때, 조용한 곰이 말했다.

“그보다 긴히 의논할 일이 있다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조용한 곰의 질문에 에스파냐 대사는 정신을 차리고 자세를 바로 하며 말했다.

“아. 그렇지요. 바로 용건을 이야기하려 했는데, 아까 본 광경이 정말 놀라웠기에 그에 관한 이야기만 했군요. 크흠. 혹시 북미왕국에서 히스파니올라 섬과 푸에르토리코 섬을 매입하실 생각은 없으십니까?”

“예?!”

* * *

정성국은 슬슬 퇴근할 시간이 되었기에 자리에서 일어나려 할 때, 갑자기 조용한 곰이 잔뜩 흥분한 얼굴로 집무실을 방문했기에 무슨 일인가 싶어 용건을 물었고.

조용한 곰의 대답에 황당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아니. 뜬금없이 그게 무슨 소린가? 정말 에스파냐 대사가 히스파니올라 섬과 푸에르토리코 섬의 매각 의사를 밝혔다고?”

“그렇습니다. 전하.”

조용한 곰이 고개를 끄덕이자 정성국은 에스파냐에서 왜 이런 제안을 한 것인지 이해가 가지 않아 질문을 던졌다.

“갑자기 왜? 아. 설마 최근 카리브 해의 분위기가 묘하다더니 그 때문인가?”

작년에 프랑스는 네덜란드 소유의 소앤틸리스 제도의 섬들을 공격해 모두 점령했고, 그동안은 이를 장악하는 데 중점을 두고 있었다.

그리고 이 점령지가 안정된 모양인지 올 초부터는 다시 전쟁 준비를 시작하고 있다는 소문이 파다했고.

이러한 정보를 김봉길을 통해 접한 정성국은 누에바 에스파냐의 부왕이 결국 프랑스의 공격을 막지 못할 것으로 예상해 그 전에 북미왕국에 팔 생각인가 싶어 조용한 곰에게 묻자 조용한 곰이 조금은 애매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그것도 이유 중 하나인 것 같습니다.”

“이유 중 하나? 그럼 다른 이유도 있다는 소린데...”

뜸 들이지 말고 빨리 말하라는 눈빛을 보내는 정성국을 보고 조용한 곰이 미소와 함께 대답했다.

“에스파냐에 돈이 없는 모양입니다.”

“그게 무슨 소린가. 에스파냐가 돈이 없어서 두 섬을 매각하겠다고? 그럴 리가.”

물론 에스파냐 왕실은 빚이 많았다.

전대 왕들이 수많은 전쟁을 치렀는데, 이 전비를 마련하기 위해 베네치아의 은행가들에게 손을 벌렸기에.

다만 북미왕국이 등장한 이후로 에스파냐는 북미왕국과의 교역을 통해 막대한 이득을 취할 수 있었고, 덕분에 이 빚을 꾸준히 갚아나가고 있었기에 오히려 이전에 비하면 많이 나아진 상황이었고.

그러다가 프랑스와의 전쟁이 벌어지면서 전비를 마련하기 위해 다시 은행가들에게 손을 벌려야 했지만, 재작년 마리아나 제도와 루손 섬 북부를 북미왕국에 매각해 다시 한숨을 돌릴 수 있었고.

그렇기에 정성국이 의아하다는 얼굴로 반문하자 조용한 곰이 입을 열었다.

“올 초 네덜란드 인근 해역에서 대규모 해전이 벌어지지 않았습니까.”

2월 초에 네덜란드 인근 해역에서 프랑스 해군과 에스파냐-네덜란드 연합 해군이 크게 맞붙었다.

프랑스는 암스테르담을 공격하기 위해 다시 상륙 작전을 계획했고, 에스파냐-네덜란드 연합 해군은 당연히 프랑스군을 가득 실은 수송 함대를 막기 위해 나서면서 해전이 벌어진 것이다.

그리고 이 해전의 결과 에스파냐-네덜란드 연합 해군은 결국 프랑스군의 상륙을 막아내긴 했지만, 막대한 피해를 보았고, 특히 에스파냐 함대의 피해가 무척 컸다는 이야기를 일전에 보고 받았던 정성국은 이를 떠올리며 말했다.

“아. 하를럼 해전에서 에스파냐 함대의 피해가 꽤 컸다고 들었는데 설마 그것 때문인가?”

“그렇습니다. 무역로 보호를 위해선 당장 에스파냐 해군 함대를 복구해야 하는데 그러려면 막대한 재원이 들어가니까요.”

“아무리 그래도...”

분명 에스파냐 해군 함대를 빠르게 복구할 필요는 있지만, 그것 때문에 카리브 해의 두 섬을 매각한다는 결정을 내린 것은 이해하기 어려워 정성국이 고개를 갸웃하자 조용한 곰이 다시 입을 열었다.

“또한, 상대적으로 피해가 덜한 프랑스 함대는 에스파냐를 압박하기 위해 간단한 정비만 끝내고 바로 카디스 인근 해역으로 이동했는데 에스파냐 입장에선 운이 없게도 베라크루즈에서 막대한 교역품을 싣고 출발한 에스파냐 교역 선단이 세비야에 도착할 시기와 겹쳤습니다.”

“맙소사. 그럼 교역 선단이?”

교역 선단을 언급하자 정성국이 설마 하는 얼굴로 조용한 곰을 바라보았고, 조용한 곰은 빙긋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예. 프랑스 해군에 나포되었지요. 덕분에 에스파냐는 식민지에서 들어오는 1년 수입의 절반을 날린 셈이고요.”

“이것 참...”

예전엔 1년에 한 번 교역 선단을 보냈고, 이 교역 선단에 아시아의 값비싼 교역품이 실려 있었기에, 해적들은 이 교역 선단을 보물 선단이라고 부르며 어떻게든 나포하기 위해 덤벼들었다.

그리고 최근엔 북미왕국과의 교역량이 많아지고, 은과 고무, 구리, 구아노 등 각종 자원을 팔아 더 많은 북미왕국의 값비싼 교역품을 얻을 수 있었기에 1년에 두 번 교역 선단을 보내고 있었는데, 이 교역 선단이 프랑스 함대에 나포되었다는 이야기에 정성국은 에스파냐의 불운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 수밖에 없었고.

그런 정성국의 반응에 조용한 곰은 덧붙였다.

“거기에 에스파냐는 다른 유럽국가들과는 달리 식민지가 워낙 넓잖습니까. 반면 노예무역을 공식적으로 금지한 상황이라 식민지를 개발할 인력은 부족하고요.”

그나마 인력이 풍부한 멕시코 지역과는 달리 카리브 해의 경우 인력이 그리 많은 편은 아니었고, 당연히 개발도 느려질 수밖에 없었다.

여기에 노예무역까지 금지한 터라 결국 유럽에서 계약 노동자를 고용해 데려와야 했는데, 그 수가 많지 않아 모든 섬을 빠르게 개발할 수도 없었고.

이를 떠올린 정성국이 심각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결국, 두 섬의 개발이 쉽지 않고, 급전도 필요하고, 거기에 프랑스에 뺏길 수 있으니 그 전에 우리에게 팔아치우겠다는 건가?”

정성국의 혼잣말에 조용한 곰이 씩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그리고 에스파냐가 급한 만큼 두 섬을 무척이나 헐값에 사 올 수 있을 것 같고 말입니다.”

“흐음...”

정성국은 이 매각 제안을 받아들여야 하나 고민하기 시작했다.

분명 히스파니올라 섬이나 푸에르토리코 섬의 위치나 크기를 생각하면 이 제안을 받아들이는 것이 맞는데, 두 섬은 원주민도 거의 없고, 에스파냐에서도 이곳에 정착한 주민들과 계약 노동자들을 다른 섬으로 이주시킬 것이 분명하니, 돈을 들여 두 섬을 산다 해도 개발하기가 쉽지 않아 보였던 탓이다.

그리고 정성국의 고민이 길어지자 조용한 곰이 그의 눈치를 살피다 슬쩍 입을 열었다.

“이 제안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물론 당장 개발하기 어렵다는 것은 잘 알고 있습니다만...이 섬들이 프랑스에 넘어가는 것보다는 아국이 사들이는 것이 여러모로 낫습니다. 그리고 파나마 운하를 이용하는 선박들이 점차 늘어나고 있는 만큼 항로의 안전을 위해서라도 히스파니올라 섬은 아국의 영역으로 만드는 것이...”

이러한 조용한 곰의 조언에 정성국은 결정을 내렸다.

“좋네. 바로 에스파냐 대사와 협상하도록 하게. 단, 자네가 말한 대로 최대한 헐값에 사와야 하네. 알지?”

“하하하. 물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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