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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을 탈출하라-595화 (595/850)

595화

정성국은 싱글벙글 웃으며 자신의 집무실에 찾아와 지금껏 항공기 연구소에서 제작 중이었던 신형 비행기가 완성되었고, 이미 시범 비행까지 무사히 끝내 신형 비행기 개발에 성공했다는 말을 전하는 박기동을 보고 왜 그걸 이제 알리느냐고 타박하며 급히 박기동과 함께 항공기 연구소로 이동했고.

정성국이 항공기 연구소에 도착했을 때, 이미 정성국이 방문한다는 통보를 받은 연구원들은 항공기 연구소 정문까지 나와 정성국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정성국은 마차에서 내려 그런 연구원들 가운데 가장 앞에 있는 하얀 수리를 보고 미소를 지으며 다가갔다.

“오랜만일세. 하얀 수리.”

“오셨습니까. 전하.”

“신형 비행기의 시범 비행이 성공했다지? 축하하네.”

“아닙니다. 전하. 오히려 실패 가능성이 작지 않다고 생각해 전하께 미리 보고하지 못한 것을 용서해주십시오.”

“자네의 부담감을 충분히 이해하고 이를 책망할 생각은 전혀 없으니 걱정하지 말게.”

오랜만에 얼굴을 본 하얀 수리의 얼굴에는 피로가 덕지덕지 묻어있었지만, 이전처럼 수척하다거나 창백하지도 않았고, 몸 자체도 예전처럼 삐쩍 말랐다기보단 적당히 살이 오른 모습이었기에 정성국이 빙긋 웃으며 입을 열었다.

“그래도 자네. 예전보다 건강을 좀 챙기는 모양이군?”

“전하께서 연구도 중요하지만, 건강을 먼저 챙기라고 엄명을 내리셨는데 어찌 어기겠습니까.”

“그래. 그래. 연구도 좋지만, 건강이 우선이니.”

항공기 제작의 실질적인 책임자는 하얀 수리였고, 하얀 수리가 쓰러지기라도 하면 항공기 개발에 차질이 빚어질 수밖에 없기에 정성국은 하얀 수리의 말에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항공기 연구소 안쪽으로 발걸음을 옮겼고.

박기동과 하얀 수리의 안내를 받아 항공기 연구소의 활주로 옆에 지어져 있는 커다란 정비창으로 들어선 정성국은 안쪽에 자리 잡고 있는 거대한 비행기를 보고 자신도 모르게 탄성을 질렀다.

“와우. 이거 정말 멋진데?”

“그렇지요? 저희의 역작입니다.”

정성국의 감탄에 하얀 수리를 비롯해 연구원들과 장인들이 자부심 어린 미소를 짓고 있을 때 정성국은 천천히 비행기로 다가가며 중얼거렸다.

“설계도를 봤을 때도 느꼈지만...이렇게 실물을 보니 하얀 수리와는 전혀 다르네.”

“아무래도 그렇지요. 크기도, 기체의 재질도, 날개 구조도 전혀 다르니까요.”

이번에 새로 개발한 신형 비행기는 하얀 수리에 비해 동체의 길이나 날개의 길이가 족히 2배 가까이는 큰 편이었고, 그 때문에 하얀 수리에 비해 훨씬 커서 그런지 위압감이 느껴질 정도였다.

더불어 신형 비행기의 경우 알루미늄 합금으로 만들어졌고, 단엽기에 날개가 동체 아래쪽에 붙어 있는 저익구조였으며, 동체 앞에 회전날개가 붙어 있고, 앞쪽과 옆에는 동그란 창문까지 달려 있었기에 정성국이 기억하는 비행기의 모습과 몹시 흡사했고.

해서 정성국은 흡족한 미소를 감추지 못하고 신형 비행기 주변을 빙빙 돌며 자세히 관찰하다가 문득 질문을 던졌다.

“이거 4인용 비행기 맞지?”

이에 정성국의 뒤를 졸졸 따라다녔던 하얀 수리가 대답했다.

“그렇습니다. 조종사 1명과 승객 3명을 태울 수 있지요.”

“헌데 4인용 비행기치고는 너무 큰 것 같은데...”

4인용 비행기면 전생의 경비행기 수준인데 크기는 경비행기에 배는 커 보였기에 정성국이 중얼거리자 박기동이 쓰게 웃으며 대답했다.

“항속 거리 때문에 어쩔 수 없습니다.”

“아. 연료를 많이 실으려고 비행기가 커졌다는 거야? 그 때문에 탑승 인원은 줄고?”

“예. 뭐 극단적으로 탑승 인원을 늘린다면야 최대 8명까지도 가능할 겁니다만...이번에 개발한 비행기는 양산해 빠르게 인력이나 물자를 수송할 생각으로 만든 녀석이라 무엇보다 항속 거리가 중요했습니다. 하얀 수리 급 비행기처럼 연료 때문에 100km마다 이착륙하는 것은 너무 비효율적이었으니까요.”

실제로 하얀 수리 급 비행기의 경우 항속 거리가 불과 100km에 불과해 단순 정찰 정도면 몰라도 제대로 써먹기엔 불편한 점이 많았고, 그 때문에 신형 비행기의 경우 무엇보다 항속 거리를 늘리는 데 집중했다는 이야기에 정성국은 고개를 끄덕이며 물었다.

“그렇긴 하지. 그럼 이 녀석은 항속 거리가 얼마나 되는데?”

이에 박기동이 씩 웃으며 답했다.

“1500km가 조금 넘습니다.”

“헉! 정말?”

항속 거리를 무려 15배나 늘렸다는 이야기에 정성국이 기겁한 표정으로 목이 부러져라 급히 고개를 돌려 박기동을 바라보자 박기동이 그런 정성국의 반응에 웃음을 터트리며 말했다.

“하하하. 그럼요. 정말입니다. 뭐 계속해서 경유기관을 연구해 연비가 많이 좋아지기도 했고...그만큼 많은 연료를 싣기도 해서 말이지요.”

경유기관의 경우 연료를 직접 연소해 동작하고, 그 때문에 증기기관처럼 보일러가 따로 필요 없어 소형화할 수 있다는 이점 때문에 건설 장비에 장착된 이후, 박기동을 비롯한 기관을 연구하는 연구원들이 중점적으로 연구하고 있었고, 덕분에 경유기관은 빠르게 발전하고 있었다.

그 때문에 신형 비행기에 장착된 경유기관은 하얀 수리 급 비행기에 장착된 경유기관보다 훨씬 발전된 형태였고, 연비마저 훨씬 나아졌으며, 여기에 높은 출력으로 인해 이륙 중량이 늘어 더 많은 연료를 실을 수 있게 되어 하얀 수리 급 비행기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의 장거리 비행이 가능해졌다는 박기동의 설명에 정성국이 감탄했을 때, 옆에 있던 하얀 수리가 덧붙여 말했다.

“처음엔 항속 거리를 조금 희생하더라도 탑승 인원을 조금 늘리는 것이 더 효율적이라고 생각했습니다만, 아국의 영토가 워낙 넓은 터라 효율적으로 공항을 건설하고 이동하려면 한 번의 연료 보급으로 최소 1500km는 이동해야 한다는 계산이 나와서 결국 4인용 비행기로 확정했습니다.”

“아하. 그래서 크기에 비해 탑승 인원이 적은 거였구나?”

“예. 덕분에 저 신형 비행기를 이용하면 아국의 주요 도시들은 4일이면 방문할 수 있습니다.”

하얀 수리의 대답에 정성국은 눈을 크게 떴다.

북미 대륙이 워낙 넓다 보니, 그리고 아직은 철도도 제대로 깔지 못한 상태이다 보니 북미 동해안 지역으로 이동하려면 결국 배를 타야 했고, 배는 기차보다 느렸을뿐더러, 플로리다 반도를 빙 돌아가야 했으니 실제 이동 시간은 더 많이 걸릴 수밖에 없었다.

헌데 하얀 수리는 이 신형 비행기를 이용하면 4일이면 주요 도시를 방문할 수 있다고 하니 그것만으로도 이 신형 비행기의 가치는 충분했기에 급히 되물었다.

“4일이라고?! 그럼 보스턴이나 퀘벡도 4일 안에 이동할 수 있는 건가?”

이에 옆에 있던 박기동이 그런 정성국의 반응에 웃으며 대답했다.

“그럼요. 또한, 포로나이까지는 7일, 페로 제도까지는 8일이면 방문할 수 있지요. 물론 이건 단순히 거리만 고려한 계산에 불과해 실제로 가능할지는 의문이기는 한데...”

“맙소사...”

포로나이까지 이동할 수 있다는 뜻은 이번에 개발한 신형 비행기가 태평양을 횡단할 수 있다는 뜻이었고, 페로 제도까지 이동할 수 있다는 뜻은 대서양을 횡단할 수 있다는 뜻이었다.

물론 신형 비행기의 항속 거리를 고려하면 무기착 비행이 아니라 중간중간 섬에 착륙해 연료를 보급하고 다시 비행하는 방식일 테지만,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가치가 있었다.

해서 정성국은 이번에 개발한 신형 비행기의 성능에 새삼 놀라고 있을 때 박기동이 그런 정성국을 보고 씩 웃으며 말했다.

“설명만 듣고 감탄하긴 이르지 않습니까. 이미 정비는 다 마쳐둔 상태이니 비행하는 모습도 보시지요?”

* * *

정성국은 관제탑에서 망원경을 통해 푸른 하늘을 유유히 날아다니는 신형 비행기를 보고 감탄했다.

“하얀 수리 급 비행기보다 커서 굼뜨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전혀 아니네?”

“그럼요. 경유기관의 출력이 더 높아서 오히려 하얀 수리 급 비행기보다 최고 속도도, 순항 속도도 저 신형 비행기가 더 빠른걸요.”

박기동의 말에 정성국은 망원경에서 눈을 떼고 박기동과 하얀 수리를 바라보며 저 신형 비행기를 단기간에 개발하기 위해 고생한 둘의 노고를 위로했다.

“고생했다. 진짜 끝내주는 녀석을 만들어냈구나.”

“그렇지요?”

“아닙니다. 이것도 다 전하께서 전폭적인 지원을 해주셨기 때문입니다.”

하얀 수리의 대답에 박기동은 네가 그렇게 대답하면 내가 뭐가 되느냐는 눈초리로 하얀 수리를 슬쩍 째려보았고, 정성국의 칭찬에 고개를 숙이며 겸양한 하얀 수리가 고개를 들다 그런 박기동의 눈초리에 움찔하자 정성국은 둘의 반응을 보고 피식 웃으며 다시 관제탑 인근을 유유히 나는 신형 비행기로 시선을 돌리며 중얼거렸다.

“바로 양산하는 건 너무 성급한가?”

박기동과 하얀 수리가 말한 신형 비행기의 성능이라면, 정말로 양산해 실제로 인력이나 물자를 운송하기 충분했기에 정성국이 몸이 달아서 그렇게 묻자 박기동이 당연한 것 아니냐는 표정을 지으며 답했다.

“그럼요. 일단 계속해서 시범 비행을 하면서 혹시 모를 문제점이 있는지 확인하고, 그 후에나 양산 계획을 세워야겠지요.”

“시범 비행은 얼마나 할 생각인데?”

“약 반년에 걸쳐서 약 100회 이상을 실시할 예정입니다. 전하. 그리고 그 후에도 별다른 문제가 없다면 그때 양산 계획을 세우면 될 듯싶습니다.”

하얀 수리가 100회의 시범 비행을 강조하자 정성국은 움찔했다.

하얀 수리는 하늘을 날고 싶어서 비행기 개발에 열중했고, 하얀 수리 급 비행기를 만든 이후에는 자신이 개발한 비행기에 직접 탑승해 하늘을 날고 싶어 했지만, 정성국은 비행기 개발을 실질적으로 책임지고 있는 하얀 수리의 안전을 우려해 안전하고 제대로 된 비행기를 개발하기 전까진 이를 금지시켰다.

그리고 정성국이 이야기한 비행기의 기준이 바로 4인 이상의 인원이 탑승할 수 있고, 100회 이상 비행해도 아무런 사고 없어야 한다는 거였고.

헌데 이번에 개발한 신형 비행기는 4인이 탑승할 수 있는 비행기였고, 100회 이상의 시범 비행을 사고 없이 통과한다면 신형 비행기가 안전하고 제대로 된 비행기라는 것이 증명되는 만큼, 시범 비행이 끝나면 자신이 비행기를 타고 하늘을 나는 것을 절대로 막을 생각을 하지 말라는 듯한 눈빛을 보내는 하얀 수리를 보고 정성국은 저 집념이 고작 2년 만에 신형 비행기를 개발한 원동력이라는 것을 깨닫고 피식 웃으며 하얀 수리의 어깨를 다독이며 말했다.

“걱정 말게. 정말 저 신형 비행기가 별다른 사고 없이 100회의 시범 비행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한다면, 자네가 비행기를 타는 것을 막을 생각은 없으니까.”

“가...감사합니다! 전하!”

정성국의 확답에 하얀 수리는 기뻐 어찌할 줄을 몰랐고, 정성국은 그런 하얀 수리의 반응에 피식 웃으며 박기동을 바라보고 물었다.

“헌데 저 신형 비행기의 이름은 아직 안 정한 건가?”

정성국의 질문에 박기동이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은 6호기로 부르고 있고...반 년 간의 시범 비행을 성공적으로 마치면 그때 제대로 된 이름을 붙일 생각입니다. 새 이름 중에서요.”

“새 이름?”

“예. 뭐 첫 비행기의 이름을 하얀 수리로 붙인 만큼, 새 이름을 붙이기로 결정했지요.”

“그거 괜찮네. 이름 짓기도 편할 테고. 그럼 그렇게 하고...지금 비행기 조종사들이 얼마나 되지?”

이에 박기동은 비행기와 조종사들이 군사청으로 소속을 변경한 이후에는 상황을 잘 몰랐기에 하얀 수리를 바라보았고, 하얀 수리는 확실하지는 않다고 이야기하며 대답했다.

“아마 100명 정도라고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대답에 정성국이 팔짱을 끼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 중얼거렸다.

“흐음...부족한데.”

“엑. 100명 정도면 충분하지 않나요?”

박기동이 놀란 표정으로 반문하자 정성국이 고개를 저었다.

“아니야. 저 신형 비행기는 하얀 수리 급 비행기와는 달리 실제로 써먹을 수 있는 만큼 100명으로는 턱없이 부족해. 그리고 저 정도 성능이면 정말 군사적으로도 충분히 가치가 있고.”

“그렇긴 하지요. 개조를 통해 항속 거리를 포기하더라도 더 많은 항공 폭탄을 실을 수 있으니까요.”

“그렇지. 그러니 군사청에 이야기해 조종사들을 대량으로 육성하라고 해야겠군.”

그리고 조종사를 대량으로 육성한다는 뜻은 그만큼 많은 비행기를 생산할 거라는 뜻이었기에 박기동이 한숨을 내쉬었다.

“끙. 그 많은 비행기를 생산하려면 고생 좀 하겠군요.”

“그렇겠지. 그러니 넌 미리미리 준비해두고...하얀 수리.”

“말씀하시지요. 전하.”

“저 신형 비행기의 성능이 놀랍긴 하지만...저기서 만족할 생각은 아니지?”

“물론입니다! 더 나은 성능의 비행기를 개발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하얀 수리의 반응에 박기동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고, 정성국은 흡족한 표정으로 하얀 수리의 어깨를 다독여주며 말했다.

“그래. 기대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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