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62화
청나라군이 물러났다는 소식에 조선군도 일부를 제외하면 휴식을 취할 수 있게 되었고, 덕분에 화롯불 근처에서 불을 쬐며 휴식을 취하고 있던 훈련도감의 한 병사는 식량을 가져오겠다던 후임 병사가 커다란 상자를 낑낑대며 들고 오자 얼굴이 밝아지며 급히 자리에서 일어나 후임 병사에게 다가갔다.
하지만 상자 안에는 기대했던 떡 대신 금속으로 보이는 원통만이 가득했기에 뚱한 표정으로 투덜거렸다.
“이게 대체 뭐야? 먹을 걸 가져오라니까 뭔 이상한 걸 가져왔어?”
“그게...”
병사의 타박에 후임 병사가 무어라 이야기하려 할 때 후임 병사를 따라오던 오장이 대신 입을 열었다.
“왜 애를 타박하고 그래. 그게 먹을거여.”
“엥?”
“이게요?”
후임이 상자를 들고 오자 먹을 것이 담겨 있다고 생각해 상자로 몰려들었다가 그 내용물에 실망하고 있던 병사들이 오장의 말에 당황하자 오장이 피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게 통조림이라는 건데 그 철통 안에 음식이 담겨 있다더라.”
이에 한 병사가 상자 안에 들어있는 통조림을 꺼내 들고 물었다.
“여기에 음식이 담겨 있다고요?”
“그래. 이걸 나눠준 북미왕국 병사들의 이야기로는 이미 조리된 음식을 그 철통 안에 넣어두었기에 뚜껑만 따면 바로 먹을 수 있다던데? 그래서 전투 식량이라고 부른다더라.”
오장의 대답에 병사들은 고개를 갸웃했다.
“아니...그럼 음식이 쉴 것 같은데요?”
“예. 아무리 날이 추운 편이라도...”
미리 조리한 음식을 이렇게 철통 안에 담아둔다면 이 철통만 따면 바로 배를 채울 수 있었기에 편리하기는 해 보였지만, 음식은 시간이 흐를수록 상한다는 것을 알기에 병사들이 미심쩍은 눈빛으로 철통을 바라보자 오장이 혀를 차며 병사들을 타박했다.
“쯧쯧. 북미왕국이 그런 거 하나 고려하지 않고 상한 음식을 병사들에게 보급하겠냐.”
“아...”
이들도 세계신문을 읽어왔기에 북미왕국이 부유한 나라라는 것은 알고 있었고, 특히 북미왕국은 병사들의 대우가 좋다고 알려져 있었기에 오장의 말에 수긍하자 이곳에 통조림을 들고 왔던 후임 병사가 조심스럽게 덧붙여 말했다.
“저도 조금 미심쩍어서 물어봤는데 이 통조림이라는 것을 만들 때 이런저런 처리를 해서 생산된 지 6개월까지는 괜찮답니다. 그리고 이건 생산된 지 얼마 안 된 통조림이라 걱정 말고 먹으라더군요.”
“허...”
“북미왕국은 별별 신묘한 것을 다 만들어내네요.”
“그러게 말이여.”
병사들의 상식으로는 음식을 6개월 가까이 상하지 않게 보관한다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했지만, 또 북미왕국이라면 충분히 가능할 거라는 믿음이 있었다.
해서 병사들은 감탄하며 상자 안에 있는 통조림을 가져가기 위해 손을 내밀며 물었다.
“헌데 이 통조림 안에 음식이 들어있다면 하나씩 가져가서 먹으면 되는 겁니까?”
“아. 보면 거기 보면 통조림이 2종류 있을 거야. 크고 작은 거 하나씩 가져가면 된다.”
“오. 2개나 주는 겁니까?”
“들어있는 게 다른 건가요?”
상자 안에 있던 통조림은 두 종류였고, 위에 있는 통조림과는 달리 밑에 있는 통조림은 크기가 조금 더 컸기에 병사들은 조금이라도 더 먹기 위해 하나같이 밑에 있는 통조림을 집던 병사들은 오장의 말에 희희낙락하며 냉큼 작은 통조림도 집어 들며 질문을 던지자 오장이 답했다.
“그래. 큰 게 주식이 들어있는 통조림이고 작은 건 부식이 들어있는 통조림이라더라.”
“부식이요?”
“그래. 아마 초콜릿 케이크와 커피 가루가 들어있다고 했었지?”
오장의 말에 병사들은 화들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헉! 초콜릿이나 커피요? 그거 무척 비싸잖습니까?!”
북미왕국과 교류하면서 북미왕국의 각종 기호식품도 조선에 들어왔기에 병사들도 초콜릿이나 커피의 존재는 알고 있었다.
특히 커피의 경우 양반들 사이에선 꽤 인기를 끌고 있었고, 초콜릿은 그 달콤한 맛 때문에 남녀노소 모두 좋아할 수밖에 없었으니까.
다만 호기심에 한 번 사서 맛볼 수야 있어도 계속해서 사 먹기엔 부담스러운 가격이라는 것을 잘 아는 병사들은 그 값비싼 초콜릿과 커피를 보급품으로 병사들에게 준다는 사실에 기겁하자 오장은 뭐 그리 놀라냐는 얼굴로 대답했다.
“북미왕국이야 부유하고 각종 물산이 넘쳐나니 가능한 거겠지.”
오장의 말에 병사들은 새삼 북미왕국의 부유함을 실감하면서도, 이러한 것을 매일 먹는 북미왕국의 병사들이 부러울 수밖에 없었다.
해서 병사들이 묘한 표정을 짓고 있을 때 한 병사가 통조림을 살펴보고 통조림에 찍혀있는 글자를 읽고 중얼거렸다.
“죽? 죽이 들어있는 건가?”
“그래. 북미왕국 병사들이 하는 이야기로는 여러 주식 중에 그게 제일 낫다던데?”
“종류가 여러 가진가 보네요?”
“응. 근데 몇 개는 맛이 별로라고 그러더라고. 헌데 이건 맛이 괜찮아서 다행이라고 웃던데?”
오장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병사는 통조림을 살펴보다가 깔끔하게 밀봉되어 있는 통조림을 보고 조금 당혹스러운 표정으로 질문했다.
“근데 이거 어떻게 따야 합니까? 그냥 칼로 따면 되는 겁니까?”
“그래도 되고 이 통조림 따개를 이용해도 되고.”
그러면서 오장이 상자 안에 있던 통조림 따개를 들고 통조림의 뚜껑을 따기 시작했고, 이를 흥미롭게 지켜보던 병사들은 마침내 뚜껑이 열리자 안쪽의 내용물을 확인하고 신기하다는 듯 중얼거렸다.
“허. 정말 죽이 들어있네요?”
“그것도 그냥 죽만 들어있는 게 아니라 고기와 야채가 푸짐하게 들어가 있는데?”
병사들은 죽이라길래 희멀건 한 죽을 생각하고 있었는데, 고기와 여러 야채들이 들어가 있어 알록달록한 죽을 보고 놀란 표정을 지었고.
“어디 보자...맛이 있으려나?”
오장 역시 생각보다 먹음직스러워 보였기에 급히 숟가락을 들어 죽을 듬뿍 떠 입에 가져가 오물거리자 주변의 병사들이 오장을 보고 물었다.
“어때요?”
오장은 죽을 삼킨 후 새삼 놀랐다는 표정으로 통조림 안의 죽을 바라보고 입을 열었다.
“어? 이거 의외로 맛있는데?”
“그래요?”
오장은 계속해서 숟가락으로 죽을 허겁지겁 먹기 시작했고, 이런 오장의 반응에 다른 병사들도 급히 오장이 한 것처럼 통조림 따개로 통조림을 열고 죽을 먹기 시작했다.
“와! 이거 짭짤하니 생각보다 괜찮은데요?”
“그러게. 차가운 것만 빼면 맛은 좋은데?”
이에 마지막으로 통조림을 열던 후임 병사가 입을 열었다.
“아. 그렇지 않아도 북미왕국 병사들이 그런 소릴 하더라고요. 맛있게 먹고 싶으면 뚜껑을 딴 후에 불에 데워 먹으라고 말입니다.”
후임 병사의 말에 병사들은 통조림이 금속 재질이라는 것을 떠올리고 화롯불을 잠시 바라보다 말했다.
“아. 그래도 되겠네. 하지만 이거 데우는데 시간이 꽤 걸릴 것 같으니 일단은 그냥 먹어야지.”
“그렇긴 해. 빌어먹을 되놈들 때문에 뱃가죽이 등에 붙을 정도니까.”
이런 병사들의 말에 오장이 고개를 끄덕이며 한마디 했다.
“그래. 내가 얼핏 듣기로 해가 뜨면 곧바로 이동할 수도 있어. 그러니 데울 생각하지 말고 바로 먹어. 나중에 굶주린 배를 부여잡고 행군할 생각이 아니라면.”
이에 어제 행군하면서 고생했던 병사들은 곧바로 이동 명령이 떨어질까 봐 급히 숟가락을 놀리기 시작했다.
* * *
조선 정벌군의 총사령관인 색액도는 부장들에게 조선군의 공격을 맡긴 후 곧바로 용암포로 이동했다.
그리고 승전보를 기다렸지만, 돌아온 병사들의 분위기를 보고 패배를 직감한 색액도였고.
해서 색액도는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병사들을 지휘한 부장들을 막사로 불러들였고, 부장들의 보고에 기함했다.
“뭐?! 지금 뭐라고 했나! 지금 복귀한 병사들의 수가 고작 2만 명이라고 한 건가?!”
““무능한 소장들을 벌하여 주시옵소서. 대인.””
부장들이 무릎을 꿇으며 죄를 청하자 색액도는 오히려 열이 올라 허리춤에 있는 칼을 꺼내 부장들의 목을 날리고 싶은 생각이 간절했다.
하지만 당장은 상황 파악이 우선이었기에 색액도는 애써 분노를 가라앉히며 부장들에게 일어나라고 명령한 뒤 질문을 던졌다.
“아니. 정말로 고작 한 시진의 전투에 병력의 반을 넘게 잃었다는 말을 하는 건가? 피해를 줄이겠다고 적들이 제대로 사격하기 어려운 야간에 공격을 감행했으면서?”
이에 부장들은 유구무언이었기에 그저 고개를 숙이고 있을 따름이었고, 이를 답답히 여긴 색액도가 계속 대답을 독촉하자 하나둘 입을 열기 시작했다.
“그게...조선군의 화력이 저희의 상상 이상이었습니다.”
“더불어 조선군의 저항이 무척 완강했습니다.”
“예. 적들의 빈틈을 찾아 3차례나 돌격에 성공했습니다만...적들을 무너뜨리지 못했습니다.”
부장들의 보고에 색액도는 도저히 믿기 힘들다는 표정을 지었다.
적들은 조총으로 무장하고 있었으니 적들에게 접근할 때까지 날아오는 총알이 문제였지, 붙기만 하면 낙승할 거라고 확신했던 탓이다.
적들의 무장은 조총이 전부였고, 북미왕국의 조총이 아무리 재장전을 빠르게 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근접 거리에서 조총을 재장전해 상대에게 발사하는 것이 쉬울 리가 없었으니까.
헌데 3차례나 적들의 총알 세례를 견디며 근접전을 치렀는데도 적들의 진형을 무너뜨리지 못했다는 말에 색액도가 탄식했다.
“허. 돌격에 성공해 조선군과 가까이서 전투를 벌였는데도 승리하지 못했다고?”
이에 퇴각할 때 합류한 용대각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그게...돌격에 성공해 전투가 벌어진 곳으로 계속해서 병력을 증원했지만, 적들도 병력을 증원한 모양인지 총알이 빗발처럼 날라와 이를 뚫고 돌격에 성공한 병력과 합류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렇습니다. 돌격에 성공해도 시간이 갈수록 날아오는 총알이 많아져 이를 버티지 못해 지원병력은 끊길 수밖에 없었고, 그렇게 적진에 고립된 병사들은...”
날이 어두웠고, 돌격에 성공한 병사들은 제대로 퇴각하지 못하고 모두 죽거나 항복했기에, 이들은 검차에 달린 기관총의 존재를 파악하지 못했다.
해서 청나라군은 병력을 가다듬고 다시 조선군의 틈을 비집고 돌격했지만, 계속 실패했고 그러다 보니 피해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었으며, 시간이 흘러 해가 뜨게 되면 그동안 방어에 전념하던 조선군이 자신들을 공격하기 위해 나설 것이라 생각한 부장들은 의논 끝에 결국 후퇴했다는 설명에 색액도가 땅이 꺼져라 탄식했다.
“허...”
솔직히 색액도는 이번 전쟁을 무척 쉽게 생각했다.
어차피 조선군은 그렇게 대단하지 않다고 생각했으니까.
다만 전쟁을 시작하며 조선군이 북미왕국의 무기로 무장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조금 우려스럽기는 했지만, 아무리 북미왕국의 무기가 대단하다고 한들 원거리 무기라 붙으면 청나라군이 유리했고 청나라군은 병력의 수가 월등하고 기동력도 뛰어난 만큼, 시야가 제한되는 야간에 돌격하면 조선군을 상대로 승리하는 것은 큰 문제가 아니라고 판단했고, 중요한 것은 얼마나 적은 피해로 승리할 수 있느냐고 생각했다.
헌데 자신들의 예상보다 조선군의 전투력은 대단했고, 덕분에 몇 차례의 근접전투에도 불구하고 결국 패배했으며 이번 전투로 동로군의 절반을 잃어버린 셈이었으니 이 상황을 대체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한 색액도였다.
그런 색액도를 보고 용대각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만약을 위해 대인께서는 바로 강을 건너시는 것이 좋겠습니다.”
“지금 조선군을 피해 도망치라는 소릴 하는 건가?!”
색액도가 용대각의 말에 분노해 소리쳤지만, 용대각은 담담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조금 있으면 날이 밝을 테고 그러면 조선군은 분명 이곳으로 몰려들 겁니다. 조선군의 진영은 이곳 용암포에서 25리 정도 떨어져 있으니, 한 시진, 늦어도 두 시진이면 도착할 테고, 그때면 해가 중천이라 저들을 상대하기 어렵습니다. 그러니 지금이라도 대인께서는 강을 건너시지요.”
“그렇습니다! 대인! 훗날을 대비해서라도 빨리 물러나셔야 합니다!”
“대인의 안전도 그렇고, 지금이라도 병력을 철수해서 피해를 최소화하는 것이 옳사옵니다!”
다른 부장들 역시 조선군의 강력한 화력을 직접 경험했었기에, 날이 밝고 조선군이 이곳으로 몰려온다면 이를 방어하기는 거의 어렵다고 판단했다.
그러니 최대한 빠르게 이곳에서 물러나야 한다고 한목소리를 내자 색액도는 망연자실한 표정을 지었다.
이번 전쟁을 통해 황상의 신임을 되찾겠다는 포부로 조선 정벌군의 총사령관 자리를 맡았는데, 여기서 강을 건넌다면 조선 정벌은 실패라는 뜻이었고, 결국 색액도는 패전의 책임을 져야 했으니까.
하지만 그게 이 조선 땅에서 죽는 것보다야 나았기에 색액도는 일단 다시 강을 건너 물러나기로 마음먹고 질문을 던졌다.
“알겠네. 상황이 그렇다면 일단 피해를 최소화해 훗날을 대비해야겠지. 다만 조선군이 곧 들이닥친다면 물자는 다 포기한다 하더라도 이곳에 있는 병력을 다 도하시키지는 못할 텐데?”
색액도는 용암포의 병사들이 조선군의 진영을 공격하려 남하한 이후 병사들을 독촉했고, 덕분에 병사들 대부분을 옮길 수 있었기에 지금 이 용암포에 있는 병력은 2만 5천 명에 가까웠다.
헌데 조선군이 몰려오기 전까지 이들이 모두 배를 타고 압록강을 넘는다는 것은 어려워 보였기에 중얼거리자 용대각이 말했다.
“일단 최대한 병력을 배에 태워 도하시키도록 하고 조선군이 몰려오게 된다면 남은 병력은 압록강을 따라 북쪽으로 이동해 폭이 좁은 구간에서 강을 건너면 됩니다.”
이에 색액도는 신음을 흘리며 중얼거렸다.
제대로 된 장비 없이 도강할 정도로 폭이 좁은 곳이 바로 서로군이 조선군과 대치하는 장소였으니까.
“으음...그곳에도 조선군이 남아 있지 않나?”
“하지만 서로군이 있으니 이들의 도움을 받아 어떻게든 강을 건널 수 있을 겁니다. 그리고 상황을 봐서 강을 건너기 어렵다 싶으면 조선군을 우회해 더욱 북진해서 강을 건너겠습니다.”
이에 색액도는 한숨을 내쉬고 고개를 끄덕였다.
“휴우. 하는 수 없지. 알겠네. 그러도록 하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