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74화
광동성에서 긴급 장계가 올라왔다는 말에 대전으로 향한 강희제는 장계의 내용을 확인한 후 탄식하듯 중얼거렸다.
“허. 복건 수군함대가 괴멸된 것에 이어 광동 수군함대까지 괴멸되었다고? 그것도 북미왕국 3함대는 별다른 타격이 없다?”
지금으로부터 한 달 전, 복건성에서 긴급 장계가 올라왔다.
복건성의 해안을 지키던 복건 수군함대가 괴멸되었다는 소식이었다.
이에 강희제를 비롯한 신료들은 놀랄 수밖에 없었다.
청나라는 황도의 안전과 대만의 동녕국을 견제하기 위해 수군을 정비했고, 각지에 여러 수군함대를 조직한 후로 동녕국과 여러 번 해전을 치르긴 했었지만 이런 큰 피해가 발생한 적은 없었으니까.
해서 처음 강희제와 신료들은 청나라와 조선 사이에 전쟁이 벌어졌다는 소식을 듣고 동녕국이 움직인 것으로 생각했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계속해서 올라오는 장계를 통해 상황을 파악할 수 있었는데, 복건 수군함대를 괴멸시킨 것은 동녕국의 수군이 아니었다.
돛이 없이도 이동할 수 있는 배를 보유한 나라는 오로지 북미왕국뿐이었으니까.
그동안 북미왕국과도 교역을 진행해 왔었기에 북미왕국의 아시아 지역 영토인 아이누 섬에 3함대라고 불리는 북미왕국 해군이 존재한다는 것을 떠올린 강희제와 청나라 대신들은 이들이 움직였다는 것을 깨닫고 생각보다 빠른 북미왕국의 개입에 놀랄 수밖에 없었고.
그 후 북미왕국 3함대는 해안가를 따라 남하하고 있다는 보고에 복건 수군함대와 함께 남방 해안을 담당하는 광동 수군함대가 북미왕국 3함대를 잘 막아주기를 기대했다.
분명 복건 수군함대가 북미왕국 3함대에 의해 괴멸되기는 했지만, 제대로 전투를 벌였다기보다는 야음을 틈탄 북미왕국 3함대의 일방적인 기습으로 별다른 저항을 하지 못하고 괴멸되었다고 했었으니.
하지만 광동 수군함대마저 북미왕국 3함대에 큰 피해를 입히지 못하고 괴멸했다고 하니 강희제로서는 탄식할 수밖에 없었고.
이런 강희제의 반응에 신하들이 일제히 허리를 숙이며 외쳤다.
““송구하옵니다. 황상 폐하.””
이에 강희제는 되었다는 듯 손을 내젓고 환관이 건넨 장계를 다시 꼼꼼하게 읽어본 후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북미왕국의 해군이 대단하다는 말을 서양인 신부들에게 여러 번 듣긴 했지만 이렇게 강할 줄은 몰랐군. 광동 수군함대는 3백 척 규모의 대함대 아닌가? 헌데 고작 20척 규모의 북미왕국 해군을 상대하지 못하고 괴멸당하다니...”
그동안 서양인 신부들은 북미왕국 해군이 무척 대단하다는 이야기는 여러 번 들었지만, 강희제는 그 대단함을 제대로 실감하지 못했었다.
헌데 북미왕국 3함대가 남하한다는 것을 알고 만반의 준비를 했던 광동 수군함대 역시 북미왕국 3함대에 괴멸되었고, 그렇게 격렬히 저항했음에도 불구하고 북미왕국 3함대에 큰 피해를 주지 못한 것은 충격적이었다.
장계에 따르면 배의 크기, 화력, 방어력, 그리고 기동력에서 상대가 되지 않아 광동 수군함대는 북미왕국 3함대에 일방적으로 두들겨 맞다가 괴멸했다고 하니 이걸 어떻게 상대해야 하나 막막할 수밖에 없었고.
해서 입을 다물고 있는 대신들을 바라보며 질문을 던졌다.
“광동 수군함대도 별다른 저항을 하지 못하고 북미왕국 3함대에 괴멸되었다면 다른 수군함대도 마찬가지겠지?”
“...아마도 그럴 것으로 사료되옵니다. 황상 폐하.”
대신들이 모두 침묵하자 어쩔 수 없이 입을 연 태사의 대답에 강희제는 다시 크게 한숨을 내쉬며 중얼거렸다.
“후우. 만약 북미왕국 3함대가 북상한다면 이를 막을 수 없다는 뜻인가...”
북미왕국 3함대는 복건 수군함대를 격파한 이후 해안 마을을 공격하지 않고 곧바로 남하해 광동 수군함대를 격파했다.
이는 북미왕국 3함대는 청나라 수군함대를 목표로 하고 있다는 뜻이었고, 이미 남방에 있는 수군함대를 모두 격파한 이상 북진할 것이 분명했는데, 현실적으로 이들을 막기 어렵다고 하니 절로 답답할 수밖에 없는 강희제였고.
이런 강희제의 한탄에 태사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황상 폐하. 북미왕국 해군이 강하다고는 하나 결국 수에는 장사 없는 법이옵니다. 광동 수군함대가 별다른 타격을 주지 못하고 괴멸된 것은 광동 수군함대는 북미왕국 해군을 상대하기엔 그 수가 부족했기 때문이옵니다. 하오니 모든 수군함대를 천진으로 집결시킨다면 북미왕국 해군을 막을 수 있을 것이옵니다.”
“수가 부족했기 때문이라고?”
강희제는 태사의 말에 고개를 갸웃하자 태사가 말했다.
“그렇사옵니다. 아무리 북미왕국의 화포가 빠르게 재장전할 수 있다고는 하나, 분명 일정 시간이 필요한 것이 사실이옵니다. 또한, 화포를 장전하는 것은 결국 사람이고, 포탄의 무게가 있는 만큼, 장기전으로 가면 북미왕국 수군은 지칠 수밖에 없고, 자연히 재장전 시간은 더 걸릴 수밖에 없사옵니다. 그리되면 틈은 생기기 마련 아니겠사옵니까.”
“흐음....”
“그러니 북상하는 북미왕국 3함대에 각개격파 당하기 전에 빨리 모든 수군함대를 천진으로 집결시켜야 하옵니다.”
강희제는 황도의 안전을 위해 남방과는 달리 복건 이북의 해안에는 꽤 많은 수군을 배치해두었다.
특히 발해만 안쪽에 배치된 천진 수군함대나 등주 수군함대의 경우는 다른 수군함대에 비해 그 규모도 대단했고.
이들을 모두 천진으로 집결시킨다면 거의 1천 3백 척에 달하는 규모였으며, 아무리 북미왕국 3함대가 대단하다고는 해도, 이를 다 뚫지는 못하리라고 생각한 강희제가 고개를 끄덕였을 때 다른 대신 하나가 조심스럽게 태사를 바라보며 반문했다.
“하오나 그렇게 되면 조선 정벌은 허사가 되잖소이까.”
청나라는 조선 정벌을 위해 남쪽의 병력 일부를 차출하고, 새롭게 병사를 모집해 총 10만에 달하는 병력을 지원군으로 편성해 봉황성으로 보냈다.
다만 생각보다 북미왕국으로 무장한 조선군이 강력했고, 특히 압록강 인근에 배치된 조선군은 화력이 대단했기에 청나라에서는 산동성에 배치된 등주, 교주 수군함대를 동원해 이 병력 중 일부를 조선의 수도인 한양 인근에 상륙시킬 생각이었고.
헌데 모든 수군함대를 천진으로 집결시키면 조선 정벌에 차질을 빚을 수밖에 없다는 것을 지적하자 태사는 고개를 저었다.
“조선의 수도를 직접 공격하는 방책을 사용하지 못할 뿐이오이다. 그리고 조선의 수군도 규모가 큰 편이라 순조롭게 한양 인근에 병력을 수송할 수 있을지도 의문이고.”
“하지만...”
그렇게 대신들이 의견을 나누고 있을 때, 환관이 급한 얼굴로 조심스럽게 다가와 강희제에게 장계를 건넸고.
“음? 북방에서 긴급 장계가 올라왔다고?”
강희제는 환관이 건넨 장계를 받아 펼쳐 내용을 확인하고 안색이 변했다.
“이건 또 무슨...당장 이 장계를 가지고 온 전령을 데려오라!”
그리고 강희제의 반응이 심상치 않았기에 대신들은 숨을 죽이고 강희제의 눈치를 살피기 시작했고.
그렇게 대전에 적막만이 가득했을 때, 한 병사가 몸을 벌벌 떨며 대전으로 들어와 강희제를 보고 급히 절을 했고.
강희제는 그런 병사를 보고 그럴 필요 없다는 듯 손을 내젓고 장계를 들어 올리며 물었다.
“여기 적힌 내용이 사실인가?”
이에 병사는 벌벌 떨면서 대답했다.
“그...그렇사옵니다. 황상 폐하.”
“아니. 분명 어제 알바진 요새의 사령관이 우리 대청에 항복해 알바진 요새를 접수했고, 이로 인해 북방이 안정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새로운 적이 나타나 알바진 요새를 공격했다는 건가? 그리고 이를 막지 못해 알바진 요새를 빼앗겼다고?”
강희제가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으로 반문하자 그제야 장계의 내용을 알게 된 대신들은 기겁했다.
“헉!”
“새로운 적이라니...”
이에 병사는 잔뜩 움츠러들었고, 그런 병사의 반응에 강희제는 대신들의 입을 막은 후 병사를 재촉했다.
이에 병사는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그것이...”
병사는 장계에 적혀 있지 않은 상세한 내용을 보고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강희제는 병사의 이야기를 듣다 놀란 표정을 지으며 급히 물었다.
“시베리아 부족 연합이 아라사를 물리쳤다고?”
“그렇사옵니다. 최근 아라사인들이 잠잠했던 것은 다 그 때문이었사옵니다. 그리고 아라사는 계속해서 자신들을 공격하는 연합을 감당하지 못해 그동안 자신들이 점유하고 있던 지역을 연합에 넘기는 조건으로 연합과 화친을 맺었사온데 이렇게 넘긴 지역 가운데는 알바진 요새와 흑룡강 일대도 포함되었다고 하옵니다.”
“허...”
병사의 이야기에 왜 연합이 갑자기 흑룡강 일대로 남하했고, 또 알바진 요새를 공격한 것인지 파악한 강희제는 아라사 때문에 연합과도 전쟁을 벌여야 하니 탄식을 토해냈고.
연합에서 사절을 보내 아라사와 맺은 조약을 빌미로 알바진 요새에 있던 청나라군의 철수를 종용했고, 청나라군 지휘관은 이를 받아들일 수 없다고 선언했다는 병사의 말에 강희제가 상황이 짐작된다는 얼굴로 입을 열었다.
“그래서 연합은 알바진 요새를 공격했고, 알바진 요새가 함락되었다는 건가?”
“그렇사옵니다. 황상 폐하.”
그 말에 강희제가 잠시 턱을 쓰다듬다가 질문을 던졌다.
“이해가 안 되는군. 병력의 수에서도 그리 차이가 나지 않고 우리 대청의 병력은 요새를 끼고 싸웠는데도 졌단 말인가?”
이에 병사가 즉각 대답했고.
“그게 연합은 북미왕국의 동맹이라 북미왕국의 무기로 무장하고 있었...”
병사의 대답에 강희제뿐만 아니라 대전에 있던 대신들이 화들짝 놀랐다.
“음?”
“헉!”
“잠깐. 연합이 북미왕국의 동맹이라고?”
갑자기 북미왕국의 이름이 나오자 당황한 강희제가 급히 병사에게 묻자 병사는 강희제와 대신들의 반응에 당황하면서도 곧바로 말했다.
“그렇사옵니다. 듣기로 북미왕국은 아라사에 지배받고 있던 시베리아 원주민들을 뒤에서 지원하고 규합해 시베리아 부족 연합을 만드는데 크게 기여했다고 하옵니다.”
단순한 동맹이라고 보기엔 연합의 결성에 북미왕국이 깊숙이 개입한 것처럼 보였기에 대신들은 탄식했고.
“맙소사...”
강희제는 기가 찬다는 표정으로 탄식하듯 중얼거렸다.
“허. 그 정도면 단순한 동맹이라기보단 속국이나 괴뢰국에 가깝잖은가.”
“그렇사옵니다. 황상 폐하. 그리고 연합과 북미왕국 간의 관계를 생각해보면, 연합이 흑룡강 일대로 진출하고, 아라사와 맺은 조약을 빌미로 알바진을 점령한 것이 다 계산된 행동이라 여겨지옵니다.”
“맞사옵니다. 아무리 연합이 아라사를 상대로 승리를 거둬 기세가 등등하다고는 하나, 고작 3천 명을 지휘하는 일개 장수가 어찌 대청과의 전쟁을 결정할 수 있겠사옵니까.”
태사의 말에 강희제는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그럼 북미왕국은 전쟁이 벌어지자 우리 대청을 압박하기 위해 연합마저 움직였다는 건가? 허. 그 북방항로가 열리기 전까지는 섣불리 움직이지 못할 것으로 판단했는데 북미왕국 해군이 저 남방에서 우리 대청의 수군을 공격하는 것도 그렇고, 연합을 움직여 북방마저 혼란케 하다니. 이거 생각보다 아이누 섬에 있다는 북미왕국 관리들의 권한이 큰 모양이군.”
강희제와 대신들은 북방항로가 열리기 전까지 북미왕국은 조선 문제에 크게 개입할 수 없으리라 판단했다.
한 나라, 그것도 자신들과의 전쟁을 북미왕국 국왕의 재가 없이 밑에 관리들이 결정할 수는 없다고 본 것이다.
헌데 북미왕국은 즉각 3함대를 움직여 청나라 수군을 공격하고, 또 연합을 움직여 북방에서 청나라를 압박하기 시작했으니 생각보다 아이누 섬에 있다는 북미왕국 고위 관리들의 권한이 큰 모양이고 이를 미처 짐작하지 못한 것이 크나큰 실책이었다고 한탄하는 강희제였고.
그런 강희제를 보며 태사가 입을 열었다.
“황상 폐하. 그보다 연합이 북미왕국의 괴뢰국이라면, 그리고 북미왕국이 연합을 움직인 이요가 우리 대청을 압박하기 위해서라면, 알바진 요새를 점령하는 선에서 끝날 것 같지 않다는 점이옵니다.”
“그렇사옵니다. 연합의 사절이 알바진 요새를 방문해 항복을 권고했을 때, 순순히 알바진 요새에서 물러나지 않으면 전쟁이 벌어질 것이고, 그러면 알바진 요새에서 만족하지 않고 남하하겠다고 엄포를 놓았다고 하지 않았사옵니까.”
“북방에 주둔해 있는 병력 다수가 사라진 상황이고, 연합의 병력은 북미왕국의 무기로 무장했으니, 연합이 남하하기 시작하면 이를 막을 수가 없사옵니다. 그러니 지금이라도 북방에 병력을 배치해야 한다고 사료되옵니다.”
“그렇사옵니다. 황상 폐하. 만주는 우리 대청의 발상지이온데 연합이 만주로 진격하는 것은 막아야 하지 않겠사옵니까.”
“만주뿐만 아니라 그대로 남하해 이 황도를 노릴 수도 있으니 즉각 병력을 배치해야 하옵니다. 황상 폐하.”
태사가 북방에 병력을 배치해야 한다는 말을 꺼내자 다른 대신들도 이에 동의하며 한마디씩 하기 시작했고, 강희제 역시 만약을 대비해 북방에 병력을 증원할 필요는 있다고 판단했기에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어디에서 병력을 차출해야 할지 고민스러운 얼굴로 중얼거렸다.
“그렇긴 한데...”
“연합은 북미왕국의 무기로 무장했다고 하니, 못해도 기병 2만은 북방으로 올려보내야 하지 않겠사옵니까.”
그때 태사가 슬쩍 입을 열었고, 강희제는 얼굴을 찌푸렸다.
“당장 기병 2만을 빼려면 결국 조선 정벌군에서 차출하는 방법 외엔 없지 않나. 가뜩이나 기존에 지원해주기로 했던 수군함대도 제대로 지원해주지 못하는 판에 조선 정벌군에서 병력을 차출한다? 그것도 정예병이라 할 수 있는 기병을?”
태사의 말은 결국 조선 정벌을 포기하자는 뜻이었기에 강희제가 그건 안된다는 표정을 짓자 태사가 절절한 목소리로 말했다.
“황상 폐하. 지금 봉황성으로 이동하고 있는 지원군 가운데 절반은 단순 징집한 병사들이라 전투력을 크게 기대하기는 어렵사옵니다. 여기서 기병마저 빼면 조선 정벌군은 크게 약화될 것이고, 이들만으로 4월이 되기 전에 조선을 정벌하기는 현실적으로 어렵사옵니다. 그러니...”
“조선 정벌을 포기하자는 소린가?”
“그렇사옵니다. 황상 폐하. 분명 조선이 성장하면 대청에 좋을 것이 없는 것은 사실이오나 현 상황이 너무 좋지 않게 돌아가고 있사옵니다. 조선과 긴밀한 관계인 북미왕국 때문에 말이옵니다.”
태사의 말에 다른 대신들도 수긍하는 눈치였다.
처음 조선 정벌군이 조선군에 의해 패배했을 때만 하더라도, 병력을 더 지원해주면 조선을 정벌하는 것은 가능하리라 판단했지만, 북미왕국이 개입하기 시작하면서 상황은 청나라에 무척 불리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거기에 북미왕국의 3함대가 대만 섬을 거점으로 움직이는 것을 생각해보면 이미 북미왕국은 동녕국과도 손을 잡았을 가능성이 컸고, 동녕국도 북미왕국의 무기로 무장한다면 전란은 더욱 걷잡을 수 없이 확대될 것이 분명했다.
그러니 그 전에 북미왕국과 화친을 맺어야 할 필요가 있고, 북미왕국과 화친을 맺으려면 결국 조선 정벌을 포기할 수밖에 없다는 대신들의 말에 강희제는 고심이 깊은 얼굴로 중얼거렸다.
”화친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