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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을 탈출하라-570화 (570/850)

570화

새한성을 비운 후 쌓여 있던 보고서를 처리하기 위해 한동안 고생했던 정성국은 마침내 모든 보고서를 처리하고 감격에 겨워 잠시 휴식을 취하기로 마음먹었다.

물론 오늘 올라온 보고서가 꽤 남아있긴 하지만 급한 보고서는 없었으니.

해서 정성국은 잠시 쉴 겸 점심 즈음에 하얀 들꽃이 가져다준 고구마를 화로에 구우며 여유를 부리고 있었고.

고구마가 노릇노릇하게 구워져 달콤한 냄새를 풍기기 시작했을 때 누군가가 집무실의 문을 두드렸고, 집무실로 들어온 연구청장은 화로에 고구마를 굽고 있는 정성국의 모습에 웃음을 터트리며 정성국에게 다가왔다.

“하하하. 망중한을 즐기시는 겁니까? 아니면 출출하셨던 겁니까?”

“아무래도 전자에 가까울 걸세. 고구마야 입이 심심하기도 하고 찬바람이 불어오니 갑자기 당겨서 굽는 거고. 아무튼, 잘 왔네. 많이 구웠으니 자네도 하나 들게.”

“마침 출출했는데 잘 되었군요. 감사합니다. 전하.”

그렇게 연구청장은 정성국이 건넨 군고구마와 커피를 마시며 잠시 잡담을 나누다 정성국의 집무실을 방문한 용건을 이야기했고, 정성국은 연구청장의 이야기에 반색했다.

“아. 전화기 제조 공방의 추가 확장 공사가 모두 마무리되었다고?”

“그렇습니다. 전하.”

“그것참 반가운 소식이로군. 한 3일 전인가? 저기 쌓여 있던 보고서 중에 자동교환기 제조 공방을 완공했다는 보고서도 있었던 것 같았는데...”

정성국이 슬쩍 집무실 책상을 바라보며 그렇게 이야기하자, 정성국이 새한성을 오랫동안 비워둔 덕분에 한동안 고생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연구청장이 웃음을 터트렸다.

“하하하. 예. 맞습니다. 전하께서 새한성을 비우셨을 때 자동교환기 제조 공방이 완공되어 그에 관련된 보고서를 올렸었지요.”

이에 정성국은 고개를 끄덕이며 3일 전에 보았던 보고서의 내용을 머릿속에 떠올리며 입을 열었다.

“흠. 자동교환기는 한창 생산 중이라고 했고 이번에 전화기 제조 공방의 확장 공사가 끝났으니...해가 바뀌면 바로 민간에 통신망을 개방해도 되겠는데? 기존의 전화기를 신형 전화기로 교체하는 데 한 달이면 충분하잖나?”

일단 전화기는 관에서만 사용했기에 교체해야 할 전화기의 숫자가 그리 많지 않았고, 전화기 제조 공방의 확장 공사가 끝났으니 한 달 안에 관에서 사용하던 기존 전화기를 교체할 만한 숫자의 신형 전화기를 충분히 생산할 수 있으리라 판단한 정성국이 연구청장에게 묻자 연구청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해서 슬슬 북미신문을 통해 전화기의 존재를 알릴 생각입니다. 이미 기사들도 준비해 두었기에 다음 주 북미신문에는 전화기와 관련된 기사가 실릴 겁니다. 동시에 광고도 실릴 예정이고요.”

이에 정성국은 커피를 마시다 히죽 웃으며 말했다.

“당분간 조용한 곰이 다른 대사들에게 조금 시달리긴 하겠군.”

그동안 유럽 대사들은 북미왕국의 정보 전달 속도가 무척 빠르다는 사실에 놀라며 북미왕국이었기에 정보를 빠르게 전달할 수 있는 기물이 존재하지 않을까 하는 의심을 품어왔다.

그리고 점차 여러 관청에 전화기가 설치되면서 관리들에 의해 전화기에 관한 소문이 알음알음 퍼지기 시작한 만큼, 북미왕국의 정보를 수집하기 위해 노력하는 유럽 각국의 외교관들은 전화기의 존재를 인지하고 있을 수도 있었고.

그러나 소문만으로 정보를 수집하는 것에는 한계가 있을 테니 전화기의 자세한 성능을 모를 테고, 그런 만큼 유럽의 외교관들은 북미신문에 실린 전화기와 관련된 기사를 보고 놀라면서도, 북미신문에 기사까지 실렸으니 안면 있는 외무청 관리들을 붙잡고 수많은 질문을 퍼부으며 조금이라도 자세한 정보를 확보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 뻔히 짐작되었고, 이 질문 공세는 외무청장인 조용한 곰 역시 피하기 어렵다는 사실을 잘 아는 정성국이 입가에 미소를 띠며 그렇게 이야기하자 연구청장이 웃음을 터트렸다.

“하하하. 분명 그럴 겁니다. 저들이 보기엔 무척 신기할 테니 말입니다. 그리고 어떻게든 전화기를 대사관에 설치해 달라고 조용한 곰을 들들 볶겠지요.”

이에 정성국은 피식 웃으며 입을 열었다.

“확실히 그렇긴 하겠군. 자네가 조용한 곰에게 미리 이야기해두게. 대사관에도 전화기를 설치해줄 테니 괜히 시달리지 말라고. 솔직히 대사관은 따로 시종을 부리니 전화기가 굳이 필요할 것 같지는 않은데...”

“예? 대사관에 전화기를 설치하신다고요?”

정성국은 자신의 말에 화들짝 놀란 연구청장을 보고 왜 그리 놀라냐는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뭘 그리 놀라나. 이미 전구, 냉장고 등도 설치해주었는데 여기서 전화기를 설치해주는 것쯤이야...”

이에 연구청장은 조금 답답하다는 표정으로 대꾸했다.

“그래서 걸핏하면 대사관의 전구가 파손되거나 없어지지 않습니까! 거기에 전에는 잉글랜드 대사관에 설치한 냉장고를 잉글랜드인들이 임의로 분해하다 큰 사고가 나기도 했고요.”

처음에는 전기 기술을 지키기 위해 대사관에는 아예 배전 공사조차 하지 않으려 했었지만, 어차피 새한성의 각 가정에도 전기를 공급하는데 대사관에만 전기를 공급하지 않는 것도 우스웠고, 전등의 경우 촛불을 켜 대체할 수 있었지만, 냉장고의 경우는 사정이 조금 달랐다.

물론 북미왕국의 수도인 새한성이니만큼, 신선한 식재료를 구하기도 쉬운 편이기는 한데 보관이 힘들어 바로 조리하지 않는다면 상할 우려가 있었으니까.

그리고 정성국이 생각하기에 대사관에 전기를 공급하고, 그래서 유럽의 외교관들이 전기를 이용해 작동하는 물건을 합법적으로 구할 수 있다 하더라도 과연 이를 분해해 전기 기술을 습득할 수 있을지는 회의적이었고.

해서 정성국은 청장들이 반대해도 대사관에 배전 공사를 하고 전기를 공급하라고 명령을 내렸는데, 그 이후로 대사관에 장착한 전등들은 수시로 깨지거나 전등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북미왕국의 기술자들이 전기는 위험한 만큼, 함부로 전깃줄이나 전기로 동작하는 물품들을 분해하지 말라고 경고했지만, 대사관에서, 그리고 북미왕국에서 생활하면서 전기가 얼마나 편리한지 뼈저리게 깨달은 유럽인들은 전기 기술의 실마리라도 얻기 위해 위험을 감수한 것이다.

다만 냉장고의 경우는 암모니아를 냉매로 사용했기에 임의로 분해하다 이 암모니아가 새어 나오기라도 하면 큰 사고가 발생하는 터라 북미왕국의 기술자들은 절대 냉장고를 분해하지 말라고 수차례 경고했었기에 섣불리 손을 대지 않았는데, 잉글랜드인들은 생각보다 용감했는지 이런 북미왕국의 경고를 무시하고 냉장고를 분해하려 들었고, 그 과정에서 암모니아가 새어 나와 시종 2명과 외교관 한 명이 암모니아에 의해 화상을 입기도 했었다.

그나마 북미왕국의 경고 때문에 잔뜩 긴장했었기에 냉장고를 분해하다 매캐한 냄새가 나자마자 이상하다 싶어 도망쳤으니 다행이었지, 아니었다면 정말 수많은 인명 피해가 발생할 뻔한 사건이었고.

그러니 연구청장이 생각하기에 전화기를 대사관에 설치해봐야 저들이 분해하려 들 것이 뻔했는데 굳이 설치해줄 필요가 있느냐고 생각했고.

해서 연구청장은 지금도 걸핏하면 고장 나는 전등과 잉글랜드 대사관의 일을 거론하며 반박하자 정성국은 뭘 그리 걱정하느냐는 표정으로 대꾸했다.

“글쎄. 과연 유럽인들이 전화기를 뜯어서 무언가를 얻을 수 있을까? 전화기가 만들어진 이론적 기반에 관련된 지식이 없다면 솔직히 불가능할걸?”

“음. 그건 그렇습니다만...”

정성국의 말마따나 해당 지식이 전무한 유럽 외교관들이 전화기를 열심히 분해해봐야 전화기의 작동 원리를 과연 파악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었다.

거기에 전화기는 단순히 전기 기술에 대한 지식을 알고 있다고 만들 수 있는 것도 아니었고.

해서 연구청장이 일단 수긍하자 정성국이 말했다.

“그러니 다른 물품처럼 전화기도 대사관에 설치해주고...고장나면 수리비나 비싸게 받아. 아니면 물량이 없다는 핑계로 고장 나면 교체 못 해준다고 엄포를 놓던가. 그럼 좀 자제하겠지.”

“그럼 후자가 낫겠군요. 지금도 전등 교체 비용을 꽤 비싸게 받는데도 종종 전등이 사라지곤 하니까요.”

연구청장이 대사관에 근무하는 유럽인들을 떠올리고 이를 갈며 그렇게 대답하자 정성국은 피식 웃었다.

“그러던가. 그보다 이번에 확장된 전화기 제조 공방의 생산 능력은 얼마나 되나?”

이에 연구청장은 흥분을 가라앉히고 바로 대답했다.

“연간 25만 대 정도의 신형 전화기를 생산할 수 있으리라 예상하고 있습니다.”

“음? 연간 25만 대? 너무 적지 않나? 그래서야 민간에 전화기를 모두 보급하려면 한세월이 걸릴 것 같은데?”

정성국이 새로 생산된 전화기 제조 공방의 생산량에 의문을 표하자 연구청장은 고개를 갸웃하며 입을 열었다.

“예? 아. 물론 북미왕국의 전체 가구는 약 150만 가구로 추정되긴 하는데...아직 통신망이 깔린 지역은 꽤 제한적이라 전화를 이용할 수 있는 가구는 80만 가구 정도로 추산되는 만큼, 3년 정도면 필요한 전화기 물량을 생산할 수 있으니 이 정도면 빠르게 보급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연구청장의 말에 정성국은 계산이 잘못되었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저으며 반박했다.

“글세...내가 볼 땐 민간에 통신망을 개방하면 각 가정뿐만 아니라 수많은 상단, 상업활동을 하는 모든 이들이 무조건 전화기를 들여놓으려 할걸?”

오히려 각 가정보다는 이쪽이 전화를 더 요긴하게 사용할 수 있지 않을까 싶은 정성국의 반박에 연구청장은 당황한 표정으로 더듬더듬 입을 열었다.

“아...그...그렇긴 한데 그 수가 그리 많지는...”

이에 정성국이 바로 연구청장의 말을 끊었다.

“농담하나? 지금도 북미왕국 곳곳에 매일같이 수많은 상단이나 개인적으로 상업활동을 하는 상인들이 생겨나고 있는 판에?”

북미왕국은 상업활동을 장려하는 편이라 개인적으로 상업활동을 하는 이들이 많은 편이었다.

북미왕국의 경제 규모는 나날이 커졌으며 백성들도 부유한 편이라 소비에 거리낌이 없었으니 돈을 벌기 쉬웠고, 그렇게 상업활동으로 큰돈을 벌었다는 소문이 퍼지기 시작하니 너도나도 상업활동에 뛰어드는 것이다.

물론 누구나 다 성공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설사 실패하더라도 일자리가 많았기에 일자리를 구해 먹고사는 데는 큰 문제가 없었으며, 연금 제도마저 시행되면서 실패하더라도 가족들을 굶길 우려가 없어졌기에 상업활동에 도전하는 이들은 더 많아졌고.

그렇기에 정성국이 연구청장을 바라보며 되묻자 연구청장은 할 말이 없었기에 슬쩍 정성국의 시선을 피했고.

“그뿐만 아니라 개발청장에 이야기해 내륙에 통신망을 연결하는 3차 공사와는 별개로 이곳에서 새남포까지는 통신망을 건설할 생각이네. 북미 서해안도 꾸준히 발전시킬 필요가 있으니까.”

“으음...새남포까지 통신망이 건설되면 우래건 지역의 주민들도 대부분 통신망을 이용할 수 있다고 봐도 되겠군요.”

“그렇지. 그리고 자네도 알다시피 우래건 지역은 최근 조선 출신 이주민이 집중적으로 정착하면서 급성장하고 있는 지역이고.”

“그...그렇지요.”

우래건 지역은 전생의 워싱턴 주와 오리건 주가 합쳐진 지역으로 이 지역은 북미왕국 초기부터 발전한 새남포와 최근 급격히 성장하고 있는 새송도, 두 도시를 주축으로 빠르게 성장하고 있었다.

당연히 이 지역의 인구도 많은 편이었고 이곳의 주민들도 전화기를 구하려 들 테니 더 많은 전화기가 필요하다는 정성국의 이야기에 연구청장이 수긍했을 때 정성국이 덧붙였다.

“거기에 3차 공사가 마무리되면 연결되는 일리노이, 이로쿼이, 누벨 프랑스 지역의 인구도 북미 동해안 지역과 맞먹을 정도로 많네. 그것까지 고려하면 신형 전화기 생산량이 너무 적다고 생각하지 않나?”

원래 계산대로였다면 통신망 3차 공사가 끝날 때쯤이면, 기존에 통신망이 설치된 지역에 전화기의 보급이 끝나야 하는데 지금 전화기 제조 공방의 생산량으로는 그게 불가능했고, 여기에 통신망 3차 공사와 더불어 북미 서해안 지역에도 통신망이 설치되니 전화기는 더 많이 필요했다.

그런 만큼 전화기 생산량을 늘려야 하지 않겠느냐고 묻는 정성국을 보고 연구청장이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휴. 알겠습니다. 개발청장에게 사정해서라도 다시 확장 공사를 하거나 다른 지역에 새로운 전화기 제조 공방을 건설해서 생산량을 늘리도록 하겠습니다.”

연구청장의 항복선언에 정성국은 만족하면서 다른 질문을 던졌다.

“그래. 그리고 해저 통신선 연구는 어떻게 되어가나?”

해저 통신선은 바다에 설치하는 통신선으로 멀리 떨어져 있는 아이누 지역이나 아이슬란드 등을 효과적으로 통치하고, 조선이나 유럽의 소식을 빠르게 파악하는 데도 요긴하게 사용할 수 있었기에 연구청에서는 정성국이 해저 통신선의 개념을 설명한 이후로 이를 연구하고 있었다.

해서 정성국이 질문을 던지자 연구청장이 쉽지 않다는 표정을 지으며 답했다.

“한창 연구 중이긴 한데...내구성이 강한 해저 통신선을 개발하는 문제도 그렇고, 해저 통신선의 설치 비용을 생각해보면, 차라리 무선 통신 쪽에 집중하는 것이 낫지 않을까 싶습니다. 연구원들도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고요.”

지혜로운 나무가 연구원들과 함께 무선 통신 연구도 진행하고 있었고, 이쪽도 나름대로 순조롭게 연구가 진행되고 있었으며, 무선 통신의 경우는 선이 필요 없기에 오히려 더 효과적이지 않겠느냐는 연구청장의 말에 정성국이 고개를 저었다.

“흠. 둘의 쓰임새가 좀 달라서 둘 다 연구하고 설치해야 할 거야.”

이에 연구청장은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끄응...알겠습니다. 해저 통신선 연구에 조금 더 신경 쓰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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