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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을 탈출하라-606화 (606/850)

606화

회의실에서 자신의 보좌관인 음베아의 보고를 듣고 있던 줌비는 바깥이 소란스러워지자 무슨 일인가 싶어 잠시 대화를 멈추었고.

곧 회의실로 커다란 덩치의 사내가 들어오자 줌비는 빙긋 웃으며 혹여 어디 다친 곳은 없는지 사내의 몸을 훑어본 후 안도하며 입을 열었다.

“다행히 다친 곳은 없군. 그래. 잘 다녀왔나. 담바?”

이에 담바는 가슴을 두드리며 활짝 웃었다.

“하하하. 물론입니다. 거기에 이번에 지급받은 정글도가 정말 잘 들더군요. 덕분에 편하게 길을 내고 다녀왔습니다.”

“그래? 성과는?”

“농장 20곳을 털어 그동안 포르투갈 농장주들에게 고통받던 동포 800명을 구출해 데려왔습니다. 그리고 농장주들의 집을 뒤져 귀금속과 식량, 각종 물자 등을 모조리 가지고 왔고요. 그뿐만 아니라 포르투갈인들도 100명가량 잡아 왔습니다.”

이들은 꾸준히 주변에 있는 포르투갈 농장을 습격했었다.

이는 같은 처지인 흑인 노예들을 구하기 위함이기도 했고, 부족한 물자를 확보하기 위해서이기도 했고.

그리고 이번에 전사들을 이끌고 출정했던 담바가 성공적으로 포르투갈 농장들을 습격해 각종 물자를 확보하고 흑인 노예들을 해방해 데리고 왔다고 하니 줌비는 만족스러운 얼굴을 지었다.

“아주 탈탈 털어왔군.”

“그럼요. 깨끗하게 털어왔습니다. 전에 방문한 그 상인들이 다시 방문하기 전까지 더 많은 재물을 모아둘 필요가 있으니까요.”

담바가 두 달 전 이곳을 방문했던 상인들의 이야기를 꺼내자 아까까지 음베아에게 이에 관련된 보고를 들었던 줌비가 순간 복잡한 얼굴로 신음을 흘렸고.

“으음...”

그런 줌비의 반응에 담바가 고개를 갸웃했다.

“어? 설마 아직도 걱정하시는 겁니까? 그 상인들을 의심할 필요 없다니까요? 저들이 내어준 무기들이 얼마나 요긴하게 쓰였는데요?”

담바의 말에 옆에 있던 음베아가 담바를 타박했다.

“걱정하는 게 당연한 거야. 내가 보기에 그 상인들은 의심스러운 구석이 너무 많아. 밑지고 파는 상인이 대체 어디 있어?”

“그 상인들이 말했잖아. 절대 손해 보고 파는 게 아니라고. 이렇게 팔아도 충분히 남는다고.”

담바가 이전에 만났던 상인들을 떠올리며 그들이 했던 말을 읊자 음베아는 콧방귀를 뀌었다.

“흥. 그 말을 곧이곧대로 믿냐? 당연히 거짓말이지!”

“거짓말이라고?”

“그래. 내가 따로 알아봤는데 그 상인들이 우리에게 판 물건들 대부분이 북미왕국산 물품이었잖아?”

“그렇지. 북미왕국에서 만든 물건들이 좋긴 하다는 말을 얼핏 듣긴 했는데 진짜 좋던데? 이것도 그렇고.”

그러면서 담바는 만족스러운 얼굴로 자신이 입은 옷을 매만졌고, 그런 담바의 행동에 음베아는 답답하다는 얼굴로 대꾸했다.

“그래. 좋긴 하지. 헌데 알아보니 직접 북미왕국에 가서 물건을 사더라도 그 상인들이 이야기했던 금액보다 비싸다더라.”

“응? 그게 무슨 소리야? 그럼 정말 그 상인들이 손해를 보면서 팔았다고?”

돈을 벌기 위해 일하는 상인들이 손해를 보며 물건을 판다는 것이 말이 되느냐는 얼굴을 하는 담바였고, 음베아는 그런 담바의 반응에 답답한지 가슴을 두드리며 목소리를 높였다.

“그렇다니까? 그러니 의심을 안 할 수가 없지. 분명 그 상인들 뒤에 포르투갈 놈들이 있을 거야. 일단 손해를 보더라도 우리의 환심을 사고 뒤통수 치려는 수작이야. 확실해.”

무엇보다 돈을 소중히 여기는 상인들이 손해를 보면서 자신들에게 물건을 판 것은 분명 의심스러웠기에 담바는 잠시 얼굴을 찌푸렸다.

하지만 담바는 이번에 그 상인들이 넘긴 무기 덕분에 손쉽게 정글을 누빌 수 있었고, 습격 후 자신들을 추격하는 포르투갈 병사들을 아무런 피해 없이 격파할 수 있었기에 음베아의 말이 이치에 맞지 않는다고 여겨 고개를 저었다.

“음...내 생각엔 그건 아니야. 그 상인들의 뒤에 포르투갈 놈들이 있었다면 최소한 이 정글도나 쇠뇌 같은 무기를 팔지는 않았을걸? 쇠뇌 덕분에 우리를 추격하던 포르투갈 병사들을 손쉽게 제압하고 상당수를 포로로 잡을 수 있었는데 그걸 예상 못 했을까?”

이에 음베아는 움찔했다.

담바의 말마따나 상인들의 뒤에 정말 포르투갈이 있다면 다른 물건들은 몰라도 무기만은 팔지 않았을 테니까.

하지만 단지 무기를 팔았다는 이유로 저들을 믿기엔 너무 의심스러웠기에 음바에는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그렇긴 한데 그래도 그 상인들을 너무 믿어선 안 될 것 같아.”

그때 담바와 음바에가 의견을 나누는 동안 침묵하고 있던 줌비가 입을 열었다.

“혹시 그 상인들 뒤에 포르투갈을 견제하려는 다른 나라가 있는 것 아닐까 싶은데 어떻게 생각하나?”

이에 음바에는 신음을 흘리며 곰곰이 생각하다가 고개를 저었다.

“으음...가능성이 아예 없지는 않겠지만 저희의 소문이 퍼지면 다른 노예들도 저희처럼 행동할 수 있는데 과연 저희를 지원하겠습니까?”

이곳에 식민지를 건설한 유럽의 여러 나라들은 대부분 노예를 이용하고 있는 만큼, 자신들의 이야기가 퍼져나가면 노예들을 관리하는 데 힘들어질 수밖에 없었다.

그러니 아무리 포르투갈을 견제하고 싶어도 자신들을 지원하겠느냐는 음베아의 이야기에 줌비가 그 말도 일리는 있다 싶어 고개를 끄덕일 때, 담바가 손뼉을 치며 말했다.

“아! 그러고 보니 북미왕국이 있잖아? 북미왕국은 노예를 인정하지 않는다고 하지 않았어? 그래서 흑인 노예들을 사들여 해방하기도 하고 말이지?”

이에 줌비는 음베아를 바라보았고, 음베아는 곰곰이 생각하다 고개를 갸웃했다.

“음...북미왕국이라면 가능성은 있는데 우리를 찾아온 그 상인들은 모두 백인이어서...”

북미왕국은 저 북미 지역의 원주민들이 세운 거대한 제국으로 알려져 있었고, 그렇기에 북미왕국의 백성들은 모두 이곳에 있는 원주민과 비슷한 피부색을 지녔다고 알려져 있었다.

헌데 이전에 방문한 상인들은 모두 백인이었기에 음베아가 이를 지적하자 줌비가 말했다.

“...어쩌면 포르투갈과의 관계 때문에 유럽 상인들을 통해 지원하는 것일 수도 있지.”

“아. 그럴 수도 있겠...”

그때 누군가가 회의실로 급히 뛰어오듯 발소리를 내자 회의실 안에 있던 사람들이 고개를 돌렸고, 곧 회의실의 문이 열리며 숨을 헐떡이던 젊은 사내가 곧바로 보고했다.

“보고드립니다. 이전에 방문했던 상인들이 다시 방문했습니다.”

이에 회의실 안에 있던 사람들은 당황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뭐? 그들이 다시 방문했다고?”

“어라? 당분간은 방문할 필요가 없다고 이야기하지 않았어?”

담바가 이전에 상인들과의 거래를 담당했던 음바에를 바라보자 음바에가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히 이야기했지. 물건을 살 돈이 없으니 올 거면 반년 후에나 오라고.”

그때 줌비가 젊은 사내를 보고 입을 열었다.

“일단 마을로 데려오게. 그리고 음베아. 네가 상인들을 만나 저들이 방문한 목적을 확인해봐라.”

“알겠습니다.”

* * *

상인들은 음베아를 보자마자 자신들과 동행한 외무청 관리를 소개했고, 음베아는 줌비의 추측처럼 정말 상인들의 뒤에 북미왕국이 있었다는 것에 당황하며 외무청 관리에게 이곳을 방문한 용건을 물었다.

하지만 외무청 관리는 이곳의 지도자와 긴히 논의할 것이 있다며 줌비와의 만남을 요청했고.

그리고 음베아의 보고를 받은 줌비는 놀란 표정을 지으면서도 곧바로 북미왕국의 외무청 관리를 회의실로 불렀다.

“반갑습니다. 킬롬보 도스 팔마레스의 지도자시여.”

“나도 반갑소. 그리고 진심으로 감사하오. 우리에게 무기와 각종 물자를 싸게 넘겨줘서 말이오. 일단 거기 앉으시오.”

외무청 관리의 인사에 화답한 줌비는 손을 들어 회의실 맞은편의 의자를 가리켰고.

외무청 관리가 자리에 앉자 줌비가 먼저 입을 열었다.

“솔직히 이곳은 부족한 물자들이 많은 편이라오. 그렇기에 이곳을 찾은 상인들이 가져온 물건들을 마다할 수 없었지만...거래하면서도 의심스러웠소. 너무 저렴한 가격에 물건을 판매했으니까. 헌데 그 뒤에 북미왕국이 있었을 줄은 몰랐구려.”

이에 외무청 관리는 빙긋 웃으며 대답했다.

“아실지 모르겠습니다만, 아국의 국왕 전하께서는 타인의 자유와 권리를 억압하는 노예 제도 없어져야 할 제도라고 생각하십니다. 그렇기에 남미 지역에 자유를 위해 투쟁하는 흑인 노예들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으시고 기꺼워하시면서 이들을 지원하라고 이야기하셨지요.”

외무청 관리가 북미왕국의 국왕을 거론하자 줌비는 조심스러운 얼굴로 말했다.

“아! 북미왕국의 국왕 전하께서 노예 제도에 부정적이라는 이야기는 얼핏 들긴 했는데...”

“하지만 이곳을 방문했던 상인들을 통해 이 킬롬보 도스 팔마레스의 열악한 사정을 파악하신 아국의 국왕 전하께서는 뒤에서 일부 물자를 지원해 줘봐야 한계가 명확하고, 투쟁이 길어지면 피해가 커질 것으로 판단하시고 이렇게 저를 보내셨습니다.”

외무청 관리의 말이 의미하는 것은 명확했기에 줌비는 놀란 얼굴로 외무청 관리를 바라보았다.

“허면...북미왕국에서 우리를 공식적으로 지원해주겠다는 뜻이오?”

이에 외무청 관리는 빙긋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물론 한 가지 조건이 있긴 합니다만...”

“조건이라면?”

“듣자니 이곳에도 노예가 있다고 들었습니다.”

“그렇소. 주로 우리를 추격하거나 이곳을 공격하려다 포로가 된 포르투갈인들이지.”

줌비의 대답에 외무청 관리가 빙긋 웃으며 줌비의 말을 반박했다.

“제가 파악하기로는 노예 중엔 여성들도 꽤 있었다고 들었습니다. 여성들이 노예 사냥꾼이나 포르투갈의 병사들은 아닐 테고...결국, 주변의 포르투갈인을 사냥해 노예로 삼은 것 아닙니까?”

외무청 관리의 지적에 줌비는 이전에 방문한 상인들에게 보유하고 있던 노예를 모두 팔았다는 것과 그중에 여성들도 꽤 있었다는 것을 떠올리고 괜히 부인해봐야 좋을 것 없다는 생각해 솔직하게 털어놓기로 했다.

“으음...그것도 맞소. 우리는 고통받는 우리의 동포들을 구하기 위해 농장주들을 습격하고, 농장주와 가족들을 데려와 노예로 삼기도 하니까.”

줌비가 솔직하게 시인하자 외무청 관리는 다행이라는 얼굴로 입을 열었다.

“물론 이곳의 주민들 대부분은 농장주들에게 가혹한 대우를 받았던 기억이 있으니 포르투갈 농장주들에게 강한 적개심을 갖는 것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복수심으로 이들을 노예로 만들어 부리는 것 또한 어느 정도는 이해할 수 있습니다. 허나 단순히 포르투갈인이라는 이유만으로 무조건 노예로 삼는다면 그건 피부색만 다를 뿐이지 아프리카에서 원주민들을 사냥하는 자들과 다를 바 없지 않습니까.”

물론 줌비도 포르투갈인들을 무조건 잡아 노예로 만드는 것이 일종의 분풀이라는 것을 모르지 않았기에 외무청 관리의 지적에 신음을 흘렸다.

“으음...무슨 소린지는 알겠소. 허니 이들을 모두 풀어주란 소리구려.”

“무조건 풀어주라기보단 정말로 죄가 있다면 그 죗값을 치를 때까지 죄인의 신분으로 노역을 시키면 되지 노예로 만들 필요까지야 있겠습니까. 특히 이곳의 주민들은 원치도 않았는데 강제로 노예가 되어 고생했던 기억이 있지 않습니까.”

외무청 관리의 이야기에 줌비는 결정을 내린 듯 깊은 한숨을 내쉬며 물었다.

“후우...그렇게만 하면 지원을 받을 수 있는 거요?”

“그렇습니다. 그렇게만 해 주시면 아국은 이 킬롬보 도스 팔마레스를 정식 국가로 인정하고 동맹을 맺을 생각입니다.”

그 말에 줌비는 화들짝 놀란 표정으로 외무청 관리를 바라보았다.

“동맹?! 우리와 말이오?”

“그렇습니다. 그리고 각종 무기도 지원할 생각이고요.”

“무기라면...설마 화약 무기도 지원해 줄 수 있는 거요?”

이에 외무청 관리는 당연한 것 아니냐는 얼굴로 대답했다.

“물론입니다. 혹시 신식 소총을 아십니까?”

“헉! 설마 신식 소총을 지원해주겠다는 거요?”

줌비는 유럽 각국이 북미왕국의 무기를 무척 탐낸다는 사실과 그러한 북미왕국의 무기 중 대표적인 것이 바로 신식 소총이라는 것을 잘 알기에 외무청 관리가 신식 소총을 입에 올리자 무척 놀란 표정을 지었고, 외무청 관리는 줌비의 반응을 볼 때 신식 소총의 존재를 알고 있는 것이 분명했기에 씩 웃으며 말했다.

“이미 배 안에 신식 소총 1천 자루가 실려 있습니다. 그것만으로도 수천의 포르투갈 병사들은 충분히 상대하고도 남지요. 그리고 이를 통해 포르투갈에 고통받는 더 많은 노예들을 구할 수 있을 테고요.”

“으음...”

“어쩌시겠습니까?”

줌비는 잠시 고민하다 결단을 내린 얼굴을 하고 외무청 관리를 바라보았다.

“...좋소. 북미왕국의 요구를 받아들여 이제부턴 포로들을 노예화하지 않겠소.”

“현명하신 판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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