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조선을 탈출하라-565화 (565/850)

565화

“부르셨습니까. 전하.”

집무실의 문이 열리며 교육청장이 집무실 안으로 들어오자 한참 보고서를 훑어보고 있던 정성국은 고개를 들어 교육청장을 반기며 자리에서 일어나 티테이블을 가리켰다.

“아. 왔나? 잠시 커피나 한잔하지. 앉게.”

그러면서 정성국은 직접 커피를 내리기 시작했고, 집무실에 고소하고도 향긋한 커피 향이 가득해지며 피로가 조금 풀리는 것 같았기에 슬쩍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이런 정성국의 반응에 교육청장이 살짝 웃으면서도, 정성국의 눈가가 거뭇한 것이 안타까워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음...많이 지쳐 보이십니다. 전하.”

이에 커피가 내려오기만을 기다리고 있던 정성국이 땅이 꺼져라 한숨을 내쉬었다.

“휴우. 그럴 수밖에 없잖나. 보고서가 좀 쌓여 있어야지. 벌써 며칠째 쌓여 있는 보고서만 확인하는 건지 모르겠네. 쯧. 새한성을 벗어나 곳곳을 방문했을 때만 하더라도 이렇게 매년 북미왕국 곳곳을 직접 방문하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싶었는데 매일같이 쌓이는 보고서를 확인하니 새한성을 오랫동안 비울 엄두가 안 나는군.”

“하하하.”

교육청장이 웃으며 정성국의 투덜거림을 받아주는 동안 커피가 다 내려졌고, 정성국은 이를 커피잔에 담아 교육청장에게 건네며 말했다.

“그보다 북미 동해안 지역을 직접 방문해보니 내 생각보다 더 발전하고 번화한 곳이 많더군. 각 지역의 거점 항구들이 특히 그렇고.”

“감사합니다. 전하. 예. 가끔 그쪽으로 출장 다녀온 관리들의 말을 들어보면 방문할 때마다 도시가 커져 놀랍다고 하더군요.”

정성국은 자신의 커피잔에 커피를 따라 자리에 앉으며 덧붙였다.

“거기에 계속해서 인구가 늘어나서인지 각 지역의 관리들은 내심 대학교를 건설해주었으면 하는 눈치고.”

이에 교육청장이 골치 아프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말했다.

“하아. 그렇죠. 다른 지역으로 출장 다녀온 관리들은 항상 그 문제로 시달린다고 들었습니다. 특히 최근엔 종합 대학교를 추가 건설할 예정이라는 것이 알려지면서...”

각 지역에 파견된 관리들도 현재 북미왕국의 상황을 모르지 않았다.

종합 대학교를 건설할 돈과 인력은 넘쳐도 막상 선생 수가 부족해 섣불리 섣불리 종합 대학교를 건설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그렇기에 이번에도 몇몇 지역에만 종합 대학교를 건설할 것이 뻔했고, 이번 기회를 놓치면 꽤 오랫동안 대학교가 없는 지역으로 남아야 했기에 교육청의 관리들을 붙들고 매달렸고.

이 때문에 최근 교육청장은 새한성을 벗어나지도 못하고 있었고, 걸핏하면 자신의 지역에 대학교를 건설해달라는 다른 관리들의 전화에 따로 비서를 두어 중요한 전화가 아니면 받지 않을 정도였다.

해서 교육청장이 땅이 꺼져라 한숨을 내쉬었고, 이를 대충 사정을 알게 된 정성국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그래. 내가 방문해서 그 지역의 관리나 유지, 백성들에게 물어보니 공통적으로 자신들의 지역에도 대학교가 들어오길 원하더군. 뭐 이해는 해. 보통 대학교를 졸업하고 나면 고향으로 돌아오기보다는 그 지역에서 자리를 잡는 경우가 많으니 말이야.”

“예. 보통 대학교에서 공부하면서 이런저런 기회를 잡아 근처에 취직하거나 창업을 하다 보니 어떻게 보면 대학교가 없어서 유능한 인재들을 빼앗기는 꼴이 되니까요. 그러니 잘못하면 지역의 발전이 정체될 수 있다는 생각에 관리들이 어떻게든 추가로 건설할 예정인 종합 대학교를 자신의 지역에 건설해주었으면 해서 어느 지역에 건설해야 할지를 두고 연구소에서도 고민이 큽니다.”

교육청장의 말에 정성국이 조금 겸연쩍은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음...그렇지. 헌데 플로리다 지역의 관리들이 너무 강력히 요청하는 바람에 내가 플로리다 지역에는 종합 대학교를 건설해주겠다고 약속하기도 했단 말이지?”

교육청에서 종합 대학교의 건설 위치를 고민 중인데 자신이 경솔하게 약속한 것 같아 정성국이 겸연쩍은 표정을 짓자 교육청장은 잠깐 생각해보다가 미소지으며 답했다.

“허허허. 그렇습니까? 뭐 플로리다 지역이야 인구가 많아 유력한 후보지 중 한 곳이었으니 괜찮습니다.”

“그래? 그거 다행이군. 헌데 기왕 플로리다 지역에 종합 대학교를 건설하기로 정한 김에 아예 이번에 건설할 종합 대학교의 위치를 바로 정하고 발표하자고. 그래야 덜 시달릴 것 아닌가.”

그 말에 교육청장은 혹한 표정을 지으면서도 아직 사범 대학교도 건설 중인데 너무 급한 것 아닌가 싶어 중얼거렸다.

“음. 너무 이른 감이 없지는 않은데...”

“미리 준비할 기간이 늘어난 셈으로 치자고.”

“알겠습니다. 그러도록 하지요. 허면 전하께서 원하시는 후보지가 따로 있으십니까?”

이에 정성국이 생각해 둔 후보지가 있었기에 곧바로 입을 열었다.

“이번엔 인구 50만 이상의 지역에 건설하는 것이 어떤가 싶은데?”

지역 인구수라는 명확한 기준이 있다면, 설사 탈락한 지역의 관리들도 뒤에서 구시렁거리지는 않을 것 같아 교육청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인구 50만 이상이 거주하는 지역의 거점 도시에 종합 대학교를 건설하자는 뜻입니까? 괜찮겠군요. 인구가 많다는 것은 그만큼 학생들도 많다는 뜻이니까요. 허면...”

“현재 인구 50만이 넘는 지역 중 고등 교육 기관인 대학교가 없는 지역은 아이누, 애리조나, 캐롤라이나, 누벨 프랑스, 일리노이, 이렇게 5개의 지역일세.”

정성국의 말에 교육청장이 조금 곤혹스럽다는 듯 중얼거렸다.

“으음...생각보다 많군요. 5개의 종합 대학교를 건설하면 필요한 선생도 많을 텐데...”

“역시 어려울까?”

“예. 일단 사범 대학교 건설 후 3곳 정도의 종합 대학교를 건설할 생각으로 준비하고 있었으니까요. 이걸 5곳으로 늘리게 되면 자연스럽게 배치될 선생을 줄여야 합니다.”

이에 정성국이 잠시 고민하다 입을 열었다.

“여기서 가장 문제가 되는 선생들은 역시 자연과학 계열과 공학기술 계열의 학문을 가르치는 선생들이겠지?”

“그렇지요.”

다른 계열의 학문을 가르치는 선생이야 유럽에서 이주한 학자들이 넘쳐났기에 이를 채우는 것은 큰 문제가 아니였기에 교육청장이 고개를 끄덕이자 정성국이 말했다.

“허면 아이누, 누벨 프랑스 지역에 건설할 대학교는 일단 하버드 대학교처럼 공학기술 계열 학문은 빼고 자연과학 계열의 학문도 일부만 가르쳐. 그리고 나중에 해당 학과를 개설하면 되겠지.”

이에 교육청장은 조금 의문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아이누 지역이야 아시아에 있어 잘못하면 공학기술 계열의 지식이 가까운 왜국에 퍼질 수 있어 이를 경계해 제외한다고 쳐도 누벨 프랑스는 소위 북미왕국의 남부지역이라고 불리는 애리조나 지역과 함께 80만에 달하는 인구를 자랑하는 북부의 중심 지역이었으니까.

다만 정성국은 누벨 프랑스 지역은 다른 지역에 비해 유럽 출신 이민자들의 비율이 월등히 높은 터라 일단 제외했고 이 사실을 슬쩍 이야기하자 교육청장이 수긍했다.

“흐음...알겠습니다. 전하. 해당 지역의 교육청 관리들에게 이 사실을 전달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래. 그리고 하버드 대학교의 확장 논의는 어떻게 되어가나?”

하버드 대학교의 확장 논의는 정성국이 새한성을 떠나기 전부터 논의했던 문제라 지금쯤이면 결론이 났을 거라고 여겨 묻자 교육청장이 바로 답했다.

“아. 개발청장과 합의를 끝냈습니다. 개발청에서는 내년 말까지는 확장 공사를 끝내겠다고 이야기하더군요. 해서 보고서를 올렸습니다만...”

그러면서 교육청장이 힐긋 집무실 책상에 있는 보고서 더비를 바라보자 정성국이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고맙군. 덕분에 보고서 하나를 그냥 넘길 수 있게 되었으니. 그보다 내년 말이면 너무 빠른 것 아닌가?”

이에 교육청장이 어깨를 으쓱였다.

“전하께서도 하버드 대학교를 직접 방문해보셨으니 아시겠지만...유럽식 벽돌 건물이다 보니 건물을 건설하는 데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릴 이유는 없으니까요.”

“아. 그건 그렇지. 그래도 선생들과 학생들이 머물 기숙사까지 지어야 하는 것을 생각하면 조금 빠듯할 것 같은데...뭐 개발청에서 알아서 하겠지.”

개발청은 항상 자신의 기대를 저버린 적이 없었기에 정성국이 웃으며 그렇게 이야기하자 교육청장 역시 웃으며 말했다.

“예. 해서 교육청에서는 확장 공사 문제는 개발청에 맡기고 하버드 대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칠 선생들을 선발하는 데 집중하려 합니다.”

“알겠네. 그리고 중, 고등학교 증설 문제도...”

그렇게 정성국이 북미왕국을 방문하며 여러 관리, 백성들을 통해 파악한 현지의 사정을 통해 부족한 교육 시설들을 추가로 건설하기 위해 교육청장과 논의하고 있을 때 누군가가 다시 집무실의 문을 두드렸다.

“전하. 부르셨습니까.”

정성국이 집무실의 문을 열고 들어와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개발청장을 보고 집무실 한쪽에 걸린 시계를 확인하고 아차 하는 표정을 지었다.

“어?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되었나?”

개발청장과도 논의할 것이 있었기에 조금 늦게 개발청장을 불렀는데 생각보다 교육청장과의 대화가 길어진 것을 확인하고 혀를 차자 개발청장이 말했다.

“아. 제가 조금 일찍 왔으니 밖에서 잠시 기다리겠습니다.”

그러면서 개발청장이 집무실을 나가려고 하자 정성국이 손을 내저었다.

“아닐세. 중요한 사항들은 대충 논의했으니까. 앉게.”

정성국의 말마따나 굵직한 문제들은 대부분 논의했기에 정성국은 교육청장에게 이쯤 하자는 눈치를 보냈고, 교육청장은 알겠다는 듯 자리에서 일어나 정성국에게 인사한 후 집무실을 나섰다.

그렇게 빈 자리에 개발청장이 다시 앉았고, 정성국은 추가로 커피를 내리며 질문을 던졌다.

“듣자니 파나마 운하에 파견되었던 인원이 거의 복귀했다지?”

“그렇습니다. 일단 수송선이 조금 부족해 아직 복귀를 못 한 인원이 조금 있기는 합니다만...이들도 몇 주 안에 모두 복귀할 겁니다.”

이에 정성국은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한번 확인했다.

“복귀한 친구들은 포상금과 함께 휴가를 넉넉히 주었지?”

“그야 물론입니다. 어찌 전하의 엄명을 거역하겠습니까.”

정성국은 새한성을 복귀한 후 파나마 운하 건설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한 개발청장을 비롯한 여러 개발청 관리들을 불러 직접 포상을 내렸고, 동시에 그동안 먼 파나마 지역에서 고생한 북미왕국인들에게 최대한 보상해 주라고 다시 한번 당부했기에 개발청장이 파나마 운하 건설에 관계된 이들은 일괄적으로 휴가와 넉넉한 포상금을 지급해 돈 걱정 없이 가족들과 휴가를 즐길 수 있도록 조치했다고 답하자 만족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개발청장에게 새로 내린 커피를 건넨 후 부른 용건을 이야기했다.

“그래. 헌데 그들이 휴가 후 복귀하면...다시 운하를 파야 하지 않겠나.”

이에 개발청장은 신음을 흘리며 중얼거렸다.

“으음...전에 이야기하셨던 이로쿼이 지역의 운하를 말씀하시는 거군요.”

정성국은 이전부터 이로쿼이 지역에 있는 나이아가라 폭포 인근에 운하를 건설해 이리 호와 온타리오 호를 연결하겠다는 구상을 밝혔었다.

그리고 파나마 운하 건설이 끝났으니 이곳에 투입된 인원과 장비를 투입하면 공사 기간을 단축할 수 있을 것 같았기에 개발청에서도 긍정적으로 바라보았고.

다만 파나마 운하와 마찬가지로 이로쿼이 지역에 건설될 운하 역시 만만치 않은 공사였기에 개발청장이 신음을 흘렸을 때, 정성국이 슬쩍 덧붙여 말했다.

“그래. 동시에 수로 정비 사업을 진행해 오대호를 모두 연결하고 이 오대호와 미시시피 강을 연결해 내륙의 각종 물자를 배로 손쉽게 운반할 수 있도록 하고 말이지.”

이에 개발청장은 내년부터는 또 엄청나게 바쁘겠구나 싶어 한숨을 내쉬며 대답했다.

“휴우...알겠습니다. 일단 이로쿼이 지역의 운하라던가 수로 정비 사업의 경우는 예전에 전하께서 언급하신 후로 개발청 연구소에서 연구하고 있었던 만큼, 곧 상세한 보고서를 올리겠습니다.”

그런 개발청장의 표정에 정성국은 큰일이 끝나자마자 다시 수많은 일거리를 떠안긴 꼴이라 살짝 양심에 찔리긴 했다.

하지만 북미왕국의 발전을 생각하면 나이아가라 폭포 인근의 운하와 수로 정비 사업은 꼭 필요했기에 조선에서 홍삼을 왕창 구해 개발청 관리들에게 뿌려야겠다고 생각하며 말했다.

“그래. 부탁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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