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2화
집무실에서 한창 업무를 보고 있던 브라질 총독 마누엘은 살바도르 방어 사령관인 카스토르가 갑작스럽게 방문하자 그 이유를 물었고.
카스토르가 페르남부쿠 동해안 지역에서 벌어졌던 전투를 보고하자 기함했다.
“뭐?! 팔마레스 지역으로 도망친 흑인 노예들이 신식 소총으로 무장했다고? 그게 정말인가?”
“그렇습니다. 총독 각하. 그것도 수십 명 정도가 아니라 거의 천 명에 달하는 흑인들이 신식 소총으로 무장했답니다. 그렇기에 페르남부쿠 동해안에 배치되어 있던 병사 400명은 곧바로 밀려버렸고요.”
카스토르가 어두운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자 마누엘은 설마 하는 얼굴로 카스토르를 바라보며 질문을 던져댔다.
“대체 어떻게? 북미왕국이 신식 소총을 함부로 풀지 않을뿐더러 가격도 무척 비싸지 않나?”
북미왕국의 신신 소총을 대량으로 구하는 것은 무척 어려웠다.
민간에 풀리는 신식 소총은 철저히 통제하고 있었기에, 신식 소총을 대량으로 구하려면 북미왕국과의 협상을 통해 직접 넘겨받아야 했는데 신식 소총이 대단하다는 것이 널리 알려지면서 유럽 각국이 앞다투어 신식 소총을 구하려고 했기에 늘 물량이 부족했으니까.
거기에 신식 소총은 비싸고, 또 북미왕국에서 생산하는 총알만 사용해야 했기에 유지비도 비쌌고.
헌데 이러한 신식 소총을 팔마레스의 흑인들이 사용한다는 것은 그 뒤에 북미왕국이 있다는 소리였기에, 북미왕국의 국력을 잘 알고 있는 마누엘은 안색이 창백해질 수밖에 없었고, 카스토르가 자신의 추측을 부정해주길 바랐지만, 카스토르는 씁쓸한 얼굴로 대답했다.
“당연히 북미왕국이 그냥 넘겨주었겠지요. 시베리아 지역의 원주민들에게 그랬듯 말입니다.”
“젠장. 그럼 북미왕국은 뒤에서 킬롬보를 지원해 우리를 공격할 속셈이라는 거군.”
“아무래도 그렇지 않겠습니까? 북미왕국의 국왕이 노예무역을 무척 부정적으로 바라보고 있다는 것은 총독 각하께서도 잘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그 때문에 유럽의 다른 나라들도 일단 노예무역을 금지했고요. 헌데 저희는...”
카스토르가 말을 흐리자 마누엘은 한숨을 내쉬었다.
이 문제로 작년부터 리스본이 무척 시끄러웠고, 섭정인 페드루 왕자와 일부 귀족들은 노예무역 금지에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지만, 대귀족들의 반발이 생각보다 거셌고, 이들이 유폐된 현 포르투갈의 국왕인 아폰수 6세를 다시 옹립할 움직임까지 보이자 페드루 왕자는 일단 노예무역을 허용했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그리고 포르투갈이 노예무역을 포기하지 않은 이상 북미왕국은 계속해서 킬롬보의 흑인들을 지원해 브라질 식민지를 공격할 것이 뻔했고, 브라질 식민지의 중심지가 바로 이곳이었기에 마누엘은 카스토르를 바라보고 질문을 던졌다.
“끙...혹시 킬롬보의 흑인들이 이곳을 공격하면 막을 수 있을까?”
불안한 표정이 역력한 마누엘을 보고 카스토르가 너무 걱정 말라는 듯 슬쩍 웃으며 답했다.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물론 신식 소총이 기존의 머스킷에 비해 장전 속도가 월등히 빠르긴 합니다만...이곳에 배치되어 있는 병력이 5천에 달합니다. 그리고 튼튼한 요새와 대포까지 있습니다. 그러니 킬롬보의 흑인들이 이곳으로 몰려온다 하더라도 충분히 막을 수 있습니다.”
“휴우. 그래?”
카스토르의 장담에 마누엘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자 카스토르가 덧붙여 말했다.
“예. 그리고 킬롬보의 흑인들도 바보는 아니기에 이곳을 직접 공격하지는 않을 테니 너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럼 주변을 공격할 것이다?”
“아마 그렇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문제는 킬롬보의 흑인들이 주변을 공격한다 해도 제대로 막기가 어렵다는 점입니다.”
카스토르의 대답에 마누엘은 인상을 찌푸리며 중얼거렸다.
“요새와 대포가 없으면 화력에서 밀린다는 이야기겠지?”
“예. 야전에서 붙으면 승리를 거둔다 하더라도 피해가 막심할 겁니다.”
“허. 신식 소총이 대단하다는 이야기는 몇 번이고 들었지만...”
마누엘은 카스토르의 대답에 고작 신식 소총의 유무로 이렇게 차이가 난다는 것에 한탄했을 때, 카스트로는 마누엘의 한탄에 맞장구치지 않고, 일단 만약의 일에 대비하고자 의견을 제시했다.
“그리고 상황이 이런 만큼, 일단 남부에 배치된 병력을 일단 이곳으로 집결시킬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남부에 배치된 병력을? 얼마 안 되잖나.”
아무래도 살바도르 인근과 브라질 북부 해안가는 어느 정도 개발이 되었기에 비교적 많은 병력이 주둔하고 있었지만, 남부는 개발이 거의 되지 않은 탓에 병력도 얼마 주둔해 있지 않았다.
헌데 이곳의 병력을 빼봐야 크게 도움 될 것 같지도 않고, 또 남부의 장악력이 흐트러질 것이 뻔했기에 마누엘은 부정적인 얼굴로 반문했지만, 카스토르는 고개를 저었다.
“그래도 없는 것보다야 낫지요. 그렇다고 북부 해안가에 배치된 병력을 뺄 수는 없는 노릇 아닙니까.”
북부 해안가를 호시탐탐 노리는 네덜란드는 최근 프랑스 때문에 그 세력이 크게 약화되었지만, 프랑스 역시 브라질 북부 해안가를 노리고 있는 만큼, 카스토르의 말마따나 이곳의 병력을 움직일 수는 없었기에 마누엘은 한숨을 내쉬며 이를 승낙했다.
“끙...알겠네. 그렇게 하게. 그리고 본국에 바로 이 소식을 전하고 지원병력을 요청하게. 팔마레스 지역에 있는 킬롬보를 그냥 내버려 두었다간, 식민지의 장악력이 사라질 수도 있을 것 같으니까.”
마누엘의 이야기에 카스토르는 신식 소총이 조금 걸리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그냥 내버려 두었다간 식민지를 잃을 수도 있다는 위기감에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으음...확실히 그렇긴 하지요. 알겠습니다. 바로 본국으로 떠나는 배편에 보고서를 보내겠습니다.”
* * *
2월이 되자 정성국은 가족들과 함께 새진주를 방문해 초고층 건물에 올라 북미왕국의 건축 기술을 두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고.
이 초고층 건물의 숙박 시설에서 잠시 머물며 새진주의 풍경을 즐긴 정성국은 집무실에 쌓일 보고서가 두려워 곧바로 새한성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정성국이 새한성으로 돌아오자마자 조용한 곰이 정성국의 집무실을 방문했고.
“수송선들이 벌써 도착했다고? 생각보다 빠르네?”
이제 정식으로 동맹을 맺은 줌비에게 물자를 수송하기 위해 떠났던 수송 함대가 벌써 새진주로 복귀했다는 보고에 정성국이 의외라는 표정을 짓자 조용한 곰이 오히려 당연한 것 아니냐는 얼굴을 하며 대답했다.
“이전에는 범선이라 배의 속력도 느릴뿐더러 해안가 인근에 정박해 작은 배를 이용해 물자를 내려놓고, 또 그 물자들을 등에 짊어지고 팔마레스 지역까지 이동해야 했으니 한 번 다녀오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렸지만, 이번엔 수송선이 투입되었고 줌비와 흑인들이 해안가에서 아국의 배들을 기다리고 있었으니 가져간 물자들을 내리기만 하면 그만이라서 금방 다녀왔다고 하더군요.”
조용한 곰의 말마따나 범선보다는 수송선이 2배는 빨랐고, 여기에 그동안은 물자를 하역하고 옮기는데 많은 시간이 걸렸다면, 이번엔 해안가에 대기하고 있던 줌비에게 물자를 넘기기만 하면 그만이라 정성국이 상황을 이해하고 고개를 끄덕이며 중얼거렸다.
“그래도 조금 걱정했는데 줌비가 팔마레스 지역의 동쪽 해안가를 장악하긴 한 모양이군?”
“하하하. 신식 소총 1천 자루로 무장했는데 머스킷으로 무장한 포르투갈 병사 400명을 상대로 고전할 정도로 줌비가 무능한 인물은 아닙니다.”
“그렇긴 해. 뭐 무능한 인물이었다면, 진작에 킬롬보는 포르투갈 병사들에 의해 파괴되긴 했겠지. 다만 킬롬보의 흑인들은 신식 소총에 익숙하지 않을 테니 조금 걱정했을 뿐이었는데 아무래도 내 기우였던 모양이군.”
물론 신식 소총의 사용법이 간단하긴 했지만, 화약 무기에 익숙하지 않다면 제대로 적응하기 어려웠기에 정성국이 내심 걱정했는데, 의외로 쉽게 적응한 것 같아 이렇게 이야기하자 조용한 곰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줌비와 흑인들은 화약 수급이 어려워 화약 무기를 제대로 이용하지 못했을 뿐이지 화약 무기를 다루지 못하는 것은 아니라서요. 그리고 신식 소총은 사용법도 간단하니 뭐가 문제겠습니까.”
“하긴...”
“그리고 이야기를 들어보니 아무리 화력에서 우월하다 해도 포르투갈 병영을 직접 공격하면 피해가 커질 수 있다고 생각한 모양인지, 일부러 주변의 농장들을 습격해 포르투갈 병사들을 유인한 후 쓸어버렸더군요.”
그러면서 조용한 곰은 줌비가 어떻게 포르투갈 병사들을 상대했는지 자세히 설명해주기 시작했고, 이를 듣고 정성국은 무척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킬롬보의 흑인들은 단순히 수와 무기만 믿고 포르투갈 병사들을 공격한 것이 아니라 머리까지 써가며 피해를 최소화했으니.
“허. 그 정도면 정말 믿고 맡겨도 되겠군. 굳이 육군 지휘관을 보낼 필요가 없을 것 같은데?”
정성국이나 군사청, 그리고 외무청에서는 줌비의 역량에 의문을 품고 있었고, 그 때문에 줌비가 살바도르를 공격할 뜻을 밝히자 시베리아 부족 연합에 아이누 탐사대장을 보낸 것처럼 지휘관들을 보낼 생각이었는데, 이번에 줌비가 병력을 지휘해 포르투갈 병사들을 상대한 것을 보면, 굳이 그럴 필요까지 없겠다 싶어 조용한 곰을 바라보자, 조용한 곰도 같은 의견인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아마 이쪽에서 약간의 조언만 해주면 될 것 같습니다.”
“알겠네. 군사청장에게 따로 이야기해두지. 그리고 가져간 신식 소총 2천 자루는 넘겼지?”
“물론입니다. 신식 소총의 위력을 실감한 줌비는 신식 소총 2천 자루를 보고 무척 기뻐했다더군요. 그리고 약속을 지켜줘서 무척 감사하다고 몇 번이고 이야기했답니다.”
비록 북미왕국과 동맹을 맺었고, 북미왕국이 지원을 약속하긴 했지만, 줌비는 과연 북미왕국이 이 약속을 지킬지 내심 걱정할 수밖에 없었다.
해서 매일같이 해안가 북쪽을 바라보았었고.
헌데 북미왕국의 거대한 배가 5척이나 도착했고, 이 중 2척의 배에서 각종 물자를 쏟아냈으니 줌비는 수송함대와 함께 다시 방문한 외무청 관리에게 몇 번이고 감사의 뜻을 전할 수밖에 없었고, 이를 전해들은 정성국이 피식 웃었을 때, 조용한 곰이 계속해서 보고했다.
“그리고 총 3천 자루의 신식 소총을 얻게 된 줌비는 자신감이 가득 찬 모양인지 바로 살바도르를 공격하고 싶어하더군요. 해서 살바도르 공격을 위해 아국의 전선 3척을 빌려주겠다는 아국의 제의를 곧바로 받아들였고요.”
줌비는 아무리 자신들과 동맹을 맺었어도, 곧바로 포르투갈과 선전포고하고 전쟁을 치르기엔 유럽 각국과의 관계가 걸릴 수밖에 없다는 북미왕국의 입장을 이해했다.
또한, 줌비는 무적이라 불리는 북미왕국의 전선에 자신들의 깃발이 걸린다면, 오히려 자신들의 군사력을 부풀릴 수 있었기에 나쁠 것 없다고 판단했고.
해서 외무청 관리가 전해준 북미왕국의 제안을 흔쾌히 받아들였다는 보고에 정성국은 만족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그래? 그럼 군사청장에게 바로 이야기해야겠군.”
그 후 정성국은 조용한 곰이 건네준 줌비와 접촉한 외무청 관리가 작성한 보고서를 통해 줌비가 장악한 해안가의 상황을 파악하고, 혀를 내둘렀다.
“허어. 벌써 킬롬보의 주민들을 해안가로 이주시키고 있다니...이거 추진력이 무척 빠른데?”
물론 줌비가 해안가로 본거지를 옮길 거라고 이야기는 했지만, 이렇게 빠르게 행동할 줄은 몰랐기에 정성국이 놀라자 그건 조용한 곰도 비슷한 심정이었는지 맞장구쳤다.
“예. 저희와 동맹을 맺은 후 곧바로 이주 준비까지 한 모양이라고 하더군요. 그 때문에 해안가에는 집을 짓는 사람들로 넘쳐나고 있었고요. 헌데 좀 놀랐습니다. 그동안 킬롬보로 도망친 흑인 노예들은 대부분 포르투갈을 두려워하며 산속으로 숨은 자들이었으니까요.”
“그러게. 다만 이들이 해안가에 정착하는 것은 오히려 우리에게 나쁠 것 없으니 이를 지원해야겠어. 그러니 이번엔 더 많은 물자를 보내도록 하게.”
정성국의 말처럼 북미왕국과 킬롬보 도스 팔마레스는 해로로 연결되어 있는 만큼, 저들의 거점이 내륙에 있는 것보다는 해안가에 있는 것이 여러모로 편했기에 조용한 곰은 정성국의 명령에 고개를 끄덕였다.
“예. 저들이 안정적으로 정착할 수 있도록 더 많은 식량과 각종 생활용품 등을 보내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