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61화
“사령관님! 청나라군이 완전히 물러난 것 같습니다!”
막사 안에서 전령들을 통해 병력을 지휘하던 조선 지원군의 사령관인 카무이쿠르는 아이누 탐사대에 가 있던 조병수가 급히 막사로 들어와서 하는 보고에도 기쁜 기색 없이 오히려 미심쩍은 표정으로 되물었다.
“흠. 완전히 물러난 것이 확실한가?”
처음 청나라군의 공격으로 전투가 벌어진 이후 청나라군은 지금까지 몇 차례 물러나 군을 재정비하고 다시 공격했었기에 방금 청나라군이 일제히 물러난 후에도 카무이쿠르와 참모와 전령 역할을 하는 사령부의 지휘관들은 긴장을 늦추지 않고, 병력을 재정비하고, 보급품을 나눠주면서 청나라군의 재공격을 대비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카무이쿠르가 조병수의 보고에도 미심쩍다는 반응을 보이자 조병수가 고개를 끄덕이며 추가로 보고했다.
“확실합니다. 사령관님. 탐사대의 보고로는 2km 근방 안에 청나라군은 없답니다. 그리고 흔적을 보니 모두 용암포 방향으로 이동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는군요.”
이에 막사 안에 있던 다른 지휘관들의 안색이 밝아지며 한마디씩 하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청나라군은 계속된 피해를 감당하지 못하고 야습을 포기하고 철수한 것 같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나마 퇴각 시 피해를 줄이려면 아직 해가 뜨지 않은 지금 시점에서 퇴각해야 안전하게 퇴각할 수 있을 테니 말입니다.”
그리고 카무이쿠르 역시 드디어 전투가 끝났다는 생각에 안도하며 중얼거렸다.
“휴. 다행이군. 한때는 무작정 밀고 들어오는 청나라군의 공세에 방어선이 완전히 뚫리는 줄 알았는데.”
카무이쿠르의 중얼거림을 듣고 옆에 있던 굳건한 바위가 고개를 끄덕였다.
“예. 아마 특수군과 탐사대가 아니었다면 분명 뚫렸을 겁니다.”
“맞습니다. 방어선에 접근해 칼을 휘두르던 청나라군을 탐사대가 바로 처리하고, 검차가 잠시 이동해 기관총으로 화력 지원을 해주는 동안 방어선을 재정비하는 데 성공했으니 망정이지 아니었다면...”
조선 지원군은 나름대로 진을 구축하고 야간 습격에 대비했지만, 청나라군의 공세는 생각보다 매서웠기에 지금까지 3차례나 근거리 전투를 치러야 했다.
청나라군은 조선군 대부분이 총병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근접전으로만 들어간다면 승리할 수 있다는 확신이 있었다.
해서 청나라군은 처음 조선군의 진영 곳곳을 두드리다가 그나마 저항이 덜한 곳을 찾아 어느 정도의 피해를 감수하고 돌격해 결국 근접전으로 돌입할 수 있었고.
돌격에 성공해 조선군의 진형이 흐트러지고 자신들에게 칼을 휘두르는 청나라군을 상대하느라 날아오는 총알이 줄어들자 기회다 싶었던 청나라군은 더 많은 병력을 돌파에 성공한 곳으로 투입하기 시작했고, 카무이쿠르는 여기서 밀리면 끝이라는 생각에 인근에 배치된 검차를 이동시키고, 한창 전투 중이고 주변에 청나라군이 득실거려 예비대로 돌렸던 탐사대를 근접전이 벌어지고 있는 현장으로 급파했다.
명령을 받고 청나라군이 돌파해 근접전이 펼쳐지고 있는 현장에 먼저 도착한 탐사대는 근처에서 칼을 휘두르고 있는 청나라군을 향해 회전 단총의 방아쇠를 당기며 진영 안쪽으로 난입한 청나라군을 정리하기 시작했고.
뒤이어 도착한 검차 2대는 혼란스러운 진영 안쪽의 정리는 탐사대에 맡기고 일부 기병이 돌파에 성공해 자신들에게 날아오는 총알이 줄어들자 이를 기회라고 판단하고 계속해서 몰려오는 청나라군을 향해 기관총을 겨누고 무지막지한 총알을 쏟아내며 어떻게든 전투를 벌이는 청나라군을 지원하려는 후속 부대의 접근을 막아냈다.
그리고 돌격에 성공하고 자신만만하게 근처에 있는 병사들에게 칼을 휘두르던 청나라군은 자신들을 겨누고 계속해서 사격하며 다가오는 탐사대와 자신들을 따라 난입해야 할 후속 부대를 저지하기 위해 불은 내뿜는 철괴물을 보고 기겁하며 도망치거나 항복했고.
그런 식의 접전이 3차례나 발생했기에 카무이쿠르를 비롯해 막사 안에 있던 지휘관들은 드디어 청나라군이 물러나고 전투가 끝났다는 보고에 안도하며 아무리 화력에서 우월하다고 해도 야간 전투의 경우 그 화력을 제대로 발휘할 수 없는 만큼, 제대로 된 방어선을 구축해야 하는 것 아니냐며 이에 관해 의논을 시작할 때 조병수가 그런 지휘관들을 보고 고개를 저으며 입을 열었다.
“지금 그게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지금 시점에서 중요한 것은 이번 전투로 청나라군이 막대한 피해를 보았을 거라는 점입니다.”
이에 굳건한 바위가 조병수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첨언했다.
“그렇긴 하지요. 거의 2시간 동안의 전투로 아국과 조선의 병사들이 사용한 총알만 해도 비축분의 2할에 가까우니까요. 그중에 극히 일부만 청나라군의 몸에 박혔다고 해도 적들의 피해는 무척 클...”
“뭐? 비축분의 2할? 고작 2시간도 안 되는 이번 전투에 500만 발 가까이 사용했다고?”
카무이쿠르가 굳건한 바위의 말에 당황하며 되묻자 굳건한 바위는 상황이 상황이라 어쩔 수 없었다는 듯 어깨를 으쓱였다.
“예. 아무래도 시야 확보가 안 되다 보니 지향 사격이 많았고, 청나라군의 접근을 허용하면 피해가 클 수밖에 없기에 지휘관들은 청나라군이 접근하는 기미만 보여도 적들의 접근을 막기 위해 사격 명령을 내렸습니다. 거기에 미친 듯이 총알을 쏟아내는 기관총과 회전 단총까지 있지요. 그러다 보니 총알 소모량이 어마어마할 수밖에 없지요.”
“이것 참...”
물론 상황은 이해했지만, 고작 한 번의 전투, 그것도 2시간도 안 되는 짧은 전투에 가져온 총알의 2할을 사용한 것은 조금 너무한 것 아닌가 하는 표정을 지은 카무이쿠르였다.
단순 계산으로 이런 식의 전투를 딱 4번만 더 치르면 총알이 없어 총검을 들고 싸워야 한다는 뜻이었으니까.
그렇기에 다음에 이런 일이 발생하면 철저하게 사격을 통제해야겠다고 생각한 카무이쿠르는 일단 조병수를 바라보며 물었다.
“그보다 청나라군이 큰 피해를 입었다는 것이 중요하다고 이야기한 것을 보면 곧바로 용암포를 공격해야 한다고 이야기하고 싶은 건가?”
이에 조병수가 눈을 빛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이건 절호의 기회가 아닙니까. 적들이 이번 전투로 인한 피해를 추스르기 전에 용암포까지 진군해 청나라군을 공격한다면, 청나라군의 본대 상당수를 처리할 수 있을 테니까요.”
조병수가 곧바로 용암포까지 진군하자는 의견을 내자 다른 지휘관들이 하나둘 의견을 제시했다.
“하지만 아직 해가 뜨지 않은 상태에서 적들의 기동력까지 생각하면 너무 위험합니다.”
“예. 그 때문에 탐사대가 퇴각하는 청나라군을 추격하겠다는 것도 막지 않았습니까.”
“그리고 병사들은 한밤중에 일어나 지금까지 계속해서 싸워야 했기에 무척 지쳐 있는 상태이고, 이곳에서 용암포까지는 빨리 움직여도 2시간은 걸린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당장 용암포로 진군하는 것은 불가합니다.”
“하지만 그런 위험을 감수하고 용암포로 진군하는 것도 괜찮다고 봅니다. 곧바로 용암포로 진군해 청나라군의 본대를 섬멸하면, 전쟁은 생각보다 쉽게 끝날 테니까요.”
그러면서 점차 지휘관들은 서로의 의견을 반박하며 목소리를 높이기 시작했고, 이를 지켜보던 카무이쿠르는 손을 들어 지휘관들의 입을 막고 품 안에서 시계를 꺼내 시간을 확인 후 입을 열었다.
“흠. 조금 있으면 6시고...어제는 7시가 넘어서 해가 떴던가?”
“그렇습니다. 7시 10분경에 해가 뜨기 시작했지요.”
굳건한 바위의 대답에 카무이쿠르가 고개를 끄덕인 후 지휘관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럼 1시간 정도 남았으니 일단 일부 병사들만 경계로 돌리고 병사들을 쉬게 하게. 그리고 한밤중에 일어나 지금까지 전투를 치른 만큼 병사들이 무척 허기질 테니 바로 전투 식량을 꺼내 병사들에게 나눠주도록 하고. 그 후 해가 뜨면 용암포로 진군하도록 하지.”
“알겠습니다. 바로 조처하겠습니다.”
유리한 상황에서 괜히 위험하게 병력을 운용했다가 큰 피해를 보는 것보다는 안전하게 움직이는 것이 낫다는 것이 카무이쿠르의 판단이었고, 전면적인 공세를 주장하던 지휘관들은 조금 아쉽긴 했지만, 카무이쿠르의 말대로 병사들이 계속된 전투로 지친 것도 사실이다 보니 별말 하지 않고 이를 수긍했다.
해서 일부 지휘관들은 곧장 다른 지휘관들에게 이를 전해주기 위해 막사를 나갔고, 그 모습을 바라보던 카무이쿠르는 옆에 있던 굳건한 바위를 보고 안색을 굳히며 질문을 던졌다.
“그리고 병사들의 피해는 집계되었나?”
이에 굳건한 바위는 한숨을 내쉬며 어두운 얼굴로 보고했다.
“지금까지 보고한 것을 종합하면 이번 전투로 57명이 사망했고, 102명의 중상자와 323명의 경상자가 발생했다고 합니다.”
굳건한 바위의 보고에 남아 있던 지휘관들은 일제히 안타까움과 비통함이 뒤섞인 탄식을 터트렸고, 카무이쿠르 역시 눈을 질끈 감으며 중얼거렸다.
“빌어먹을. 피해가 크군.”
지금껏 북미왕국은 건국된 이후 벌어진 모든 전쟁에서 승리를 거두었고, 그 피해도 무척 적었다.
물론 이는 북미왕국이 치른 전투가 대부분 지상전보다는 해전이었고, 북미왕국의 해군이 적들보다 훨씬 우월한 무기와 배로 무장했기에 가능한 일이기는 했다.
그리고 이번 전쟁의 경우 지금까지와는 달리 청나라가 동원한 병력이 많았기에 어느 정도의 피해가 발생하리라는 것은 예상했고.
특히 무려 4만 명 정도로 추측되는 청나라군을 상대하는데 500명 정도의 사상자가 발생했다는 것은, 그리고 전투 당시 3번이나 방어선이 뚫리고 적들이 아군 진영 안으로 밀고 들어왔던 것까지 고려하면, 빠른 판단과 효과적인 대응 덕분에 무척 적은 피해로 적을 물리친 셈이었지만, 지금까지 북미왕국은 한 번의 전투에서 세 자릿수의 사상자가 발생한 적이 없었기에 카무이쿠르나 지휘관들의 충격은 생각보다 컸다.
이런 반응에 굳건한 바위는 씁쓸한 표정으로 대꾸했다.
“그렇습니다. 초반에 청나라군의 접근을 막지 못해 3차례 근거리 전투가 벌어졌고, 이때 사상자가 많이 발생했습니다. 그리고 밤이다 보니 적 포병대의 위치 파악이 늦었기에 간간이 아군의 진영으로 떨어지는 쇳덩이에 발생한 사상자도 의외로 많고요.”
“후우...그렇게 화력에서 우월한데도 이렇게 피해를 볼 줄은...역시 야간 전투는 최대한 피해야 하나...”
카무이쿠르는 탄식하며 그렇게 중얼거리다 굳건한 바위에게 명령했다.
“아무튼, 일단 부상자들을 치료하는 데 최선을 다하도록 하게.”
“물론입니다. 지금도 군의들이 어떻게든 병사들을 살리기 위해 노력하고 있으니 그 부분은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전쟁이 일어나리라 예상했었기에 군사청에서는 북방항로가 닫히기 전에 본국의 의원들을 추가로 모집해 조선 지원군의 군의로 배속시켰기에 굳건한 바위가 이를 언급하자 카무이쿠르가 고개를 저었다.
“그래. 하지만 부상자가 생각보다 많은 탓에 군의들과 몇 안 되는 의무병만으로 이들을 감당하긴 어려울 거야. 그러니 조용한 곰. 자네가 군의들을 뒤에서 지원해주도록 하게.”
“알겠습니다. 사령관님.”
“그리고 사망자들의 유해는...”
“당연히 고향으로 보내야지요. 전투가 끝났으니 임시로 관을 짜서 평양으로 보낼 생각입니다.”
북미왕국이 워낙 넓다 보니, 그리고 아직은 교통이 불편한 터라 새김포 인근에만 존재하던 국립묘지도 북미왕국 곳곳에 추가로 건설했다.
그리고 이 아시아 지역에는 아이누 섬의 포로나이 인근에 국립묘지가 존재했기에 굳건한 바위는 병사들의 유해를 수습한 관을 평양으로 보내고, 그곳에서 수송선을 통해 포로나이에 있는 국립묘지로 보내 안장할 생각이라고 설명하자 카무이쿠르는 세심하게 신경 써주어 고맙다는 미소를 살짝 지은 후 질문을 던졌다.
“고맙네. 맡기도록 하지. 그보다 지금 자네가 보고한 피해 집계에 조선군의 피해는 빠져 있지?”
“그렇습니다.”
일단 조선군과 조선 지원군은 지휘부가 달랐기에 굳건한 바위는 조선군이 얼마나 피해를 입었는지 모른다며 고개를 젓자 카무이쿠르가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고 조병수를 바라보며 말했다.
“자네가 훈련대장님께 지금 결정한 사항들을 전하고, 넌지시 조선군의 상황을 알아보게. 그쪽에도 꽤 많은 쇳덩이가 떨어지기도 했고, 마지막으로 돌파된 곳이 조선군이 방어하던 장소가 아닌가.”
“알겠습니다. 사령관님.”