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조선을 탈출하라-610화 (610/850)

610화

브라질 지역을 방문했던 위장 상단의 배가 새진주에 도착했다는 소식을 전해주는 조용한 곰을 보고 정성국이 빙긋 웃으며 중얼거렸다.

“킬롬보 도스 팔마레스에서 동맹 제의를 받아들였다? 그거 다행이로군.”

이에 조용한 곰은 정성국이 건넨 커피를 한 모금 마신 후 당연한 것 아니냐는 얼굴을 했다.

“그들의 처지에서 아국의 제의를 거절할 수야 없는 노릇 아니겠습니까.”

비록 킬롬보 도스 팔마레스가 킬롬보 가운데 가장 규모가 크고, 포르투갈의 토벌대도 몇 번 격퇴했다고는 하나, 언제까지 포르투갈의 공격을 막을 수 있을 수 있을 거라고는 아무도 생각하지 않았다.

일단 포르투갈이 브라질 지역에 배치한 병력은 생각보다 많았으니까.

물론 대군을 동원하기 어려운 험한 지형을 최대한 이용했기에 지금까지는 버텼지만, 포르투갈이 정말 마음을 독하게 먹고 대군을 고용하고, 정글을 밀어버리면서 진군하면 솔직히 막기가 쉽지 않다는 것은 킬롬보에 사는 탈주한 흑인 노예들이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고.

그렇기에 이들은 북미왕국의 동맹 제안과 신식 소총을 비롯한 각종 물자를 지원해주겠다는 제안을 결코 마다할 수 없었고, 이를 지적하는 조용한 곰의 말에 정성국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야 그렇지. 허면 신식 소총을 비롯한 각종 물자를 넘겼겠지?”

“물론입니다. 그리고 저들에게 신식 소총의 사용법도 제대로 가르쳤고, 신식 소총의 성능에 감탄한 저들의 지도자인 줌비는 곧바로 포르투갈의 병영들을 공격하겠다고 이야기했습니다.”

애당초 줌비에게 신식 소총을 넘겨 준 이유가 바로 이것을 유도하기 위함이었기에 정성국은 씩 웃었다.

“팔마레스 지역 동쪽 해안가에 있는 병영들을 말이지?”

“예. 이후엔 아예 팔마레스 지역을 떠나 동쪽 해안가 인근으로 이주할 생각까지 있는 모양입니다.”.

“어? 그게 정말인가?”

북미왕국에서는 신식 소총으로 무장한 흑인 노예들이 해안가의 항구를 확보하기만 하면 충분하다고 생각했는데, 줌비는 아예 킬롬보의 거점을 해안가로 옮기려 한다니 정성국은 놀란 표정을 지었고.

이런 정성국의 반응에 조용한 곰이 줌비를 직접 만나 이야기를 나누었던 외무청 관리의 보고를 머릿속에 떠올리며 입을 열었다.

“예. 오히려 저들은 팔마레스 지역과 해안가 지역을 모두 지키는 것보다 해안가 지역에 집중하는 것이 낫다고 판단한 모양입니다. 그리고 아시다시피 해안가에서 팔마레스 지역까지 물자를 운송하기도 결코 쉽지 않잖습니까.”

“그건 그렇지. 제대로 된 길이 없으니까.”

킬롬보 도스 팔마레스는 정글이 우거진 고산지대에 자리 잡고 있었다.

거기에 제대로 된 길조차 없었고.

그렇기에 포르투갈은 킬롬보 도스 팔마레스의 존재를 알면서도 제대로 토벌하지 못한 것이다.

병력을, 그것도 대규모 병력을 이동하는 데 애로사항이 많았으니까.

그리고 이러한 지형은 방어에는 유리했지만, 당연히 물자를 수송하는 데도 불리할 수밖에 없었고.

이 때문에 위장 상단은 브라질 동해안에 정박해 보부상처럼 등짐을 지고 킬롬보 도스 팔마레스까지 왕복하며 물자를 옮기느라 엄청나게 고생했다는 사실을 보고받았던 정성국은 고개를 끄덕이자 조용한 곰이 말을 이어나갔다.

“예. 그렇다고 물자를 수송하기 편하게 제대로 된 길을 내버리면 팔마레스 지역의 방어가 취약해질 수밖에 없지요. 그러면 팔마레스의 지역의 가치가 떨어질 수밖에 없고요.”

“아. 그래서 거점을 아예 해안가로 옮기겠다는 거군.”

“그렇습니다. 특히 저희가 각종 물자 지원을 약속하기도 했고, 저들이 확보한 항구에 2함대의 전선도 한 척 보내주기로 했잖습니까. 그러니 주변이 트인 평지라 하더라도 충분히 안전하다고 판단한 모양입니다.”

이미 신식 소총 1천 자루로 무장한 상태이고, 북미왕국에서는 계속해서 신식 소총을 보내 총 3천 자루를 보내주겠다고 약속했다.

그리고 신식 소총으로 무장한 3천의 병력이라면, 포르투갈의 병력을 상대하기엔 충분했고.

문제는 바다에서의 공격인데, 북미왕국의 해군 전선 1척이 항구의 안전을 위해 파견된다고 했으니 바다에서의 공격 또한 걱정할 필요가 없어졌고, 그러니 해안가를 확보하는 즉시 거점을 옮길 거라고 줌비가 이야기했다는 말에 정성국은 줌비의 추진력에 감탄했다.

“허. 거점을 옮기기가 그리 쉽지는 않을 텐데...줌비가 팔마레스 지역의 킬롬보를 완벽히 장악하고 있는 모양이군.”

“그렇습니다. 이전의 지도자인 강가 줌바를 처리하면서 줌비의 추종자만 남은 상황이라...지도자라기보단 왕에 가깝다는 평가입니다. 거기에 줌비는 강가 줌바 밑에서 장수로 있을 때, 포르투갈의 토벌대를 상대로 몇 번의 승리를 거두기까지 했으니...”

“신망이 대단하다는 건가?”

“그렇습니다. 뭐 저희로선 나쁠 것은 없지요.”

조용한 곰의 말마따나 줌비가 킬롬보 도스 팔마레스를 완벽히 장악하고 있는 것이 나쁠 것은 없었다.

거기에 줌비는 젊은 편이었고, 신식 소총을 직접 사용해본 이후에는 북미왕국을 무척 우호적으로 생각했으니까.

해서 정성국은 고개를 끄덕이다 문득 떠오른 생각에 질문을 던졌다.

“아. 그러고 보면 주변에 석탄은 있다던가?”

남미 대륙은 무척 거대했다.

그 때문에 카리브 해의 생크루아 섬에서 줌비가 장악할 예정인 해안가까지 오가려면 중간에 연료를 보급할 필요가 있었고.

물론 팔마레스 지역에 꼭 석탄이 없어도 상관은 없었다.

나무나 숯을 연료로 사용해도 되고, 대서양을 돌아다니는 석탄 수송선을 이용해 석탄을 수송해도 되는 문제였으니까.

다만 이러한 방법은 비효율적이었을뿐더러, 계속해서 수많은 배를 보내야 하는 만큼, 현지에서 석탄을 구하는 것이 가장 효율이 좋았기에 정성국이 묻자 조용한 곰이 빙긋 웃었다.

“다행히도 있답니다. 물론 광맥 자체가 그리 큰 편은 아니라던데...”

“그럼 됐네. 어차피 당장은 그리 많은 석탄이 필요하지는 않으니까.”

“그렇지요. 그리고 줌비는 해안가에 진출한 후 곧바로 살바도르를 점령하고 싶다며 지원을 요청했습니다.”

조용한 곰의 말에 정성국은 눈을 가늘게 뜨며 중얼거렸다.

“살바도르를? 거긴...”

“예. 브라질 식민지의 거점 도시라고 할 수 있지요. 총독부도 살바도르에 있고.”

“살바도르를 점령해 포르투갈의 세력을 단번에 축소시키겠다는 속셈인가?”

정성국의 중얼거림에 조용한 곰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다만 이곳엔 꽤 많은 병력이 주둔해 있을뿐더러...항구에는 화포를 장착한 포르투갈의 배들도 즐비하지 않습니까.”

“그럼 신식 소총뿐만 아니라 화포와...해군까지 지원해달란 소리로군.”

“그렇습니다. 어쩔까요?”

이에 정성국은 조금 고민하긴 했다.

물론 줌비에게 각종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이야기했고, 실제로 줌비에게 각종 물자를 지원해줄 생각이었지만, 줌비는 단순 물자 지원이 아니라 북미왕국의 해군이 직접 포르투갈의 배들을 공격해주길 바라고 있었으니까.

“으음...그러려면 아예 포르투갈에 선전포고하라는 소린데...”

이런 정성국의 중얼거림에 조용한 곰이 묘한 미소를 띠며 입을 열었다.

“굳이 선전포고할 필요가 있겠습니까?”

“음?”

정성국이 무슨 뜻이냐는 얼굴로 조용한 곰을 바라보자 조용한 곰이 말했다.

“동맹인 호주 연합에도 해군의 전선들을 판매했잖습니까. 그러니 킬롬보 도스 팔마레스에도 해군 전선을 판매하지 못할 까닭이 없지요.”

조용한 곰의 말에 정성국은 잠시 멍한 표정을 지었다가 웃음을 터트렸다.

“푸하하하. 한 마디로 꼭 삼태극기를 달고 움직일 필요는 없다 이거겠지?”

외상이든, 무상이든 인급 전선을 넘겨봐야 어차피 줌비가 인급 전선을 운용할 수는 없었다.

그러니 천상 인급 전선에 탑승하는 인물들은 북미왕국인이 될 수밖에 없고.

거기에 아주 오래전, 아이누인들을 돕기 위해 당시 정일신 함장은 원상의 깃발을 내리고 왜국의 수군을 공격하기도 했고, 현재 아이누 탐사대장과 아이누 탐사대원들도 시베리아 부족 연합의 깃발 아래서 활동하고 있었으니, 비슷한 방식을 사용하면 외교적인 문제도 피할 수 있지 않겠냐는 조용한 곰의 이야기에 정성국은 웃음을 터트릴 수밖에 없었고.

이에 조용한 곰은 짓궂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렇습니다. 직접 포르투갈에 선전포고하는 것은 외교적으로 부담스러운 만큼, 킬롬보 도스 팔마래스의 깃발을 걸면 되는 것 아니겠습니까.”

“하하하. 그렇지. 알겠네. 난 바로 군사청장과 이 일을 의논하도록 하지.”

* * *

축음기에서 흘러나오는 아름다운 선율을 들으며 티타임을 즐기던 에스파냐 대사는 갑자기 집무실로 뛰어들어온 보좌관을 보고 자연스레 인상을 찌푸릴 수밖에 없었고.

다만 보좌관은 숨을 헐떡이면서도 사과보단 들고 있던 북미신문을 에스파냐 대사에게 건네자, 에스파냐 대사는 북미신문에 중요한 기사가 실렸음을 직감하고 곧바로 북미신문을 받아 확인하기 시작했고, 1면 기사를 확인하고 나직한 신음을 흘렸다.

“킬롬보라면 노예들이 도망쳐 만든 공동체 아닌가. 헌데 북미왕국이 이들과 동맹을 맺었다는 건...”

“예. 시베리아 부족 연합처럼 이들을 뒤에서 지원해 남미에서 포르투갈 세력을 완전히 몰아낼 속셈인 듯싶습니다.”

보좌관의 대답에 인상을 찌푸리며 북미신문에 실린 기사 내용을 꼼꼼히 확인한 에스파냐 대사는 북미신문을 내려놓으며 걱정스러운 얼굴로 중얼거렸다.

“끙...이거 우리도 조심해야 할 것 같은데?”

“팔렌케를 걱정하시는 겁니까?”

포르투갈이 브라질 지역에서 도망친 흑인 노예들이 이룬 공동체를 킬롬보라고 부른다면, 에스파냐에서는 이 공동체를 팔렌케라고 불렀다.

그나마 원주민들이 많은 멕시코 지역의 경우는 딱히 흑인 노예가 많지 않았기에 이러한 팔렌케가 없었지만, 쿠바 섬과 히스파니올라 섬, 그리고 남미 서해안 지역에는 이러한 팔렌케가 꽤 많았고.

헌데 북미왕국이 갑자기 브라질 지역의 한 킬롬보를 하나의 세력으로 인정하고 동맹을 맺었다는 기사가 올라오자 에스파냐 대사는 이러한 북미왕국의 행동이 위협적으로 느껴질 수밖에 없었다.

해서 에스파냐 대사는 보좌관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네. 북미왕국이 팔렌케와 접촉해 이들을 지원하기 시작한다면...”

에스파냐 대사가 상상만으로도 끔찍하다는 듯 몸을 부르르 떨었다.

북미왕국이 시베리아 원주민들을 돕기 시작하면서 러시아 차르국이 고생하며 개척한 시베리아 지역의 절반 가까이 잃었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북미왕국이 팔렌케와 접촉해 이들을 지원하는 순간 에스파냐는 식민지의 상당수를 잃을 것이 분명했기에.

하지만 보좌관은 이런 에스파냐의 걱정이 기우에 불과하다는 얼굴로 말했다.

“글쎄요. 우리 에스파냐는 북미왕국과 우호적인 관계일뿐더러 이번에 노예무역을 금지하라는 북미왕국의 권유를 받아들인 만큼, 페루 부왕령이나 카리브 해에 있는 팔렌케들과 접촉하진 않을 것 같습니다.”

“그치? 그렇겠지?”

“예. 다만 팔렌케들이 브라질 지역의 소문을 듣고 과격한 행동을 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러니 누에바 에스파냐 부왕령에 이를 알려 하루라도 빨리 각지에 있는 팔렌케들을 회유하도록 권유해야 할 것 같습니다.”

“으음...그렇겠군.”

킬롬보든 팔렌케든, 도망친 흑인 노예들이 모인 공동체는 그 존재만으로, 주변의 흑인 노예들을 도망치도록 자극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기에 포르투갈이든, 에스파냐든 이러한 흑인 노예 해방구를 없애려 했고.

다만 포르투갈은 흑인 노예들에게 공포를 심어주고자 킬롬보를 토벌하고, 킬롬보로 도망친 흑인 노예들을 일체의 관용 없이 학살했다면, 에스파냐는 토벌이 어려운 깊은 산간지대나 정글이 우거진 밀림 지역에 있는 팔렌케를 토벌하는 데 힘을 쓰기보다는 회유해 에스파냐 행정체계 안으로 편입하려 했다.

그런 만큼 보좌관은 누에바 에스파냐에 이러한 사실들을 알려 하루라도 빨리 팔렌케들을 회유해야 한다고 조언하자 에스파냐 대사는 고개를 끄덕였고.

“그리고 팔렌케로 도망친 흑인 노예뿐만 아니라, 기존의 노예들도 이 소식을 듣게 되면 동요할 수 있습니다. 전 오히려 이게 조금 걱정됩니다.”

보좌관의 말처럼 노예무역의 금지를 선언한 상태에서 북미왕국이 도망친 흑인 노예들을 지원한다는 것이 알려지면, 기존의 흑인 노예들도 동요할 수 있다는 것을 인지한 에스파냐 대사가 일리가 있다고 여겨 콧수염을 매만지면서 중얼거렸다.

“확실히...허면 노예들을 더욱 철저히 감시해야 한다고 보고서를 올려야 하나?”

이에 보좌관은 에스파냐 대사의 눈치를 살피다 슬쩍 입을 열었다.

“아니면 노예들을 해방하고 이들을 계약 노동자로 고용하는 방법도 있습니다.”

노예 해방을 거론하는 보좌관의 말에 에스파냐 대사는 신음을 흘리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입을 열었다.

“그것도 나쁘지 않군. 아니. 북미왕국과의 관계를 생각하면 그렇게 하는 것이 나을 것 같아.”

“그렇습니다. 북미왕국이 이번 일을 북미신문에 대대적으로 실은 것도 그러한 의도가 없지는 않을 테니까요.”

북미왕국은 이전부터 노예 제도에 무척 부정적인 반응을 보여왔고, 그 때문에 노예무역을 금지한 만큼 아예 북미왕국과의 우호적인 관계를 위해 노예 제도를 폐지하고 모든 노예를 해방하는 것도 나쁘지는 않겠다고 생각한 에스파냐 대사는 티테이블에서 일어나 책상으로 이동하며 보좌관에게 말했다.

“허면 부왕 전하께 올릴 보고서를 작성할 테니, 자네는 바로 기차 편을 알아보도록 하게.”

“알겠습니다. 대사님.”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