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64화
중요한 물자 대부분은 배에 실었다는 보고에 용대각은 슬슬 이곳 용암포를 떠나 시기가 되었다고 판단했다.
이미 병사들에게 이동 준비를 하라고 명령을 내려둔 상태였기에 곧바로 이동할 수 있었으며, 이곳 용암포를 향해 진군하는 조선군도 조만간 도착할 테니 그 전에 압록강을 따라 북상할 필요가 있었기에.
해서 용대각이 자신과 함께 병력을 지휘하기 위해 남은 색액도의 부장들에게 슬슬 용암포를 떠나 북진하자는 이야기를 하려 할 때 부관이 허겁지겁 막사로 들어와 외쳤다.
“장군! 조선 기병들이 빠르게 접근하고 있습니다!”
“뭐? 조선 기병들이? 허. 기껏해야 3천에 불과한 조선 기병이 이곳으로 달려오고 있다고?”
용대각은 조선 기병들이 본대에서 떨어져 나와 용암포를 향해 질주하고 있다는 부관의 보고에 기가 찬다는 듯 탄식했다.
물론 어제저녁 북쪽에서 남하하던 조선군을 구원하려던 조선 기병들을 잠깐 상대해봤었고, 이들은 장전 없이 연발로 발사하는 짧은 조총으로 무장했기에 생각보다 전투력이 대단한 것은 분명했다.
특히 지금처럼 날이 밝은 상황에서 계속해서 총알을 쏟아낼 수 있는 조선 기병들과 맞붙는다는 것이 부담스럽기도 했고.
하지만 시간이 흐르며 아까의 전투에서 일부 부대를 이탈한 탈영병들도 용암포로 돌아오며 이곳 용암포에 남은 병력이 2만 명은 넘었기에 3천 명에 불과한 조선 기병 정도는 충분히 상대할 수 있을 것 같았고, 자신들이 주둔해 있는데도 고작 3천 명의 조선 기병이 거침없이 달려오고 있다고 하니 조선군이 마치 자신들을 무시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안 들 수가 없었다.
해서 용대각을 비롯해 막사에 있던 색액도의 부장들은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지만, 일부는 냉철하게 상황을 판단하고 입을 열었다.
“설사 저들만으로 우리를 어떻게 해보겠다는 속셈이겠습니까. 먼저 조선 기병들을 보내 우리를 적당히 견제하고 그사이 본대가 접근하겠다는 속셈이겠지요.”
“그렇습니다. 그러니 바로 압록강을 따라 북진해야 합니다.”
“하지만 조선 기병들이 북쪽으로 진군하는 우리를 추격하며 거리를 두고 그 연사가 가능하다는 짧은 조총으로 사격한다면, 골치 아플 겁니다.”
“맞습니다. 우리를 추격할 수 있는 조선 기병을 그냥 내버려 두면 우리를 두고두고 따라오면서 귀찮게 굴겠지요. 허니 조선 기병들을 섬멸하지는 못하더라도 위협을 줄 필요는 있어 보입니다.”
처음에는 피해를 줄이기 위해서라도 이곳으로 접근하고 있는 조선 기병들을 그냥 무시하고 북진하는 것이 맞지 않겠냐는 의견에 동의하던 부장들이었지만. 조선 기병들을 내버려 두고 이동했다가는 계속해서 피해를 볼 수밖에 없지 않겠느냐는 의견이 나오자 부장들도 이에 공감하면서 지금 이곳으로 달려오고 있는 조선 기병들과 잠깐 전투를 치러야 하는 것이 아니냐는 표정으로 용대각을 바라보았다.
이에 용대각은 잠시 고민했지만, 전투에서의 피해는 퇴각할 때 가장 많이 발생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에 자신들을 추격하는 조선 기병들을 그냥 내버려 두었다가는 지금 조선 기병들과 전투를 벌여 격퇴하는 것보다 더 큰 피해를 볼 수 있다고 판단했다.
해서 용대각은 지금 이곳으로 몰려오고 있는 조선 기병들과 전투를 벌이기로 마음먹고 입을 열었다.
“그러지요. 지금 용암포에 있는 전 병력을 이동시켜 현재 이곳으로 몰려오고 있는 조선 기병들을 공격하겠습니다. 다만 조선 기병들이 저희의 접근에 말머리를 돌린다면 위험하게 추격하지 말고 그대로 말머리를 돌려 북진하도록 하지요.”
“합당하군요.”
“알겠습니다.”
“그러지요.”
* * *
한창 말을 달리며 용암포로 이동하던 탐사대의 선임 총 조장은 선행했던 정찰병의 보고를 전해 받고 급히 이동 속도를 줄이라는 명령과 함께 행렬 가운데에서 이동하고 있는 특수군으로 이동했고.
탐사대의 중앙에서 일렬로 이동하던 특수군은 자신들과 함께 움직이던 탐사대가 갑자기 이동 속도를 줄이자 무슨 일이 있나 싶어 마찬가지로 속도를 줄였고, 검차 위에서 내심 긴장을 감추지 못하며 연신 주변을 두리번거리던 특수관의 지휘관은 자신에게 다가오는 탐사대의 총 조장을 보고 급히 무슨 일이 있는가 질문했다.
이에 탐사대의 총 조장은 현재 용암포에 주둔하고 있다는 청나라군이 이쪽으로 남하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렸고, 특수관의 지휘관은 무척 긴장한 표정으로 되물었다.
“예? 청나라군이 이곳으로 오고 있다고요?”
이곳에 오기 전 특수군이 창설되기는 했지만, 아직 제대로 된 체계를 갖추지는 못했다.
특수군은 다른 군과는 성격이 다르다 보니 다른 군의 체계를 그대로 답습하기 어려우므로 군사청 연구소에서도 어떻게 특수군을 운용해야 하는지 의견이 엇갈렸고, 당장 조선에 특수군의 일부를 투입해야 하다 보니 군사청에서는 일괄적으로 검차를 조종하는 조종수에게는 대원의 계급을, 검차 위에서 기관총을 조작하고, 폭넓게 전장 상황을 파악해 조종수에게 명령하는 차장에게는 조장의 계급을, 그리고 조장 가운데 그나마 군 경력이 긴 이를 선임 조장의 계급을 임시로 달아주고 조선으로 보내 버렸고.
그 때문에 특수군의 검차들을 실질적으로 지휘해야 하는 전직 경비대 조장은 이 상황이 몹시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그나마 본대와 함께 움직일 때는 조선 지원군 사령관인 카무이쿠르가 전령을 보내 일일이 명령을 내려주었기에 그 명령에 따라 움직이기만 하면 되었지만, 지금은 상황이 달랐고, 탐사대를 지휘하는 총 조장은 계급이 차이가 나는데도 불구하고 다른 부대였기에 자신을 동급의 지휘관으로 생각하는지 아까만 해도 용암포를 공격하는 전술을 의논해올 정도였으니까.
헌데 예상과는 달리 용암포에 주둔해 있던 청나라군이 이곳을 향해 몰려오고 있다고 하니 특수군의 지휘관이 당황한 표정을 짓자 탐사대의 총 조장이 슬쩍 웃으며 상황을 설명했다.
“그렇습니다. 탐사대원의 보고로는 용암포에 주둔하고 있던 병력 대부분이 이곳으로 향하고 있답니다. 아마 이대로라면 10분 후에 청나라군과 전투를 벌여야 하겠지요.”
“우리가 본대와 떨어져 용암포로 이동하고 있다는 사실을 파악한 모양이군요.”
“그렇습니다. 주변에 정찰병으로 짐작되는 청나라 기병들이 몇 있긴 했으니까요. 그리고 지금 우리의 수가 적다는 것을 알고 우리를 섬멸하기 위해 몰려오는 것 같습니다.”
조만간 전투를 치러야 할 상황이었으니 특수군의 지휘관은 잔뜩 긴장한 얼굴로 탐사대의 총 조장을 보고 앞으로 어찌할지를 물었다.
“으음...허면 퇴각하실 생각이십니까?”
이에 총 조장은 단호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그럴 수야 없지요. 만약 우리가 퇴각하면 적들은 그대로 북진할 테니까요. 이를 막기 위해 저희가 달려온 것이잖습니까.”
“그...그렇지요. 허면 이곳에서 자리를 잡고 몰려오는 청나라군을 상대하면 되는 겁니까?”
그 말에 탐사대의 총 조장이 진지한 얼굴로 특수군의 지휘관을 바라보며 물었다.
“그 때문에 온 겁니다. 검차는 움직이는 도중에도 사격할 수 있지요?”
“그렇습니다. 사격 자체는 큰 문제가 없어요. 다만 이동 중에 재장전에 시간이 조금 걸리기야 합니다만...”
이에 탐사대의 총 조장이 조금 안색을 찌푸리며 급히 되물었다.
“오래 걸리는 겁니까?”
“검차가 이동하면 덜컹거리다 보니 아무래도 평소보다는 재장전하는 데 걸리는 시간이 늘어납니다만, 그렇다고 그렇게 오래 걸리는 것은 아닙니다. 한 10초 걸리던 것이 15초쯤 걸린달까요?”
그 말에 탐사대의 총 조장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휴. 다행이군요. 그렇다면 저희도 이곳으로 달려오는 청나라군을 향해 진군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예? 적을 향해 진군하자고요?”
이에 특수군의 지휘관이 놀란 표정으로 되묻자 탐사대의 총 조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회전 단총의 사거리는 짧은 편이라, 원거리에서 갑오 소총만으로 적을 상대하는 것보다는 적과의 거리를 좁혀 회전 단총을 사용하는 것이 더 큰 피해를 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곳에서 방어태세를 갖추고 있으면 적들은 그냥 퇴각하거나, 혹은 병력이 우세하니 완전히 포위하고 사방에서 돌격할 수도 있는데 오히려 그러면 이쪽이 더 불리합니다.”
“아. 그렇긴 하지요. 다만 근거리 전투가 벌어지면 탐사대의 피해가 클 것 같은데...”
특수군의 지휘관은 탐사대의 피해를 우려했지만, 탐사대의 총 조장은 자신만만한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괜찮을 겁니다. 적들도 이전의 전투에서 검차와 기관총의 위력을 경험하기는 했지만, 아까는 날이 어두웠기에 이를 제대로 실감하지는 못했을 겁니다. 그러니 지금 우리를 만만하게 보고 몰려오는 거겠죠.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다르잖습니까.”
날이 밝은 만큼 지금 자신들을 향해 돌격하는 청나라군은 기관총의 위력에 당황할 것이 분명했고, 그렇게 청나라군이 흐트러졌을 때 청나라군을 들이친다면 쉽사리 승리할 수 있다고 확신하는 탐사대 총 조장의 말에 특수군의 지휘관이 일리가 있다고 여겨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아. 하지만 검차의 속도가 느린데 괜찮겠습니까?”
검차가 나름 빠른 편이기는 했지만, 전력 질주하는 말보다는 느렸다.
그렇기에 지금도 탐사대가 특수군이 이동하는 속력에 맞춰주고 있었고.
또한, 탐사대가 특수군을 뒤로 하고 돌격해버리면 탐사대와 청나라군이 뒤엉켜버려 기관총을 사용하기 어려워지는 것을 우려해 특수군의 지휘관이 급히 질문하자 탐사대의 총 조장이 걱정하지 말라는 듯 손을 내저었다.
“당연히 저희는 검차의 속력에 맞춰 진군할 겁니다. 적들이 전투를 완전히 포기하고 퇴각하기 전까지는요.”
검차의 속도에 맞추어 이동해야 기관총의 위력을 극대화할 수 있고, 말의 체력을 비축해 퇴각하는 청나라군을 추격할 수 있었기에 탐사대의 총 조장이 이를 설명하자 특수관의 지휘관은 고개를 끄덕였다.
“아...그렇군요. 알겠습니다. 허면 적들이 퇴각하고 탐사대가 청나라군을 추격하면 그때 사격을 멈추라고 지시해두겠습니다.”
“예. 부탁드립니다.”
* * *
“장군! 저기 보십시오!”
용대각은 부관의 말에 전방을 바라보았고 이쪽으로 이동하는 조선 기병들 사이에 보이는 기물을 확인하고 표정을 찌푸렸다.
“저건...북미왕국의 기물 아닌가?”
“그렇습니다. 어쩌지요?”
조선 기병들은 2열로 길게 늘어서 비교적 빠르게 이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는데 그 진형의 중앙과 양 끝에 북미왕국의 기물들이 배치되어 조선 기병들과 함께 이곳으로 다가오고 있었기에 부관이 당황해 용대각을 바라보았지만 용대각은 이를 심각하게 여기지 않았다.
물론 저 북미왕국의 기물이 수십 대라면, 그리고 이 수십 대의 기물이 일렬로 늘어서서 밀고 들어온다면 상대할 방도가 없었기에 곤란했지만, 기껏해야 10대 정도로 보이는 북미왕국의 기물이 무에 중요할까 싶었기에.
해서 용대각이 점차 자신들을 향해 빠르게 접근하고 있는 조선군을 바라보며 소리쳤다.
“북미왕국의 기물이 신기해 보이기는 하지만 그게 전부다! 몇 대 되지도 않으니 그냥 무시하고 조선 기병들을 짓밟아 버려! 말을 제대로 타지도 못하는 조선 놈들이 나대는 꼴을 그냥 두고 볼 것인가! 돌격!”
“와아아!”
용대각의 명령과 동시에 청나라군을 일제히 말을 달리기 시작했고 2만에 달하는 청나라 기병들이 일제히 달리기 시작하자 용암포 인근의 평원은 말발굽 소리로 가득해졌다.
그뿐만 아니라 두 기병 부대가 서로 상대를 향해 말을 달렸으니 두 기병 부대 사이의 거리가 순식간에 좁혀지기 시작했고.
이에 청나라의 병사들은 일제히 몸을 숙이며 피격면적을 줄여 조선 기병들의 사격을 대비하며 계속해서 말의 배를 차며 속도를 올리기 시작했을 때.
‘타타타타타타타타탕!’
“히힝!”
“컥!”
“끄아악!”
계속해서 울리는 총성과 함께 앞 열에서 달리는 청나라군이 줄줄이 쓰러지기 시작했고, 이 광경에 청나라군의 병사들은 당황했다.
“헉! 이게 무슨!”
“저게 뭐야!”
“철괴물이 총알을 계속 발사한다! 피해!”
청나라군 역시 조선 기병들이 계속해서 총알을 발사할 수 있다는 사실은 미리 전해 들었지만, 단순한 장애물이라고 생각했던 북미왕국의 기물에서 무자비하게 총알의 비를 쏟아내고, 기물 위에 붙어있는 거대한 총구가 움직이는 대로 병사들이 쓰러지기 시작하자 공포에 질릴 수밖에 없었다.
동시에 기다란 조총을 들고 있던 조선 기병들의 일제 사격으로 전열이 대부분 쓰러지자 중간에서 말을 달리던 용대각은 그 모습을 곧바로 바라볼 수 있었고.
“맙소사! 저 기물이 총알을 계속 발사하고 있습니다! 장군!”
“이...이게 무슨...”
용대각은 너무나도 예상외의 상황에 잠시 멈칫하다 자신을 비롯해 다른 청나라군의 병사들도 돌격을 멈추었다는 사실과 어느덧 짧은 조총을 들고 기물과 함께 자신들에게 빠르게 접근하는 조선 기병을 확인한 후 사색이 되어 소리쳤다.
“안돼! 바로 달려! 조선 기병을 뚫어야 살 수 있다!”
“당장 달리라고!”
그 말에 정신을 차린 다른 청나라의 병사들도 고래고래 소리치며 말을 달렸지만, 다시 가속하기에는 너무 늦었다.
‘탕! 탕! 타타타타탕!’
“으악!”
“켁!”
“충돌한다!”
“조심...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