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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을 탈출하라-608화 (608/850)

608화

12월 말이 되자 각지에서 올라오는 보고서를 확인하다 지친 정성국은 잠시 휴식을 취하기 위해 티타임을 가질 요량으로 커피를 내리고 있을 때, 개발청장이 집무실을 방문했기에 정성국은 그를 환영하면서도, 연말이라 바쁜 것은 개발청장도 마찬가지라 집무실을 방문한 용건을 물었고.

정성국의 물음에 개발청장은 환한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드디어 초고층 건물이 완공되었습니다. 전하.”

“호오. 새진주에 건설 중이던 초고층 건물이 드디어 완공되었다고?”

북미왕국의 건축 기술을 알리기 위해 새진주에 고층 건물을 건설한 이후, 개발청에서는 북미 동해안 지역의 거점 항구 곳곳에 고층 건물을 건설하며 풍부한 경험을 쌓았고, 이를 바탕으로 다시 새진주에 고층 건물을 세우기 시작했다.

다만 이 고층 건물은 세계에서 가장 높은 건물이라는 타이틀을 획득하기 위해 지어지는 건물이었고, 그 때문에 정성국은 다른 고층 건물과의 차별성을 위해 나중에 따로 초고층 건물이라고 명명했고.

이 초고층 건물이 2년 8개월의 공사 기간 끝에 드디어 완공되었다는 이야기에 정성국이 눈을 빛내며 되묻자 개발청장은 북미왕국의 건축 기술을 만방에 널리 알렸다는 자부심 어린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전하. 이번에 154m 높이의 초고층 건물이 완공됨에 따라 세계에서 가장 높은 건축물이 우리 북미왕국에 존재하게 되는 셈이지요.”

세계에서 가장 높은 건축물을 북미왕국에서 건설했다는 개발청장의 선언에 정성국은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유럽에도 비슷한 높이의 성당이 있긴 했지만, 이런 성당의 경우 건축 기간이 기본적으로 수십 년이 넘는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그리고 새진주에 고층 건물을 처음으로 짓기 시작한 지 채 10년도 안 되었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정말 놀라운 성과였으니까.

그리고 정성국이 걱정했던 것처럼 공사 도중 불미스러운 일도 없었으니 더욱 만족스러울 수밖에 없었고.

해서 정성국은 개발청의 노고를 위로했다.

“하하하. 정말 고생했네.”

“아닙니다. 전하.”

정성국은 겸양하는 개발청장에게 미소를 지으며 이번 초고층 건물 공사에 관여한 모든 이들에게 포상을 약속한 후 커피를 건네주며 초고층 건물을 어떻게 이용할지에 대한 질문을 던졌고.

“일단 실제 이용할 수 있는 45개 층 가운데 위에서부터 5개 층은 전망대를 만들었습니다.”

“허. 꼭대기 5개 층을 모두 전망대로 만들었다는 말이지?”

처음으로 건설되었던 관공서 건물의 경우 아예 옥상을 개방했지만, 안전 문제가 있는 터라 다른 지역에 건설한 고층 건물의 경우 옥상을 개방하지 않고, 주로 최상층을 전망대로 만들어 개방했다.

헌데 이번에 건설한 초고층 건물의 경우 무려 5개 층을 전망대로 만들었다는 이야기에 정성국이 조금 놀란 표정을 짓자 개발청장이 대답했다.

“그렇습니다. 전하께서도 방문하셨던 캐롤라이나 지역에 건설된 고층 건물의 경우 이전까지 북미왕국에서 제일 높은 건물이라는 이유로 멀리서도 방문하려는 관광객들이 한둘이 아니다 보니 당연히 전망대에도 언제나 사람이 가득해 느긋하게 전망을 감상하긴 어려웠습니다. 헌데 이번에 완공한 새진주의 고층 건물은 북미왕국 내에서가 아니라 세계에서 가장 높은 건축물이니만큼, 야마세 항에 있는 고층 건물보다 더 많은 관광객이 몰릴 것이 뻔한 터라 전망대를 늘렸습니다.”

개발청장의 말마따나 야마세에 지은 고층 건물은 북미왕국에서 가장 높은 건물이라는 것이 알려지면서 수많은 관광객이 몰려들었다.

아무래도 북미왕국의 백성들은 재정적으로 여유가 있는 편이기도 하고, 특히 농사를 짓는 이들의 경우 추수가 끝나는 농한기에는 시간적인 여유마저 충분했으니까.

헌데 이번에 새진주에 지은 초고층 건물의 경우 야마세 항에 건설되었던 고층 건물보다 1.5배는 높았고, 세계에서 가장 높은 건물이라는 이름값까지 있을 테니 더 많은 관광객들이 이 초고층 건물의 전망대에 올라 높은 곳에서의 아찔한 풍경을 감상하고 싶어할 것은 분명했는데 이전처럼 꼭대기 층만 개방했다가는 그 많은 관광객을 제대로 수용하지 못할 것은 뻔했고.

해서 정성국이 수긍한 듯 고개를 끄덕이자 개발청장은 이 5개 층을 계속해서 전망대로 이용하기보다는 상황을 봐서 관광객이 줄어들면 일부 층은 찻집과 식당 등으로 개조할 예정이라고 하니 정성국은 전생의 스카이라운지를 떠올리며 중얼거렸다.

“그거 괜찮네. 그리고 다른 층들은?”

“5개 층은 찻집, 식당, 각종 상점 등이 들어설 예정이고 5개 층은 왕립 새진주 미술관이 들어설 예정이며 나머지 30개 층에는 숙박 시설이 들어설 예정입니다.”

정성국의 명령을 받은 왕실 상단에서는 계속해서 유럽과 조선의 미술품들을 사들인 터라 이를 전시할 곳이 필요했다.

정성국은 왕실 창고에 이러한 미술품들을 처박아두고 혼자서만 감상하는 취미는 없었으니까.

해서 곳곳에 미술관을 건설하고 있었는데 개발청이 맡은 일이 워낙 많다 보니 아무래도 미술관의 건설은 우선순위가 조금 쳐질 수밖에 없었고, 그래서 지금까지 건설된 미술관은 산아구스틴 항과 보스턴 항에 건설된 미술관이 전부였다.

그래서인지 왕실 상단에서는 개발청에서 새진주에 새로 미술관을 건설할 때까지 몇 년을 기다리기보단 아예 이번에 건설된 초고층 건물 5개 층 안에 미술관을 세우기로 했다는 개발청장의 설명에 정성국은 초고층 건물 안에 문화 예술 공간을 만드는 것도 더 많은 관광객들을 불러 모을 수 있는 좋은 방안이라는 생각에 고개를 끄덕였고.

또한, 그동안 북미 동해안 지역에 건설된 고층 건물의 경우 남는 층은 국영 상단이 모두 임대해 정성국의 조언에 따라 숙박 시설을 만들었는데 이게 대박이었다.

고층 건물들은 모두 개발청, 즉 나라에서 건설한 터라 전망대를 무료로 개방하다 보니 언제나 사람이 넘쳐났고, 그 때문에 느긋하게 풍경을 감상하고 싶은 사람, 그리고 특별한 경험을 하고 싶어하는 이들은 모두 이 숙박 시설을 이용하려 했던 탓이다.

덕분에 전생의 호텔들은 대부분 숙박비보다는 부대 시설과 면세점으로 돈을 버는 것과는 달리, 고층 건물 내에 숙박 시설들은 숙박료만으로도 충분히 돈을 벌 수 있었고.

그 때문에 남는 층은 국영 상단에서 모두 임대해 숙박 시설을 건설 중이라는 자세한 설명에 정성국은 만족스러운 얼굴로 대꾸했다.

“괜찮네. 국영 상단의 보고서를 보니 숙박 시설이 꽤 돈이 되니까 말이지. 허면 바로 개장을 하는 건가?”

이에 개발청장은 조금 아쉽다는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그건 아닙니다. 한창 내부공사 중이라 당장 문을 열어봐야 전망대를 제외하면 이용할 수 없어서 말입니다. 해서 내년 2월 초에 공식으로 개장할 생각입니다.”

그러면서 개발청장은 말은 하지 않았지만 내심 기대하는 얼굴로 정성국을 바라보았고, 정성국은 개발청장이 무엇을 원하는지 눈치채고 웃음을 터트렸다.

“하하하. 걱정하지 말게. 개발청에서 세계에서 가장 높은 건물을 건설했는데 내가 참석하지 않을 수야 있나. 그때쯤 따로 일정을 비워두도록 하지.”

정성국의 대답에 개발청장은 무척 만족한 얼굴로 정성국이 건네준 커피를 마시기 시작했고.

둘은 커피를 마시면서 현재 북미왕국에서 진행 중인 각종 공사에 관한 이야기를 주고받다가 어느덧 조선으로 시선을 옮겼다.

“그래? 개항장의 정리가 대충 끝났다고?”

지진이 일어난 이후 정성국은 개항장으로 각종 구호물자와 개항장 복구를 위한 물자를 보냈지만, 곧바로 복구공사를 시작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지진으로 인해 개항장의 건물이 일부 파손되고, 여기에 쓰나미가 덮치면서 파도와 인급, 지급 함선들이 파도에 밀려 개항장을 덮쳤으니 개항장은 엉망이 되어버릴 수밖에 없었고.

해서 개항장 복구에 앞서 이렇게 엉망이 되어 버린 개항장을 정리하기 시작했는데 이 정리가 끝났다는 개발청장의 보고에 정성국이 흥미를 보이자 개발청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예. 각종 건설 장비를 동원하기도 했고...고용할 수 있는 인원은 모두 고용한 덕분에 인력도 넉넉한 편이라 파손된 건물의 철거는 모두 끝냈고, 본격적으로 건물을 올릴 예정이라는 보고가 올라왔습니다. 그리고...”

그러면서 개발청장은 가져온 보고서 더미를 뒤져 한 장의 종이를 찾아 정성국에게 넘겼고, 정성국은 이 종이에 그려진 그림을 확인하고 슬며시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이게 새로 건설될 개항장의 조감도인가?”

“그렇습니다.”

종이에는 그럴듯한 도시가 그려져 있었는데, 주변에 그려진 지형은 정성국에게도 익숙한 개척촌의 지형이었지만, 이번에 새로 건설될 개항장의 건물들은 이전 개척촌 특유의 건물보다는 북미왕국 특유의 건물로 대체되어 있어, 예전 개척촌의 모습보다는 마치 북미왕국의 항구를 보는 것 같은 느낌이었기에 정성국이 고개를 갸웃했다.

“흐음...어째 전형적인 아국의 항구 같은 느낌인데.”

이에 개발청장이 곧바로 대답했다.

“일부러 그렇게 지었습니다.”

“음? 일부러?”

정성국이 고개를 갸웃하자 개발청장은 개발청에서 이러한 결정을 내린 배경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예. 전하께서도 아시다시피 조선에서는 매년 사절단에 수행원의 자격으로 많은 선비들을 아국에 보내고는 있습니다만...전체 선비들의 숫자에 비하면 소수에 불과하지요.”

“그건...그렇지.”

조선에서는 매년 500명 규모의 조선 사절단을 보내고 있었고, 이 중 실제 실무를 맡은 관리 2, 30명 정도를 제외하면 나머지는 그저 북미왕국을 직접 방문해 견문을 넓히라는 뜻으로 북미왕국을 방문해보지 못한 이들을 선발해 보내고 있긴 했지만, 그래도 양반들의 숫자를 생각하면 턱없이 부족하긴 했다.

거기에 개화파에서야 이 수행원들을 공정하게 선발하려고 노력했지만, 이 시대에 그게 쉬운 일이 아니다 보니 아무래도 중앙에 연줄이 있는 양반들이 수행원으로 뽑혀 북미왕국을 방문했고, 자연히 지방의 양반들은 북미왕국을 방문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상황이었고.

이를 모르지 않기에 정성국이 고개를 끄덕이자 개발청장이 계속 이야기했다.

“거기에 세계신문엔 대부분 북미왕국과 관련된 기사나 기행기로 채워지다 보니 북미왕국을 직접 방문하고 싶어하는 이들은 점차 많아지고 있습니다. 중인, 양인들도 북미왕국을 방문해보고 싶어하지요. 허나 사사로이 북미왕국을 방문할 수는 없다 보니 차선으로 개항장을 방문하는 이들이 계속 늘어나서 말입니다.”

“어? 개항장은 조선 백성들이 사사로이 드나들 수 없지 않나?”

“원칙은 그런데 호기심을 어찌 막겠습니까. 알음알음 드나듭니다. 그리고 개항장 안에 직접 들어가지 않더라도 뒤쪽 언덕에서 개항장의 모습을 구경하기도 하고요.”

개항장 뒤편에 언덕이 있는데 이곳에 오르면 개항장의 모습이 한눈에 보여 이곳에도 항상 사람이 바글바글 하다는 이야기에 정성국은 개발청에서 왜 개항장을 완전히 북미왕국 식으로 건설할 예정인지를 깨닫고 말했다.

“아하. 그래서 일부러 이렇게 개항장을 설계했다는 거군.”

“그렇습니다. 처음에는 아예 개항장에도 고층 건물을 짓자는 논의까지 나왔으니까요. 물론 지진의 우려가 있어서 빼긴 했습니다만...”

“잘 했네. 고층 건물이 무너지기라도 하면 피해가 막심하니.”

정성국이 기억하기로 큰 지진은 없겠지만 그렇다고 강진이 일어났던 지역에 고층 건물을 짓는 것은 위험 부담이 클 수밖에 없었기에 개발청장의 결정을 칭찬했고.

이에 개발청장은 빙긋 웃으며 손을 들어 정성국이 탁자 위에 내려놓은 개항장의 조감도를 손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그리고 이 조감도에는 나와 있지 않습니다만...이곳에는 공항을 건설할 예정입니다.”

정성국은 개발청장이 가리킨 곳의 공터를 확인하고 입을 열었다.

“아. 왜 이곳이 텅 비어 있나 했더니...활주로가 들어설 자리였나?”

“그렇습니다. 외무청에서도 공항 건설을 위해 조선과 협상할 것이라고 들었거든요. 해서 일단 공항이 들어설 공간을 뺀 거지요.”

이에 정성국은 커피를 한 모금 마시며 말했다.

“물론 공항 건설을 위해 조선과 협상 중이긴 한데...개항장이 아니라 한양 인근에 공항을 건설할 계획이네. 아직 조선과의 협상 전이라 개발청엔 제대로 이야기가 전해지지 않은 모양이군.”

“어? 한양 인근에요?”

외무청에서 조선과 공항 건설을 협의한다는 소리가 들려왔기에 개발청에서는 당연히 개항장에 공항을 건설할 것으로 생각했었는데 한양에 공항을 건설한다고 하니 개발청장은 놀란 표정을 지었고.

이런 개발청장의 반응에 정성국은 무에 그리 놀라느냐는 얼굴을 하며 대답했다.

“그래. 어차피 개항장엔 하급 관리들 외엔 없으니 비행기를 이용할만한 일이 뭐가 있겠나. 차라리 포로나이의 관리들이 빠르게 한양으로 이동할 수 있도록 한양에 공항을 세우는 것이 낫지.”

“아. 그건 또 그렇군요. 허면 이 공터는...”

개발청장은 정성국의 말에 수긍하면서 이 남는 공터를 어떻게 이용해야 할지 고민하자 정성국이 피식 웃었다.

“뭘 그리 고민하나. 그냥 한양에도, 개항장에도 공항을 건설하면 그만이지. 자네 말을 듣고 보니 개항장에 공항을 건설하는 것도 나쁘지는 않아 보이네. 연료 보급도 편하고 공항에는 정비사와 기술자들이 상주해야 하는데...아무래도 한양보다는 개항장에서 거주하는 게 낫겠지.”

정성국은 한양에 세울 공항에는 최소한의 시설만 건설하고 관리는 조선에 맡기거나, 아니면 조선인을 고용해 맡길 생각으로 이렇게 이야기하자 개발청장은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허면 그렇게 알고 준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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