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5화
자금성의 거대한 대전의 용상에 앉아 있던 강희제는 병부 상서의 보고에 골치가 아프다는 얼굴로 머리를 짚으며 말했다.
“끙. 압록강 인근에 배치된 조선군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고?”
“그렇사옵니다. 황상 폐하. 영시위내대신이 급히 장계를 올렸사옵니다.”
“장계? 줘 보게.”
이에 환관은 조심스럽게 장계를 강희제에게 바쳤고, 강희제는 색액도가 올린 압록강 인근의 정세가 적힌 장계를 살펴보고 신음을 흘렸다.
“으음...그동안 잠잠했던 조선군이 전투 준비를 하고 있다라. 설마 봉황성에 배치된 병력이 이동한 것을 눈치챈 것인가.”
강희제의 명령으로 어떻게든 주나라의 방어선을 돌파하려던 청나라군이 큰 피해를 보며 물러났고, 덕분에 그동안 주나라의 확장을 막고 있던 방어선에 구멍이 뚫렸다.
당연히 주나라의 오삼계는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방어선이 약해진 몇몇 지역을 공략하다 북진해 섬서성으로 진입했고, 섬서성에 주둔해 있는 청나라군이 막고 있긴 하지만 계속해서 지원병을 요청하고 있었다.
헌데 팔기 중 양황기와 정황기는 북경을 지켜야 하니 보낼 수 없고, 정백기는 압록강을 넘었다가 막대한 피해를 보았기에 당장 움직일 병력이 없었다.
해서 강희제는 대신들과 의논한 끝에 일단 압록강에 있는 병력을 일부 빼서 섬서성으로 보내기로 했고.
작년에 색액도의 장계를 받고 조선군이 북미왕국의 무기로 무장했다는 것과 이 무기들의 화력이 무척 대단하다는 것을 알고 혹여 조선군이 북진할 것을 무척 경계했었지만, 이런 경계가 무색하게 조선군은 조용했었기에 일단 급한 불부터 끄고 보겠다는 생각이었다.
헌데 봉황성에 주둔해 있는 3만 명의 병력이 빠지자 조선군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고 하니 강희제는 봉황성에 주둔한 병력이 빠진 것을 조선군이 알아채고 움직인다고 판단해 걱정스럽다는 표정을 짓자 내각대학사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그보다는 슬슬 겨울이 다가왔기에 그런 것이 아닐까 싶사옵니다.”
“음? 겨울이 다가와서 전투 준비를 한다고?”
“영시위내대신의 장계에 따르면 조선군의 가장 강력한 무기는 총알을 비처럼 쏟아내는 북미왕국의 커다란 기물이옵니다. 허나 이 기물은 덩치도 크고 쇳덩이로 되어 있으니 압록강을 도하하기 쉽지 않고, 그렇기에 조선군을 북진을 포기하고 방어에만 주력했을 거라 사료되옵니다.”
그제야 강희제는 내각대학사가 무엇을 이야기하려 하는지를 눈치채고 먼저 입을 열었다.
“헌데 겨울이 다가와 압록강이 단단히 얼면, 북미왕국의 기물도 손쉽게 강을 건널 수 있다는 소린가?”
“그렇사옵니다. 황상 폐하. 그러니 조선군이 전투를 준비하는 것 아니겠사옵니까.”
내각대학사의 말도 일리가 있었다.
자신들도 예전엔 조선의 수많은 강을 쉽게 도하하려고 강이 꽝꽝 언 한겨울에 병력을 움직여 조선을 침공한 것 아니겠는가.
“끙. 이거 골치 아프군. 영시위내대신은 목숨을 바쳐 조선군의 북진을 막겠다고는 하는데...”
색액도는 장계에 혹여 압록강이 얼고 이를 이용해 조선군이 북진하더라도 목숨을 다해 어떻게든 막을 거라고 쓰긴 했는데 작년의 전투 결과를 보면 과연 목숨을 바친다 한들 북미왕국의 무기로 무장한 조선군을 막을 수 있을지는 회의적이라 현재 북경으로 이동 중인 3만 명의 병력을 회군시켜야 하나 잠시 고민했을 때, 병부 상서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영시위내대신도 북미왕국의 기물과 조선군을 상대하기 위해 그동안 만반의 준비를 했사옵니다. 허니 영시위내대신을 한번 믿어보는 것도 괜찮을 거라 사료되옵니다.”
물론 준비라고 해봐야 별것은 없었다.
총알을 막을 수 있는 방패라던가, 기물을 부수기 위한 화포가 전부였으니.
그리고 강희제는 이러한 준비로 정말 조선군을 막을 수 있을지는 회의적이었고.
다만 만주도 소중하긴 한데 당장 섬서성에 지원 병력을 보내지 않는다면 섬서성이 위험했기에 강희제는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후우. 섬서성을 포기할 수도 없는 노릇이니 지금 상황에서는 영시위내대신을 믿는 것 외에는 방도가 없군. 영시위내대신에게는 조선군을 막을 거라 믿고 있을 테니 절대 내 믿음을 져버리지 말라고 전하게.”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황상 폐하.”
병부 상서가 고개를 숙이자 강희제는 고개를 들라는 듯 손을 휘휘 내저으며 다시 입을 열었다.
“그리고 북방에서 철수하는 병력이 심양에 도착했을까?”
청나라의 상황이 좋지 못해 압록강 인근에 배치된 병력을 철수시키면서, 북방에서 시베리아 부족 연합과 대치 중인 병력도 일부를 철수시켰다.
처음 걱정했던 것과는 달리 이들도 흑룡강을 넘지 않고 잠잠했으니까.
물론 북미왕국의 배가 흑룡강을 거슬러 올라 알바진에 각종 물자를 하역하자, 그동안 대청에 신속했던 흑룡강 주변의 부족들이 손바닥 뒤집듯 연합에 붙었으며, 연합은 알바진에 커다란 시장을 개설해 주변 부족들을 끌어모으며 영향력을 넓히고 있는 것이 걸리기는 했지만, 현 상황에서 연합의 영향력을 축소시키기 위해 알바진을 공격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가뜩이나 북방에 올려보낸 2만 명의 병력이 사용하는 물자를 육로로 수송하는 것만으로도 벅찬 상황이라 거래를 통해 주변 부족을 회유할 수도 없었다.
그러니 청나라에서는 일단 연합이 흑룡강 유역에서 영향력을 넓히는 것을 묵인하기로 하고, 아예 북방에 배치한 병력 중 절반을 심양으로 철수시켰고.
원래는 이들도 북경으로 불러들일 생각이었지만 조선군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았기에 이들은 만약을 대비해 심양에 주둔시켜야겠다고 생각한 강희제가 병부 상서에게 질문하자 병부 상서가 답했다.
“아마 지금쯤이면 심양에 도착했으리라 사료되옵니다.”
“음...허면 바로 심양으로 전령을 보내 그곳에서 만약을 대비하라 이르게.”
혹여 색액도가 조선군에 패배한다면 조선군의 북진을 막을 병력이 없는 만큼 병부 상서는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다.
“심양에 바로 황명을 전하겠나이다.”
그때 한 환관이 하얗게 질린 얼굴로 대전으로 들어왔고, 강희제는 환관의 얼굴을 확인하고 급히 질문을 던졌다.
“무슨 일인가.”
“그것이...”
“어허!”
환관이 차마 입을 열지 못하자 강희제는 환관을 닦달했고, 결국 환관은 눈을 질끈 감으며 보고했다.
“...방금 장계가 올라왔사온데 강소성에서 반란이 일어났다 하옵니다. 황상 폐하.”
“뭐라?! 강소성에서 반란이?!”
“헉!”
이전에도 광동성이나 안휘성에서 반란이 일어난 적은 있긴 했다.
다만 광동성은 북경과 멀리 떨어져 있을뿐더러 그리 부유한 지역은 아니었기에 큰 타격은 없었고.
안휘성은 오삼계의 반란군을 막기 위한 병력이 상당수 배치되어 있었기에 반란이 일어난 즉시 진압할 수 있었기에 별다른 타격이 없었다.
하지만 강소성은 달랐다.
강소성은 산동성 바로 밑에 있었기에 비교적 가깝기도 했고, 남경, 항주 등의 도시들이 있었기에 반란군이 이 도시들을 점령한다면 가뜩이나 돈이 궁한 청나라로서는 타격이 클 수밖에 없었다.
그렇기에 강소성에서 반란이 일어났다는 환관의 말에 대신들은 기겁했고, 내각대학사는 급히 강희제에게 말했다.
“일단 반란이 더 번지기 전에 빠르게 제압해야 하옵니다. 황상 폐하.”
“그렇사옵니다. 다행히도 봉황성에 주둔해 있던 병력 3만이 이제 막 산해관을 넘었으니 바로 이들을 보내 강소성의 반란을 진압해야 하옵니다. 황상 폐하.”
내각대학사와 대신들의 이야기에 강희제는 잠시 고민했지만, 섬서성보다는 강소성이 더 중요했기에 결정을 내렸다.
“으음...그 방법 외에는 없겠군. 바로 명령을 전달하도록 하게.”
“알겠사옵니다. 황상 폐하.”
“그리고 만약을 대비해 추가로 병력을 징집하도록 하고.”
“알겠사옵니다. 황상 폐하.”
강희제의 명령에 대신들은 어디서 병력을 징집할지, 그리고 이에 필요한 재물들은 어디서 구할지 의논하기 시작했고, 강희제는 그런 대신들을 바라보다 침통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후우. 어쩌다가 대청이 이렇게...”
* * *
화로를 꺼낸 김에 가래떡을 꼬치에 꽂아 열심히 굽고 있던 정성국은 군사청장과 조용한 곰이 집무실을 방문하자 피식 웃으며 이리 오라고 손짓했고.
군사청장과 조용한 곰은 그런 정성국에게 다가가 웃으며 말을 걸었다.
“하하하. 간식입니까?”
“아. 입이 영 심심해서 말이지. 자네들도 좀 먹게. 가래떡 말고도 구워 먹을 만한 것들은 많으니까.”
이에 군사청장은 고구마 조각을, 조용한 곰은 가래떡을 꼬치에 꽂아 굽기 시작했고.
정성국은 그런 둘을 보고 입을 열었다.
“헌데 갑자기 무슨 일로 온 건가?”
“아. 아이누 섬에서 보고서가 올라와서 말입니다.”
군사청장의 이야기에 정성국이 눈을 빛냈다.
“보고서? 그럼 남방항로를 통해 보고서가 올라온 건가?”
“그렇습니다. 전하.”
그러면서 군사청장과 조용한 곰은 가지고 왔던 보고서를 정성국에게 건넸고, 정성국은 이를 받아들며 활짝 웃었다.
“하하하. 그동안 겨울만 되면 아시아의 소식을 들을 수 없어 영 답답했는데 남방항로를 이용할 수 있으니 확실히 좋긴 하군.”
“예. 편하긴 하더군요.”
“어디보자...”
정성국은 꼬치를 내려놓고 먼저 군사청장이 건네준 보고서를 확인하다 그 내용에 놀라 탄식을 터트렸다.
“허. 청나라의 사정이 정말 좋지 않은 모양이군.”
이에 군사청장은 열심히 고구마를 구우며 대답했다.
“그렇습니다. 3함대의 보고에 의하면 9월에 일부 병력을 집중해 주나라의 방어선을 뚫으려다 패배하고 큰 피해를 보게 되면서 전선 일부가 뚫린 모양입니다. 당연히 주나라는 이를 기회로 보고 다시 북서쪽에 있는 섬서성을 노리고 있고요. 그뿐만 아니라 청나라가 사력을 다해 막고 있지만 동녕국의 기세가 만만치 않고, 지역 유지들이 동녕국에 협조하고 있어 이미 복건성은 거의 동녕국이 장악했다고 봐도 될 정도랍니다. 거기에 광동성과 안휘성에서 반란이 발생하기도 했고요.”
“거참...이러다 정말 청나라가 망하겠는데?”
아무리 정성국이 주나라와 동녕국을 돕긴 했지만, 그리고 병력 중 일부가 북방과 압록강 인근에 묶이긴 했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는 버티리라고 생각한 청나라였는데 정성국의 예상보다 청나라의 상황이 안 좋았고, 이러다 잘못하면 청나라가 정말 망할 수도 있다는 생각에 정성국이 인상을 찌푸리자 조용한 곰이 입을 열었다.
“청나라가 그리 쉽게 망할까 쉽기는 한데...의외로 주나라와 동녕국의 기세가 대단하고 곳곳에서 반란이 일어나고 있어 또 모를 일입니다.”
“흠. 헌데도 아직 청나라는 별다른 접촉이 없고?”
이 정도로 청나라의 사정이 좋지 않다면, 이전처럼 협상을 제의할 수도 있으리라고 생각했지만, 조용한 곰은 고개를 저었다.
“그런 보고는 없습니다. 아무래도 저희가 만주를 언급한 터라 섣부르게 저희와 협상을 하긴 어렵겠지요. 허나 동녕국이 복건성에 만족하지 않고 강서성이나 절강성을 공격하기 시작하면 청나라도 위기감을 느끼고 저희와 접촉하려 들지 않을까 싶습니다.”
강서성은 주나라가 장악한 호남성과, 동녕국이 장악한 복건성 사이에 있는 지역이었기에 동녕국이 강서성을 공격한다면 앞뒤로 협공을 받는 셈이라 강서성이 오래 버티지 못할 것은 자명했다.
그리고 절강성은 꽤 부유한 지역이라 이곳을 빼앗기면 타격이 컸고.
그러니 동녕국이 이 지역들을 공격하면 청나라는 위기감을 느낄 수밖에 없고, 자연히 만주 일부를 넘기더라도 북미왕국과 협상하리라는 예상을 하는 조용한 곰의 이야기에 정성국은 고개를 끄덕이며 계속 보고서를 확인했고.
군사청장이 건네준 보고서를 다 확인한 정성국은 조용한 곰이 건넨 보고서를 확인하고 나직하게 감탄사를 터트렸다.
“허어. 알바진 주변의 부족들을 모두 회유해 연합으로 끌어들였다고?”
“그렇습니다. 아시다시피 알바진 주변의 부족들은 항상 물자가 부족했던 터라 알바진에 건설한 시장에 공급되는 물자들을 보고 눈이 뒤집힐 수밖에 없지요.”
조용한 곰의 말에 정성국은 고개를 갸웃했다.
“그래도 청나라가 2만 명의 기병을 아무르 강 인근에 배치하지 않았나. 그러니 일단 거리를 두고 상황을 파악할 줄 알았더니?”
이에 조용한 곰은 빙긋 웃으며 말했다.
“일반적인 상황이라면 전하의 말씀이 맞습니다만...현재 알바진에 배치된 병력 중 일부는 아이누 탐사대이다 보니 이들이 무장한 갑오 소총과 알바진 요새에 있는 이동형 60mm 화포라면 충분히 청나라군을 상대할 수 있어 보이기도 하고, 만약 청나라군이 승리한다면 북미왕국의 배가 알바진을 방문하지 않을 테고, 그러면 알바진의 시장도 다시 문을 닫을 수밖에 없지 않습니까.”
“아?! 설마 그래서 오히려 연합에 합류해 알바진의 시장을 지키기 위해 나섰다는 건가?”
“그렇습니다.”
조용한 곰이 고개를 끄덕이자 정성국이 웃음을 터트렸다.
“하하하. 뭐 주변 부족들을 회유하기 위해 시장을 건설한 거긴 한데 이렇게 효과가 좋을 줄은 몰랐군.”
“그러게 말입니다.”
“아무튼, 잘 됐군. 아무르 강 인근에 배치된 청나라군에 비해 알바진 요새의 병력은 적은 편이라 조금 걱정했는데 아무르 강 주변의 부족들이 연합에 가입하고 도와준다면 청나라군을 막는 것쯤은 문제가 아닐 테니까.”
정성국의 말에 조용한 곰은 잘 구워진 가래떡을 화로에서 빼며 말했다.
“그렇습니다. 그리고 청나라는 북방에서 세력을 키우는 연합을 그저 바라만 볼 수밖에 없으니 더욱 답답할 테고요.”
“큭큭. 아. 그리고 가능하면 아무르 강 남쪽에 자리한 부족들도 거래를 미끼로 회유하라고 전하게.”
짓궂게 웃으며 이야기하는 정성국을 보고 조용한 곰은 정성국이 그들을 빌미로 청나라와 협상할 때 국경선을 남쪽으로 내리거나 혹은 그들을 아무르 강 북쪽으로 정착시켜 그 인력을 이용할 속셈이라는 것을 깨닫고 고개를 끄덕였다.
“흐음...알겠습니다. 바로 연락을 보내도록 하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