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99화
정성국은 집무실을 찾아온 김봉길을 반기며 이런저런 잡담을 나누다가 김봉길의 말에 흥미롭다는 표정을 지었다.
“호오. 프랑스가 소앤틸리스 제도를 완전히 장악했다고?”
작년 정성국이 토르투가 섬을 방문했을 때, 카리브해에 배치된 프랑스 해군이 소앤틸리스 제도의 섬들 중 네덜란드 소유의 섬들을 공격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었고, 당시에 이 섬들을 모두 장악하기도 쉽지 않고 꽤 시간이 걸릴 것으로 예측했는데, 예상보다 빨리 소앤틸리스 제도를 장악한 셈이라 의외라는 표정으로 반문하자 김봉길은 정성국이 건네준 아이스크림을 삼킨 후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카리브해에 배치된 프랑스 해군은 네덜란드가 통치하던 트리니다드 섬, 토바고 섬, 퀴라소 섬, 신트마르턴 섬, 아루바 섬 등을 차례차례 공격했고, 몇 차례의 전투 끝에 이 섬들을 모두 점령했습니다.”
소앤틸리스 제도는 프랑스, 잉글랜드, 네덜란드 등 여러 유럽 세력들이 깃발을 꽂고 있었다.
그리고 프랑스가 이 지역의 네덜란드 깃발을 모두 프랑스의 깃발로 바꿔버리면서 소앤틸리스 제도에서 프랑스의 영향력은 무척 확대될 수밖에 없었고.
“휘유. 물론 프랑스가 점령한 섬들이 그리 큰 섬들은 아니라곤 하지만...이렇게 빠르게 섬들을 점령하다니 이거 좀 놀랍군.”
이에 김봉길은 조금 머쓱한 표정을 지었다.
작년에 정성국이 프랑스 함대의 움직임을 걱정했을 때, 김봉길은 프랑스가 소앤틸리스 제도를 장악하기까지 꽤 많은 시간이 소요될 거라 예상했었기에.
“크흠. 뭐 작열탄의 위력 덕분입니다.”
“작열탄? 카리브해에 배치된 프랑스 해군도 작열탄을 사용하는 건가?”
카리브해에 배치된 프랑스 해군이 작열탄을 사용한다는 사실에 정성국은 놀란 표정을 지었다.
프랑스는 이미 육군에서도 작열탄을 사용하고 있었고, 외무청이나 유럽에서 올라온 정보기관의 보고로는 프랑스 육군이 승기를 잡기 위해 작열탄을 아끼지 않고 사용했기에 포탄 소모량이 많이 이를 충당하기도 쉽지 않아 보였는데 멀리 있는 카리브해에 배치된 프랑스 해군마저 작열탄을 사용할지는 몰랐기에.
이러한 정성국의 반응에 김봉길 역시 예상외라는 표정을 하면서 입을 열었다.
“예. 듣자니 생각보다 생산량이 많은 모양입니다. 그리고 유럽 각국의 해군들도 하나둘 작열탄을 사용하기 시작하면서 그동안 거침없이 곳곳을 누비던 프랑스 해군의 행동에도 제동이 걸릴 수밖에 없고, 차선으로 카리브 해의 에스파냐, 네덜란드 식민지를 공격해 이들을 압박할 생각인지 카리브 해로 작열탄을 보낸 모양입니다. 해서 올 초부터 카리브해에 배치된 프랑스 해군도 작열탄을 사용하며 소앤틸리스 제도에 배치된 네덜란드 해군을 내쫓았고, 섬이 고립된 상태에서 항구에 작열탄이 떨어지니 네덜란드인들은 더는 버티기 어렵다고 판단하고 항복한 모양입니다.”
정성국은 김봉길의 설명에 상황을 이해했다.
북미왕국 해군이 작열탄을 이용해 카리브해의 해적을 소탕하면서 카리브해의 주민들은 작열탄의 위력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고, 이런 상황에서 프랑스마저 작열탄을 사용하고, 또 작열탄으로 피해가 커지니 결사 항전보다는 항복을 택했으리라.
해서 정성국은 턱을 매만지며 생각에 잠겼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흐음...그래? 그럼 그 후 프랑스 해군의 움직임은?”
“아직 별다른 움직임은 없답니다. 가끔 소앤틸리스 제도를 순찰하는 것 외에는. 하지만 프랑스가 점령한 섬들의 상황이 안정되면, 다시 움직일 것이 뻔하고, 그 때문에 푸에르토리코 섬과 히스파니올라 섬의 분위기가 뒤숭숭하다더군요.”
김봉길이 토르투가 분함대와 생크루아 분함대를 통해 올라온 두 섬의 분위기를 이야기하자 정성국은 대충 짐작이 간다는 얼굴로 말했다.
“소앤틸리스 제도를 장악한 프랑스가 대앤틸리스 제도를 장악하기 위해 움직일 것으로 생각하는 모양이군?”
“그렇습니다. 다만 제가 보기엔 전에 말씀드린 대로 프랑스가 푸에르토리코 섬을 공격하는 것은 위험부담이 큽니다. 일단 푸에르토리코 섬의 거점 항구라 할 수 있는 산후안 인근은 아국의 배가 이동하는 항로이다 보니 생크루아 분함대가 순찰하곤 하니까요.”
“아아. 기억나네. 그때 자네는 만약 프랑스가 대앤틸리스 제도의 섬을 노린다면 히스파니올라 섬을 노릴 거라고 봤었지?”
정성국이 작년에 했던 이야기를 기억하며 아는체하자 김봉길이 미소지었다.
“오. 기억하시는군요. 그렇습니다. 아국의 배들은 히스파니올라 섬 북쪽의 항로를 이용하는 만큼, 히스파니올라 섬의 중심인 산토도밍고를 공격하는 것은 큰 부담이 없을 테니까요. 물론 에스파냐도 히스파니올라 섬을 지키기 위해 산토도밍고에 튼튼한 요새를 건설해두었고, 과연 프랑스가 작열탄으로 산토도밍고의 요새를 무너뜨릴 수 있을지는 의문입니다만...”
“그건 그렇지. 프랑스가 사용하는 작열탄의 위력은 그리 크지 않다며?”
정성국은 강평화가 올린 보고서나 유럽에 파견된 정보기관의 보고서를 떠올리고 김봉길의 의견에 동의하자 김봉길이 고개를 끄덕였다.
“맞습니다. 그리고 프랑스가 사용하는 작열탄은 시한신관을 이용하는 것으로 추측되는데, 이 포탄으로 요새를 무너뜨리긴 어렵지요.”
프랑스가 개발한 작열탄은 원시적인 시한신관을 탑재한 포탄이었다.
포탄 안에 화약을 넣고, 심지를 이용해 일정 시간 후에 폭발하도록 만든 포탄이랄까.
그런 만큼 정확한 타이밍에 맞춰 포탄을 폭발하게 만드는 것은 거의 불가능했고.
이를 떠올린 정성국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 하긴...포탄이 요새에 닿을 시간을 계산해 폭발하도록 조절해야 하니...”
“예. 거의 불가능합니다. 해서 프랑스 해군은 소앤틸리스 제도의 섬들을 공격할 때도 요새를 무너뜨리는 데 집중하기보단 오히려 그 안쪽에 포탄을 날려 2차 피해를 유도했고요.”
“아. 요새 안으로 포탄을 떨어뜨려 폭발하도록?”
“그렇습니다.”
정성국은 전생에서도 작열탄을 처음으로 도입한 프랑스가 요새를 점령하기 위해 마구잡이로 작열탄을 발사했고, 이러한 포탄 중 일부가 화약 창고에 떨어지면서 적의 저항을 무력화시키고 손쉽게 승리를 거뒀었다는 것을 떠올리고, 전생보다 150년은 일찍 작열탄을 개발해놓고도 하는 짓은 똑같다고 생각하며 혀를 찼다.
“쯧. 효과적이긴 한데 민간인들의 피해가 컸겠군.”
이에 김봉길이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다 그런 것 아니겠습니까. 아무튼, 그렇기에 프랑스가 산토도밍고를 무너뜨리긴 쉽지 않은데...문제는 이러한 소식들이 카리브해에 퍼지면서 산토도밍고의 분위기가 영 흉흉해서 말입니다.”
“붙기도 전에 겁을 먹었다?”
“그렇습니다. 아마 프랑스가 상인들을 통해 일부러 과장된 소문을 흘린 것 같긴한데...아무튼, 그래서 의외의 결과가 나올 수도 있어 보입니다.”
김봉길의 말은 제대로 저항하지 못하고 항복할 수도 있다는 이야기였기에 정성국은 프랑스가 히스파니올라 섬을 점령한 이후를 생각해보다가 김봉길에게 질문을 던졌다.
“흐음...히스파니올라 섬이 프랑스에 넘어가도 크게 상관은 없지?”
“예. 뭐 조금 껄끄럽기는 하겠습니다만...큰 문제는 없을 겁니다.”
프랑스와 전쟁이 벌어진다면 여러모로 껄끄러울 수밖에 없긴 했다.
히스파니올라 섬이 넘어가면 가까이 있는 토르투가 섬이 위험하고 토르투가 섬이 함락되면 생크루아 섬은 고립되는 셈이며, 파나마 운하를 이용하는 항로의 안전이 위태로워질 테니까.
다만 프랑스는 북미왕국의 역량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덤볐다가 제대로 깨진 이후 북미왕국의 눈치를 살피고 있는 만큼, 프랑스의 국력과 기술력이 북미왕국은 넘기 전까진 감히 북미왕국에 맞서진 못할 것이 분명했고, 김봉길이 판단하기에 프랑스가 북미왕국의 기술력을 넘을 일은 절대 없을 것이 분명했기에 정성국의 물음에 어깨를 으쓱이며 대답했고.
“알겠네. 허면 일단 프랑스 해군의 움직임을 주시하고, 혹시 프랑스 해군이 움직이면 바로 보고하도록 하게.”
“알겠습니다. 전하.”
그렇게 카리브해의 근황을 이야기한 김봉길은 반쯤 녹은 아이스크림을 보고 울상을 지으며 급히 숟가락을 움직였고, 정성국은 피식 웃으며 커피를 마시다 문득 생각난 듯 물었다.
“헌데 카리브 해의 근황을 보고하려고 온 건가?”
아이스크림이 담긴 접시를 살짝 기울여 녹은 아이스크림을 숟가락으로 떠먹던 김봉길은 정성국의 질문에 접시를 내려놓고 입을 열었다.
“그건 아니고요. 호주 연합에 아국의 인급 전선을 판매하기로 했잖습니까.”
“그랬지. 판매 협상이 끝난 건가?”
호주 연합은 육군을 창설한 이후 해군 역시 창설하고 싶다는 의사를 밝히며 북미왕국에 도움을 요청했고, 북미왕국은 논의 끝에 인급 전선을 일부 팔기로 결정했다.
해서 외무청과 군사청의 협상단을 꾸려 호주로 향했고.
당연히 이 협상단에는 해군 장교들이 포함되어 있었기에 이들을 통해 김봉길에게 보고가 올라왔을 것으로 짐작한 정성국이 빨리 이야기하라는 듯 재촉하자 김봉길이 능글맞게 웃으며 입을 열었다.
“예. 협상 끝에 인급 전선 10척을 판매하고, 호주 연합의 해군 창설을 돕고 새로 창설된 호주 연합의 해군이 인급 전선을 제대로 운용할 수 있을 때까지 사관을 파견해 돕는 대가로 총 5천만 원을 받기로 했습니다.”
김봉길의 대답에 정성국은 기함했다.
“뭐!? 5천만 원? 아니. 바가지를 씌워도 정도껏 씌워야지...”
인급 전선 1척에 5백만 원을 책정했다는 소리였는데 인급 전선의 건조비가 50만 원이 조금 넘는 것을 생각하면 너무 비싸게 팔아먹은 것이 아닌가 싶은 정성국이었다.
특히 호주 연합에 넘기는 인급 전선의 경우 새로 건조한 배도 아니었고, 인급 전선의 심장인 증기기관은 다운그레이드되었고, 후장식 화포 대신 강평화가 정성국의 명령을 받고 새로 만든 전장식 화포를 장착해 화력조차 줄어들었으니, 이런 사항을 종합해보면 터무니없는 가격이라고 할 수 있고.
하지만 김봉길은 그런 정성국의 반응에 무슨 소리냐는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뭐 아국에서야 인급 전선의 가치가 떨어지는 편이지만, 북미왕국 밖에서 보면 인급 전선의 가치는 무척 대단하잖습니까.”
“그렇기야 한데...”
김봉길의 말마따나 저렇게 건조한 지 몇 년이 흘렀고, 다운그레이드된 인급 전선이라 하더라도 유럽에서 심혈을 기울여 건조하는 전열함을 충분히 상대할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그렇게 비싼 것도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 정성국이 고개를 끄덕일 때 김봉길이 다시 입을 열었다.
“그리고 호주 연합 해군의 창설을 돕고, 해군이 제대로 돌아갈 수 있도록 수많은 사관을 파견해야 한다는 것까지 고려하면 적정한 가격, 아니 오히려 동맹이라 저렴한 가격에 협상을 맺었다고 봅니다.”
“흐음...”
김봉길의 말마따나 호주 연합 해군이 제 몫을 하려면 1, 2년 가지고 끝날 문제가 아니었다.
그리고 호주 연합 해군이 자립할 때까지 계속해서 도와야 하는 비용까지 고려하면 김봉길의 말마따나 적정한 가격은 된다고 생각해 정성국이 고개를 끄덕일 때 정성국이 아이스크림이 담긴 접시를 깨끗하게 비우고 말했다.
“생각해보시죠. 지금 각국의 대사들을 모아놓고 인급 전선 1척을 5백만 원에 팔겠다고 이야기한다면 어떤 반응을 보이겠습니까.”
“물론 어떻게든 구매하겠다고 난리를 피우겠지. 하지만 그건 인급 전선의 증기기관 때문이지 인급 전선의 가치 때문이라고 보긴 어렵지 않나?”
솔직히 유럽 대사들이라면 1척당 1천만 원을 불러도 사겠다고 나설 것이 분명했다.
인급 전선이 문제가 아니라 그 안에 들어간 증기기관이 중요했으니까.
증기기관을 역설계해 그 구조를 파악하고 이를 이용해 증기기관을 복제, 발전시킬 수 있다면 1천만 원이 대수인가.
하지만 호주 연합의 경우는 상황이 달랐기에 정성국은 그렇게 비교하는 것은 좀 아니지 않으냐는 표정을 짓자 김봉길이 고개를 저었다.
“호주 연합도 바보는 아닙니다. 물론 호주 연합의 상황에서 당장 인급 전선의 증기기관을 뜯어봐야 얻을 것은 없겠지만 10년, 20년 후는 또 다르잖습니까.”
“흠. 인급 전선을 운용하다 퇴역시킬 때쯤 인급 전선의 증기기관을 분해해 증기기관 제작 기술을 얻겠다는 건가?”
“예. 그래서 호주 연합은 이번 협상에 무척 만족했다고 하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될 겁니다.”
정성국이 걱정하는 것은 괜히 바가지를 씌웠다가 나중에 호주 연합이 불평을 터트릴 수도 있다는 점이었는데 구매자인 호주 연합이 이번 거래에 만족한다고 하니 마음이 놓여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렇다면 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