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2화
정성국은 오랜만에 집무실을 방문한 박기동을 반기며 자리에서 일어나 커피를 내리며 갑자기 찾아온 용건을 물었고.
이에 박기동은 씩 웃으며 정성국을 보고 말했다.
“신형 비행기의 시범 비행이 끝났습니다.”
“응? 벌써 100회의 시험 비행을 마쳤다고?”
정성국은 커피를 내리다 눈이 휘둥그레져서 급히 박기동을 바라보며 되물었고.
그런 정성국의 반응에 박기동은 자신만만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그렇습니다. 스승님. 방금 항공기 연구소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마지막 시험 비행이 성공적으로 완료되었다고 말입니다.”
이에 정성국은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표정을 지었다.
신형 비행기는 조종사뿐만 아니라 승객까지 탑승하는 만큼, 무엇보다 안전이 중요했고, 그 때문에 항공기 연구소에서는 100회의 시험 비행을 통해 이번에 개발한 신형 비행기가 정말 안전한지 확인하려 했다.
해서 정성국은 이 시험 비행이 완료되기까지 못해도 반년은 넘게 걸리리라 보았고, 이건 항공기 연구소에서도 비슷하게 예측했다.
헌데 이 기간을 거의 40일 가까이 단축한 셈이니 정성국은 그게 가능한가 싶어 질문을 던졌다.
“아니. 그렇게 단축하는 게 가능해? 뭐 매일 비행한 거야? 날씨와 상관없이?”
“뭐 날씨도 많이 도와주긴 했습니다만...그보다는 하루에 여러 번 비행한 적도 꽤 많아서 말입니다.”
“아...”
시험 비행 가운데 단거리 비행의 경우는 시간이 얼마 걸리지 않아 곧바로 조종사를 교체하고 다음 시험 비행을 하는 방식으로 일정을 최대한 앞당겼다는 박기동의 설명에 시험 비행 기간을 단축할 수 있었던 이유를 이해한 정성국은 그렇게 속도전을 펼칠 이유가 있나 싶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다가 문득 신형 비행기의 성능을 제대로 시험했나 싶어서 질문을 던졌다.
“시험 비행 중에 장거리 비행도 있었지?”
“물론입니다. 70번째 비행부터 100번째 비행까지가 모두 장거리 비행이었으니까요.”
“호오. 그래?”
후반 30회의 시험 비행은 모두 장거리 비행이었고, 이 장거리 비행에서도 별다른 문제가 없었다는 뜻이었기에 정성국이 흥미를 보이자 박기동은 자세히 설명했다.
“예. 70번째 비행부터는 항공기 연구소에서 약 440km 떨어진 새나주까지의 5차례의 왕복 비행이었고, 80번째 비행부터는 약 1000km 떨어진 새남포까지의 왕복 비행이었으며, 90번째 비행부터는 약 1400km 떨어진 산타페까지의 왕복 비행이었으니까요.”
“왕복 비행?”
정성국은 기왕 장거리 비행을 할 거면 저 멀리 떨어져 있는 보스턴이나, 아니면 페로 제도, 홋카이도를 목표로 비행하지 웬 왕복 비행이냐는 표정을 짓자 박기동이 그럴 수밖에 없는 사정을 이야기했다.
“예. 개발청이 워낙 바쁘다 보니 인력에 여유가 있는 편이 아니라서요. 해서 저 3곳만 우선적으로 활주로 공사를 해달라고 부탁했고, 그래서 저 3곳만 왔다 갔다 한 거죠.”
“아하. 헌데...조종사 혼자만 타고 왕복 비행을 한 건가?”
“아뇨. 처음에는 조종사와 1명의 승객이, 나중엔 조종사와 3명의 승객이 모두 탑승하고 이동했지요. 물론 만약을 대비해 이 승객들은 모두 조종사들로 채웠고요.”
승객들이 모두 일반인이 아닌 조종사였다는 말에 정성국은 피식 웃으며 말했다.
“문제가 생기더라도 낙하산을 메고 탈출할 수 있으니까?“
“그렇죠. 뭐 다행히도 별문제 없이 시범 비행이 끝났지만 말입니다.”
정성국은 다 내려진 커피를 커피잔에 따라 박기동에게 건네다 그 말에 나직이 감탄사를 토해냈다.
“허. 100번의 비행 동안 아무런 문제도 발생하지 않았다니...그 정도면 정말 믿고 탈 수 있겠는데?”
정성국이 신형 비행기의 안전을 인정하는 눈치이자 박기동은 활짝 웃었다.
“하하하. 그렇죠? 해서 저도 나중에 항공기 연구소를 방문하게 되면 신형 비행기를 타볼 생각입니다.”
그 말에 정성국은 그토록 하늘을 날고 싶어 했던 하얀 수리나, 비슷한 목적으로 항공기 연구소에 들어가 비행기를 개발하기 위해 고생한 연구원, 장인들을 떠올리고 슬쩍 미소를 지었다.
“아. 그러고 보니 하얀 수리나 다른 연구원들, 그리고 장인들이 신형 비행기를 타고 하늘을 날겠다고 난리를 치겠네?”
“그럼요. 항공기 연구소의 연구원들과 장인들은 대부분 하늘을 날고 싶은 열망 때문에 연구에 매달리는 친구들이니까요. 아마 지금쯤이면 탑승 순서를 정하느라 바쁠 겁니다.”
박기동의 대답에 정성국은 못 말리겠다는 듯 고개를 저으며 커피잔을 들어 커피를 마시며 잠시 생각을 정리하고 말했다.
“신형 비행기가 100회의 시험 비행을 아무런 문제 없이 마쳤으니 신형 비행기의 안전성은 확인된 셈이고...그럼 슬슬 양산 준비를 해야겠는데?”
“그래야죠. 신형 비행기 양산을 위해 아예 항공기 연구소 인근에 비행기 제조 공방을 짓는 것도 괜찮아 보이고요.”
정성국은 커피 향을 맡으며 생각에 잠겼다가 박기동의 말에 나쁘지 않다는 표정을 지었다.
“비행기 제조 공방이라...그거 괜찮은데? 비행기 제조 공방의 규모를 생각하면 아예 인근에 제대로 된 소도시를 건설하는 것도 괜찮을 테고.”
지금까지야 항공기 연구소에서 자체적으로 제작했지만, 신형 비행기의 성능을 생각하면, 그리고 앞으로 발전할 비행기를 생각하면 아예 대량 양산할 수 있는 체계를 갖춘 비행기 제조 공방을 건설하는 것이 나았다.
그리고 비행기에는 수많은 부품들이 들어가는 만큼, 비행기 제조 공방의 규모는 무척 커질 수밖에 없고, 이곳에서 근무하게 될 직원들과 그 가족들까지 생각해보면, 아예 조그마한 도시를 만드는 것도 괜찮아 보였고 말이다.
“하긴...항공기 연구소처럼 관사를 짓는 것보다는 아예 소도시를 건설하는 것이 낫겠네요. 헌데 개발청이 워낙 바쁘고 인력이 부족해서 비행기 제조 공방에 소도시까지 건설하기 쉽지 않을 텐데요?”
가뜩이나 항상 바쁜 개발청은 굵직한 각종 사업을 진행하던 도중 갑자기 발생한 조선의 지진으로 개항장 복구까지 떠맡게 되어 과부하가 걸린 상황이라는 것은 박기동도 잘 알고 있는 터라, 잘못하면 신형 비행기 양산이 무척 늦어질 수도 있어 이를 걱정하자, 정성국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휴우. 그렇긴 한데...신형 비행기의 성능이나 앞으로의 가능성을 생각하면 무엇보다 우선해서 건설해야지. 그건 내가 개발청장에게 따로 이야기하도록 하지.”
정성국의 대답에 안도한 박기동은 앞으로 건설될 비행기 제조 공방에서 만들어지는 수많은 비행기가 하늘을 누빌 것을 상상하고 흐뭇한 미소를 짓다가 문득 정성국을 바라보고 질문을 던졌다.
“헌데 스승님. 이번 신형 비행기는 몇 대나 양산하실 생각이세요?”
“글쎄다? 못해도 100대 이상은 만들어야 제대로 써먹을 수 있을 것 같은데...아. 그러고 보니 항공기 연구소와 개발청이 협의해 공항의 위치를 정하기로 했는데 혹시 몇 개의 공항을 지을지 결정됐나?”
정성국의 질문에 박기동이 고개를 끄덕였다.
“일차로 30개의 공항을 건설하기로 했습니다.”
“30개나?”
30개에 달하는 공항을 짓는다는 이야기에 정성국이 너무 많은 것 아니냐는 표정을 짓자 박기동은 오히려 이게 최소한으로 줄인 것이라는 표정으로 대답했다.
“예. 일단 각 지역의 주요 도시들과 빠르게 연락을 주고받을 수 있도록 북미대륙에서 떨어진 섬들에 우선하여 공항을 건설하기로 해서요.”
“섬들이라면...”
“일단 대서양 방면은 페로 제도, 아이슬란드, 그린란드, 뉴펀들랜드 섬, 토르투가 섬, 생크루아 섬 정도고, 태평양 방면은 하이다 섬, 봉길 섬, 사미야흐 섬, 아이누 섬, 홋카이도에 공항을 세울 예정입니다.”
정성국은 머릿속으로 박기동이 이야기한 섬들의 위치를 떠올리고 중얼거렸다.
“태반은 중간 기착지로 이용하기 위해 건설하는 공항이로군?”
이에 박기동이 쓴웃음을 지으며 대답했다.
“그렇습니다. 뭐 아직까진 비행기의 항속 거리가 그리 길지 않다 보니 먼 곳을 이동하려면 중간에 여러 공항을 세울 수밖에 없어서요.”
“하지만 비행기가 발전하면 항속 거리는 자연히 늘어날 텐데...”
“해서 섬들에 세울 공항의 경우 본토에 건설할 공항과는 달리 작은 규모로 세울 예정입니다. 그나마 인구가 많은 아이누 섬이나 홋카이도, 아이슬란드 정도를 제외하면요.”
이미 그러한 점을 고려해 공항의 크기를 결정했다는 박기동의 설명에 정성국은 고개를 끄덕이며, 잠시 머릿속에서 이런저런 계산을 해보다가 입을 열었다.
“흠...그럼 일차로 180대를 양산하도록 하자. 공항마다 최소 5대를 배치해야 원활하게 인력과 물자를 수송할 수 있을 테고, 신형 비행기의 성능을 생각하면 특수군에도 일부 배정해야 하니.”
“어휴. 일차로 180대라...많군요.”
박기동의 대답에 정성국은 오히려 고개를 저었다.
“많기는. 북미왕국의 영토가 워낙 넓어서 저걸로는 턱도 없어. 마음 같아서는 일차로 한 4,500대 정도는 양산했으면 하는데 곧바로 비행기를 양산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잖아. 비행기 제조 공방을 건설하고 저 비행기들을 다 만들었을 때쯤이면 더 나은 성능의 새로운 비행기가 개발될 수도 있을 것 같아서 일차로 180대를 이야기한 거야.”
“아. 그렇긴 하네요. 항공기 연구소에서는 이미 새로운 비행기를 연구하고 있으니까요.”
박기동이 정성국의 말에 수긍하며 새로운 비행기를 언급하자 정성국이 눈을 빛냈다.
“새로운 비행기?”
“예. 전에 스승님께서 조언해주신 대로 2개 이상의 기관을 탑재한 더 커다란 비행기를 연구 중이거든요. 그리고 저희도 더 나은 성능의 기관을 개발하기 위해 애를 쓰고 있고요. 그러니 스승님의 예상처럼 이번에 개발한 신형 비행기가 모두 양산되었을 때쯤이면 아마 새로운 비행기가 하늘을 날 수도 있을 것 같네요. 3, 4년 정도면 뭐...충분하죠.”
“그래. 기대하마.”
정성국은 강한 자신감을 보이는 박기동을 보고 피식 웃으며 대답하다 문득 질문을 던졌다.
“헌데 이제 신형 비행기도 공식적으로 양산하기로 했으니 슬슬 이름을 붙여줘야 하지 않아? 언제까지 신형 비행기나 6호기라고 부를 수야 없잖아?”
이에 박기동은 미리 생각해둔 이름이라도 있는지 바로 대답했다.
“아. 이름이요? 일단 6호기의 공식 명칭은 황새로 정했습니다. 황새 급 비행기요.”
“황새라...비행기에는 아예 새 이름을 붙이기로 한 모양이지?”
정성국이 나쁘지 않다는 얼굴로 그렇게 묻자 박기동이 슬쩍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예. 뭐 처음 비행기의 이름이 하얀 수리였으니까요.”
“알겠다. 그럼 이제부터 신형 비행기는 황새 급 비행기라고 하고...일단 하얀 수리에게 비행기 제조 공방에서 일할 인력과 공항에서 비행기를 정비할 인력을 육성하는 데 신경 쓰라고 전해주렴.”
비행기 제조 공방만 건설하면 저절로 비행기가 생산되는 것이 아니었으니 공방에서 일할 인력이 필요했는데 이는 아무나 데려와 맡길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또한, 실제로 비행기를 운용하려면 공항마다 비행기를 정비할 인력이 필요했는데 이들은 비행기의 구조에 대해 완벽히 알아야 했고, 당연히 이들을 교육하는 것도 만만한 일이 아니었고,
그렇기에 박기동은 정성국의 이야기에 한숨을 내쉬었다.
“휴우. 당분간은 고생 좀 하겠네요. 알겠습니다. 그렇게 전하도록 하지요.”
“그리고 비행기 제조 공방이 완공될 때까지는 항공기 연구소에서 황새 급 비행기를 생산하도록 하고.”
물론 대량 생산은 어렵지만, 항공기 연구소에서도 비행기를 제작할 수야 있었기에 정성국이 이렇게 이야기하자 박기동은 예상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예. 알겠습니다.”
그렇게 대답한 박기동은 커피를 마저 마시고 자리에서 일어나려다 문득 정성국을 보고 말했다.
“아. 그리고 홋카이도, 페로 제도에도 공항이 들어서면 조선과 잉글랜드, 네덜란드, 덴마크 정도는 비행기로 이동할 수 있게 되는데...이들과 협상해 공항을 건설할 부지를 미리 마련해두는 것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만 스승님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세요?”
정성국은 그 말에 살짝 미간을 좁히며 중얼거렸다.
“조선이야 그렇다 쳐도 유럽에도 비행기를 보내자?”
조선이야 각별한 관계이니만큼, 그리고 사안에 따라 빠르게 관리를 파견할 필요가 있는 만큼 공항을 건설해 비행 항로를 만들어두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여겼지만, 유럽의 경우는 상황이 조금 달랐기에 정성국이 고민하는 눈치이자 박기동이 고개를 갸웃하며 입을 열었다.
“그렇지 않으면 뭐하러 페로 제도에 공항을 건설하겠어요. 인구가 많은 아이슬란드 정도면 모를까. 페로 제도 역시 유럽으로 이동하기 위한 중간 기착지에 불과하다는 것은 잘 아시잖아요?”
“그건 그런데...페로 제도는 유럽에 가까우니 배를 타고 이동해도 충분하다고 생각했거든.”
“아. 뭐 쾌속선이라면 페로 제도에서 하루 이틀이면 각국에 도착할 수 있기는 하네요. 하지만 그럴 바에는 그냥 비행기를 타고 가는 게 낫지 않나요? 아국의 기술력을 과시할 수 있으니까요.”
정성국은 비행기를 직접 보고 유럽의 지식인들이 무언가를 얻을까 걱정했지만, 정말 비행기에 관심이 있는 지식인이라면 페로 제도에 비행기가 드나든다는 이야기를 듣고 배를 타고 바다에서 이를 관찰할 수도 있었다.
또한, 생각해보면 유럽은 아직 증기기관조차 제대로 만들지 못하고 있고, 알루미늄 합금 역시 북미왕국에서만 생산하고 있는 만큼, 무언가를 얻는다 하더라도 크게 상관은 없겠다 싶어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다. 최소한 활주로만이라도 지을 부지 정도는 확보해두라고 외무청에 이야기해야겠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