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4화
11월이 되자 외무청에서는 새한성에 있는 대사들에게 포르투갈과의 외교단절을 선언했다.
이에 새한성의 외교가는 시끄러워질 수밖에 없었다.
일부는 정말 북미왕국이 포르투갈과의 외교 관계를 단칼에 끊어버릴 줄은 몰랐다며 혀를 내둘렀고, 일부는 이 일로 어떻게든 이익을 취할 수 있지 않을까 고민했으며, 일부는 기겁하며 하루라도 빨리 노예무역을 금지해야 한다는 보고서를 작성해 본국에 보내는 동시에 혹시 북미왕국이 자국과의 외교 관계도 단절할 것을 우려해 시간을 끌기 위해 조용한 곰을 설득하려 들었고.
그리고 잉글랜드 대사는 이들과는 조금 다른 반응을 보였다.
“허. 이거 의외로군. 난 당연히 포르투갈이 노예무역을 포기할 것으로 생각했는데.”
잉글랜드는 예전부터 포르투갈과 동맹 관계였다.
두 나라 모두 에스파냐를 견제하고 싶어했으니까.
물론 한때는 동군연합으로 포르투갈이 에스파냐와 연합 왕국이 되면서, 동맹이 깨지고 인도양에서의 무역 패권을 두고 다투기도 했지만, 포르투갈의 귀족들이 에스파냐의 품에서 벗어나기 위해 독립전쟁을 시작하자 잉글랜드는 여러 이권을 약속받고 다시 포르투갈을 지원했고, 왕정복고로 찰스 2세가 잉글랜드의 왕이 되자 아예 포르투갈의 공주와 혼인 동맹까지 맺었으니.
그렇기에 잉글랜드 대사는 이번 일로 동맹인 포르투갈의 세력이 심하게 위축될 것을 걱정할 수밖에 없었고.
해서 잉글랜드 대사가 안타깝다는 얼굴로 그렇게 혼잣말을 하자, 옆에 있던 보좌관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포르투갈은 그동안 노예무역으로 많은 이득을 챙겼고, 그만큼 노예무역에 관련된 귀족들이 많을 테니 의외의 결과라고 할 것까지는 없지 않겠습니까?”
이에 잉글랜드 대사는 고개를 저었다.
“뭐 포르투갈의 대외무역 중에서 노예무역이 차지하는 비중이 높긴 하지. 다만 북미왕국이 신대륙에 만연한 노예무역을 더는 좌시하지 않겠다고 선언한 상황에서 노예무역을 계속한다면 그걸 북미왕국이 두고 보겠나?”
현재 북미왕국의 분위기를 생각해보면, 가까운 남미에서 계속 노예무역이 진행되는 것을 그냥 두고 볼 리 만무했다.
그러니 포르투갈은 이번 선택으로 신대륙의 식민지인 브라질을 잃을 것이 뻔했고, 다른 나라들 역시 북미왕국의 눈치를 보며 하나둘 노예무역을 금지하겠다고 선언하고 있으니, 자연히 노예무역은 축소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렇게 되면 포르투갈은 노예무역을 금지하는 것보다 더 큰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고, 잉글랜드 역시 피해를 보게 된다.
포르투갈은 예전 독립전쟁 당시 잉글랜드의 지원을 얻기 위해 브라질 지역의 무역권을 잉글랜드에 넘겼으니 말이다.
이를 떠올리고 잉글랜드 대사가 어두운 표정을 짓자 보좌관은 너무 과한 걱정이 아니냐는 얼굴을 하며 말했다.
“그렇긴 한데...과연 북미왕국이 노예무역을 빌미로 포르투갈과 전쟁을 하겠습니까? 딱히 얻을 것도 없고...포르투갈을 브라질에서 몰아내려면 해군만으로는 어렵고 결국 상당수의 육군을 파견해야 하는데 북미왕국은 현재 청나라와도 전쟁 중이잖습니까.”
분명 북미왕국의 해군은 강력했고, 카리브 해를 담당하고 있는 2함대가 브라질 지역을 공격하거나 혹은 브라질 지역을 드나드는 포르투갈 선박들을 공격한다면, 분명 포르투갈은 버티지 못할 것이 분명했다.
다만 북미왕국 해군은 강력한 대신 움직이려면 석탄이 필요한 터라 북미왕국이 브라질 지역의 포르투갈 세력을 완전히 몰아내려면, 브라질의 해안가를 점령하고 보급기지로 삼아 이동해야 했는데, 그게 말처럼 쉬운 것은 아니었다.
또한, 현재 북미왕국은 아시아에서 청나라와 전쟁 중이니만큼, 그리고 청나라도 절대 만만치 않은 국가이니만큼, 이 전쟁이 금방 끝날 것 같지도 않다고 생각한 보좌관이 반문하자 잉글랜드 대사가 그런 보좌관을 한심하다는 눈빛으로 바라보며 말했다.
“못할 것 없지. 조선 사절단을 통해 파악한 바론 작년에 처참하게 깨진 청나라가 몸을 사리고 있다고 했으니. 그리고 그동안 북미왕국은 원주민들을 지원하는 경우가 많았으니, 뒤에서 포르투갈에 불만이 있는 원주민들을 모아 지원하는 방식을 사용할 수도 있을 테고.”
보좌관은 잉글랜드 대사의 눈빛에 담긴 뜻을 파악하고 살짝 얼굴을 붉히면서도, 제 뜻을 굽히지 않았다.
“시베리아 부족 연합이나 호주 연합이 그런 식으로 탄생한 나라이기야 하지요. 다만 브라질의 사정은 조금 다르지 않습니까. 북미왕국이 지원할 원주민들이 거의 없는 것으로 아는데요?”
백인들이 신대륙에 진출하면서 가져온 각종 전염병에 의해 그동안 고립되어 살아왔기에 이런 전염병에 아무런 면역이 없는 원주민들은 무더기로 죽어 나갔고, 그 때문에 신대륙 대부분은 텅텅 비게 되었으며, 이는 브라질 지역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렇기에 포르투갈은 브라질 지역을 개발하기 위해 노예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고.
그런 만큼 북미왕국이 원주민들을 이용하고 싶어도 브라질 지역에서만큼은 불가능하다는 반문에 잉글랜드 대사는 보좌관이 이렇게 멍청할 줄은 몰랐다는 얼굴로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하아. 물론 남미에는 원주민들이 별로 없긴 하지, 대신 노예들이 있잖나.”
물론 보좌관도 북미왕국이 노예들을 선동할 수도 있다고 생각하긴 했다.
다만 제대로 교육도 받지 못했고, 또 주인의 명령만 받던 노예들로 무엇을 할 수 있겠느냐고 생각해 조심스럽게 반박했다.
“음...아무리 북미왕국이 뒤에서 지원해준다 한들 노예들이 과연 포르투갈과 맞설 수 있을까요?”
하지만 잉글랜드 대사는 그런 보좌관의 반박에 혀를 찼다.
“쯧쯧. 생각해보게. 시베리아의 원주민들이 러시아 차르국을 몰아내리라고 누가 예상했나.”
솔직히 자신들이 보기엔 미개한 시베리아 원주민이나 흑인 노예들이나 다 거기서 거기였다.
헌데 시베리아 원주민들이 북미왕국의 지원으로 러시아 차르국을 몰아낸 만큼, 흑인 노예들도 북미왕국이 제대로 지원만 해준다면 포르투갈을 몰아낼 수도 있을 것 같았고.
해서 보좌관은 조금 민망하다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음...그렇긴 하군요. 분명 포르투갈이 브라질 식민지를 지키기 위해 많은 병력을 파견해두긴 했지만, 북미왕국에서 노예들에게 신식 소총을 쥐여준다면...”
“그래. 못 버틸 거야. 그리고 브라질 지역을 잃게 되면 어차피 노예무역은 의미가 없지. 그걸 포르투갈에서도 모르지 않을 텐데 이런 결정을 내린 것이 의아하고 안타까울 뿐일세.”
이에 보좌관은 곰곰이 생각해보다가 잉글랜드 대사에게 말했다.
“허면 본국에 연락을 보내 포르투갈을 설득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포르투갈이 브라질을 잃게 되면 저희도 손해가 클 텐데?”
그 말에 잉글랜드 대사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으음...그래야겠군. 그럼 내가 바로 보고서를 작성해서 줄 테니 자네는 보고서를 바로 본국으로 보내게.”
“알겠습니다. 대사님.”
* * *
“그래. 거래는 잘 끝났다고?”
정성국은 남미로 떠났던 위장 상단이 새진주로 복귀했다는 조용한 곰의 보고에 눈을 빛내며 질문을 던졌고, 조용한 곰은 애매한 표정으로 답했다.
“그렇습니다. 다만...”
“다만?”
“이번 거래로 저들이 보유하고 있던 귀금속과 노예 등 돈이 되는 것을 모조리 쓸어온 터라, 아국의 정체를 숨기고 위장 상단만으로 계속 거래하긴 어려울 것 같다는 보고입니다.”
이에 정성국은 아차 하는 얼굴로 중얼거렸다.
“아. 그렇군. 일단은 상단인데 물건을 거저 넘길 수도 없는 노릇이니.”
“예. 지금도 저들에게 너무 후한 조건으로 거래를 하고 있는 터라...일부는 위장 상단을 의심한다고 하니까요.”
“허. 그래?”
그동안 북미왕국이 여러 위장 상단을 이용해 원주민들과 여러 번의 거래를 했어도 이런 적은 없었기에 정성국이 조금 당황한 표정을 짓자 조용한 곰은 이들은 상황이 조금 다르지 않으냐며 말했다.
“예. 아시다시피 대서양에서 활동하는 위장 상단의 경우 대부분이 유럽 출신 백성들로 구성되어 있지 않습니까.”
대서양 방면에서 활동하는 위장 상단은, 카리브 해의 노예 시장에서 노예를 구입하는 것이 주 임무였기에 범선을 다룰 줄 아는 잉글랜드 출신의 북미왕국 백성들로 구성되었고, 이들은 백인들이니만큼 포르투갈을 피해 투쟁하는 흑인 노예들이 의심의 눈초리로 볼 수밖에 없다는 것을 깨닫고 정성국이 탄식했다.
“아. 포르투갈의 끄나풀이라고 의심할 수도 있겠군.”
“그렇습니다. 저들도 상인들이 무엇보다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재물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는데, 위장 상단은 재물보다는 자신들과의 거래를 중요시하고, 그러면서 이런저런 질문을 통해 자신들의 사정을 파악하려 하니 이들이 보기엔 위장 상단이 꽤나 의심스러울 수밖에 없긴 하지요.”
이들은 노예 출신이었기에 정상적인 물건의 가격을 모르지 않았다.
거기에 킬롬보 도스 팔마레스는 내륙, 그리고 정글 안쪽에 있는 만큼 물건을 가져오는 데도 고생할 수밖에 없었고, 여기에 자신들과 거래한다는 것은 포르투갈과 적대한다는 뜻이라 위험 부담까지 감수해야 했으니, 몇 배는 비싸게 판다 해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헌데 이들은 오히려 저렴한 가격에 물건을 팔았고, 그 때문에 계속해서 거래하고 싶다고 청했지만, 딱히 기대하지는 않았는데 더 많은 물자를 가져와 판매하자 자연히 이들이 일반적인 상인이 아닐 거라는 의심이 생겨날 수밖에 없었다.
그나마 위장 상단이 이번에 가져간 물품 중에는 무기와 철제 제품이 많았기에, 정말 저들이 포르투갈의 첩자라면 과연 이런 무기와 철제 제품을 자신들에게 판매하겠느냐는 생각에 의심스럽긴 한데 그렇다고 포르투갈의 첩자 같지는 않아서 일단 넘어갔지, 아니었다면 위장 상단의 안전이 위협받았을 수도 있었다는 이야기에 정성국은 신음을 흘렸다.
“으음. 그 점을 미처 생각하지 못했군. 그럼 줌비와 제대로 접촉하지도 못했겠군?”
“그렇습니다. 저들이 의심하고 있는 상황에서 저들의 지도자인 줌비와 만나고 싶다고 이야기한다면...그 의심은 더욱 증폭될 수밖에 없으니까요.”
위장 상단의 행수도 이번 방문으로 이들의 지도자인 줌비를 만나 친분을 쌓을 생각이었지만, 자신들이 가져온 물자와 가격을 듣고 오히려 의심스러운 눈빛을 보내는 흑인들을 보고 아차 하며 부랴부랴 미리 준비한 정글도와 각종 종자를 보여주어 의심을 피했다는 조용한 곰의 설명에 정성국이 고개를 끄덕였다.
“잘 했군. 괜히 위험을 무릅쓸 필요는 없으니까.”
“그렇습니다. 다만 더는 위장 상단을 통해 접촉하긴 힘들 것 같은데 어쩌시겠습니까.”
이에 정성국은 한참을 고민하다 조용한 곰에게 말했다.
“다시 위장 상단을 보내되...이번에는 외무청 관리를 동행시키게. 그리고 신식 소총 1천 자루도 함께.”
“헉! 신식 소총까지 건네실 작정이십니까?”
정성국의 명령에 조용한 곰이 무척 놀란 표정으로 반문하자 정성국은 어깨를 으쓱했다.
“팔마레스의 흑인들이 우리와 동맹을 맺는다면 신식 소총을 건네지 않을 이유가 없겠지.”
“음...동맹까지 생각하시는 겁니까?”
“그래. 시베리아 지역에서 러시아 차르국을 몰아낸 것처럼, 흑인들을 지원해 포르투갈 세력을 브라질 지역에서 몰아낼 생각이야. 최소한 브라질 남동부 지역은 확보해야 해.”
브라질 남동부 지역에는 수많은 광물이 묻혀 있고, 그중에는 금도 있었다.
그러니 포르투갈이 이 지역에서 금을 발견한다면 절대 브라질을 포기하지 않을 테고, 그러면 여러모로 귀찮아질 수밖에 없었다.
해서 정성국은 저들이 금을 발견하기 전에 흑인 노예들에게 지원해줘서 전생의 브라질의 중심지라 할 수 있는 미나스제라이스 지역을 장악할 속셈으로 이렇게 이야기하자 조용한 곰은 별다른 의심 없이 수긍했다.
“하긴...현 브라질 지역의 중심지는 수많은 농장이 존재하는 브라질 북동부 해안가이니만큼, 남동부 지역에는 별다른 병력이 없을 테고 그러니 이 지역으로 확장하는 것이 낫긴 하지요.”
“그래. 그러니 저들을 잘 설득해서 일단 동맹을 맺고, 신식 소총을 넘겨주고 사용법을 알려준 뒤 가까운 해안가부터 점령한 후 거점을 옮기라고 설득하게.”
정성국의 이야기에 조용한 곰이 탄성을 질렀다.
“예? 아! 원활한 물자 수송을 위해서 말입니까?”
“그래. 킬롬보 도스 팔마레스는 내륙 지역이라 물자 수송이 어렵잖나. 그러니 발전도 어렵고.”
이번에도 위장 상단이 킬롬보 도스 팔마레스와 거래하기 위해 무척 고생한 것을 생각하면, 저들의 거점을 바꿀 필요가 있었기에 정성국이 이를 언급하자 조용한 곰이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그동안은 무기에서 열세였기에 정글에 틀어박혀 있었지만, 신식 소총이 있다면 포르투갈 군대와도 정면에서 맞붙을 수 있을 테니 설득이 어렵진 않을 겁니다.”
“그래. 그 이후로 해안가를 따라 쭉쭉 남하하면 될 테고...아. 그리고 이번에 킬롬보 도스 팔마레스로 갈 때 개발청의 기술자들도 몇몇 붙이도록 하게.”
“탄광부터 찾으라는 말씀이시지요? 알겠습니다. 전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