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조선을 탈출하라-576화 (576/850)

576화

“스승님. 부르셨습니까.”

“오. 그래. 다들 왔구나. 앉아라.”

보고서를 확인하고 있던 정성국은 자신의 집무실을 방문한 최주명, 박기동, 강평화를 반기면서 자리에서 일어나 제자들과 함께 티테이블에 앉았고.

커피를 마시며 오랜만에 만난 제자들과 잠시 잡담을 나누었다.

정성국이 새한성에 돌아온 후로도 전화를 이용해 가끔 대화한 적은 있었었지만, 이렇게 얼굴을 본 것은 처음이었으니 이 잡담은 꽤 길어졌고.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정성국이 작년에 새한성을 떠나 파나마 운하나 북미 동해안을 방문했을 때의 이야기까지 나왔다.

그리고 일이 워낙 많아 새한성에서 멀리 벗어나지 못하는 제자들은 그런 정성국의 이야기에 꽤 흥미를 보였고.

정성국은 그런 제자들을 보고 웃으며 입을 열었다.

“거기에 주변의 풍광들도 이곳과는 조금 달라서 구경하는 맛도 있고...한 번은 가볼 만해. 특히 산아구스틴이나 보스턴은 관광지로 손색이 없어 며칠 동안 묶으면서 구경하고 싶었으니까.”

“헤에. 북미 동해안 지역이 그렇게 발전하다니...나중에 저도 가족들과 함께 한 번쯤은 방문해보고 싶네요.”

최주명의 말에 강평화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확실히 한 번은 가보고 싶긴 한데 이곳에서 북미 동해안까지의 거리가 너무 멀어서...”

“하긴. 소중한 휴가 기간을 기차와 배 위에서만 모두 보낼 수는 없지.”

그나마 가까운 플로리다 지역만 하더라도 이동하는 데만 왕복 10일이 넘게 걸리다 보니 최주명이 강평화의 말에 그건 그렇다는 표정을 짓자 정성국이 박기동을 바라보며 씩 웃었다.

“괜찮아. 우리에겐 비행기가 있잖아? 기동이가 열심히 새로운 비행기를 만들고 있으니, 그걸 타면 이동 시간을 확 줄일 수 있을 거야.”

이에 박기동은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정성국을 바라보며 투덜거렸다.

“아니. 스승님. 그럼 새한성으로 돌아오시고 나서 가끔 전화로 4인용 비행기의 제작 상황에 관해 묻던 게 다 그 때문입니까?”

“뭐 그 지분이 조금...크지?”

정성국이 박기동의 시선을 슬쩍 피하며 그렇게 이야기하자 박기동은 고개를 흔들며 입을 열었다.

“글쎄요. 이번에 만들고 있는 4인용 비행기가 성공적으로 시범비행을 마친다 하더라도 이걸 타고 먼 북미 동해안 지역으로 이동하는 건 급한 일이 아니고선 썩 추천하기 어려운데요?”

“음? 왜?”

“그나마 편하게 쉴 수 있는 기차나 배와는 달리 비행기는 자그마한 좌석에서 오랜 시간을 계속 앉아있어야만 하니까요.”

“아...그건 또 그렇네.”

박기동의 말에 정성국은 고개를 끄덕였다.

기차나 배의 경우 공간이라도 넓어 좌석도 크고 편했으며 그러다 힘들면 잠깐씩 자리에서 일어나 움직일 수 있었지만, 4인용 비행기의 경우는 한번 좌석에 착석하면 도착할 때까지 움직이기가 어렵긴 했으니까.

“그리고 비행기가 기차와 비교하면 확실히 빠르긴 한데...실제로 북미 동해안까지 이동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기차와 별반 차이 없을 겁니다.”

박기동의 말에 옆에 있던 최주명이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엥? 그게 무슨 소리야? 기차보다 비행기가 못해도 2배 가까이 빠르지 않나?”

“그렇긴 해. 다만 기차는 잠깐씩 연료와 물을 보충하면 계속 이동할 수 있지. 야간에도 말이야. 하지만 비행기는 그게 어렵거든.”

“아...”

“비행기가 이륙하려면 날이 좋아야 하고, 야간 비행은 위험해서 어지간하면 금지거든. 그러니 실제 이동 시간은 그리 차이 안 날 거야. 지금 개발 중인 4인용 비행기가 실제로 제 성능을 발휘한다고 해도 이곳에서 새진주까지 이동하는 데 2일은 걸린다는 계산이 나왔거든.”

그 정도면 기차로 이동하는 것과 그렇게 큰 차이는 없었기에 최주명과 강평화가 고개를 젓자 정성국이 말했다.

“그래도 비행기는 직선으로 이동할 수 있어 실제 이동 거리를 단축할 수 있으니 충분히 쓸 만은 할 거야. 그리고 4인용 비행기를 시작으로 더 좋은 비행기가 계속 만들어질 테니 우리는 나중에 그걸 타고 북미 동해안 지역을 방문하면 될걸?”

“허...”

정성국의 말에 최주명과 강평화는 히죽거리며 박기동에게 너만 믿겠다는 눈빛을 보내자 박기동은 은근슬쩍 비행기 개발을 독촉하는 자신의 스승이나 친구들을 보고 땅이 꺼져라 한숨을 내쉬었고, 정성국은 그런 박기동의 반응에 살짝 웃음을 터트렸다.

그리고 그 후로도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다 커피를 다 마셨을 때쯤 정성국은 슬슬 제자들을 부른 용건을 말해야 겠다는 생각에 최주명을 바라보고 질문을 던졌다.

“그래. 신규 전선의 건조는 잘 되어가고 있니?”

“예. 어차피 신규 전선의 기본 뼈대가 3천 톤급, 5천 톤급, 1만 톤급 철선이고 그 철선들을 제작한 경험이 있다 보니 큰 어려움 없이 건조 작업을 진행 중입니다. 해서 아마 예정대로 3월 초면 신규 전선의 건조가 모두 끝날 테고 실제 운용해 본 후 별다른 문제가 없으면 곧바로 양산할 생각입니다.”

프랑스가 작열탄을 개발한 이후 다른 유럽 국가들도 하나둘 작열탄을 개발해 실전에서 사용하기 시작했고, 그 소식을 접한 최주명과 조선 장인들은 최대한 빠르게 신규 전선을 양산할 필요성을 느꼈다.

해서 처음부터 새로운 철선을 설계하기보다는 기존에 건조한 경험이 있는 3천 톤급, 5천 톤급, 1만 톤급 철선을 기본 뼈대로 해서 현 측의 장갑을 두껍게 하고 회전 포탑을 다수 장착해 신규 전선을 만들기로 했고.

물론 장갑과 회전 포탑 때문에 무게 중심이 조금 달라지긴 했지만, 그 정도야 최주명이나 조선 장인들에게 큰 문제는 아니었기에 순조롭게 건조하고 있으며, 곧 건조가 끝나고 시험 운용을 할 거라는 이야기에 정성국은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조만간 이를 구경하러 조선소를 한번 방문해야겠다고 생각하며 다시 질문을 던졌다.

“그럼 예정대로 내년부턴 신규 전선이 배치된다는 소리지?”

“아마 그럴 것으로 예상합니다만...”

최주명은 신규 전선 개발의 진행 상황이 궁금하면 전화를 하면 그만인데 이걸 묻기 위해 자신과 친구들을 불렀나 싶은 표정이라 정성국은 최주명이나 다른 제자들이 아직 군사청장이나 연구청장에게 별다른 언질을 받지 못했다는 것을 깨닫고 입을 열었다.

“아. 그게...”

정성국은 청장 회의에서 나온 호주 연합에 대한 이야기를 해 주었고 박기동은 이제야 상황을 이해했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흠. 호주 연합에 기존의 전선들을 팔겠다라...그래서 저희들을 부르신 거군요? 기존의 전선을 그냥 넘겨줄 수는 없으니.”

“그렇지.”

이에 일거리가 늘어날 것을 직감한 최주명은 한숨을 내쉬며 질문했다.

“그럼 기존의 전선을 모두 호주 연합에 파는 겁니까?”

그런 최주명의 반응에 정성국은 웃으며 손을 내저었다.

“설마. 그 많은 전선을 모두 개조하는 것도 일이고, 당장 호주 연합은 10척을 운용하는 것만으로도 벅찰걸? 그 많은 전선을 운용할 선원도 없는 판인데. 아마 호주 연합과의 협상에 따라 달라지긴 하겠지만, 최대 10척 정도를 판매할 생각이야. 아. 물론 인급 전선에 한해서.”

“흠. 10척 정도면 개조 작업에 그리 많은 시간이 걸리지도 않으니 다행이네요. 헌데 어떻게 개조해야 합니까?”

그 정도면 일거리가 그렇게 많을 것 같지 않았기에 최주명은 안도하며 정성국에게 다시 질문을 던졌고.

이에 정성국은 잠시 고민하다 최주명을 보고 물었다.

“음...인급 전선에 돛을 달 수는 없지?”

예전에 전선 개량 사업을 진행하면서 기존에 운용하던 기범선들은 모두 퇴역시켰기에 현재 운용하는 전선들은 모두 기선이었다.

그런 만큼, 증기기관 기술의 유출을 우려해 증기기관을 아예 빼버리면 전선이 움직일 수 없기에 혹시나 하고 정성국이 최주명에게 묻자 최주명은 질색하며 손을 내저었다.

“어휴. 그건 어렵죠. 그러려면 인급 전선을 완전히 해체한 후 개조하고 재건조해야 하니...차라리 새로 범선을 건조하는 편이 싸게 먹힐 겁니다.”

그때 옆에 있던 박기동이 대화에 끼어들었다.

“어차피 호주 연합도 동맹이고, 호주 연합에 전선을 판매해 금을 왕창 가져올 생각이시잖습니까. 그러니 증기기관만 예전 인급 전선에 장착했던 녀석으로 교체해서 파는 편이 낫지 않습니까? 그래야 더 비싸게 팔아먹을 수 있을 테고.”

박기동의 말에 정성국은 조금 고민스럽다는 얼굴로 중얼거렸다.

“흠. 지금 네 말은 250마력 증기기관 2개를 장착하자는 소리지?

“예. 뭐 출력이 더 낮은 증기기관을 달 수도 있는데 그러면 인급 전선의 속력이 너무 느려져서 제대로 써먹긴 어려울 테고요.”

물론 그걸 노리고 더 낮은 출력의 증기기관을 장착할 수도 있긴 하지만, 북미왕국의 입장에서 호주 연합이 해군을 육성하고 자체적으로 해안가를 방어하는 것은 오히려 환영이었다.

그리고 제대로 써먹지도 못하는 물건을 비싸게 넘기는 것은 양국의 우호 관계를 해치는 일이라 인급 전선을 넘기려면 최소한 250마력의 증기기관을 장착해 판매해야 한다는 것에 정성국이 고민하고 있을 때 박기동이 다시 입을 열었다.

“그리고 250마력 증기기관이 저희 입장에서야 무척 구형의 증기기관이지만...증기기관을 연구하는 다른 유럽 국가나 조선도 아직 100마력의 벽을 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생각해보면...그 가치는 무척 대단하고, 이 점을 강조한다면 무척 비싸게 판매할 수 있을 겁니다.”

증기기관의 존재가 알려진 후로 각국은 증기기관 연구에 박차를 가했지만, 아직 100마력의 벽을 넘지 못하고 있었다.

그 때문에 유럽이나 조선에서 개발한 기선의 경우 속도가 느린 편이라 제대로 써먹기는 어려운 상황이었고.

그런 만큼 정성국은 250마력의 증기기관을 판매하는 것에 조금 거부감을 느끼고 있었는데 박기동은 어차피 인급 전선을 판매할 거면 250마력 증기기관을 팔 수밖에 없으니 이걸 장착해서 팔되 그 가치를 호주 연합에 이야기해 값을 제대로 받아야 한다고 이야기하자 정성국은 웃음을 터트렸다.

“하하하. 네가 고생해서 만들었던 증기기관이니 헐값에 팔지 말라는 거겠지?”

“그럼요. 그거 만들겠다고 고생했던 기억을 떠올리면...”

박기동은 예전에 증기기관을 만들며 고생했던 기억이 떠오른 건지 몸을 부르르 떨었고, 그런 박기동을 보고 정성국을 결정을 내리기 전 다시 질문을 던졌다.

“헌데 그렇게 되면 호주 연합도 증기기관 기술을 확보할 수 있겠지?”

정성국의 질문에 박기동은 한참을 생각해보다가 고개를 갸웃하며 말했다.

“글쎄요? 일단 전선을 움직여야 하니 증기기관을 운용하기 위해 기본적인 지식이야 가르칠 생각이지만, 호주 연합의 절망적인 야금 기술이나 금속 가공 기술을 생각해보면 단순 복제도 쉽지 않을 겁니다.”

유럽이나 조선이라면 모를까 기초 기술이 부족한 호주 연합은 이를 장기간 운용한다고 해도 얻을 것이 많지는 않을 거라고 이야기하는 박기동이었고 이에 정성국은 결정을 내렸다.

물론 호주 연합도 이대로는 안 된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북미왕국의 교육 체계를 이식해 주민들을 가르치려 하고 있고, 기초적인 기술을 습득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었으니 점차 발전해나갈 테고, 그런 만큼 박기동의 예상과는 달리 인급 전선을 운용하면서 무언가를 얻을 수도 있겠지만, 그러려면 꽤 시간이 흐른 후일 테니 상관은 없으리라 본 것이다.

“아. 그건 또 그렇군. 그럼 타국에 증기기관을 넘기지 않는다는 약속을 받고 팔면 전혀 문제가 없겠네.”

그렇게 결정을 내린 정성국은 조용히 한쪽에서 커피를 홀짝이며 대화를 듣고 있던 강평화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전장식 화포. 만들 수 있지?”

이에 강평화는 애매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흠. 만드는 것은 문제가 아닌데...기존의 후장식 화포에서 전장식 화포로 교체하려면 화력이 대폭 줄어들 겁니다. 그러니 화포의 수를 대폭 늘려야 하는데 그게 될지 모르겠습니다. 차라리 해군형 60mm 화포를 장착하는 것이 낫지 않습니까?”

60mm 화포야 어차피 생산 체계가 잡혀 있었기에 웬만하면 60mm 화포를 장착했으면 하는 강평화를 보고 최주명은 자신은 고생하는 데 강평화만 여유 부리는 꼴을 보기 싫었기에 곧바로 입을 열었다.

“어차피 호주 연합은 해군을 창설해 해안 방어에 집중할 생각으로 보이니 연료와 물자를 보관하는 창고를 줄이고 그 자리에 화포를 놓으면 될 것 같습니다.”

물론 후장식 화포와 증기기관을 비교하면 정성국이 판단하기엔 증기기관이 더 중요하긴 했다.

유럽에서도 후장식 화포의 원리를 몰라 못 만든다기보다는 야금 기술과 금속 가공 기술이 부족하고, 제일 중요한 포탄을 제작할 수 없어 못 만들고 있는 것뿐이니.

하지만 정성국은 다른 것은 몰라도 후장식 화포를 판매한다는 선례를 만들고 싶지 않았기에 최주명의 말에 만족하며 최주명의 말을 들었느냐는 표정으로 강평화를 바라보았고, 강평화는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휴. 알겠습니다. 그러도록 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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