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3화
조선 지원군 사령관인 카무이쿠르는 이번에 새로 건설한 기관총 진지를 둘러보고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흠. 정말 튼튼해 보이는군.”
북방항로가 열리기 전까지야 검차에 장착된 기관총이 전부였지만, 북방항로가 열린 이후에는 새한성에서 기관총을 꾸준히 보내주었다.
물론 북미왕국에서도 당장 청나라군이 남하하지는 못할 거라고 생각했지만, 만약을 대비해야 했으니까.
그리고 기관총의 숫자가 늘어나자 조선 지원군의 지휘관들은 이를 효과적으로 써먹기 위해 고민하다 조선 지원군 진영 곳곳에 배치되어 있는 검차를 보고 적의 공격에도 안전하게 기관총을 사용할 수 있는 기관총 진지를 떠올렸고.
해서 조선 지원군에서는 압록강을 따라 기관총 진지를 건설하기 시작했고, 이러한 기관총 진지가 드디어 완성되었다는 보고에 카무이쿠르가 기관총 진지를 직접 확인하기 위해 이렇게 용암포 인근에 지어진 기관총 진지를 방문한 것이고 말이다.
그리고 이런 카무이쿠르의 말에 기관총 진지 건설을 책임졌던 굳건한 바위가 미소지으며 말했다.
“그렇지요? 이 진지를 짓는 데 도움을 준 개발청 소속의 건축가는 아마 청나라의 화포가 외벽에 직격하더라도 끄떡없을 거라고 확신하더군요.”
청나라군도 화포는 보유한 만큼, 그리고 청나라군은 기관총에 호되게 당한 만큼, 기관총 진지는 청나라군이 보유한 화포의 일차 공격 목표가 될 수밖에 없었다.
그렇기에 굳건한 바위는 조선철도공사에 파견된 개발청 소속 건축가에게 자문을 구했고, 건축가는 청나라 화포는 충분히 견딜 수 있도록 철골과 철망, 석회를 이용해 두꺼운 외벽을 지닌 기관총 진지를 설계해 도면을 보내주었고, 굳건한 바위는 병사들을 이용해 기관총 진지를 건설했다.
그리고 카무이쿠르는 이런 굳건한 바위의 설명에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기관총 진지의 내벽을 매만지며 말했다.
“그거 다행이군. 허면 진지 안에서 안심하고 방아쇠만 당기면 되겠어. 이거 더 많이 지을 걸 그랬나?”
북미왕국에서 지금까지 추가로 보내준 기관총은 총 50자루였기에 기관총 진지도 총 50개를 건설했는데, 직접 기관총 진지를 둘러보니 꼭 기관총이 아니더라도 일반 병사들이 안에서 갑오 소총을 사용하는 것도 괜찮아 보였기에 카무이쿠르가 이렇게 이야기하자, 굳건한 바위가 고개를 저었다.
“뭐 압록강을 따라 더 많이 건설하면 좋을 것 같긴 합니다만...아쉽게도 석회와 철망이 많지 않아서 말입니다. 그리고 본국에서 구하기도 힘들 것 같고.”
“쯧. 개항장 때문에 말이지?”
강원도 인근에 커다란 지진이 일어났고 그 때문에 개항장이 파괴되었다는 소식은 원상을 통해 곧바로 전해 들었기에 카무이쿠르가 혀를 차자 굳건한 바위가 고개를 끄덕였다.
“예. 개항장을 복구하려면 수많은 건물을 지어야 하니 석회와 철망은 여유분이 아예 없답니다. 거기에 개항장 역시 지진의 안전지대가 아닌 만큼, 지진을 대비해 더욱 튼튼하게 건물을 지을 생각이라 기존보다 더 많은 철망을 넣어 예정이라더군요. 그래서 석회는 몰라도 철망이나 철골은 구하기 어렵습니다. 이것도 홋카이도에 남아 있는 물량을 탈탈 털어 겨우 가져온 거니까요.”
“끙...아쉬운 일이로군.”
개항장이 재건되려면 몇 년은 걸릴 텐데, 그때까진 건설 자재들의 여유가 없어 기관총 진지를 더 짓기는 힘들 것 같다는 굳건한 바위의 말에 카무이쿠르가 아쉬워하자 카무이쿠르와 함께 기관총 진지를 방문한 조병수가 입을 열어 이 대화에 끼어들었다.
“아쉬울 것이 있습니까. 현재 청나라의 상황을 보면 실제 이 진지가 활약할 일도 없을 것 같은데요.”
“흠...”
3함대에서는 계속해서 청나라 내부 사정을 파악해 보내주고 있었는데, 현재 청나라의 사정은 결코 좋지 못했다.
강희제는 일단 주나라에 집중하기로 마음먹고 최대한 빠르게 주나라를 토벌할 것을 명령했지만, 주나라도 여기서 밀리면 끝이라는 생각에 계속해서 장정들을 징집해 투입하고 있어서 그게 쉽지 않았다.
거기에 최근엔 고령의 오삼계가 직접 친정에 나서서 큰 승리를 거둔 터라 청나라는 주나라의 북진을 막기 위해 추가로 병력을 징집해 투입할 수밖에 없었고.
여기에 동녕국도 문제였다.
청나라의 사정을 파악한 동녕국에서는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가까운 복건성에 그동안 육성한 병력을 투입하기 시작했고, 복건성에 주둔하고 있던 청나라군은 동녕국을 막기 위해 애를 썼으나 계속해서 밀리고 있었으니.
해서 벌써 복건성의 절반 가까이는 동녕국이 점령한 상태였고,
헌데 청나라는 이걸 그냥 두고 볼 수는 없었다.
복건성이 동녕국에 완전히 넘어가 버리면, 인근의 강서성과 광동성이 위험해질 테니까.
그러니 청나라는 더 많은 병력과 재물이 필요했고, 지주들에게 그 재물을 뜯어내고 백성들을 강제로 징집했으니 민심이 좋을 리 없었다.
광동성에서는 민란이 일어났다는 말도 있었고.
그런 만큼, 청나라가 다시 조선을 공격할 수 있겠느냐고 이야기하는 조병수였고, 카무이쿠르가 보기에도 청나라는 주나라와 동녕국의 확장을 막는 것만으로도 벅차 보였기에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고.
“음?”
그때 바깥이 소란스러워졌기에 카무이쿠르는 무슨 일인가 싶어 고개를 갸웃했고.
굳건한 바위가 바깥에 고개를 내밀어 상황을 확인하고 말했다.
“어? 훈련대장께서 오신 모양입니다.”
그 말에 카무이쿠르가 기관총 진지에서 나와 자신을 보고 웃으며 다가오는 훈련대장 유혁연에게 다가갔고.
“갑자기 어인 일이십니까. 혹시...”
압록강 너머에 주둔하고 있는 청나라군이 조용했기에, 카무이쿠르와 유혁연은 일주일에 한 번씩 서로의 진영을 방문해 친분을 쌓고 있었다.
그리고 2일 전 유혁연이 용암포를 방문했었는데 다시 방문한 것은 분명 중요한 용건이 있지 않을까 싶어 카무이쿠르가 약간의 놀람과 긴장이 뒤섞인 얼굴로 질문하자 유혁연이 그런 카무이쿠르의 얼굴을 확인하고 너무 걱정하지 말라는 듯 빙긋 웃으며 말했다.
“날이 춥다 보니 전에 사령관께서 타주셨던 코코아라는 차도 생각나고, 또 긴히 알려드려야 할 정보가 있어서 이렇게 찾아뵈었습니다.”
“정보요?”
카무이쿠르가 눈을 빛내며 되묻자 유혁연은 진정하라는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예. 여기서 말씀드리긴 조금 그렇고...”
“아. 알겠습니다. 제 집무실로 가시지요.”
카무이쿠르는 유혁연과 잡담을 나누며 용암포의 집무실로 이동했고, 당번병이 미리 준비한 뜨거운 물을 커피잔에 따르고, 본국에서 가져온 기호품 중 하나인 코코아 가루와 설탕을 듬뿍 넣어 유혁연에게 건넸다.
“오. 감사합니다.”
“아닙니다.”
코코아를 받아든 유혁연이 기쁜 얼굴로 커피잔을 임에 가져다 대고 한 모금 마신 후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하아. 좋군요.”
그런 반응에 따로 커피를 내리고 있던 카무이쿠르는 피식 웃었다.
“그렇게 좋으십니까? 전 그냥 그렇던데...”
“허허허. 날이 추우니 계속 생각나서 말입니다.”
자신의 질문에 멋쩍게 웃는 유혁연을 보고 카무이쿠르가 피식 웃었다.
“그럼 가실 때 좀 챙겨드리겠습니다. 어차피 전 그거 별로 안 좋아하니까요.”
“오! 사양하지 않겠습니다.”
유혁연은 카무이쿠르의 말에 반색했고, 카무이쿠르는 잠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헌데 무슨 정보길래 이렇게 오신 겁니까?”
“아. 사령관께서도 두만강 너머에도 여진족들이 일부 살고 있다는 것은 아시지요?”
카무이쿠르가 조선에 파견된 지도 1년이 넘었으니 당연히 조선 북방의 사정은 대략 파악하고 있어 고개를 끄덕였다.
“예. 알고는 있습니다만...설마?”
“하하하. 아닙니다. 저들도 귀가 있으니 청나라군이 진작 패배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는데 불리한 쪽에 붙겠습니까. 오히려 이들을 통해 만주의 상황을 파악할 수 있었는데...꽤 흥미로운 정보가 있어서 말입니다.”
“흥미로운 정보요?”
청나라군의 지원군이 압록강 너머에 주둔한 이후, 청나라 역시 정보를 차단하기 위해 압록강을 따라 순찰했기에 압록강 너머의 정보를 수집하기가 영 쉽지 않았다.
해서 저 안쪽의 봉황성이나 심양의 사정이 어떤지 파악할 방법이 없었고, 그 때문에 만주의 사정은 거의 모르고 있었다.
헌데 조선은 두만강 너머에 사는 여진족 중 일부를 회유해 이들을 통해 만주의 정보를 수집했다고 하니 카무이쿠르는 눈을 빛내며 유혁연을 채근했고.
이런 카무이쿠르의 반응에 유혁연이 커피잔을 내려놓고 진지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예. 최근 봉황성에 주둔하고 있는 병력이 대부분 북서쪽으로 이동했다는군요.”
청나라군이 압록강 인근에 배치한 병력이 5만 명 정도였고, 나머지는 후방인 봉황성에 배치되어 있었다.
이에 조선군과 조선 지원군은 청나라군의 총사령관이 봉황성에서 머물며 병력을 지휘한다고 생각하고 있었고.
헌데 이 병력이 대부분 북서쪽으로 이동했다는 유혁연의 말에 카무이쿠르가 놀란 표정으로 급히 되물었다.
“북서쪽이면 심양 아닙니까?”
“예. 그리고 심양으로 이동한 병력은 다시 서쪽으로 이동했다는군요.”
병력이 심양에서 서쪽으로 이동했다는 뜻은 북경으로 이동했다는 뜻과도 같았기에 카무이쿠르가 신음을 흘리며 중얼거렸다.
“으음. 청나라가 봉황성...아니 만주에 주둔한 병력을 일부 물렸다는 뜻이로군요?”
“그렇습니다. 비록 아국과 소강상태이기는 하나 아직 전쟁 중인데도 불구하고 이곳에서 병력을 빼 북경으로 보냈다는 것은 그만큼 청나라의 사정이 좋지 못하다는 뜻이지요. 아니면, 우리가 절대 압록강을 넘지 않을 거라고 확신해서 그럴 수도 있고요.”
“확실히...”
슬슬 겨울이 다가오고 있었기에 조선군과 조선 지원군은 진지 구축에 열을 올리고 있었는데 청나라에서 이를 보고 조선은 압록강을 넘을 뜻이 없다는 것으로 해석한 것 같다는 유혁연의 이야기에 카무이쿠르가 일리가 있다고 생각해 수긍하자 유혁연이 짓궂게 웃으며 말했다.
“그러니 저희가 압록강을 도하할 것처럼 움직인다면 청나라가 기겁하지 않겠습니까?”
“하하하. 그거 괜찮군요. 계속 청나라군의 일부를 이곳에 잡아두어야 주나라나 동녕국이 더 활개를 칠 수도 있고 말입니다.”
“예. 해서 당분간은 전투 준비를 하는 것처럼 움직였으면 합니다만...”
봉황성에 주둔한 병력이 이미 심양을 지나 요서로 이동하고 있는 터라 압록강 너머에 배치된 청나라군은 5만 명에 불과하고, 현재 압록강 인근에 배치된 조선군과 조선 지원군이 3만이 넘으며, 조선군 역시 북미왕국에서 가져온 신식 소총으로 무장하고 있으니 청나라군을 공격해 섬멸하는 것도 가능할 것 같긴 했다.
다만 조선도 그렇지만 북미왕국은 승리를 거둔다 하더라도 육전의 경우 피해가 발생할 수밖에 없었고, 지금처럼 청나라의 발목을 붙들어 놓는 것만으로도 전략적인 목적을 달성하는 것이니만큼, 카무이쿠르는 유혁연의 말에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오랜만에 대규모 훈련이나 좀 하지요.”
* * *
“흠. 포르투갈에서 연락이 없다라...”
북미왕국에선 정기적으로 대서양을 오가는 연락선을 운용하고 있었다.
각국에 설립한 대사관과 연락과 물자를 주고받을 필요가 있었으니까.
그리고 북미왕국의 연락선은 범선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빠르게 대서양을 횡단할 수 있다는 사실을 잘 알기에, 북미왕국을 방문하려는 유럽의 외교관들은 이 배에 탑승하곤 했고.
헌데 최근에 세비야에서 출발한 연락선이 새진주에 도착했는데, 이 연락선에 포르투갈의 외교관이 탑승하지 않았다는 보고에 정성국이 매끈한 턱을 쓰다듬으며 중얼거리자 조용한 곰이 말했다.
“물론 아직 10월 중순이기는 합니다만...이번에 새진주에 도착한 연락선에 탑승하지 못한 이상, 이번 달 안에 포르투갈 외교관이 새진주에 도착하지는 못하겠지요.”
“그렇겠지. 기존의 범선으로 대서양을 횡단하려면 한세월 걸릴 테고...저번 달까지만 하더라도 노예무역을 금지하느냐 마느냐로 리스본이 시끄럽다고 했으니 미리 외교관을 보냈을 리도 없고.”
“예. 그러니 포르투갈은 노예무역을 계속하겠다고 결정을 내렸다고 봐야 할 것 같습니다만...”
조용한 곰의 말에 정성국은 크게 개의치 않는 얼굴로 어깨를 으쓱였다.
“뭐 상관없네. 포르투갈과의 교역 규모가 큰 것도 아니니. 아니. 오히려 잘 되었어. 이를 빌미로 브라질 지역의 문제에 개입할 수 있게 되었으니.”
물론 정성국은 포르투갈의 농장주들을 피해 도망친 노예들을 도울 생각이었지만, 포르투갈이 북미왕국의 방침에 따라 노예무역을 금지한다면, 대놓고 이들을 돕기는 어려웠다.
포르투갈이 북미왕국의 요구에 따랐는데도 불구하고 북미왕국이 포르투갈의 식민지에 분란을 일으킨다면 다른 유럽 국가들이 북미왕국의 행동에 우려를 표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포르투갈과 외교 관계를 단절한다면 북미왕국이 공식적으로 도망친 노예들과 접촉하고 지원한다 하더라도 다른 나라들은 포르투갈이 노예무역을 계속하기에 북미왕국이 움직였다고 생각해 별 말하지 않을 테고.
조용한 곰 역시 이러한 사정을 짐작했기에 오히려 잘 되었다는 정성국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정성국을 바라보았다.
“허면...”
“일단 약속대로 말일까지는 그냥 기다리고, 11월 1일 자로 포르투갈과의 외교 관계를 단절하겠다고 유럽 대사들에게 통보하게. 그리고 11월 1일부터 포르투갈의 배는 새진주를 비롯한 아국의 항구에 입항하는 것을 금지하도록 하고.”
“알겠습니다.”
조용한 곰이 고개를 끄덕이자 정성국이 다시 질문을 던졌다.
“그리고 이미 위장 상단은 브라질로 떠났지?”
“그렇습니다. 전하.”
이에 정성국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입을 열었다.
“흠. 그들이 복귀하면 바로 보고하게.”
“알겠습니다. 전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