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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을 탈출하라-600화 (600/850)

600화

정성국은 정기적으로 열리는 청장 회의에 참석해 회의를 주관했고, 각종 현안에 대해 보고받고 또 의논하다 개발청장의 보고에 눈을 번쩍 떴다.

“마리아나 제도와 루손 섬 북부에 거점 항구 건설을 완료했다고?”

“그렇습니다. 전하. 물론 아직은 선착장과 일부 창고 등을 건설한 것이 전부입니다만...나머지야 시간이 해결해 줄 문제고, 어쨌건 거점 항구의 역할은 할 수 있습니다.”

개발청장의 대답에 정성국은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개발청장이 올린 보고서를 확인하기 시작했고, 그러다 묘한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흐음. 마리아나 제도에서 가장 남쪽에 있는 섬을 개발하는 건가?”

마리아나 제도는 여러 개의 섬으로 이루어져 있고, 그중 유명한 섬이 바로 마리아나 제도 가장 남쪽에 있는 괌 섬과 중간에 있는 사이판 섬이었다.

해서 정성국은 이 두 섬을 모두 개발할까도 고민했지만, 북미왕국 곳곳에 개발할 곳이 널렸는데 인근의 두 섬을 개발하는 것을 낭비라는 생각에 마리아나 제도 가운데 한 섬을 정해 집중적으로 개발하라고 이야기했었고.

그리고 마리아나 제도를 방문한 개발청 관리들이 결국 가장 남쪽에 있는 괌 섬을 개발하기로 정하고 중간에 거점 항구를 건설해 차모로 항이라고 이름 붙였기에 정성국이 전생처럼 괌이 꽤 발전할 거라 생각해 묘한 표정을 지으며 묻자 개발청장이 대답했다.

“그렇습니다. 마리아나 제도의 섬 가운데 가장 남쪽에 있는 괌 섬이 제일 크고 항구가 들어서기 적당한 지형도 존재하는 터라 섬들을 조사한 개발청 관리들은 괌 섬에 거점 항구를 건설하는 것이 효율적이라고 판단했습니다.”

마리아나 제도의 경우 태평양을 횡단해 아시아로 향하는 배들이 무조건 들러야 하는 중간 기착지가 될 테니, 자연스럽게 발전해 나갈 테고, 그런 만큼 미래를 생각해, 그리고 식량 수급을 고려해 가장 넓은 괌 섬을 선택했다는 설명에 정성국이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질문을 던졌다.

“괌 섬의 원주민들은? 반발은 없었나?”

“없었습니다. 물론 처음에야 외지인들이 큰 배를 타고 나타나 대거 상륙해 아예 정착할 기세라 경계하긴 했습니다만...괌 섬에 있던 에스파냐의 신부가 에스파냐에서 마리아나 제도 전체를 넘겼다는 아국 관리들의 말을 듣고 원주민들을 잘 설득한 덕분에 별다른 충돌 없이 넘어갈 수 있었습니다.”

“에스파냐 신부? 설마 선교하겠다고 괌 섬으로 건너가 교회라도 지은 건가?”

에스파냐에서 마리아나 제도를 태평양을 횡단하는 도중 들러야 하는 중간 기착지이자 보급항으로 사용한 것은 알지만, 에스파냐는 이 섬들에 사람을 보내 직접 통치하기보다는 방치하되 가끔 들러 식수를 구하는 수준으로 알고 있었는데 에스파냐 신부가 있었다고 하니 정성국은 놀란 표정을 지었고.

이에 조용한 곰이 웃으며 말했다.

“예. 마닐라 갤리온이 태평양을 횡단하면서 그 존재를 알게 되어 괌 섬의 원주민들에게 하나님의 뜻을 전파하기 위해 한 10년 전쯤에 마닐라에서 홀로 건너왔었더군요.”

“허이구...”

말도 제대로 통하지 않는 만큼, 잘못하면 원주민들에게 살해당할 수도 있는데 이를 무릅쓰고 괌 섬에 건너갔다는 이야기에 정성국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자 조용한 곰도 비슷한 심정이라는 표정을 지으며 이야기를 계속했다.

“그리고 아국은 종교의 자유를 인정하는 터라 아국의 법을 지킨다면 남아서 종교활동을 해도 괜찮다고 이야기하지 저희에게 적극적으로 협조했다는군요. 덕분에 일이 수월하게 풀렸고요.”

“예. 덕분에 원주민을 대거 고용해 여러 시설을 건설할 수 있었습니다.”

개발청장이 덧붙여 말하자 정성국은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고 다시 질문했다.

“그럼 루손 섬 북부는?”

이에 행정청장이 웃으며 대답했다.

“루손 섬 북부의 경우도 상황은 비슷합니다. 오히려 이들은 마닐라에 드나들면서 아국의 이름을 들어보았기에 아국이 얼마나 강력한지도 잘 알고 있는데 어찌 반발할 수 있겠습니까.”

그건 그랬다.

마리아나 제도의 원주민들이야 북미왕국의 이름을 잘 모르지만, 루손 섬의 원주민들은 마닐라를 들락거리면서 동향을 살폈기에 북미왕국이 얼마나 강력한 나라인지 잘 알고 있었고, 마리아나 제도와는 달리 에스파냐 부왕은 정성국과 만나 영토 협상을 논의한 후 필리핀 총독에게 이 사실을 알렸고, 이 사실이 마닐라에 퍼져 루손 섬 북부의 원주민들은 북미왕국인들이 곧 이곳에 도착하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북미왕국의 배가 루손 섬 북부에 도착하고, 사람들이 배에서 내리고, 물자를 하역해도 별다른 말을 하지 않고 그저 멀리서 지켜봤을 뿐이었다.

“그리고 현지에 파견된 외무청 관리들이 루손 섬 북부 지역의 유력자들을 설득해 아국에 협조하면 섭섭지 않게 대우해주겠다고 이야기하니 이들은 기꺼이 아국의 관리들이 원주민들을 고용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고, 덕분에 루손섬 북부에 항구와 각종 시설을 건설하고, 현재는 항구 인근을 개간해 논밭을 만들고 있습니다.”

루손 섬 북부의 유력자들은 북미왕국이 이 지역에 진출해 자신들이 혹여 불이익을 받을까 우려했지만, 북미왕국에서 먼저 이들과 접촉해 손을 내밀자 이 손을 기꺼이 잡았다.

그리고 일부는 오히려 이를 기회라고 생각했다.

에스파냐의 경우 인트라무로스라는 거대한 성벽으로 도시를 에워싸고, 그 안에는 에스파냐인과 그 혼혈인 메스티소만 거주할 수 있었기에 기존의 토착 왕가나 부족장들은 정치적으로 소외될 수밖에 없었는데, 북미왕국은 북미왕국의 말과 글을 배우고 일정 교육만 이수한다면, 관리도 될 수 있다고 약속했으니 유력자들의 입장에선 북미왕국의 밑으로 들어가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고.

해서 유력자들은 외무청 관리의 요청에 따라 북미왕국이 직접 부족민들을 고용할 수 있게 허락했고, 덕분에 빠르게 루손 섬 북부에 일로카노 항을 건설할 수 있었으며, 지금은 이 일로카노 항의 규모를 키우기 위해 일단 항구 인근을 개간하고 있다는 개발청장의 설명에 정성국이 만족스럽다는 표정을 지었을 때, 관리청장이 입을 열었다.

“그리고 두 섬에 물자를 싣고 도착한 배들은 모든 물자를 내려놓고 대만 섬으로 이동해 석탄을 운반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이제부턴 두 섬 모두 중간 기착지로 사용할 수 있고, 올해부턴 북방항로가 닫힌다 하더라도 포로나이와 계속해서 연락을 주고받을 수 있을 겁니다.”

“오! 그거 정말 좋은 소식이군.”

그동안 북미왕국은 아시아와의 무역을 위해 북방항로를 이용했는데, 1년의 절반 가까이를 날씨와 유빙 때문에 이용하지 못해 여러모로 불편한 점이 많았다.

그 때문에 정성국은 비행기와 해저 통신선, 무선 통신 개발에 열을 올렸었고.

하지만 마리아나 제도를 중간 기착지로 이용할 수 있게 되면서 다시 남방항로가 열린 셈이라 정성국이 기뻐하다가 문득 머릿속에서 태평양의 지도를 떠올리고 중얼거렸다.

“다만 연락을 주고받는 데 시간이 조금 걸리겠지?”

이에 관리청장이 쓰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예. 남방항로의 경우 북방항로에 비해 거의 2배나 되는 거리를 이동해야 하는 터라...일반적인 배편을 통해 연락을 주고받으려면 40일 가까이 걸리긴 합니다.”

북방항로를 이용하면 쾌속선으로 연락을 주고받는데 2주 정도 걸리는 것을 생각해보면 확실히 오래 걸리긴 했다.

다만 반년 넘게 연락이 끊기는 것보다야 낫다고 생각한 정성국은 어깨를 으쓱였다.

“그래도 겨울만 되면 연락이 끊기는 것보다야 낫지 않나.”

“하하하. 그건 그렇지요.”

“암요. 이제부턴 4월에도 제때 퇴근할 수 있다는 것이 어딥니까.”

“맞습니다. 북방항로를 통해 전해지는 보고서를 처리하려면 일주일은 제시간에 퇴근하기 어려웠으니까요.”

다른 청장들도 계속해서 연락을 주고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반기며 한마디씩 했고, 그러다 분위기가 진정되었을 때 정성국이 다시 입을 열었다.

“아무튼, 차모로 항과 일로카노 항을 건설한 만큼, 당분간은 이 항구들을 개발하는 데 집중하도록 하게.”

“물론입니다. 거점 항구 인근에 상하수도 시설을 완비한 배후 도시를 건설할 생각이고, 병원, 학교 등 각종 필요한 시설들도 건설할 생각이니까요.”

개발청장이 강한 자신감을 보이며 대답했고, 이를 듣고 만족하던 정성국은 고개를 돌려 교육청장을 바라보고 말했다.

“아. 교육청에서는 원주민들의 교육에 각별히 신경 쓰도록 하게. 두 지역 모두 풍토병 때문에 많은 인력을 파견하기 어려우니까.”

“알겠습니다. 전하. 최대한 빠르게 가르쳐 10년 안에 두 지역 모두 현지인들만으로도 제대로 운영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그렇게 이번에 북미왕국의 영토가 된 마리아나 제도와 루손 섬 북부 지역의 개발 문제를 마무리한 정성국은 조용한 곰을 바라보며 물었다.

“그보다 개항장의 상황은 어떤가.”

“이제 지진도 잦아들었다고 합니다. 해서 개항장에 나가 있는 관리들은 개항장을 복구해야 한다고 한목소리로 이야기하더군요.”

“개항장의 복구라...”

정성국이 등을 의자에 기대고 턱을 매만지며 잠시 생각에 잠겼을 때, 조용한 곰이 덧붙였다.

“그리고 관리들은 하루라도 빨리 복구를 시작해야 한다고 주장하더군요.”

“음? 아. 이재민들 때문에?”

“그렇습니다. 개항장으로 이름이 바뀌고 나서 강원도 해안가에 사는 백성들이 개항장으로 모여들었고, 덕분에 개항장과 그 인근에 사는 백성들의 수는 거의 2만에 달할 정도입니다. 헌데 이들이 모두 갑자기 집과 일자리를 잃은 셈이고, 몇 달 후면 겨울이 닥칠 텐데 겨울에 천막생활을 하기가 어디 쉽겠습니까.”

“그건 그렇지. 특히 강원도는 추운 편이니...”

건장한 청년이라도 겨울에 천막생활을 하기 쉽지 않은데, 이재민들 상당수가 여성, 아이, 노인이라는 것을 생각해보면, 확실히 하루라도 빨리 복구공사를 시작할 필요성이 있어 정성국이 수긍하자 조용한 곰이 덧붙여 말했다.

“예. 물론 완전히 엉망이 된 개항장을 정리하는 데만 하더라도 꽤 시간이 걸릴 것 같긴 한데...일단 빠르게 일을 진행해야 한다는 것이 현지를 방문한 관리들의 일관된 주장입니다.”

조용한 곰의 이야기에 정성국뿐만 아니라 다른 청장들도 동의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조용한 곰을 제외한 청장들은 한때 개척촌에서 살았고, 개척촌을 일구는데 한 손 보탰던 이들이었으니 이들에게도 개척촌은 각별했고, 개척촌의 주민들은 고향 주민들이나 다름없었으니.

이런 청장들의 반응에 정성국은 피식 웃으며 개발청장을 바라보았다.

“바로 개항장을 복구해야 할 것 같은데...가능할까?”

이에 개발청장은 잠시 고민하다 입을 열었다.

“으음...일꾼이야 이재민들을 고용하면 되는데, 각종 건설 자재와 건설 장비, 그리고 건설 장비를 운용할 인원이 부족하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개발청은 각지에서 수많은 공사를 진행하고 있었고, 최근에도 새로운 공사를 시작했다는 것을 떠올린 정성국이 혀를 찼다.

“쯧. 남아있는 인력도 모두 수로 정비 사업에 모두 투입된 상태지?”

“그렇습니다. 그리고 설사 수로 정비 사업에 투입된 인원을 빼서 개항장으로 보내더라도 시간이 부족합니다. 벌써 8월이고, 2, 3달이면 겨울이 닥칠 텐데...그때까지 복구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지요.”

그랬다.

정성국이 결단을 내려 공사가 지체되는 것을 감수하고 각지에서 인력을 빼서 개항장으로 보낸다 쳐도, 북미왕국 각지에서 새김포로, 또 배를 타고 개항장으로 이동하는 데만 하더라도 3주는 걸리지 않을까 싶었고, 그럼 벌써 9월이었다.

이에 정성국이 관리청장을 바라보았고, 관리청장은 고개를 저었다.

“일단 전하의 말씀대로 건설 자재와 건설 장비를 추가로 생산 중이기는 합니다. 다만 물량은 얼마 되지 않습니다.”

조선에 지진이 발생했다는 이야기에 정성국은 곧바로 복구공사를 위한 건설 자재와 건설 장비를 추가로 생산해두라고 이야기했었는데, 고작 2개월 생산한 물량으론 턱도 없다는 이야기에 정성국은 한숨을 내쉬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입을 열었다.

“흠. 그럼 일단 이재민들이 불편하지 않도록 더 큰 천막을 생산하고 겨울을 대비해 각종 방한 장비와 난로를 생산해 보내는 것이 낫겠군.”

“예. 일단 그게 나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일단 생산한 건설 자재들과 건설 장비들을 개항장으로 보내 복구공사를 시작하도록 하게. 이재민들에게 개항장을 꼭 복구할 거라는 뜻을 전해야 하니까.”

정성국의 이야기에 관리청장이 무슨 소린지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음...알겠습니다.”

“그리고 식량이나 생필품은 충분히 보냈지?”

“물론입니다. 지금쯤이면 도착했을 겁니다.”

“그리고...”

그렇게 정성국과 청장들은 해가 지고 달이 환하게 밝을 때까지 개항장의 복구와 관련된 문제를 논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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