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71화
이른 아침부터 일어나 차가운 삭풍을 견디며 압록강 너머를 경계하던 어영청 병사들은 교대 시간이 되자 얼어붙은 몸을 녹이기 위해 식당으로 향했다.
헌데 식당에 들어서자 병사들은 고개를 갸웃했다.
어째 식당의 분위기가 평소와는 많이 달랐기에.
그리고 병사들은 아침 식사를 받아들고 나서 식당의 분위기가 왜 평소와는 다른지 알 수 있었다.
아침부터 삼계탕이 나왔고, 그 삼계탕을 받아 이동하려는 데 각종 찬과 부식 거리를 왕창 내주었으니까.
이에 병사들은 이게 웬 횡재냐 싶어 바로 받아 이를 먹기 위해 식당 한쪽에 앉으면서도 무언가 이상한 느낌이 들어 입을 열었다.
“와. 뭐가 이리 많아?”
“그러게. 물론 평소에도 식사가 잘 나오긴 했는데...오늘은 특별한데? 보통 이런 고기는 점심에 나오잖아?”
“거기에 다른 찬이나 부식도 평소보다 몇 배는 많이 줬는데? 오늘 무슨 날인가?”
병사들이 그런 의문을 품고 있을 때 그 옆자리에 앉아 식사하고 있던 호리호리한 병사가 웃으며 말을 건넸다.
“아. 오늘이 새해라더라.”
이에 병사들은 어리둥절했고 염소수염이 인상적인 한 병사가 호리호리한 병사의 말에 반박했다.
“엥? 그게 무슨 소리여? 아직 11월에 불과한데?”
“우리는 그렇지. 근데 북미왕국은 우리와 날짜를 좀 다르게 계산한다고 하더라. 그래서 북미왕국인들에게 오늘이 새해이고...북미왕국에선 새해가 가장 큰 명절이래. 그래서 북미왕국은 명절에도 조선에 파견된 병사들을 위해 수송선에 물자를 가득 실어 보냈다고 하더라고.”
하지만 염소수염 병사는 아직 의문이 풀리지 않았는지 고개를 갸웃하며 다시 질문을 던졌다.
“음...오늘이 북미왕국인들에게 특별한 날이라는 것은 이해했어. 헌데 왜 우리에게까지 이런 푸짐한 식사를 준 건데? 여기에는 북미왕국의 병사가 한 명도 없잖아?”
염소수염 병사의 의문에 다른 병사들도 고개를 끄덕였다.
이곳에 북미왕국 병사들이 일부라도 주둔하고 있다면 또 모를까, 북미왕국 병사들은 압록강 하류인 용암포 부근에서 혹시 남하할지도 모르는 청나라군을 경계하고 있었고, 이곳 의주에는 조선군뿐이었으니.
이에 호리호리한 병사는 묘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그게 동맹으로 함께 청나라군과 싸우고 이 북방에서 고생 중인데 보급품으로 차별하지 말라는 본국의 명령이 있었다면서 이것들을 주고 간 모양이야.”
“아. 어제 왔었던 그 보급 물자들이 그럼 이거였어?”
손뼉을 치며 묻자 호리호리한 병사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게 다 오늘 보급될 물자들이래. 그래서 오늘은 점심과 저녁에도 이렇게 푸짐하게 나올 거라더라. 끼니마다 고기도 나올 거라고 했고.”
그 말에 병사들은 점심과 저녁이 새삼 기대되면서도, 이렇게 병사들의 보급에 신경 쓰는 북미왕국이 새삼 놀라워 감탄했다.
“허...놀랍네.”
“그러게 말이여. 전쟁터에 나와 매 끼니 고기를 먹을 줄 누가 알았겠어.”
그러면서 병사들은 하나둘 숟가락으로 뜨끈한 삼계탕의 국물을 마시며 탄성을 질렀다.
“크으...”
“좋네. 몸이 녹아내리는 기분이야.”
“닭고기도 잘 삶아졌는데?”
“그러게. 맛있다.”
그렇게 병사들은 정신없이 삼계탕을 먹기 시작했고, 어느 정도 배를 채웠을 때 염소수염 병사가 들고 있던 닭 다리를 내려놓으며 입을 열었다.
“근데 진짜 북미왕국이 부유하긴 한가 보네.”
“넌 세계신문도 안 읽어봤냐? 거기에 실린 북미왕국을 다녀온 선비들이 쓴 기행기들을 보면 암만 봐도 북미왕국은 세상에서 가장 부유한 국가 같던디...”
“그렇지. 북미왕국 백성들은 매일 고기를 먹는다며 놀라는 내용이 많으니까.”
“그뿐인가? 아이들은 그 비싼 설탕으로 만든 각종 다과를 하도 사 먹다 보니 부모들은 아이의 이가 썩을까 걱정한다는 내용도 많고.”
처음 세계신문이 발행되었을 때만 하더라도 북미신문의 내용을 적당해 재구성해 붙이는 수준이었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자체적인 기사도 점차 늘어나기 시작했는데 이러한 기사 중 가장 지분을 많이 차지하는 것이 바로 매년 북미왕국을 다녀온 사절단 일원들이 쓰는 북미왕국 기행기였다.
조선 백성들은 북미왕국에 큰 호감을 느끼고 있었기에 북미왕국의 백성들이 어떻게 사는지 궁금해하는 편이라 이러한 기행기가 큰 인기를 끌었고, 그 때문에 세계신문은 이러한 기행기를 계속해서 싣고 있었다.
더불어 신문의 발행에 관여하는 개화파 관리들은 북미왕국의 생활상을 알림으로써 조선 백성들에게 북미왕국을 본받아 개혁하다 보면 우리도 언젠간 이처럼 부유하게 살 수 있다는 뜻을 전할 의도로 이러한 기행기를 계속 세계신문에 싣도록 적극적으로 도왔고.
그렇기에 병사들은 은연중에 북미왕국이 무척 부유하다는 인상을 받을 수밖에 없어 염소수염의 말에 당연한 것 아니냐는 듯 타박하자, 옆자리에 있던 호리호리한 병사가 슬쩍 입을 열었다.
“아. 그러고 보면 전에 되놈들이 도망치고 잠깐 용암포에 머문 적이 있었잖아? 그때 북미왕국 병사와 얘기를 좀 해봤거든?”
“무슨 얘기?”
“뭐 세계신문에 나온 북미왕국 이야기를 하면서 이게 진짜냐, 뭐 이런 얘기들.”
이에 병사들은 먹는 것도 멈추고 호기심 어린 눈초리로 호리호리한 병사를 바라보며 답을 재촉했다.
“그래? 그래서 뭐라던?”
“북미왕국의 백성들은 진짜 그렇게 부유하대?”
이러한 질문 세례에 호리호리한 병사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북미왕국 병사들이 그러더라고. 대부분은 사실이라고. 물론 자신들은 본토에 간 적은 없는데 변방인 자신들도 그렇게 사니 본토 백성들도 그럴 거라던데?”
“허...”
“와...”
북미왕국의 백성들은 정말 부유하게 산다는 이야기에 병사들이 탄성을 질렀을 때 호리호리한 병사가 덧붙여 말했다.
“그리고 그때 대화하다 보니 정말 놀랐던 게 북미왕국 병사들은 이곳에 파견되었기에 월봉을 2배나 받는다더라.”
그 말에 병사들의 눈빛이 변하며 호리호리한 병사를 바라보았다.
“뭐? 정말로?”
“북미왕국의 병사들은 돈도 많이 받는다면서? 근데 거기서 더 받는다고?”
염소수염 병사가 도저히 믿기 어렵다는 듯 되물었다.
북미왕국의 병사들은 자신들보다 몇 배나 더 많은 급료를 받는다는 이야기는 무척 유명했고, 염소수염 병사 역시 그 이야기를 듣고 엄청 부러워한 적이 있었는데 그보다 더 받는다니 이게 말이 되나 싶어서 말이다.
이에 호리호리한 병사는 그런 염소수염 병사의 심정을 다 이해한다는 표정으로 대답했다.
“그래. 전쟁터에 나왔으니 위험수당이라는 게 붙는데 그게 거의 2배에 달한다던데? 거기에 전투에 참여할 때마다 추가 수당이라는 것을 준대. 그래서 이번 전쟁이 끝나면 한몫 단단히 챙길 수 있다고 하더라고. 그러니 북미왕국 병사들은 굳이 전리품에 연연하지 않는 거지.”
그 말에 전장 정리를 할 때 자신들과는 달리 시체를 뒤지지 않던 북미왕국 병사들을 떠올린 병사들은 하나둘 부러움이 섞인 표정을 지을 수밖에 없었고.
“끙...그건 좀 부러운데?”
똑같이 목숨을 걸고 싸우는데 자신들은 박봉을 받고 북미왕국 병사들은 두둑하게 돈을 받으니 배가 아플 정도로 부러웠던 염소수염 병사가 그렇게 투덜거리자 다른 병사들도 고개를 끄덕였고.
이는 호리호리한 병사도 똑같은 심정이었기에 이러한 분위기에 공감하며 입을 열었다.
“그렇지. 물론 우리도 예전보다 사정이 좀 나아지기는 했는데...박봉인 것은 마찬가지잖아? 그래서 애들을 배불리 먹이려면 마누라도 쉬지 않고 삯바느질을 해야 하고. 근데 북미왕국 병사들은 월봉도 많이 받고, 아이들이 많으면 나라에서 돈까지 준다고 하니...”
그 말에 병사들이 의아한 표정으로 되물었다.
“뭐?”
“돈을 준다고?”
“나라에서?”
“아! 나도 그런 소문 들었어. 연금이라고 했던가? 근데 그걸 진짜 준다고?”
한 병사가 아는체하며 연금을 입에 올리자 호리호리한 병사는 고개를 끄덕이며 자신이 들었던 연금 제도에 대해 병사들에게 이야기했고.
이를 듣고 병사들은 도저히 믿기 어렵다는 반응을 보였다.
“아니. 아무리 인구가 부족해도 그렇지, 애를 낳으면 나라에서 잘 키우라고 돈을 준단 말이야? 그게 말이 돼?”
“맞아. 그리고 나는 세계신문이 발행될 때부터 쭉 봐왔지만, 나라에서 돈을 준다는 얘기는 못 본 것 같은데?”
나라에서 각종 명목으로 돈을 걷어가면 걷어갔지, 돈을 나눠준다는 것은 병사들로서는 상상하기 힘들기도 했고, 정말로 북미왕국에서 백성들에게 돈을 준다면 그러한 내용이 세계신문에 실리지 않을 까닭이 없었기에 헛소리 아니냐고 병사들의 의문을 표하자 호리호리한 병사는 슬쩍 주변을 돌아본 후, 목소리를 낮추며 말했다.
“세계신문에 연금에 관한 기사가 실리지 않은 건 당연한 거야. 지금도 개항장엔 북미왕국으로 이주하기 위해 모여드는 사람이 넘친다던데, 이 연금 제도가 알려지면 더 많은 사람이 북미왕국으로 이주하려 들지 않겠어? 그러니 쉬쉬하는 거지.”
“아...”
북미왕국과 교류한 이후 북미왕국은 개항장을 통해 꾸준히 조선의 유민들을 흡수했고, 북미왕국이 부유하다는 사실과 북미왕국으로 이주하면 커다란 땅을 받을 수 있다는 소문이 돌면서 소작농들이 북미왕국으로의 이주를 희망하며 개항장으로 몰려들었다.
그러다 보니 개항장에는 북미왕국으로 이주하려는 사람들이 넘쳐났고, 기존의 양반들은 자신들의 땅을 일굴 소작농들이 사라져 자칫하면 땅을 놀릴 판이라, 소작농을 구하기 위해 예전에 비하면 훨씬 후한 조건으로 소작을 주기 시작했다.
이것과 약 10년 전 원상이 가져와 퍼트린 감자, 고구마 같은 구황 작물로 인해 최근엔 소작농들도 배불리 먹을 수 있었기에 소작농들조차 북미왕국과 교류하며 많이 나아졌다고 공공연히 이야기할 정도였고, 반대로 양반들은, 특히 지방의 양반들은 불만을 품긴 했지만, 북미왕국에 우호적인 도성의 분위기를 모르지 않았기에 이 불만들을 삭이고 있었고.
그리고 조선의 조정 대신들도 이러한 상황은 잘 알고 있었지만, 한창 북미왕국과의 지원이 절실한 상황에서 이주 문제를 건드리기엔 부담이 컸고, 소작농들에게 조금 후한 조건으로 소작을 준다 한들 자신들은 큰 부담이 없었으니 유민들뿐만 아니라 일부 양민들도 개항장을 통해 북미왕국으로 빠져나가는 것을 모른 척하고 있었다.
다만 세계신문에서 북미왕국의 연금 제도를 언급하면 더 많은 백성이 북미왕국으로 이주하려 들 것이 뻔했고, 그럼 지방의 양반들이 격하게 반발할 것이 우려되어 연금 제도에 관한 내용은 모두 빼버리는 조치만 취했고.
어영청 병사들 역시 한양에 살다 보니 여러 소문을 통해 지방의 사정이나 이러한 분위기를 모르지는 않았기에 호리호리한 병사의 추측에 일리가 있다고 여겨 자신들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고, 그런 병사들의 반응에 호리호리한 병사가 다시 입을 열었다.
“그리고 자네도 세계신문을 봤으면 북미왕국의 땅덩어리가 얼마나 큰지 알 거 아니야. 우리 조선에 수십 배라던데 그 넓은 땅에 인구가 천만 명에 불과하니 나라에선 어떻게든 인구를 늘리기 위해 애를 낳도록 경제적으로 지원하는 게 꼭 이상할 것도 아니지. 북미왕국은 부유한 나라기도 하니까 말이야.”
“허...”
이러한 설명에 병사들은 아이가 많은 백성에게 연금을 지급하는 북미왕국의 사정을 머리로는 이해하면서도, 조선과는 상황이 너무 달랐기에 놀란 표정을 감추지 못했고.
호리호리한 병사는 그런 병사들의 반응에 슬쩍 덧붙여 말했다.
“내가 용암포에서 대화를 나누었던 병사에게 듣자니 애가 5명만 되더라도 나라에서 나오는 연금이 있어서 일하지 않더라도 굶을 걱정은 없다더라. 그리고 애가 7명이면 자기 월봉과 비슷할 정도의 연금이 나올 거라던가?”
“그...그렇게나 많이 준다고?”
일부가 놀라고 있을 때, 병사 중 일부는 눈을 빛내며 주변을 둘러보고 목소리를 낮춰 질문을 던졌다.
“그건 무조건 주는 거야? 그러니까 북미왕국으로 이주하면 누구나?”
최근 조선의 경제 사정은 예전과 비교하면 확실히 나아졌고, 그 때문에 괜히 입을 줄이겠다며 아이를 낳지 않는 경우는 없었다.
그러니 이들도 자식들이 서넛씩은 있었고, 가족들과 함께 북미왕국으로 이주하면 이 연금이라는 것을 받을 수 있지 않을까 싶어 질문하자 호리호리한 병사가 묘한 표정으로 그들을 바라보다 조심스럽게 대답했다.
“듣기로 이주하자마자 연금을 지급하는 것은 아니고...이주 후 3년? 그때쯤에 정식으로 북미왕국의 백성으로 인정하면서 연금을 지급한대. 아. 물론 아이가 여럿 있어야겠지만.”
“흐음...”
“그래서 난 이번 전쟁이 끝나면 북미왕국으로 이주할 생각이야. 뭐 예전부터 북미왕국으로 이주하는 게 낫지 않을까 했는데 걸리는 점도 많았거든. 괜히 먼 타향으로 떠났다가 고생하지 않을까 걱정스럽기도 했고. 헌데 이번에 북미왕국 병사와 대화해보고 마음을 굳혔어. 똑같은 일을 하더라도 북미왕국에선 더 풍족하게 살 수 있을 것 같았거든. 그리고 북미왕국으로 이주하는 게 가족들에게도 나을 것 같고 말이야.”
그 말을 끝으로 호리호리한 병사는 다시 수저를 들어 얼마 남지 않은 삼계탕을 먹기 시작했지만, 다른 병사들은 삼계탕이 식는데도 이를 먹을 생각을 하지 않고 복잡한 얼굴로 고민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