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93화
조선 지원군 사령관인 카무이쿠르는 압록강 인근에서 불어오는 세찬 바람을 맞으면서도 눈 하나 찡그리지 않고 묵묵히 강 건너에 조그맣게 보이는 청나라 진영을 바라보고 있었고.
막사에서 나와 진영을 둘러보던 굳건한 바위는 그런 카무이쿠르를 발견하고 다가가 말을 걸었다.
“뭘 보고 계십니까?”
“여기서 볼 것이 뭐가 있겠나. 저기 청나라 진영을 보고 있었지.”
카무이쿠르의 대답에 굳건한 바위 역시 강 건너 청나라군 진영을 바라보다가 중얼거렸다.
“흐음...평온하군요.”
“그래. 평온하지. 그래서 영 꺼림칙하단 말이지.”
카무이쿠르의 대답에 굳건한 바위는 그의 심정을 짐작했기에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렇긴 하지요. 분명 아국이 협상을 깨면서 만주를 원한다는 식으로 이야기한 만큼, 청나라 황제가 노발대발하면서 저 청나라군의 지휘관을 다그칠 거로 생각했는데 말이죠.”
3함대에서 카무이쿠르에게 청나라와의 협상이 결렬되었다는 것과 협상 당시 투로시노가 만주를 거론하며 청나라를 자극했으니, 청나라군이 움직일 것을 대비하라고 따로 연락을 보냈고, 이 연락을 확인한 카무이쿠르나 지휘관들은 북경에서 전령이 도착하면 지금껏 조용하던 청나라군이 곧바로 움직일 것으로 확신하고 방어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특히 용천 전투에서 방어전을 경험했었기에, 지휘관들은 그 경험을 살려 적은 병력으로도 효과적으로 적을 막을 수 있도록 고심하고 고심해 병력을 배치했고.
헌데 그렇게 준비한 지 일주일이 지나고, 어느덧 한 달이 흘렀는데도 불구하고 청나라군은 조용했고, 청나라 진영은 평온 그 자체였다.
그러니 적들이 미친 듯이 몰려들 것으로 예상했던 카무이쿠르나 지휘관들은 오히려 이 평화로움이 불안할 수밖에 없었고.
해서 굳건한 바위가 카무이쿠르의 말에 맞장구치자 카무이쿠르는 팔짱을 끼고 청나라 진영에 시선을 고정하며 중얼거렸다.
“뭐 우리가 바란 것이 저 청나라군의 지휘관이 청나라 황제의 엄명을 받고 압록강을 도하하다 손쉽게 승리하는 거긴 한데...그렇다고 지금처럼 대치해도 우리의 입장에선 나쁠 것이 없다는 말이지?”
“그렇지요. 지금의 상황이 계속되면 청나라가 곤란해지기에 청나라는 자존심을 굽히면서까지 먼저 아국에 화친을 제의한 것일 테니까요.”
굳건한 바위가 자신의 말에 동의하자 카무이쿠르는 팔짱을 풀고 뒷머리를 긁적이며 투덜거렸다.
“끙...청나라의 꿍꿍이를 모르니 영 찜찜한데...”
카무이쿠르의 투덜거림에 굳건한 바위는 정보기관으로 보직을 옮긴 자신의 친우인 음흉한 여우와 게으른 곰을 떠올리며 중얼거렸다.
“이럴 줄 알았으면 미리 청나라에 첩자라도 심어둘 걸 그랬습니다.”
“그러게 말이네. 나중에 정보를 수집하는 부대를 따로 만들자고 군사청에 건의해야겠어.”
카무이쿠르는 전쟁이 끝나면 군사청에 건의해 현지에서 정보를 수집하는 부대를 꼭 만들어야겠다고 다짐하고 있을 때 굳건한 바위가 무언가를 발견하고 입을 열었다.
“어? 저기 보시지요.”
“음? 오!”
카무이쿠르가 굳건한 바위를 따라 고개를 돌리니 천급 전선을 비롯한 소규모 함대가 보였고, 저기 접근하고 있는 3함대를 통해 청나라의 사정을 어느 정도 파악할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감에 카무이쿠르는 곧바로 선착장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 * *
3함대 사령관인 정일신은 선착장에서 자신을 무척 반기면서 저기 강 건너 청나라군의 반응이 영 이상한데 혹시 청나라의 사정을 아느냐고 묻는 카무이쿠르를 보고 피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고.
이에 카무이쿠르는 얼굴이 밝아지며 급히 정일신을 용암포에 마련해둔 지휘실로 안내했다.
어차피 자신이 정일신에게 이야기를 듣고, 이를 휘하 지휘관들에게 전달하는 것보다 함께 정일신의 이야기를 듣는 것이 나을 것 같았기에.
해서 고급 지휘관들은 모두 지휘실로 집결했고, 그때까지 카무이쿠르가 내려준 커피를 홀짝이던 정일신은 대충 지휘관들이 모였다 싶었을 때 입을 열었다.
“아니. 주나라를요?”
청나라 조정에서 주나라를 토벌하겠다고 선언했다는 정일신의 이야기에 카무이쿠르가 그게 정말이냐는 얼굴로 되묻자 정일신이 히죽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의외지?”
“허. 예. 정말 의외군요. 저희가 만주를 거론했으니 분노하면서 만주 지역에 추가로 병력을 배치하고 저희가 더 많은 병력과 물자를 수송하기 전에 조선을 함락시키겠다고 날뛸 줄 알았더니 주나라를 먼저 토벌하겠다고 선언하다니...”
그때 조병수가 미심쩍다는 얼굴로 손을 들고 질문했다.
“혹시 속임수 아닙니까? 대외적으론 그렇게 떠들어 아국의 방심을 유도하는 술책이랄지...”
조병수의 지적이 지휘실 안에 있던 일부 지휘관들이 동의하듯 고개를 끄덕이며 정일신을 바라보자 정일신은 고개를 저었다.
“그렇진 않은 모양이야. 동녕국에서 말하길 북경에서 명령이 떨어지고 나서 소강상태였던 주나라와의 국경 지대에서 다시 전투가 벌어지고 있다는군. 청나라군의 공격으로 말이지. 거기에 북경과 산동성에서 새로이 모집한 병력 역시 남서쪽에 있는 주나라 국경으로 이동하고 있고.”
새로 병력을 모집해 남서쪽의 전장에 투입 중이라는 정일신의 이야기에 조병수를 비롯한 일부 지휘관들이 신음을 흘렸을 때, 카무이쿠르가 입을 열었다.
“3함대가 황도를 공격할까 두려워 청나라 수군은 모두 천진에서 대기하고 있으니 동녕국을 공격할 수는 없고, 연합을 상대하자니 너무 멀고 보급도 문제니 논외로 하면 일단 압록강 인근에서 조선의 북진만 막고 주나라를 먼저 정리한 후 그 병력을 모두 끌고 올 생각인 모양이군요.”
“그렇지.”
“허면 큰일이지 않습니까. 주나라가 청나라의 공세를 버틸 수 있겠습니까?”
주나라는 청나라의 공세에 계속 밀렸었고, 그 때문에 청나라도 주나라는 언제든 정리할 수 있다고 여기고 병력을 빼고 조선 정벌을 계획했었다.
그러니 청나라가 정말 주나라를 빠르게 정리하려고 마음먹었다면, 과연 주나라가 청나라의 공세를 감당할 수 있을지는 회의적이었기에 조병수가 걱정스럽다는 얼굴로 반문하자 정일신이 어깨를 으쓱했다.
“동녕국에선 충분히 버틸 수 있을 거라고 보더군.”
“예?”
“한창 주나라를 몰아붙이고 있을 때, 끝장을 봤어야 했는데 청나라 황제가 조선을 공격하겠답시고 병력 일부를 빼버렸고, 덕분에 주나라는 기사회생할 수 있었지. 그 후 주나라는 군대를 재정비해서 어느 정도 준비를 해둔 모양일세. 그래서인지 최근 전투에선 청나라에 밀리지 않고, 오히려 승기를 가져가고 있는 모양이야.”
그 말에 일부 지휘관들이 탄성을 질렀을 때 카무이쿠르가 옆에서 중얼거렸다.
“빠르게 주나라를 정벌해야 한다는 압박 때문일까요?”
“그렇지 않겠나? 그리고 정예병을 빼가고 주나라를 빨리 점령하라면서 보내준 병력은 훈련도 제대로 받지 못한 잡병들이니 실질적인 전투력은 더 떨어진 셈이고.”
“흐음...”
그런 상황이라면, 주나라도 버텨볼 만은 하다고 생각하고 있을 때, 정일신이 다시 입을 열었다.
“그리고 동녕국도 지금이 기회라는 것을 아는 모양인지 복건성을 점령하기 위해 다시 병력을 상륙시켰고.”
그 말에 굳건한 바위가 고개를 갸우뚱했다.
“청나라를 압박할 수 있으니 좋긴 한데 과연 동녕국이 복건성을 점령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군요. 이전에도 복건성을 일부 점령했다가 청나라의 공격에 물러나야 했잖습니까.”
굳건한 바위의 말처럼 처음 오삼계가 반란을 일으켰을 때, 동녕국은 복건성 일부를 점령했다.
그 후 경정충이 반란에 합류하고, 동녕국은 경정충과 복건을 나누기로 합의했지만, 반란군의 기세가 대단해 청나라군이 반란군을 막지 못하고 계속 패퇴하자 곧 청나라가 망할 거라고 확신했는지 일방적으로 합의를 파기해버렸고, 동녕국은 이에 분노해 경정충과 전쟁을 벌여 복건성 남부 지역을 모두 장악할 수 있었고.
다만 경정충은 동녕국에게도 깨지고, 청나라군이 몰려오자 겁을 먹고 청나라에 항복해버리면서 동녕국은 경정충과 청나라군을 상대하느라 장악했던 땅 대부분을 잃었고, 그나마 중요한 하문, 금문, 해징 등은 지켰지만 그게 전부였다.
그렇기에 굳건한 바위는 동녕국이 과연 복건성을 다시 장악할 수 있겠느냐고 묻자 정일신이 씩 웃으며 말했다.
“그런데 지금은 상황이 또 달라졌어.”
“예?”
“최근 우리와의 교역을 통해 돈을 꽤 벌었잖나. 동녕국은 그 돈을 모조리 군비 증강에 쏟아부었네.”
“아...”
동녕국의 국왕인 정경은 작년에 청나라가 조선을 공격하면서 북미왕국마저 청나라에 선전포고하고 청나라 수군을 격파하는 모습을 보고 기회라는 것을 직감했다.
거기에 북미왕국과의 교역으로 짭짤한 이익까지 얻고 있었으니 그동안 모아왔던 재물을 모두 풀어 한인, 원주민을 가리지 않고 병력을 모아 훈련시켰고, 이번에 이렇게 훈련한 병력 3만을 상륙시켜 복건성을 점령하기 위해 움직이고 있다는 정일신의 설명에 지휘관들이 탄성을 지르고 있을 때 정일신이 묘한 표정으로 덧붙였다.
“그리고 청나라의 내부 사정도 꽤 재밌어지고 있거든.”
“내부 사정이라면?”
“청나라의 재정이 한계에 도달한 모양이야.”
“청나라의 재정이요?”
카무이쿠르가 그게 정말이냐는 표정으로 정일신에게 되묻자 정일신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청나라는 조선 정벌군이 패배하고 큰 피해를 보았다는 보고에 급히 병력을 모집해 이곳 압록강으로 보냈고, 또 지금은 추가로 5만에 달하는 병력을 모집해 남서쪽의 전장으로 보냈지. 그래서 청나라는 돈이 부족한 모양인지 세금을 올리고 지역 유지들에게 돈을 뜯어내려 하고 있고, 이 때문에 지역 유지들이 하나둘 청나라에 등을 돌리고 있거든. 그 때문에 복건성의 분위기도 꽤 묘하단 말이지?”
정일신의 설명에 복건성의 분위기를 대충 짐작한 카무이쿠르가 신음을 흘리며 중얼거렸다.
“으음...복건성의 지역 유지들과 백성들이 동녕국을 반길 수도 있다는 뜻이군요?”
“그래. 특히 아국이 동녕국에게 넘긴 각종 교역품을 거래한 것이 바로 복건성의 지역 유지들이란 말이지. 한쪽은 돈이 되는 물품을 건네 돈을 벌 수 있게 해주고, 다른 한쪽은 돈을 뜯어내려 하니 지역 유지들이 어느 쪽을 선택하겠나.”
이건 물어보나 마나였다.
지역 유지들은 자신의 이권이 최우선이라는 것을 카무이쿠르도 모르지 않았으니까.
그렇기에 이전에는 동녕국보다 청나라가 복건성을 장악하는 것이 유리할 것이라는 생각에 청나라에 협조하고 동녕국에는 비협조적으로 나왔던 지역 유지들이 이젠 동녕국에 협조하면서 복건성에 배치된 청나라군의 정보를 동녕국에게 알려주고 있다는 정일신의 부연 설명에 카무이쿠르가 고개를 저었고.
“그뿐만이 아니야. 가뜩이나 계속된 전쟁으로 은값이 미친 듯이 오른 상태에서 아국과의 교역을 끊어버림으로써 청나라의 은은 더욱 부족해졌고, 은을 구하기 어려우니 식량을 비롯한 생필품을 구하기 어려워져서 백성들도 불만이 이만저만이 아니라는군. 그래서인지 각 지역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고 하고.”
정일신의 말에 지휘실 내부의 지휘관들은 탄성을 터트렸고 조병수는 흥분했는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이거 어쩌면 청나라가 그대로 망할 수도 있겠군요.”
이에 정일신은 어깨를 으쓱했다.
“뭐 모르지. 아무튼, 현재 청나라의 상황은 이러하네.”
정일신이 그렇게 설명을 마치자 카무이쿠르는 정일신에게 청나라의 사정을 설명해줘서 고맙다는 듯 고개를 꾸벅인 후 입을 열었다.
“그럼 당분간 저 압록강 너머의 청나라군은 움직이지 않겠군요.”
“그렇지. 저들은 우리의 북진을 경계하고 있으니까.”
정일신의 대답에 조병수가 말했다.
“저들의 사정을 헤아려보니 저희가 저기 보이는 청나라군을 격파한다면 상황이 무척 곤란해지지 않겠습니까?”
이에 지휘실 안에 있던 지휘관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고, 옆에 있던 굳건한 바위가 너무 위험한 작전이라는 생각에 입을 열었다.
“압록강을 넘어선 절대 안 됩니다. 청나라군은 우리에게 된통 당했으니 전투를 피하고 우월한 기동력을 최대한 이용하려 할 겁니다.”
“그렇긴 한데 이전과 비교하면 청나라 기병의 규모가 확 줄어들지 않았습니까. 그러니 조선 지원군 가운데 아이누 경비대와 조선군이 연합해 북진하고, 탐사대와 특수군, 그리고 조선 기병이 혹시 모를 청나라 기병의 남하를 저지하면 되지 않겠습니까?”
조병수의 반문에 굳건한 바위는 고개를 저었다.
“그럼 본대가 위험하지 않습니까. 탐사대와 특수군이 빠지면 화력이 확 줄어드는데요. 거기에 검차가 없으면 화포를 이동하는 것도 품이 많이 들 테고요.”
이에 뒤쪽에 있는 한 지휘관이 끼어들었다.
“또한, 조선군은 이곳에 있는 병력이 전부라 청나라 기병이 저희를 상대하지 않고 작은 조로 흩어진다면 저희로선 청나라 기병의 남하를 막지 못합니다. 그러니 이곳에 대기해야 합니다.”
“그래도 이건 기회입니다. 잘만 하면...”
“동맹인 조선의 안전을 두고 도박할 수는 없잖습니까. 그리고...”
그렇게 지휘관들이 한참 열변을 토해내는 것을 지켜보던 카무이쿠르는 책상을 두드리며 주의를 환기한 뒤 말했다.
“일단 압록강을 넘는 것은 본국의 허락도 받아야 하고, 조선군과도 상의해야 할 문제네. 그러니 이쯤 하도록 하고, 그래도 혹시 모르니 경계에 더욱 신경 쓰도록 하지.”
““알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