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1화
준가르의 칸 갈단은 용맹한 준가르의 전사들과 맞서 싸우던 카자흐 칸국의 병사들이 결국 버티지 못하고 하나둘 도망치는 모습을 낮은 언덕 위에서 바라보다 미소지었고.
도망치던 카자흐 칸국의 병사들을 추격하며 최대한 큰 피해를 주기 위해 말을 달리는 준가르의 전사들을 보고 흡족한 얼굴을 하고 있을 때, 한 부하가 고개를 돌리다 이곳으로 접근하는 일단의 기병을 확인하고 이를 보고하자 갈단은 고개를 돌려 흙먼지를 날리며 이곳으로 빠르게 접근하고 있는 소규모 기병들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리고 이들이 점차 가까워지고, 기병들의 맨 앞에 동생인 도르리자브의 얼굴이 보이자 갈단은 반가움과 놀라움이 공존한 얼굴로 급히 고삐를 움직여 동생을 맞이하기 위해 이동했고.
갈단의 동생 도르지자브는 갈단과 가까워지자 속도를 줄이다가 말에서 내려 갈단에게 고개를 숙였다.
“형님. 그동안 강녕하셨습니까.”
“그래. 헌데 네가 여긴 무슨 일이냐.”
“형님께 긴히 드릴 말씀이 있어 찾아왔습니다.”
“대체 무슨 일이길래?”
갈단은 천산산맥 남쪽의 타림 분지를 장악한 이후, 그곳의 통치를 도르지자브에게 맡겼는데, 도르지자브가 직접 이곳까지 방문한 용건이 궁금할 수밖에 없었기에 바로 질문을 던졌고.
“그것이...”
도르지자브는 갈단에게 상인들을 통해 수집한 청나라의 정세를 설명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갈단은 동생의 설명을 듣다 당혹스러운 얼굴로 반문했다.
“허. 청나라가 고려에 패했다고?”
“고려의 후신인 조선에 대패한 모양입니다.”
“조선이라...”
갈단은 청나라가 절대 만만치 않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물론 최근엔 반란이 일어났기에 예전만 못하다지만, 조선에 대패했다는 것은 확실히 의외였기에 갈단은 조선이 그 정도로 강국이었나 하는 얼굴을 하고 있자 도르지자브가 입을 열었다.
“물론 청나라가 전력을 다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었습니다. 청나라 황제는 뭐가 그리 급한지 반란군을 토벌하지도 못한 상황에서 조선을 공격했으니까요.”
“대체 이유가 뭐지? 지금 청나라 황제는 젊긴 해도 총명하다고 알려지지 않았나?”
현재 청나라는 반란군과 오랫동안 전투 중이었다.
그 때문에 반란군은 아예 나라마저 건국했고.
그러니 청나라로서는 무엇보다 이 반란군을 토벌하는 것을 최우선으로 생각해야 했는데, 여기서 후방이나 다름없는 조선을 공격했다는 것이 의아했던 갈단이 도르지자브를 바라보며 질문을 던지자 도르지자브는 어깨를 으쓱했다.
“뭐 듣기론 조선이 반란군과 연결되어 급히 토벌하려다 패배했다는 소문이 있습니다만...정확한 것은 아닙니다.”
청나라가 조선을 침공한 이유가 중요하냐는 표정을 짓는 도르지자브를 보고 갈단이 고개를 끄덕였다.
“흐음...그래. 뭐 청나라가 조선을 공격한 이유가 중요한 것은 아니지.”
“맞습니다. 중요한 것은 청나라가 조선을 공격하다 대패해 상당수의 병력을 잃었다는 점이지요. 그리고...”
“그리고?”
또 다른 일이 있냐는 얼굴을 하는 갈단을 보고 도르지자브가 씩 웃으며 말했다.
“시베리아 부족 연합도 청나라를 공격한 모양입니다.”
“뭐? 연합이?”
갈단은 오라이트 부를 완전히 장악하고 준가르를 세우면서 북서쪽의 러시아 차르국과 꽤 우호적으로 지내고 있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시베리아 부족 연합의 존재를 알게 되었고.
처음 갈단은 연합의 강력함에 놀랐다.
러시아 차르국이 만만치 않았기에 대립하기보다는 우호적으로 지냈던 것인데, 그 러시아 차르국이 순식간에 밀렸으니 말이다.
해서 갈단은 연합을 내심 경계했는데 연합은 준가르와 싸울 생각은 없는지 바로 상인들을 보내 부족 단위로 교역하고 있었기에 일단은 마음을 놓았었고.
헌데 이 연합이 청나라를 공격했다는 말에 갈단이 놀라자 도르지자브가 말했다.
“예. 연합이 러시아 차르국과 화친을 맺으면서 예니세이 강을 기준으로 동쪽을 모두 차지했잖습니까. 그러니 자연스레 청나라와 국경을 맞댄 모양입니다. 그리고 전투가 벌어졌고요.”
“결과는?”
“연합의 승리입니다.”
“허.”
갈단은 도르지자브의 보고에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그리고 러시아 차르국과의 전쟁에서 승리를 거두고, 여기에 청나라와의 분쟁에서도 승리를 거두었기에 연합이 예상보다 더 강력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과 함께 경계심을 올리기도 했고.
그때 갈단의 귓가에 동생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여기에 명나라의 잔당들도 해안가를 공격하니 청나라는 사방에서 공격받는 셈입니다. 당연히 몽골 문제에 신경을 쓸 정신이 없지요.”
갈단은 도르지자브가 몽골을 언급하자 눈빛이 달라졌다.
갈단은 준가르를 장악한 이후 언제나 몽골에 관심을 두었다.
특히 몽골족이 잘 나갈 때만 하더라도 여진족은 노예에 불과했는데, 여진족이 청나라를 세우고 중원을 장악한 이후에는 오히려 여진족이 몽골족을 지배하게 되었다.
몽골의 두 축인 차하르부는 이미 청나라 황실에 복속되어 지배를 받고 있었고, 할하부는 아직까지 청나라 황실에 완전히 복속된 것은 아니었지만, 청나라 황실에서는 할하부를 회유하기 위해 관직을 내려주고 이 관직에 매년 청나라에 조공사절을 파견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하자 청나라와의 교역이 필요했던 할하부의 족장들은 이 관직을 받아들이며 청나라의 밑으로 들어갔다.
결국, 몽골족은 한때 노예로 부렸던 자를 주인으로 모시게 된 셈이었고, 갈단은 이것을 무척 못 마땅해했고, 어떻게든 몽골족을 끌어들여 몽골제국의 부활을 염두에 두고 있었다.
다만 당장은 청나라와 맞상대하기엔 역부족이었기에 몽골과 청나라의 정보만 수집하면서 준가르의 세력을 넓히는 데 주력하고 있었고, 이번 서방 원정도 그 때문이었고.
헌데 도르지자브는 청나라가 사방에서 공격받고, 또 주변 상황이 청나라에 불리하게 돌아가는 터라 지금이 몽골 문제에 개입할 적기라고 주장하니 갈단은 타림 분지를 통치해야 하는 동생이 왜 이곳까지 직접 방문한 것인지 깨닫고 생각이 많은 얼굴로 질문을 던졌다.
“...그래서 네가 직접 이곳까지 달려온 거냐?”
“그렇습니다. 지금이 몽골을 통합할 적기라고 생각해서 말입니다.”
“으음...”
갈단이 누누이 입에 올렸던 몽골 통합을 도르지자브가 입에 올리자 갈단은 신음을 흘리며 생각에 잠겼고.
그동안 준가르가 몽골 문제에 개입하지 못했던 것은 청나라 때문이었다.
비록 지금이야 예전만 못하다지만, 여전히 몽골족의 전투력은 무서웠고. 이런 몽골족이 이전처럼 하나의 깃발 아래 뭉치게 되면 당연히 청나라로서는 위협적일 수밖에 없었으니 다른 세력이 몽골에 영향력을 넓히려는 시도를 철저히 차단하고 있었던 것이다.
헌데 현재 청나라는 몽골 문제를 신경 쓸 상황이 아닌 만큼, 몽골을 통합할 적기라는 동생의 말에 갈단은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고.
다만 그것과는 별개로 한창 카자흐 칸국을 밀어붙이고 있는 현 상황에서 몽골 문제에 개입하게 되면 이 카자흐 초원의 정복은 물 건너가게 되는 셈이라 갈단은 고심하기 시작했고, 그런 갈단의 반응에 도르지자브는 슬쩍 덧붙였다.
“물론 한창 카자흐 칸국을 밀어붙이고 있는 만큼, 그리고 목표로 한 이 카자흐 초원을 아직 정복하지 못한 만큼, 몽골 문제에 개입한다는 결정을 내리기 어렵다는 점은 잘 알고 있습니다만...이 기회를 놓치면 훗날 크게 후회할 것 같아 제가 이렇게 말을 달려 이곳까지 온 겁니다.”
동생인 도르지자브의 말에 눈을 감고 잠시 고민하던 갈단은 결정을 내리고 눈을 떠 도르지자브를 바라본 후 질문을 던졌다.
“할하부는 여전히 분열되어 있고?”
할하부는 좌익과 우익으로 나뉘는데, 둘의 관계가 무척 좋지 못했다.
약 20년 전, 할하부 우익의 한 부족장이 좌익의 한 부족을 공격한 것을 계기로, 할하부는 둘로 나뉘어 계속해서 대립하고 있었으니까.
그리고 이를 이용하면 손쉽게 할하부를 장악할 수 있겠다는 계산이 선 갈단이 도르지자브에게 질문하자, 도르지자브 역시 갈단의 속셈을 눈치챘기에 씩 웃었다.
“그렇습니다. 여전하지요. 그리고 가까운 할하부 우익과는 끈을 만들어 두었습니다. 물론 그동안은 청나라 때문에 할하부 우익을 직접적으로 지원할 수 없었습니다만 현재 청나라는 제 앞가림도 못 하는 상황이니 할하부 우익에 병력을 지원하면 될 테고요.”
동생의 대답에 갈단은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마치 하늘이 대몽골제국의 부활을 돕는 느낌이로군. 허면 도르지자브. 네가 고생 좀 해야겠다.”
“그 말씀은...”
“그래. 타림 분지에 주둔해있는 병력 절반과 각 부족에 현재 청나라의 사정을 밝히고 추가로 전사들을 소집해서 네가 직접 할하부 우익을 지원하도록 해라.”
분명 양면 전선은 위험하긴 했지만, 현재 카자흐 칸국과의 전쟁은 준가르에 무척 유리했고, 준가르와 할하부 우익 연합을 할하부 좌익 홀로 막긴 어려웠으니, 충분히 해볼 만하다고 생각한 갈단이 이렇게 명령하자 도르지자브가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알겠습니다! 형님!”
* * *
‘타타타타탕!’
“으악!”
“컥!”
총성이 일제히 울리면서 그동안 이곳에서 함께 지내며 정을 쌓아왔던 포르투갈 병사들이 하나둘 쓰러지는 모습을 보고 지휘관인 엘테가 분노에 주먹을 불끈 쥐며 고래고래 소리쳤다.
“쏴! 쏘라고!”
‘타타탕!’
포르투갈 병사들이 일제히 발포하자, 저 멀리서 총을 겨누고 있던 흑인 중 일부가 쓰러지긴 했지만, 흑인들은 개의치 않고 총을 조작했고, 어느덧 재장전을 끝낸 것인지 바로 방아쇠를 당겼다.
‘타타타타탕!’
“컥!”
“쿨럭!”
“신이시여...”
총성이 들린 이후 주변의 병사들이 우수수 쓰러지는 모습에 공포를 느꼈는지, 일부는 신을 찾았고. 이 모습을 보고 엘테는 당장 정신 차리라고 악에 받쳐 소리치고 있을 때, 이번 토벌을 위해 합류한 다른 지휘관인 페르얀이 찾아왔다.
“엘테! 퇴각하자!”
이에 병사들을 향해 고래고래 소리치던 엘테는 강렬한 눈빝으로 페르얀을 바라보았다.
“그게 무슨 개소리야! 퇴각이라니! 전투가 벌어진 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 퇴각을 입에 올려!”
하지만 페르얀은 엘테의 비난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퇴각을 주장했다.
“하지만 우리가 파악한 정보와는 달리 흑인 노예들이 모두 총으로 무장하고 있어! 거기에 저들의 재장전 속도는 비정상적이야! 저건 머스킷이 아니라 신식 소총이라고! 숫자에서도 밀리고 화력에서도 밀리는데 무슨 수로 계속 싸우자는 거야!”
“크윽...”
페르얀의 말마따나 흑인 노예들의 사격 속도를 볼 때, 저들의 손에 쥐어진 총은 머스킷이 아닌 신식 소총이 분명했다.
물론 그동안 밀림에 틀어막혀 있던 흑인 노예들이 어떻게 신식 소총으로 무장하고 있는지는 의문이었지만, 당장은 그게 중요한 것이 아니었고.
그렇기에 엘테는 페르얀의 지적에 아무런 말을 하지 못했고, 그런 엘테의 반응에 페르얀은 한시라도 빨리 결정을 내려야 한다는 생각에 입을 열었다.
“일단 퇴각하자! 여기서 병력을 다 잃으면, 병영을 지킬 방법이 없...컥!”
“헉! 페르얀!”
총성과 함께 페르얀이 손으로 가슴을 움켜쥐며 쓰러지자 엘테는 화들짝 놀라며 급히 그에게 다가갔고.
하지만 페르얀은 절명한 듯 숨을 쉬지 않았기에 엘테는 탄식하며 페르얀의 눈을 감겨준 후 주변을 둘러보았지만, 저 멀리서 총성이 울릴 때마다 포르투갈 병사들이 우수수 쓰러지는 것을 보고 글렀음을 직감했다.
해서 엘테는 주변을 바라보며 소리쳤다.
“후퇴! 당장 후퇴해!”
* * *
“하하하. 신식 소총 덕분에 정말 손쉽게 승리를 거뒀네.”
전투가 끝나자 담바는 활짝 웃음을 터트리며 신식 소총의 성능을 칭찬했고, 음베아 역시 새삼 놀랍다는 얼굴로 중얼거렸다.
“그러게 말이야. 써보고 대단하다고는 느꼈지만...이렇게 화력에서 차이가 날 줄은 몰랐어.”
“물론 신식 소총도 대단하지만, 그보다는 음베아. 네 작전 덕분이기도 하다.”
줌비가 만족스러운 얼굴로 음베아의 작전을 칭찬하자 담바가 맞장구쳤다.
“그럼요! 그동안 노획한 머스킷으로 무장한 이들을 앞세우니 포르투갈 병사들은 저희를 토벌할 적기로 보고 모두 몰려왔고, 덕분에 손쉽게 저들을 격파할 수 있었으니까요.”
처음 북미왕국이 건네준 신식 소총의 위력을 확인한 줌비나 담바는 필승을 자신하고 곧바로 포르투갈 병영을 공격하려 했지만, 음베아는 저들이 병영에서 농성하면, 이를 함락하는 데 피해가 커질 것이라 생각해 포르투갈 병사들을 유인할 속셈으로 병력을 둘로 나누고 선봉대는 그동안 포르투갈 병사들과 싸우며 노획한 머스킷 일부와 철제 무기로 무장시켜 병영 인근의 농장을 공격했다.
그러니 포르투갈군의 지휘관들은 이 기회에 자신들에게 격렬히 반항하는 흑인 노예들을 쓸어버리기 위해 연합해 진군했고.
이 소식을 파악한 음베아는 곧바로 신식 소총으로 무장하고 선봉대 뒤를 따르던 본대를 앞세워 포르투갈군과 정면 승부를 벌였고, 화력에서 밀린 포르투갈군은 순식간에 무너지며 도망쳤다.
덕분에 손쉽게 승리했고, 당분간은 자신들을 막을 이가 사라진 셈이었기에 줌비는 마치 보물을 보는 눈빛으로 음베아를 바라보았고.
“그래. 생각보다 많은 포르투갈 병사들을 사살했으니, 저들은 제대로 저항하지 못할 거야. 이게 다 네 작전 덕분이다.”
이에 음베아는 빙긋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 솔직히 운이 좋았지요. 그보다 포르투갈군의 주력을 격파한 이상 저들이 더 뭉치기 전에 빠르게 해안가를 장악하고, 팔마레스의 주민들을 데려와 항구부터 만들어야 합니다. 신식 소총의 위력이 좋긴 한데 총알의 소모가 너무 극심해요.”
“음...그건 그렇지. 허면 나와 담바는 주변을 정리할 테니 너는 곧바로 팔마레스로 돌아가 주민들을 이주시켜라. 준비는 다 해두었으니까.”
신식 소총으로 훈련하면서 승리를 자신한 줌비는 곧바로 팔마레스의 주민들이 이주할 수 있도록 준비를 해 두었기에 음베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