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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을 탈출하라-567화 (567/850)

567화

포로나이에서 대기하고 있던 3함대 사령관인 정일신은 청나라군이 압록강을 넘었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즉각 3천 명의 아이누 경비대원들을 3함대에 태워 조선으로 향했다.

최대한 빠르게 병력을 수송하기 위해 조선의 항구엔 일절 들르지 않고 포로나이에서 곧바로 평양까지 도착한 3함대는 도착하자마자 지원 병력과 물자를 평양에 내려놓으려고 했고.

하지만 그들이 도착했을 때는 이미 대부분의 전투가 끝나고 청나라군은 조선에선 물러난 상태였고, 이를 조선 관리들과의 대화를 통해 알게 된 정일신은 당황하면서 급히 병력과 물자의 하선을 막고 더 자세한 상황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청나라와의 전투에서 사망한 병사들의 유해를 평양까지 운구한 후 북미왕국의 수송선을 기다리던 조선 지원군의 선임 조장을 통해 대략적인 상황을 파악하고, 수송선 한 척을 내어주며 병사들의 유해를 싣고 포로나이로 이동할 수 있도록 조처한 후 조선 지원군이 주둔해 있다는 용암포로 향했고.

용암포는 작은 포구에 불과했지만, 청나라군이 여러 물자를 옮기면서 임시로 선착장을 더 만들기도 했고, 조선 지원군이 이곳에 주둔하면서 훗날 물자 수송을 생각해 북미왕국의 큰 배들도 드나들 수 있도록 임시로 개조하고 보수했기에 3함대는 용암포의 선착장에 정박할 수 있었다.

해서 정일신이 카무이쿠르를 만나기 위해 배에서 내리려는데 오히려 카무이쿠르가 먼저 선착장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3함대의 기함인 천급 전선이 정박하자 바로 승선했고.

정일신은 오랜만에 만난 카무이쿠르를 반겼는데, 배에 오르자마자 커피를 마시고 싶다는 카무이쿠르의 말에 고개를 갸웃하면서도 그를 선장실로 불러 커피를 내려 주었다.

그리고 카무이쿠르는 선장실에서 정일신이 내어준 커피를 한 모금 마시고 밝게 웃었다.

“휴우. 오랜만에 제대로 된 커피를 마시는군요.”

이에 자신의 커피를 들고 의자에 앉던 정일신은 의아한 표정으로 카무이쿠르를 바라보았다.

“음? 뭐 전장에서야 커피를 제대로 마시기 어렵겠지만, 용암포 전투가 벌어진 11월 25일 이후로는 이곳 용암포에서 계속 머물렀다면서? 헌데 커피도 마시지 못했다고? 그렇게 전투 후의 뒤처리가 바빴던 건가?”

정일신의 의문에 카무이쿠르는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 물론 전투 후에 처리할 일이 많긴 했습니다만 본국에서 유능한 지휘관들을 워낙 많이 보내준 덕분에 이들의 덕을 톡톡히 보았으니까요. 다만 커피를 내릴 기구를 평양에 놓고 와서 말입니다.”

북미왕국의 고위급 관리들이 다 그렇듯 카무이쿠르도 커피 애호가라 조선에 파견되면서 당연히 커피와 커피를 내릴 각종 기구를 가져왔었지만, 전쟁이 발발하고 빠르게 전장으로 이동해야 했는데 이를 챙길 정신이 있을 리 없었다.

해서 그동안은 커피를 마시지 못했다며 하소연하는 카무이쿠르를 보고 정일신이 실소하다 문득 전투 식량을 떠올리고 질문을 던졌다.

“그래도 이번에 보급했다는 전투 식량에 커피 가루가 들어가 있다고 그러던데? 그건 별론가?”

이에 카무이쿠르는 표정을 찌푸리며 말했다.

“뭐...아예 못 마실 정도는 아닌데 텁텁하고 맛이 진해서 제 취향은 영 아니라서요.”

카무이쿠르의 대답에 정일신은 참 까다로운 입맛이라고 혀를 차며 그를 타박했다.

“거참...그것 때문에 자네가 직접 여기까지 온 게로군? 난 자네가 급히 이곳에 오길래 무슨 일이 있나 했더니...”

“하하하. 뭐 그런 셈이지요.”

자신의 타박에도 그저 웃으며 커피를 홀짝이는 카무이쿠르를 본 정일신은 혀를 차며 말했다.

“쯧쯧. 아마 내가 예비로 보관해 둔 커피 기구들이 몇 개 있을걸세. 돌아갈 때 가져가도록 하게.”

“오! 그러면 감사하지요.”

다시 익숙한 커피를 즐길 수 있다는 이야기에 카무이쿠르가 즐거워하자 정일신은 고개를 저은 후 들고 있던 커피잔을 내려놓고 말했다.

“그보다 평양에 잠깐 들러서 소식을 듣고 무척 놀랐네. 지원군이 도착하기도 전에 청나라군의 본대를 격파할 줄이야. 자네가 전에 했던 말과는 다르잖아?”

물론 청나라는 북미왕국의 개입을 우려했기에, 이번 전쟁을 빠르게 마무리하기 위해 이전처럼 곧바로 한양을 향해 남하하리라는 것은 예상하였다.

다만 카무이쿠르는 조선에 파견되기 전에 정일신과의 대화에서 조선에 파병된 북미왕국 병사들의 피해를 조금이라도 줄이기 위해 일단 지원군이 도착하기 전까지는 방어에 집중하고, 지원군이 도착하면 그때 전 병력을 동원해 청나라군을 공격할 거라고 이야기했었기에 정일신이 그 전에 청나라와 대규모 전투를 벌인 것에 놀라자 카무이쿠르가 어깨를 으쓱였다.

“상황이 어쩔 수 없었습니다. 기관총과 이동형 60mm 화포 덕분에 청나라군의 피해가 무척 컸고, 그 때문에 청나라군은 다시 남하하기보다는 퇴각할 가능성이 크다고 판단했거든요. 그리고 실제로도 청나라군은 퇴각을 준비하고 있었고요. 그러니 부랴부랴 청나라군을 공격한 거지요.”

“아. 뭐 현장의 상황이야 시시때때로 바뀌는 만큼 유연하게 대처하는 것이 더 중요하니...딱히 뭐라고 할 생각은 아니야. 다만 얼마 안 되는 병력으로 대다수가 기병인 청나라군을 격파한 것이 놀랐을 뿐이지.”

“뭐 조선군까지 생각하면 병력의 수에서 그렇게 밀리는 것은 아니었고, 생각보다 기관총의 위력이 대단했거든요.”

“그래?”

“예. 그러니까...”

카무이쿠르가 기관총의 위력을 자세히 설명하자 정일신은 이를 듣고 기관총이 양산되면 전선에도 기관총을 장착하는 것도 괜찮겠다 싶었고.

해서 나중에 본국에 건의해야겠다고 생각하면서 이곳의 사정을 파악하기 위해 다시 질문을 던졌다.

“그럼 청나라군의 동태는 어떤가? 이번에 동원된 병력 가운데 아직 2만 명가량이 남아있다면서?”

이에 카무이쿠르는 씩 웃으며 답했다.

“5만의 병력으로도 화려하게 깨진 판에 고작 2만 명으로 덤벼들긴 어렵지요. 그래서인지 청나라군은 봉황성으로 물러나 재정비 중입니다.”

“그래? 그럼 청나라군의 용암포 상륙을 도왔다는 청나라 수군함대는?”

정일신은 청나라가 수군함대를 동원해 압록강을 도하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이 청나라 수군함대와 일전을 벌일 생각이었기에 눈을 빛내며 묻자 이를 짐작한 카무이쿠르가 키득거리며 고개를 저었다.

“용암포 전투 이전 물자를 가득 싣고 용암포에서 서쪽으로 떠난 후에는 딱히 보이지 않았습니다.”

“흐음...서쪽이면 발해만 안쪽으로 이동한 건가?”

“그렇습니다. 포로들을 심문한 결과 이번에 동원된 수군함대는 원래 등주에 주둔했던 함대라고 하니 어쩌면 등주로 돌아갔을 수도 있고요.”

등주는 산동반도에 위치해 있었고, 이곳으로 돌아갔다는 이야기는 이 청나라 수군함대를 공격하기 위해서는 발해만 안쪽으로 들어가야 한다는 뜻이었기에 정일신이 투덜댔다.

“끙. 청나라를 자극할 우려가 있어 일단 발해만 안쪽까지 들어갈 생각은 없는데...그들을 그냥 내버려 둬도 되는지 모르겠군.”

그 말에 카무이쿠르가 눈을 번쩍이며 정일신을 바라보았다.

“아. 3함대 사령관님께서는 청나라가 수군함대를 이용해 남하할 것을 경계하시는 겁니까?”

“그렇지. 화려하게 깨진 만큼 약세를 인정하고 곧바로 화친을 맺자고 하면 다행이긴 한데...청 황제가 과연 그런 선택을 할지 모르겠어.”

정일신의 말에 카무이쿠르가 공감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청나라는 조선을 속국으로 여기고 있었고 이 속국이 방자하게 군다며 병력을 동원해 버릇을 고쳐주려 했는데 처참하게 깨져 버렸다.

이런 상황에서 청 황제가 곧바로 조선에게 화친을 맺자고 하겠는가.

청나라에서 먼저 조선에 화친을 제의하는 순간 청나라가 예전만 못하다는 사실을 만방에 알리는 꼴인데.

물론 정말 청나라의 상황이 위급하다면야 일단 화친을 제의할 수도 있겠지만, 아직 청나라의 상황이 그 정도는 아니었고.

그런 만큼 카무이쿠르나 여러 지휘관, 그리고 유혁연마저 청나라가 바로 화친을 제의할 가능성은 낮다고 판단하고 있었기에 정일신의 말에 바로 대꾸했다.

“예. 아무래도 자존심이 있을 테니. 그리고 화친이 아니라 전쟁을 계속하겠다는 결정을 내린다면 청나라 수군함대를 다시 동원할 가능성도 있긴 하군요.”

“그렇지. 더 많은 병력을 증원하는 것이 정공법이지만, 현재 청나라의 상황에선 그게 불가능하지 않은가. 당연히 기책에 매달릴 수밖에 없고...그나마 가능성 있는 것은 청나라 수군함대를 이용해 단번에 조선의 수도로 향하는 거지.”

이 때문에 정일신은 3함대가 이곳이나 평양 부근에서 대기해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고민을 하고 있을 때 카무이쿠르가 입을 열었다.

“확실히 그렇지요. 다만 조선 측도 이를 경계해서인지 봉황성의 병력이 다른 곳으로 이동하는지 철저히 감시 중이고, 이미 통어사가 경기, 충청, 황해 수군을 강화도로 집결시켜 만약을 대비 중이니 청나라 수군함대도 섣불리 남하하지는 못할 겁니다.”

삼도수군통어사는 병자호란 이후에 신설된 직책으로, 남쪽에서 침입하는 왜적을 상대하기 위한 삼도수군통제사와 마찬가지로 경기, 충청, 황해 수군을 지휘해 북쪽에서 침입하는 외적을 담당하는 서해안을 방어하는 수군을 총괄하는 지휘관이었다.

그렇기에 북방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아지고, 청나라 사신단이 돌아가자 통어사는 만약을 대비해 수군을 정비했고.

청나라의 수군함대가 압록강에 나타났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 대경해 혹여 청나라의 수군함대가 남하라도 할까 봐 한양을 방비하기 위해 강화도로 수군을 집결시켰고, 이번에 조선군과 조선 지원군이 청나라군과의 전투에서 승리를 거두고 청나라 수군함대 역시 서쪽으로 물러나긴 했지만 통어사는 이번 전쟁에서 청나라가 수군함대를 동원한 이상 다시 이 수군함대를 이용할 수 있다고 판단해 긴장을 늦추지 않고 있으며, 이러한 사실을 유혁연을 통해 알게 된 카무이쿠르가 이를 정일신에게 말해주자 정일신은 다행이라는 표정을 지었다.

물론 정일신이 보기에 조선 수군이 썩 못 미더워 보이긴 했지만, 그래도 청나라 수군을 상대하기엔 충분하다고 판단했기에.

해서 정일신은 잠시 커피를 마시며 앞으로의 행보를 고민하다가 결정을 내렸다.

“그렇단 말이지? 그럼...난 3함대를 이끌고 대만 섬으로 이동해야겠군.”

대만 섬이라는 말에 카무이쿠르가 카무이쿠르의 의도를 눈치채고 눈을 빛냈다.

“대만 섬을 거점으로 청나라 수군을 공격하실 생각이십니까?”

“그래. 뭐 곧바로 천진을 공격하면 전쟁 자체는 빨리 마무리할 수 있겠지만, 그 이후가 문제 아닌가. 나중에 청나라가 주나라와 동녕국을 완전히 멸망시킨 후 이번 일을 복수하겠다며 예전 수나라나 당나라처럼 수십만 대군을 끌고 오면 조선도 우리도 여러모로 골치 아플 수밖에 없지.”

“예. 솔직히 그렇긴 하지요.”

중원은 항상 자신들이 세상의 중심이라 생각했고, 그 때문에 자신에게 위협적인 주변국들은 끊임없이 공격해 결국 멸망시키거나 자신들에게 굽히게 했다.

그런 만큼 천진을 공격해 청나라의 심장부를 위협해 곧바로 청나라와의 전쟁을 끝낸다 하더라도 그 후가 문제였고.

그나마 지금은 청나라 내부가 혼란스럽기에, 청나라의 움직임이 어느 정도 제한될 수밖에 없지만, 청나라 내부가 안정되게 되면 청나라는 중원의 막대한 물량을 동원해 다시 조선을 정벌하겠다고 설칠 수도 있었다.

체면 문제도 있겠지만 조선은 저들의 수도와 비교적 가까운 곳에 위치하다 보니 조선이 강성해지면 수도를 위협받을 수도 있었기에.

문제라면 북미왕국은 이런 조선을 버릴 수 없는 처지였기에 청나라가 조선을 공격하면 이번처럼 곧바로 병력을 파견해 도와야 했는데, 청나라에서 수십 만의 병력을 동원한다면, 그만큼 북미왕국의 부담도 커질 수밖에 없었다.

아무리 무기가 우월하다고 해도 수에서 밀리면 답이 없었으니까.

이는 야간에 청나라군의 공세를 경험한 카무이쿠르가 뼈저리게 깨닫게 되었고.

그런 만큼 곧바로 천진을 공격해 청나라와 화친을 맺는 것은 득보다 실이 크다고 판단한 카무이쿠르가 고개를 끄덕이자 정일신이 말했다.

“그러니 이번 기회에 남쪽에 있는 청나라 수군함대를 격파해 동녕국이 활발히 움직일 수 있게 도울 생각이야.”

아마 북미왕국의 3함대가 대만에 등장한다면, 그리고 북미왕국과 청나라 사이에 전쟁이 벌어져서 3함대는 청나라 수군을 격파하기 위해 대만에 왔다는 것을 알게 된다면 동녕국은 3함대를 전폭적으로 지원할 것이 뻔했다.

동녕국으로서는 청나라가 수군을 정비하고 해안가를 방어하기 시작하면서 활동 영역이 점차 줄어들고 있었으니까.

그러니 3함대가 청나라 수군을 모두 격파해준다면, 이전처럼 청나라 해안가를 공격할 수 있었으니 동녕국 입장에선 환영할 일이었고, 동녕국이 이렇게 청나라 해안가 곳곳을 공격한다면 청나라에서도 주나라, 조선에 이어 동녕국까지도 계속 신경 써야 하니 주나라가 받는 압력이 줄어들 수밖에 없었다.

당연히 주나라는 청나라의 공세를 더 오래 버틸 수 있을 테고, 그것만으로 조선과 북미왕국으로서는 이득이었으니.

이러한 상황을 모두 짐작한 카무이쿠르가 고개를 끄덕였을 때 정일신이 덧붙였다.

“일단 북방 항로가 열리기 전까지는 대만을 거점으로 활동하고...그 후에는 본국에서 뭐라고 명령이 내려오겠지.”

“그렇겠지요. 알겠습니다. 허면 저는 그때까지 이곳에서 청나라군을 경계하겠습니다. 뭐 지루하겠지만...제대로 된 커피를 마실 수 있으니 어떻게든 버틸 수 있겠지요.”

“하하하. 알겠네. 알겠어. 바로 가져가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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