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조선을 탈출하라-585화 (585/850)

585화

투로시노가 유철을 만나 조선이 이번 전쟁을 최대한 길게 끌고 싶어한다는 것을 알게 된 후 정일신에게 부탁해 급히 인급 전선을 아이누 섬으로 보냈고.

이 인급 전선은 쾌속선이 출발하기 직전에 포로나이에 도착해 투로시노의 보고서를 넘겼고, 쾌속선은 인급 전선이 넘겨 준 보고서까지 싣고 빠른 속도로 동쪽으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10일 후 쾌속선이 싣고 온 각종 보고서는 곧바로 정성국에게 전해졌고, 슬슬 북방 항로가 열릴 시기라 쾌속선이 도착하기만을 기다리던 정성국은 쾌속선이 도착했다는 소식과 예상대로 청나라가 조선을 침공해 전쟁이 일어났다는 말을 듣자마자 청장들을 회의실로 불러들였다.

그리고 청장들은 회의실에 모여 포로나이에서 보낸 각종 보고서를 살펴보기 시작했고.

처음엔 꽤 심각한 분위기였지만, 조선 지원군 사령관인 카무이쿠르가 올린 각종 보고서를 확인 후에는 점차 청장들의 얼굴에 웃음꽃이 피기 시작했고, 마지막 전투였던 용암포 전투의 결과를 알게 되자 청장들이 감탄사를 터트렸다.

“허허허. 이렇게 압도적인 승리라니...”

“예. 이 결과는 정말 놀랍군요.”

청나라 기병 2만 명을 고작 아이누 탐사대 3천 명과 특수군 소속의 검차 10대로 공격해 큰 피해 없이 승리를 거둔 것은 믿기지 않을 정도라 청장들이 혀를 내두르자 군사청장이 자신도 이 보고서를 믿기 어려울 정도라는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기관총의 존재를 알게 되었을 때도, 그리고 시범 사격 때도 그 위력이 참으로 대단하다고는 생각했습니다만...실전에서 이 정도로 위력을 발휘할 줄은 미처 몰랐습니다. 분명 계산상으로는 갑오 소총으로 무장한 잘 훈련된 병력 50명의 화력과 동일한데...”

탐사대 3천 명에 경비대 500명을 추가해봐야, 과연 이런 성과를 낼 수 있을지 의문이라는 군사청장의 중얼거림에 연구청장도 비슷한 생각인지 고개를 끄덕였고.

이런 청장들의 반응에 정성국이 실소하며 말했다.

“뭐 패전으로 인해 사기가 낮아진 상황에서 생각지도 못한 검차와 기관총의 조합에 청나라 병사들이 느낀 당혹감과 공포 덕분이라고 봐야겠지. 한창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일부가 도망치고, 청나라의 지휘관들이 이걸 통제하지 못해 혼란이 퍼진 시점에서 실질적인 전투는 끝나버린 셈이야.”

물론 용천 전투에서 기관총의 위력에 호되게 당하긴 했지만, 야간 전투였기에 청나라군 지휘부에서는 이를 명확히 파악하지 못했고, 그 때문에 청나라 병사들은 자신들을 향해 굉음을 내뿜으며 다가오는 검차와 자신들을 겨누고 계속해서 총알을 비처럼 쏟아내는 기관총에 겁을 먹을 수밖에 없었고, 이것이 청나라 패배의 원인이라는 정성국의 설명에 청장들은 일리가 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고.

다만 검차와 기관총의 조합은 무척 위력적이었기에 청나라가 이들의 존재를 알고 이를 상대하기 위해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했다 하더라도 전투의 결과는 별반 달라지지 않으리라고 생각한 일부 청장들이 검차의 가능성을 눈치채고 하나둘 입을 열기 시작했다.

“그리고 보면 검차도 무척 쓸모가 있는 듯하군요.”

“예. 검차가 굉음을 내뿜고 달려들자 말이나 병사들이 겁먹었다는 보고도 있고, 무엇보다 검차 덕분에 무거운 기관총을 방어용이 아닌 공격용으로 사용할 수 있었으니까요.”

각종 기계장치에 익숙한 북미왕국인이라면 몰라도 타국의 백성들은 검차를 보고 공포를 느낄 수밖에 없으며, 그게 아니더라도 무거운 기관총의 발이 되어 주는 것만으로 가치가 충분하다는 법무청장의 말에 관리청장이 고개를 끄덕이며 덧붙여 말했다.

“그리고 조선 지원군 사령관인 카무이쿠르는 기관총이 너무 강력하다는 것을 오히려 우려했습니다. 다른 나라들도 북미왕국의 무기를 개발하기 위해 열을 올리고 있는 상황에서 자칫 다른 나라가 기관총 개발에 성공한다면, 지금 이 사진의 시신들이 미래의 아국의 병사들이 될 수도 있다고 걱정한 거지요. 헌데 검차라면 기관총의 공격을 무시할 수 있지 않습니까?”

카무이쿠르가 올린 여러 전투 보고서에는 기관총의 위력이 대단했기에 피해를 줄일 수 있었다는 호평이 가득했지만, 새로운 신무기를 평가하는 보고서에는 호평 뒤에 기관총의 위력이 너무 강력해 오히려 걱정된다는 글귀가 쓰여 있었다.

이 기관총이 북미왕국의 전유물이라면 상관없겠지만, 그게 아니라면 기관총의 위력으로 북미왕국의 병사들이 몰살당할 수도 있다는 것을 경계한 것이다.

그리고 청장들도 유럽 각국이 어떻게든 북미왕국의 기술을 흡수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고, 북미왕국의 무기를 연구하고 복제하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다는 사실을 잘 알기에 이런 카무이쿠르의 걱정이 단순한 기우에 불과하다고 일축할 수 없었고.

카무이쿠르가 보낸 보고서에 첨부된 여러 전장의 풍경 사진들, 정확히는 시신이 가득한 참혹한 사진을 보니 청장들도 불안해질 수밖에 없었다.

허나 철판을 두른 검차라면 총탄을 방어할 수 있어 설사 다른 나라가 언젠가 기관총을 만들어 내더라도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 관리청장이 연구청장을 바라보자 연구청장이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 가능할 겁니다. 뭐 뚫릴 것 같으면 장갑을 보강하면 그만이고.”

“그러니 검차도 본격적으로 생산하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연구청장의 대답에 만족한 관리청장은 즉각 검차를 양산하자고 주장했고, 다른 청장들도 병사들의 안전을 위해서라도 검차를 대량으로 양산해 배치해야 한다고 주장하기 시작하자 정성국은 진정하라는 듯 손을 내저었다.

“하하하. 진정들 하게. 일단 검차는 기관총과 달리 아직 개발이 완전히 끝난 녀석이 아니라서 말이지.”

이에 행정청장이 의아한 듯 정성국을 바라보았다.

“그동안 각 지역에서 운용하며 시험을 해보았고, 실전에 투입되어 이런 성과를 올렸는데 이 정도면 충분한 것 아닙니까?”

이에 정성국은 회의실 탁자 위에 올라와 있는 여러 보고서를 뒤적이다 하나의 보고서를 집어 들며 말했다.

“아. 여기 있군. 이건 특수군이 올린 보고서인데 직접 실전을 경험해 보니 불편한 부분이나 고칠 부분이 꽤 있는 모양이야. 그리고 이를 수정하려면 단순 개조로는 힘들어서 새로운 검차를 개발할 필요가 있고. 그러니 양산은 나중 일이지.”

“예? 고칠 부분이요?”

정성국의 말에 연구청장이 고개를 갸웃하자 정성국은 보고서를 펼치며 말했다.

“대표적으로는 장전에 시간이 걸린다는 거네. 장전하려면 검차 안에 기관총의 탄약 상자를 꺼내 장전해야 하니까. 뭐 전투 전에 최대한 많은 탄약 상자를 꺼내 주변에 놓은 포수들도 있는 모양인데...방어전에 가까웠던 용천 전투에서는 효과가 있었지만, 용암포 전투에서는 검차가 이동하면서 흔들리다 보니 주변에 쌓아두었던 탄약 상자가 떨어져 발등을 다친 포수도 있는 모양이고.”

“그럼 포수의 요청은...”

“그래. 검차 안에서 자신을 도울 병사가 하나 더 필요하다는 소리지. 그리고 검차 운용 인원을 늘리려면 검차의 크기부터 키워야 하고.”

“끙...”

검차는 전장에서 끊임없이 기관총을 통해 적들을 견제해주어야 했기에 빠른 재장전은 중요했다.

물론 검차를 정말 대량으로 양산한다면야 재장전이 조금 느리더라도 큰 문제는 없겠지만, 검차의 생산 가격을 생각해보면 차라리 검차의 운용 인원을 늘리는 것이 나았다.

이는 검차의 크기를 키워야 한다는 뜻이라 막대한 일거리가 예상된 연구청장은 한숨을 내쉬었고, 정성국은 그런 연구청장의 반응에 히죽 웃으며 덧붙였다.

“그리고 포수 한 명은 용암포 전투에서 화살을 머리에 맞았다고 하네. 물론 포물선으로 날아오는 화살을 대비해 머리에 철모를 쓰고 있었기에 크게 다치지는 않았지만, 잘못하면 어깨나 가슴 등을 맞을 수도 있었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분명 위험하지. 해서 사방만 막지 말고 윗부분도 막을 필요가 있다고 하고. 그러니 검차의 설계를 완전히 다시 할 필요가 있고, 그때까지 양산은 미뤄야겠지.”

그 뒤로도 정성국은 계속해서 보고서에 적힌 각종 불편함 점들을 이야기하다 아예 연구청장에게 해당 보고서를 건넸고, 연구청장이 표정을 잔뜩 찌푸린 상태에서 해당 보고서를 살피고 있을 때 다른 청장들이 입을 열었다.

“검차는 야전에서 무적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생각지도 못한 문제점들이 속속 발견되는 것을 보면 이번에 조선으로 보내길 잘한 것 같습니다.”

“그렇지요. 그동안 각지에서 운용했을 때는 이런 문제점을 발견하지 못했으니까요.”

이에 정성국도 이러한 문제점을 발견한 것이 만족스러워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일반적인 상황에서 백날 운용하는 것보다는 실전에 투입하는 것이 낫긴 해. 그렇다고 신무기를 만들자마자 실전에 투입하는 것은 위험하니 자제해야겠지만.”

이에 군사청장은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면서 아쉬움을 표했다.

“헌데 이럴 줄 알았으면 힘이 들더라도 비행기도 모두 조선에 보낼 것을 그랬습니다.”

“하하하. 비행기도 실전에 투입해보면 무언가 문제점이 발견될 수도 있겠군요.”

다른 청장들의 대꾸에 정성국은 뒷머리를 긁적였다.

“그러게. 보내봐야 폭탄 몇 발 떨어뜨리는 게 다이기에 낭비라고 생각해 조선에 보내 실전에 투입하자는 기동이나 여러 연구원의 요청을 일축했는데...그냥 보낼 걸 그랬나?”

“이제 북방 항로가 열렸으니 지금이라도 보내는 것이 어떻습니까?”

교육청장의 의견에 정성국이 고개를 저었다.

“이미 대부분의 전투는 끝난 상황 아닌가. 그건 낭비지.”

“아. 그게...”

정성국의 말에 군사청장은 곧바로 다른 보고서들을 건네며 3월에 청나라에서 압록강 인근으로 최소 7만에 달하는 지원 병력을 보냈다고 설명하자 청장들은 청나라의 저력에 고개를 저었다.

“허. 확실히 청나라가 대국은 대국이로군요.”

“예. 주나라와의 전쟁으로 거의 40만 가까운 병력을 남쪽에 파견한 것으로 아는데...여기에 조선을 침공하겠다고 6만에 달하는 병력을 파견하고, 또 최소 7만에 달하는 병력을 추가 파병하다니...”

물론 청나라는 이 지원 병력을 보내기 위해 남쪽에 파견된 병력 일부를 회군시켰지만, 자세한 내부 사정을 파악하지 못한 북미왕국으로서는 후방에 배치된 병력을 보냈으리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고.

그래서인지 청장들은 청나라의 병력 규모에 놀라면서, 동시에 북미왕국의 병력 규모가 너무 작은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할 수밖에 없었다.

그나마 해군은 그 규모를 지속적으로 키우고 있었지만, 육군의 경우는, 특히 본토에 배치된 육군의 경우 프랑스와의 전쟁이 예상되어 당시 병력을 급격히 늘렸을 때 이후로 병력 규모를 거의 늘리지 않고 있었고, 이 병력은 6만이 채 되지 않았으니 너무 부족해 보였던 것이다.

해서 행정청장이 정성국을 보고 말했다.

“이거 저희도 병력 규모를 키워야 하는 것 아닙니까?”

다른 청장들도 행정청장의 의견에 동의하는 듯 보였지만, 정성국으로서는 한창 일하며 북미왕국을 발전에 한 손 보태야 할 청년들을 군인으로 묶어두고 싶진 않았기에 탐탁지 않은 표정으로 말했다.

“글쎄. 청나라의 병력 규모가 크다고 우리도 이를 따라 병력을 늘릴 필요가 있나? 당장 병력이 필요한 상황도 아니고.”

“하지만...”

“그리고 청나라의 인구수는 1억이 넘는다는 것을 생각해야지.”

명나라의 전성기 때는 1억 5천 명에 달하는 인구수를 자랑하기도 했지만, 왕조 교체기와 혼란이 겹쳐 중국 대륙의 인구는 확 줄었고, 이 인구는 강희제 말년에서나 복구할 수 있었다.

그렇기에 정성국은 현재 청나라의 인구를 대략 1억 2천만 명 정도로 추측하고 있었고, 북미왕국의 인구가 이제 겨우 900만을 넘어 곧 천만을 바라보는 상황에서 청나라를 따라 무리하게 병력 규모를 늘릴 필요는 없다고 판단하고 있었고.

특히나 북미왕국 인구의 상당수는 아직 아이들이다 보니 일을 할 수 있는 성인 남성이 소중할 수밖에 없어 군대 규모를 늘리는 것에 부정적인 정성국이었다.

‘필요하다면야 늘려야겠지만...가뜩이나 해군 규모를 미친 듯이 키우고 있는 상황에서 육군까지 늘리는 건 북미왕국의 발전을 저해하는 꼴이나 다름없지.’

정성국이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때, 정성국의 이야기에 청장들은 일제히 탄성을 터트리면서, 확실히 아직은 갈 길이 멀다는 것을 실감할 수밖에 없었다.

“휘유. 우리보다 영토가 작은 청나라가 1억이 넘는 인구라는 것을 생각해보면 아직은 갈 길이 참으로 멀군요.”

“그러게 말입니다. 헌데 어느 세월에...”

그런 청장들의 반응에 정성국은 피식 웃으며 말했다.

“뭘 그러나. 기억나나? 우리가 처음으로 북미왕국을 건국했을 때 인구는 10만이 채 안 되었다는 것을?”

정성국의 말에 청장들은 이전의 기억을 되짚고 일제히 탄성을 내질렀다.

“아...”

“허. 그랬...었지요.”

고생고생해서 겨우 새김포를 개발하고, 이주민과 원주민들의 화합을 위해 처음으로 북미왕국을 건국했을 때 인구가 채 10만이 되지 못했다는 것을 떠올린 청장들은 정말 감회가 남다를 수밖에 없었고, 이런 청장들의 반응에 정성국이 씩 웃으며 다시 입을 열었다.

“그래. 그런 북미왕국이 어느덧 인구 천만을 바라보고 있네. 그리고 출산을 장려하고 있어 출산율도 높지. 그러니 갈 길이 멀다고 막막해할 필요는 없네. 아마 나나 자네들이 은퇴할 때쯤이면, 가능하지 않겠어?”

17년 만에 북미왕국의 인구는 100배 가까이 늘어났다.

물론 이는 북미왕국의 영토가 확장되며, 그리고 조선과 유럽, 아프리카에서 유입된 이주민들 덕분이라는 것을, 그렇기에 앞으로 이렇게 인구가 폭증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청장들도 잘 알고 있었다.

다만, 계속해서 타국에서 이주민들을 받아 정착시키고, 연금 덕분에 북미왕국 백성들도 출산에 적극적이며, 의학 기술의 발달과 위생을 철저히 신경 썼기에 사망률도 떨어지고 있으니만큼, 한 2, 30년 정도 더 고생하면 100배는 어려워도 10배 정도는 가능하지 않겠느냐는 정성국의 말에 청장들은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이며 인생을 북미왕국의 발전에 바쳐야겠다고 마음먹었을 때, 청장 가운데 가장 나이가 많은 교육청장이 정성국을 보고 투덜거렸다.

“아니. 전하. 저희도 이제 나이가 있는데 전하께서 은퇴하실 때까지 부려먹으실 생각이십니까?”

“어? 들켰네?”

“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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