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73화
아이누 탐사대장은 사절의 신분으로 알바진 요새를 방문했던 병사가 돌아오자 즉각 병사를 불러 사정을 파악하기 시작했다.
“쯧. 역시 그 니키포르라는 알바진 요새 사령관이 청나라에 항복해 청나라군이 알바진 요새에 주둔하고 있었다는 건가?”
알바진 요새에 청나라군이 주둔하고 있는 까닭은 예브게니의 보좌관이 추측한 대로였기에 아이누 탐사대장이 혀를 차며 되묻자 병사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대장님. 니키포르가 10일 전쯤에 청나라군에 항복 의사를 밝혔고, 그동안 저 강 너머에서 러시아 차르국과 대치하던 청나라군의 지휘관도 최근 알바진 요새의 물자 사정이 안 좋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인지 곧바로 이 항복 제의를 받아들인 모양입니다.”
덕분에 상황이 무척 복잡해졌기에 아이누 탐사대장은 이를 갈며 질문을 던졌다.
“으득. 혹시 저 안에 니키포르가 있던가?”
“아. 그렇지 않아도 보이지 않아서 슬쩍 물어봤는데...아쉽게도 니키포르는 저 알바진 요새에 없었습니다.”
항복한 지 얼마 되지 않았기에 저 알바진 요새에 니키포르가 있을 거라 짐작했던 아이누 탐사대장은 병사의 말에 의외라는 표정을 지었다.
“음? 없다고?”
“예. 청나라군 지휘관은 니키포르가 항복하고 저 알바진 요새를 접수하자마자 항복한 니키포르를 청나라의 수도인 북경으로 보냈다더군요.”
병사의 대답에 상황을 대충이나마 짐작한 아이누 탐사대장이 중얼거렸다.
“북경으로? 흠. 그래도 이전엔 이 지역의 지배자나 다름없었으니 영향력을 제거하기 위해 북경으로 보낸 건가?”
“아무래도 그렇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니키포르도 별다른 반발 없이 북경으로 떠난 모양입니다.”
“그놈이야 우리가 이곳으로 진군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으니 내뺀 거겠지. 빌어먹을 놈.”
아이누 탐사대장의 추측처럼 니키포르는 연합의 병력이 이곳으로 진군하고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고, 연합이 이곳으로 진군하면 분명 충돌이 일어날 것으로 생각했다.
비록 청나라가 강대한 국가라고 알려져 있기는 한데, 이 북방에 주둔한 청나라의 군대는 보잘것없었으니 거침없이 러시아 차르국을 공격하던 연합이 청나라와의 충돌을 두려워하지는 않으리라고 판단한 것이다.
해서 니키포르는 청나라군 지휘관이 자신의 영향력을 지우기 위해 기왕 항복한 김에 황상 폐하께 직접 충성 맹세를 하는 것이 어떻겠냐는 제의에 오히려 기회라고 판단해 흔쾌히 응했고 말이다.
이런 사정을 대충 짐작한 아이누 탐사대장은 니키포르가 북경으로 도망쳤으니 직접 처벌하긴 글렀다는 것을 직감하고 안타까워하는 표정으로 병사에게 계속 이야기하라는 듯 손짓했고.
이에 병사는 알바진 요새의 책임자라 할 수 있는 청나라군 지휘관과의 협상 결과를 세세히 보고하자 이를 모두 듣고 아이누 탐사대장이 어깨를 으쓱했다.
“뭐 청나라가 이미 접수한 알바진 요새를 순순히 우리에게 넘겨줄 거라고야 기대하지 않았으니 그건 상관없고...알바진 요새에 병력이 얼마나 있던가?”
“정확한 것은 아닙니다만...대략 2천 명 정도 되어 보이더군요. 그리고 요새 위에는 화포가 있었고요. 청나라의 화포 같지는 않았고 아마 기존의 알바진 요새에 배치되어 있던 화포 같았습니다.”
“그래? 흐음...”
그동안 이 지역의 보급을 북미왕국에서 맡았기에 북미왕국은 이 지역의 상황을 비교적 상세히 파악하고 있었고, 당연히 아이누 탐사대장도 그에 대한 정보를 전달받았다.
그가 알기로 청나라가 이 지역에 배치한 병력은 3천 명 수준이었으니 저 알바진 요새에 2천 명이 주둔해있다면, 저 강 건너 청나라군의 진영에는 1천 명 정도가 있겠구나 싶어 고개를 끄덕인 후 다시 병사를 보고 물었다.
“또 보고할 것은 없나?”
“아. 그러고 보니 저와 대화를 나눴던 청나라군 지휘관이 그러더군요. 3일 안에 이 일대에서 물러나지 않는다면 저희 연합이 청나라를 적대하는 것으로 받아들이겠다고요.”
병사의 말에 아이누 탐사대장은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중얼거렸다.
“거참. 청나라군 지휘관은 우리 연합의 전력을 얕보고 있는 건가? 청나라의 이름을 들먹이며 협박이라니...”
그 말에 직접 알바진 요새를 방문해 분위기를 살폈던 병사가 고개를 저었다.
“청나라군이 저희를 얕보고 있는 것은 아닐 겁니다. 청나라군 지휘관과 대화를 나누며 느낀 것은 청나라군 지휘관이 은근히 연합을 경계하고 있다는 것이었으니까요. 그리고 알바진 요새에는 러시아인들도 꽤 있었고, 이들에게 이런저런 정보를 캐낸 모양인지 알바진 요새 안쪽의 분위기도 꽤 무거운 편이었으니까요. 그런 것을 종합해보면 저에게 통보한 청나라군의 지휘관은 아마 청나라의 이름으로 저희를 압박해 물러나게 하려는 속셈으로 보는 것이 나을 겁니다.”
“그런가?”
병사의 의견에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고 시선을 돌려 물끄러미 저 멀리 있는 알바진 요새를 바라보는 아이누 탐사대장이었고, 그런 아이누 탐사대장의 반응에 옆에 있던 부관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어쩌시겠습니까. 대장님.”
부관의 물음에 결국 마음을 정한 아이누 탐사대장은 어깨를 으쓱하며 대답했다.
“이 상황에서 물러날 수는 없지.”
러시아 차르국과의 조약으로 그동안 러시아 차르국의 영역이던 이 지역 일대는 이제 연합의 영역이 되었는데 청나라에서는 이를 인정하지 않고 알바진 요새를 계속 점유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청나라와의 충돌을 우려해 네르친스크로 물러나면 이 지역 일대를 포기한다는 뜻과도 같았고, 특히 청나라군 지휘관이 청나라의 이름까지 들먹이며 물러나라고 엄포한 상황에서 연합이 물러나게 되면 청나라나 주변 부족들이 연합을 얕잡아 볼 테고, 그렇게 되면 여러모로 곤란했다.
또한, 북방의 청나라 세력이 비교적 약한 탓에 연합이 알바진 요새를 점령하더라도 청나라에서 시비를 걸지는 않으리라고 예상했지만, 만약 청나라가 아무르 강 일대는 자신의 영토라 주장하며 연합에 물러날 것을 요청한다면, 그래서 청나라와 분쟁이 벌어지면, 투란은 아이누 탐사대장에게 상황을 봐서 아예 북방의 청나라 세력을 일소하고 남하해도 된다고 이야기하기도 했었으니.
어차피 연합은 북미왕국이 조선을 도와 청나라와 전쟁을 치를 거라는 이야기를 듣자마자 은혜를 갚기 위해 청나라에 선전포고하려 했었고, 쿠나킨에게 듣기로 강이 얼어붙는 한겨울이 되면 청나라는 조선을 침공할 것이 확실하다 했으니 시기상 청나라는 이미 조선과도 전쟁 중인 상황이라 연합이 청나라를 공격한다고 해도 청나라는 제대로 대응하지 못할 거라는 확신도 계산도 있었기에 투란은 아이누 탐사대장에게 상황을 봐서 아이누 탐사대장의 판단으로 청나라를 공격해도 된다고 미리 말해둔 것이다.
그러니 딱히 걸릴 것이 없는 아이누 탐사대장은 알바진 요새를 공격하겠다는 마음을 굳히고 부관에게 이를 이야기하자 부관이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고 아쉬운 기색으로 중얼거렸다.
“어휴. 이럴 줄 알았으면 병력을 모두 데리고 올 것을 그랬습니다.”
비록 무장을 해제하긴 했지만, 서쪽으로 이동하는 러시아인들을 감시, 혹은 보호할 필요가 있었기에 병력 일부를 조금씩 남겨두면서 동진했고, 그렇기에 이르쿠츠크에서 출발할 때만 하더라도 총 5천 명의 병력은 어느덧 3천 명에 불과했기에 부관이 아쉬워하자 아이누 탐사대장이 고개를 저었다.
“괜찮아. 고작 2천 명의 청나라군을 상대하는 건데 지금 이 정도 병력만으로도 충분하지. 그리고 공성전은 병사의 숫자보다 화포의 수가 더 중요하고.”
“그렇긴 하겠군요. 허면 바로 전투 준비를 할까요?”
이에 아이누 탐사대장은 품 안에서 시계를 꺼내 확인하고 입을 열었다.
“흠. 일단 곧 정오니 병사들에게 밥부터 먹이게. 청나라군도 화포를 쓰기 때문인지 저 알바진 요새는 꽤 견고해 보이고...다른 거점 요새와는 달리 저걸 무너뜨리려면 시간이 조금은 걸릴 것 같으니까.”
“알겠습니다. 대장님.”
부관의 대답을 들은 아이누 탐사대장은 시선을 돌려 알바진 요새를 방문했던 병사를 바라보고 말했다.
“아. 그리고 미안하지만, 자네는 저곳을 한 번 더 다녀와야겠네.”
* * *
“이 알바진 요새와 아무르 강 일대는 러시아 차르국이 점유하고 있던 영토였고, 조약에 따라 이제는 연합의 영토가 되었는데 귀국은 연합의 영토를 불법적으로 점유하고 있으며, 모든 사정을 설명했는데도 불구하고 이를 의도적으로 무시하며 연합의 영토를 계속 점유하고 있는 귀국의 행태를 그냥 두고 볼 수 없다는 것이 아국의 입장입니다. 따라서 우리 연합은 아국의 영토를 되찾기 위해 군사적인 행동도 마다하지 않을 생각이라는 것을 알립니다.”
협상을 마치고 연합의 진영으로 돌아갔던 연합의 사절이 다시 백기를 들고 방문했을 때, 청나라군 지휘관은 혹시나 하는 기대감이 있었다.
하지만 다시 방문한 연합의 사절이 늘어놓은 말은 일종의 선전포고나 다름없었기에 청나라군 지휘관은 탄식이 섞인 신음을 흘렸고.
“으음...”
“그러니 한 시간을 드리겠습니다. 한 시간 안에 귀국이 이 알바진 요새에서 물러날 뜻을 밝힌다면, 우리는 공격을 멈추고 귀국의 병사들이 철수할 때까지 기다리도록 하겠습니다.”
청나라군 지휘관은 그 말에 연합의 사절을 바라보며 반문했다.
“만약 철수할 뜻이 없다면?”
“우리 연합과 귀국 청나라 간에 전쟁이 벌어지겠지요. 그렇게 되면 우리 연합은 이 알바진 요새에서 멈추지 않을 겁니다.”
자신감이 넘치는 사절의 말에 청나라군 지휘관은 슬며시 분노하며 목소리를 높였다.
“허. 당신네들은 우리 대청을 우습게 보는군! 우리가 그런 협박에 굴복할 거라 보이는가!”
이에 연합의 사절은 어깨를 으쓱이며 전할 말은 이것이 전부라며 청나라군 지휘관에게 인사한 후 집무실을 나갔고, 연합의 사절이 나가기 전까지만 해도 분노를 터트렸던 청나라군 지휘관은 이 상황이 골치 아프다는 듯 머리를 부여잡았다.
“끙...”
그리고 옆에 있던 부장은 무척 걱정된다는 표정으로 청나라군 지휘관을 바라보며 말했다.
“장군. 지금 상황에서 연합과 전쟁이 벌어지면 곤란하지 않습니까? 차라리 저들의 권유를 받아들여 이곳에서 철수하는 것이...”
아직 남쪽에는 반란군이 남아있었고, 동쪽에선 조선과 전쟁 중인 상황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북방이 다시 어지러워지면 자신들뿐만 아니라 청나라가 흔들릴 수도 있었다.
특히, 니키포르나 아라사인들에게 들어보니 아라사가 연합에 속절없이 밀렸다는 것을 보면 연합의 세력도 꽤 강대하지 않을까 싶었으니까.
하지만 청나라군 지휘관은 고개를 저었다.
“이미 황도에 알바진 요새를 확보했다는 승전 장계까지 올렸는데 물러나라고? 그것도 이번에 처음으로 그 존재를 알게 된 연합과의 충돌이 두려워서? 그럴 수는 없네.”
“으음...”
그의 말마따나 이 상황에서 그냥 알바진 요새를 연합에 넘겨준다면 청나라군 지휘관의 출세는 물 건너갈 테고, 자연히 그의 부장인 자신도 출셋길이 막히는 것이나 다름없었기에 그저 신음만 흘렸고.
그런 부장의 반응에 청나라군 지휘관이 말했다.
“물론 저 연합이 북미왕국의 무기로 무장했다고는 하나 이 알바진 요새는 무척 견고하니 저들도 쉬이 이 요새를 무너뜨리지는 못할 걸세. 그러니 이 요새에서 철저히 항전해 저들을 막도록 하겠네.”
“알겠습니다. 장군. 허면 병사들에게 전투를 준비하라고 일러두겠습니다.”
그 말에 청나라군 지휘관은 고개를 끄덕이며 그도 병사들을 독려하기 위해 집무실을 나섰고.
정오가 지나자 요새 밖에 주둔한 연합의 병력은 진형을 이루고 요새로 접근하기 시작했기에 청나라군 지휘관은 급히 요새 위로 올라왔다.
“장군! 저기 보시지요!”
화포 사정거리의 바깥쪽에서 진군을 멈춘 연합의 병력 사이로 마차 위에 올려진 화포가 보이자 청나라군 지휘관은 신음을 흘렸다.
“으음...역시 저들도 화포를 지니고 있었군. 다행이라면 그 숫자가 많지 않다는 점인가.”
대략 보아하니 연합의 화포는 20문 정도였고, 이곳 알바진 요새에 설치된 화포는 그보다 많았기에 청나라군 지휘관이 안도하고 있을 때.
‘퍼퍼퍼퍼펑!’
멀리서 굉음과 함께 연합의 화포가 불을 내뿜었고, 이를 보고 청나라군 지휘관이 비웃었다.
“하. 그렇게 자신만만하더니 제대로 된 거리조차 가늠하지 못하는 잡병에 불과...”
“어?! 어어?!”
적들이 쏜 포탄이 예상외로 요새까지 날아왔기에 부장이 놀란 표정으로 포탄을 바라보았을 때.
‘콰콰콰콰쾅!’
굉음과 함께 포탄이 터졌고, 이에 청나라군 지휘관과 부장은 기겁했다.
“헉! 자...장군”
“뭔가! 이 폭발은! 설마 화약통이라도 맞은 건가?”
청나라군 지휘관이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묻자 부장이 고개를 저으며 요새 밖의 땅을 가리키며 소리쳤다.
“아닙니다! 저기 보십시오. 파헤쳐진 땅을! 적들이 날린 포탄이 폭발한 겁니다!”
“포탄이 폭발한다고? 이런 말도 안 되는...”
물론 청나라군 지휘관도 북미왕국의 무기에 관한 이런저런 소문을 듣긴 했지만, 변방에 있었기에 제대로 된 소문을 듣지는 못했고, 그 때문에 작열탄에 관한 정보도 없었다.
그렇기에 청나라군 지휘관은 포탄이 폭발한 것 같다는 부장의 말을 도저히 믿기 어렵다는 표정을 지었을 때 멀리서 다시 섬뜩한 포성이 들려왔고.
“헉! 어떻게 벌써 다시 발사를!”
너무나도 빠르게 재장전을 마친 후 다시 화포를 발사하는 연합의 화포를 보고 청나라군 지휘관이 기겁하며 이를 바라보고 있을 때 부장이 급히 청나라군 지휘관의 팔을 붙잡으며 몸을 숙였다.
“위험합니다! 장군님!”
‘콰콰콰콰쾅!’
연합의 포탄이 청나라군 지휘관이 있던 근처로 날아와 폭발했고, 요새 위에 있던 청나라군 병사들은 그 폭발에 휘말려 상처를 입거나 그 충격으로 요새 위에서 떨어졌다.
“끄아악!”
“아악!”
“내 다리...”
그리고 청나라군 지휘관은 그 아비규환의 참상을 확인하고 입을 크게 벌리며 부들부들 몸을 떨었다.
“마...맙소사...이...이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