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96화
정성국은 신형 비행기의 2번째 시험 비행을 직접 확인한 후 신형 비행기 개발에 참여한 연구원들을 치하하고 격려하며 예정된 모든 시험 비행이 성공적으로 끝난다면 장기 휴가와 충분한 포상금을 약속했고.
연구원들은 정성국의 약속에 환호하며 다시 자신이 맡은 일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이런 연구원들의 반응에 만족한 정성국은 바로 떠날까 하다가 어차피 해가 지시 시작했기에 항공기 연구소의 숙소에 머물고 다음 날 떠나기로 마음먹고 박기동과 하얀 수리를 숙소로 불러 가볍게 술을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흐음...추후 개발할 비행기에는 장착하는 기관의 수를 늘리라는 말씀이시군요?”
“그래. 새로운 경유기관을 개발하는 것보다 그편이 손쉽게 출력을 높이는 방법이잖아?”
정성국의 대답에 옆에 있던 박기동이 술잔을 내려놓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건 그렇죠. 다만 기관의 무게가 꽤 나가는 편이라 무게를 줄이고자 일부러 기관을 하나 장착한 건데 스승님께서는 그보다는 출력을 늘리라는 거군요?”
“그렇지. 출력을 올려 얻는 이득이 더 크지 않을까 싶고...만약의 사고를 대비할 필요도 있어서 말이야.”
그 말에 하얀 수리는 순간 취기가 가시는지 눈을 번쩍이며 정성국을 바라보았다.
“...비행 중 기관이 고장 날 것을 대비해야 한다는 겁니까?”
“그렇지. 그리고 배나 건설 장비에 장착된 기관이 운행 중간에 고장이 나면 일단 세워두고 전문가가 이를 정비해 고치면 그만이라 고장이 나도 크게 상관은 없어. 하지만 비행 중에 기관이 고장 나면 기관을 고칠 수도 없고 그대로 추락할 수밖에 없잖아?”
기관이 고장 날 것을 우려해 전선의 경우는 아직도 기관이 2개가 탑재되고 있다는 사실을 떠올린 박기동이 고개를 끄덕였고, 하얀 수리 역시 하늘을 날던 비행기의 기관이 멈추면 어떤 참사가 일어날지 떠올리고 한숨을 내쉬며 이를 수긍했다.
“후우. 그렇긴 하지요.”
그런 하얀 수리의 반응에 정성국은 피식 웃고 술병을 들어 하얀 수리의 빈 잔에 술을 따라주며 말했다.
“거기에 점차 비행기가 발전하면서 크기는 더욱 커질 테고, 그만큼 많은 사람이 비행기에 탑승할 거야. 그러한 비행기가 만약 비행 도중 기관이 고장 나서 추락이라도 하는 날엔 피해가 클 수밖에 없지.”
정성국이 술을 내려주자 황송한 표정으로 잔을 들고 있던 하얀 수리 옆에서 박기동이 심각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당장 6호기가 양산되면 6호기를 탈 승객 대부분은 빠르게 현지로 이동해야 하는 관리들이니...이거 추락하기라도 하면 피해가 크겠는데요?”
“그렇지. 그래서 만약을 대비할 필요가 있고.”
그때 고개를 돌리고 정성국이 따라준 술을 마신 하얀 수리는 잔을 내려놓고 입을 열었다.
“...그러니 비행기에 장착하는 기관의 수를 늘려 혹시 하나의 기관이 잘못되더라도, 최소한의 추력으로 착륙할 수 있도록 설계하라 이거군요?”
“정확해.”
“알겠습니다. 이제부터 설계할 비행기는 기관의 수를 늘리도록 하겠습니다.”
* * *
새한성에 막 돌아온 정성국이 집무실에 있는 전화기를 들었을 때, 누군가 집무실의 문을 두드렸다.
“전하.”
“오. 마침 잘 왔네. 그렇지 않아도 자네를 부를 생각이었는데.”
정성국은 집무실로 들어오는 개발청장을 보고 활짝 웃으며 전화기를 내려놓았고, 개발청장은 집무실로 들어오다 그런 정성국의 반응에 의아한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했다.
“예? 대체 무슨 일로...”
정성국은 자리에서 일어나 개발청장과 함께 티테이블에 앉으며 말했다.
“이번에 항공기 연구소에서 새로운 비행기를 개발했네. 그 소식을 듣고 직접 신형 비행기를 확인하기 위해 항공기 연구소를 방문했었고.”
“호오. 그렇습니까?”
정성국이 신형 비행기의 이야기를 꺼내자 개발청장은 흥미롭다는 표정으로 정성국을 바라보았고, 정성국은 계속 설명했다.
“헌데 이게 생각보다 성능이 괜찮아. 3명의 승객을 태울 수 있고, 비행기를 이용하면 북미 대륙 내의 주요 도시들은 방문하는데 4일이면 충분하거든.”
“헉! 그게 정말입니까?”
전화가 개발되고 통신선이 설치되어 실시간으로 통화할 수 있었지만, 전화만으로 모든 업무를 처리할 수는 없었다.
그렇기에 직접 현지를 방문해야 했는데 북미왕국의 영역이 너무 넓은지라 이동하는 데만 하더라도 꽤 많은 시간이 소요될 수밖에 없었고.
특히 개발청의 경우 각 지역으로 출장하는 관리들이 많은 편이라 개발청장은 북미왕국의 주요 도시를 4일이면 이동할 수 있다는 이야기에 반색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정성국은 개발청장이 왜 이런 반응을 보이는지 짐작했기에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네. 물론 이제 막 시범 비행에 성공했을 뿐이라 비행기를 양산하고 실제로 이 비행기를 이용하기까지는 꽤 시간이 걸릴걸세. 하지만 슬슬 비행기를 이용할 준비는 해둬야 할 것 같아서 말이네.”
“아. 이제 슬슬 활주로를 건설해두라는 뜻이로군요?”
예전에 처음으로 비행기가 개발되었을 때, 정성국이 주요 도시 인근에 활주로를 건설할 거대한 부지를 빼 두라고 지시했던 것이 떠오른 개발청장이 대꾸하자 정성국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 활주로뿐만이 아니라 연료 보관해두는 연료 보관소, 여러 대의 비행기가 대기하는 주기장, 비행기를 정비할 수 있는 정비소, 비행기를 이용할 승객들을 위한 각종 부대 시설까지, 꽤 여러 시설을 건설해야 할 걸세.”
이러한 정성국의 설명에 개발청장은 그제야 조금 이해가 된다는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아...그래서 예전에 전하께서 도시 외곽에 넓은 부지를 비워두라고 하신 거군요?”
“그렇지. 그리고 비행기의 성능이 발전하면 발전할수록, 비행기의 크기는 더욱 커질걸세. 비행기의 크기가 커지면 더욱 긴 활주로가 필요할 테고, 비행기가 대기하는 주기장도 더욱 커져야겠지. 그리고 비행기를 이용하면 빠르게 이동할 수 있는 만큼, 비행기를 이용하려는 사람은 많을 테고, 수요가 많으니 그만큼 많은 수의 비행기들이 필요할 걸세. 자연히 이 비행기들이 머물 장소가 필요하겠지.”
정성국의 설명에 개발청장은 예전 일을 떠올렸다.
하얀 수리 급 비행기의 경우 이륙하는 데 그리 긴 활주로가 필요하지는 않았다.
거기에 하얀 수리 급 비행기는 작은 편이라 여러 대가 머물더라도 그리 넓은 장소는 필요 없었고.
해서 개발청에서는 도시 인근에 적당히 크기의 부지를 선정해 정성국에게 보고를 올렸지만, 이를 확인한 정성국은 이 정도로는 안 된다면서 더 많은 부지를 미리 선정해 빼 두라고 명령했었고.
어차피 땅이야 넓은 만큼 별말 없이 정성국의 명령에 따라 넓은 부지를 따로 빼 두긴 했지만, 개발청장은 의문이 없지 않았는데, 각종 시설에 훗날 비행기가 커지고 또 많아질 것을 대비해야 한다는 정성국의 설명에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인 개발청장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말했다.
“으음...그럼 추후 확장까지 고려해서 시설들을 건설해야겠군요.”
“정확하네.”
“알겠습니다. 훗날 확장할 것을 고려해 활주로를 비롯한 여러 시설을 건설하도록 하겠습니다.”
정성국은 개발청장의 대답에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고 잠시 고민하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그리고...주요 섬들에도 일단 활주로 정도는 건설해두게.”
그 말에 개발청장은 미처 생각지 못했던 사실을 떠올리고 탄성을 질렀다.
“어?! 그러고 보면 비행기를 타고 바다를 횡단할 수도 있겠군요!”
“그렇지. 거기에 이번에 개발한 비행기의 항속 거리가 꽤 긴 편이네. 해서 징검다리 식으로 이동하면 태평양을 횡단할 수 있을 거라더군. 물론 대서양도 마찬가지고.”
“오오! 그게 정말입니까?”
아무래도 배는 기차보다도 느렸고, 그 때문에 각 섬으로 이동하는 데는 더 많은 시간이 소요될 수밖에 없었는데 신형 비행기가 양산되어 사용되기 시작한다면 이동 시간을 대폭 단축할 수 있다는 소리였기에 개발청장이 열광하자 정성국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러니 항공기 연구소의 연구원들과 의논해 이 섬들에도 활주로와 각종 시설...그러니까 공항을 건설하도록 하게.”
정성국이 활주로를 비롯한 각종 시설을 통틀어 공항이라고 명명하자 개발청장은 공항이라는 단어를 중얼거렸다.
“공항이라...하늘의 항구라는 뜻입니까? 입에 딱 달라붙는 것이 괜찮군요. 알겠습니다. 주요 도시뿐만 아니라 각 섬에도 공항을 건설하겠습니다.”
개발청장의 대답에 정성국은 전생의 공항을 떠올리며 개발청장에게 여러 가지를 이야기해주었고, 개발청장은 품 안에서 필기구와 수첩을 꺼내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부분은 수첩에 적어가며 정성국의 이야기를 경청했다.
“흐음...확실히 조종사들과 승객들이 머물 숙소도 무척 중요하겠군요.”
“그렇지. 특히 비행기의 경우는 아차 하면 사고가 날 수 있어 조종사는 신경을 곤두세워야 하는데...문제는 아직 비행기의 속력이 느린 편이라는 걸세. 그러니 비행시간이 길어질 수밖에 없고, 자연히 한 번 비행에도 조종사들은 무척 피로할 거야.”
“예? 속력이 느리다고요?”
개발청장은 정성국의 이야기에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북미왕국 주요 도시를 4일 만에 이동할 수 있는데 비행기가 느리다는 것이 말이 되나 싶어서.
하지만 정성국이 보기에 이번에 개발한 신형 비행기도 꽤 느린 편이라고 생각했다.
물론 프로펠러 비행기들이 느린 편이긴 했지만, 그래도 1차 세계대전 이후 만들어진 프로펠러 비행기들 가운데는 시속 300km가 넘는 속도의 비행기들도 많았으니.
“물론 기차나 배와 비교하면 빠른 편이지만...내가 생각하기엔 아직 느린 편이네. 순항 속도가 시속 170km 정도라고 하니.”
“그...렇습니까?”
개발청장은 그 정도면 엄청 빠른 것 아닌가 하고 생각했지만, 정성국은 개의치 않고 말을 이어나갔다.
“거기에 비행기의 크기도 작아서 조그마한 의자에서 9시간 가까이 꼼짝도 못 하고 앉아있어야만 하는 만큼 조종사뿐만 아니라 승객들의 피로도 장난이 아닐 거야. 그러니 숙소도 중요하네.”
정성국의 설명에 개발청장은 숙소에 최대한 공을 들여야겠다고 생각했다.
어차피 비행기를 주로 이용할 이들 중엔 자신도 포함되는 만큼.
“알겠습니다. 최대한 신경을 쓰도록 하지요.”
그 후로도 정성국은 훗날 비행기가 대중화되었을 때의 상황까지 고려해 이런저런 설명을 해두었고 개발청장은 그때가 무척 기대된다는 얼굴로 정성국의 말을 경청했고.
그렇게 설명을 끝낸 정성국은 목이 말라 일단 커피를 내리며 개발청장이 방문한 용건을 물었고, 개발청장이 보고서를 건네자 보고서 제목을 확인하고 피식 웃으며 입을 열었다.
“아. 수로 정비 사업 때문에 온 건가?”
“이게 최종 보고서입니다. 전하.”
“그래?”
파나마 운하 건설이 끝나고 정성국은 슬슬 나이아가라 폭포 인근에 새로운 운하를 건설하고 북미왕국의 수로를 정비해 내륙의 발전을 꾀할 생각으로 이에 관련된 보고서를 올리라고 했었고, 개발청 산하 연구소에서는 이에 관련된 간략한 보고서를 올렸다.
그리고 정성국은 이를 확인하고 나쁘지 않다고 여겨 모든 공사 계획과 일정까지 담긴 상세한 보고서를 작성해 올리라고 이야기했고, 지금 정성국이 들고 있는 보고서가 바로 그것이라는 개발청장의 이야기에 정성국은 커피가 내려지면서 향긋한 커피 향이 집무실을 채우는 동안 보고서를 빠르게 훑어보며 중얼거렸다.
“휴우. 운하 건설조차 수로 정비 사업의 일부가 되어 버린 셈이로군. 이거 정말 거대한 사업이 되어버렸는데?”
“하하하. 그런 셈이지요.”
“흠. 수로 정비 사업의 예상 기간은 총 5년이고 제일 오래 걸리는 공사는...나이아가라 운하 공사로군.”
운하 인근에 나이아가라 폭포가 있어 나이아가라 운하로 명명된 이 운하는 지도상으로만 보면 파나마 운하보다 공사 구간이 비슷해 정성국은 못해도 3년이면 가능하지 않을까 싶었는데, 보고서에는 예상과 달리 공사 기간이 5년으로 적혀 있었기에 조금 의외라는 표정으로 이를 언급하자 개발청장이 바로 대답했다.
“그렇습니다. 그나마 파나마 운하의 경우 계곡에 물을 채워 공사 거리를 단축할 수 있었습니다만 나이아가라 운하는 그게 불가능하다 보니 파나마 운하처럼 3년 만에 건설하긴 어렵습니다.”
“아. 실질적으론 파나마 운하보다 공사 구간이 더 긴 셈이로군.”
“그렇습니다. 그리고 갑문도 더 많이 설치해야 하고 말입니다.”
상황을 이해한 정성국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알겠네. 그렇다면 어쩔 수 없겠지. 뭐 어차피 나이아가라 운하 공사가 화급을 다투는 일도 아니니까 천천히 진행하도록 하게.”
“물론입니다. 최대한 안전을 신경 쓰며 공사하도록 하겠습니다.”
“헌데 인력이 부족하지는 않을까?”
파나마 운하의 경우 파나마 지역의 원주민들을 모두 고용했기에 인력이 넘쳐났고, 덕분에 빠르게 파나마 운하를 건설할 수 있었지만, 이 나이아가라 운하는 상황이 달랐기에 정성국이 걱정하자 개발청장은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듯 웃으며 대답했다.
“괜찮을 것 같습니다. 일단 뉴펀들랜드 섬에는 계속해서 유럽 출신의 이주민들이 유입되고 있으니까요. 이들을 고용해 나이아가라 운하 공사에 투입할 생각입니다.”
“그렇다면 다행이지만...만약 부족하면 외무청에 이야기하게. 내가 이야기를 해 둘 테니.”
계속된 전쟁으로 인해 유럽에서 북미왕국으로 이주하려는 이들은 많은 편이라 유럽 각국과 잘만 협상하면 추가로 이주민을 데려올 수도 있었다.
물론 단기간에 많은 이주민을 받아 들여봐야 좋을 것 없었기에 적당히 속도를 조절하고 있었지만, 이 경우는 상황이 달랐기에 필요하다면 외무청이 나서서 유럽과 협상해 더 많은 이주민을 받아들일 수 있다는 정성국의 이야기에 개발청장이 웃으며 답했다.
“하하하. 인력 걱정은 할 필요가 없겠군요. 알겠습니다. 전하. 인력이 부족하다 싶으면 외무청에 이야기하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